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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민의 진료실인문학

[이여민의 진료실 인문학] 우리 몸의 물을 다스리는 신장!

by 북드라망 2024. 3. 4.

우리 몸의 물을 다스리는 신장!

 

오후 진료를 시작하는데 인문학 공부를 같이하던 30대 초반 젊은 여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아침부터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오한이 나고 추웠는데, 지금은 갑자기 열이 너무 심하게 난다고 했다. 불안한 목소리로 간간이 옆구리 통증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녀의 증상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나는 서둘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소변 검사 결과 그녀는 ‘급성 신우신염’이었다. 신우신염은 신장, 즉 콩팥에 염증이 생긴 것이다. 이는 세균에 감염된 상태이므로 반드시 항생제를 써야 치료가 된다. 증상으로 보면 몸살감기와 비슷하지만 쉬면 그냥 나을 수 있는 간단한 병이 아니다. 비슷한 상황이 70대 고모에게도 일어났다. 고모는 며칠 종교모임과 합창 공연 등으로 바쁜 일상을 보냈는데 체력적으로 무리가 좀 온 것 같다고 하셨다. 허리가 아프고 기운도 없어, 침을 맞고 집에서만 지낸 지 2주 정도가 흘렀는데 점점 식욕이 없어진다고 호소했다. 일단 검사를 좀 해 보자고 했고 그 결과 ‘급성 신부전’ (급성 신부전(acute renal failure, ARF); 신장 기능이 수 시간 수 일내 급격히 저하되는 것을 말한다. 신장 기능 저하로 인해 신체 내 질소 노폐물이 축적되어 고질소혈증이 나타나고 체액과 전해질 불균형이 일어난다.)이었다. 이는 과로로 생긴 급성 신우신염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여 병이 악화한 것이다. 응급상황이라 바로 상급병원으로 이송했다. 고모는 혈액투석과 항생제 치료를 하면서 위험한 상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

 

독감이나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도 비슷한 일을 자주 겪었다. 열이 있는 환자들은 코로나나 감기 정도로 생각하고 내원하지만 소변 검사를 통해 급성 신우신염으로 밝혀진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타나는 증상이 바이러스로 인한 감기와 비슷해 보이지만 신장에 염증이 생긴 경우는 세균 감염으로 인한 질병이다. 고로 항생제로 치료하지 않으면 고모처럼 위험해질 수 있다. 신장에 염증이 생기면 왜 이토록 위험한 걸까?

 


신장, 말 없는 청소부 
고열이 나는 환자에게서 옆구리 통증이나 허리가 아픈 증상이 있으면 의사는 일단 신우신염을 의심한다. 이 말인즉슨 신장의 위치가 등 뒤에 있다는 뜻이다. 물론 장기가 있는 자리와 통증의 위치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신경이 지나가면서 장기의 정보를 받아 다른 부위에 통증을 전달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다. 어쨌든 등에 두 손을 짚고 하늘을 볼 때 손을 짚은 그 자리가 신장이 있는 곳이다. 양손으로 등을 받힌 것처럼, 신장도 2개이다. 이 점이 다른 장기와 좀 다른 부분이다. 폐를 제외한 심장, 간, 쓸개 등 대부분의 장기는 모두 하나이다. 그런데 폐와 신장은 2개이다. 왜 2개인지 정확히는 잘 모른다. 그러나 병든 신장 하나를 떼어내어도 나머지 하나의 신장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 어쩌면 신장이 2개인 것은 인간이 받은 우주의 선물이지 않을까? 

 


그러면 신장은 어떤 일을 할까? 사람 몸의 70%는 물이다. 신장은 물을 처리하고 염분의 농도를 조절하여 신체의 조건에 맞는 적절한 혈압을 유지하게 한다. 140g에 불과한 신장이 “매일 180L-욕조를 가득 채우고도 넘칠 양-의 물과 최대 1.5kg의 염분을 묵묵히 처리한다.” (빌 브라이슨, 『바디, 우리 몸 안내서』, 이한음 옮김, 까지, 214쪽, 2023.9.5. 12쇄 발행일) 신장의 주요 기능은 물을 통해 노폐물을 걸러내고 적절한 염분 농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저수지를 상상해보면 된다. 저수지는 폭우가 쏟아지면 물을 흘려보내고, 가뭄이 들면 물을 가둔다. 또 물의 정화작용도 한다. 이처럼 신장도 몸의 적절한 양의 수분을 조절하며 동시에 신체 노폐물을 치우는 정수 작용을 한다. 말하자면 청소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신장은 질소 노폐물, 수분, 전해질, 독소와 약물을 몸 밖으로 배설한다는 말이다. 그 결과물이 소변이다. 그래서 신장이 노폐물을 적절히 걸러내는지 알아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소변 검사이다. 신장이 아프면 소변으로 빠져나오지 말아야 할 것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이때 제일 눈여겨봐야 할 것이 단백질이다. 신장은 거름종이처럼 작동하여 체내에 필요한 물질을 밖으로 내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 필터가 고장이 나면 단백질이 소변에서 감지된다. 이럴 때 단백뇨가 있으면 신증후군을 의심해봐야 한다. 또 당뇨 환자는 혈액 내 당 농도가 높아 소변으로 당을 배출한다. 당뇨 환자의 소변에서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소변으로 피가 나오면 신장이나 방광의 염증, 또는 결석, 방광암 등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이렇듯 신장을 통해 만들어진 소변이 요로와 방광을 거쳐 밖으로 배설되기 때문에 간단한 소변 검사로 신장, 요로, 방광의 문제를 모두 알 수 있다. 그런데 신장에 문제가 생겨도 소변 검사를 통하지 않으면 신장에 문제가 생긴 것을 우리는 잘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신장을 말 없는 청소부라고 한다. 


소변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과거 전쟁 중에 소변이 상처 치료제로 쓰인 적이 있다. 어떤 이유로 가능했을까? 건강한 소변은 균이 없고 산성이라서 그렇다. 다리에 상처를 입은 병사가 나무에 기대어 있으면 지나가던 군인이 그 다리에 소변을 배설했다. 치료 약품도 변변치 않았던 비위생적인 전쟁터에서 상처를 청결히 하는 것은 상처 감염의 위험을 크게 덜어준다. 오늘날에는 추천하지 않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나았다. (Barbara Herlihy, PhD (Physiolugy), RN, 『알기 쉬운 해부 생리』, 임난영외 공역, 정담미디어, 589쪽, 2011.8.31일 발행)
 

오줌 눌 때 아프면 방광염, 열이 나면 신장염
신장에서 만들어진 소변을 우리 몸은 바로바로 밖으로 배출하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라. 그러면 온종일 오줌만 싸야 한다. 요관, 방광, 요도는 신장에서 만들어진 소변이 지나가는 장기이다. 이 중 방광은 소변의 일시적인 저장 장소이다. 오줌의 양이 200mL가 넘으면 불편감이 느껴지고 300~500mL가 되면 소변을 보고 싶은 충동을 느껴 화장실을 찾는다. 만약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어서 소변을 계속 참아야 하고 누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어떨까? 식은땀이 나고 금방 죽을 것 같이 배가 아플 것이다. 그러나 죽지 않는다. 단지 방광염에 걸릴 확률이 늘어날 뿐이다. 또 여성이 남성보다 방광염이나 요도 감염이 더 흔하다. 이는 해부학적 구조 때문인데 여성은 질 앞에 있는 요도가 3.5cm로 짧고 밖으로 노출되어 있다. 반면에 남성은 요도가 20cm로 길고 음경으로 감싸고 있다. 여성의 요도가 짧고 밖으로 노출된 구조 때문에 염증이 방광으로 더 잘 올라가는 것이다. 방광염에 걸리면 소변이 자주 마렵고 소변을 보고 나면 요도 끝이 따끔거린다. 방광염은 소변볼 때 불편하지만 열이 나지는 않는다. 물을 평소보다 많이 마시고 소변을 자주 보면 염증이 나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염증이 요관을 타고 신장으로 올라가면 고열과 오한을 동반한 급성 신우신염이 발병한다. 이 경우는 반드시 항생제 투여가 필요하다. 앞에 예시를 든 30대 친구와 70대 고모가 이 상태였다. 그런데 젊은 친구와 달리 고모는 왜 급성 신부전으로까지 진행됐을까? 여러분의 추측대로 나이 때문이다. 신장의 기능적 단위를 신원(nephron)이라 하는데 각각의 신장에 100만 개의 신원이 있다. 신원의 수는 출생 후 증가하지 않으며, 손상 후에도 재생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신원의 수는 점차 감소하여 70~80대에는 약 50%까지 줄어든다. 그 결과 신장의 여과율도 현저히 낮아진다. 그래서 노인들은 약물이 느리게 배설되는데 이 때문에 영양제나 약을 중복하여 복용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행동이다. 또 노인들은 기운이 없다고 수액 맞기를 원하지만, 이 또한 조심해야 한다. 신장의 기능이 줄어서 과잉의 수분을 배설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액이 필요한 경우에도 아주 천천히 주의 깊게 해야 한다. “수액의 과도한 주입은 노인의 심장이 커지는 심부전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같은 책, 596쪽

 


 

고모의 경우 74세로 평소 고혈압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몸에 좋다는 단백질 음료를 매일 섭취하고 있었다. 이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신장에 무리가 가는 행위이다. 그런 데다가 2주 전 합창 공연을 관람하였는데 공연 도중에 나가기가 어려웠으니 분명히 긴 시간 소변을 참았을 것이다. 이로써 방광에 염증이 잘 생기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생긴 염증은 신장으로 올라갔고 치료 타이밍을 놓쳐 신장 기능이 일시적으로 급격히 저하 된 것이다. 이를 급성 신부전이라 한다. 이 상태가 되면 몸의 노폐물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몸이 더 피곤하고 입맛이 저하된다. 급성 신부전일 때는 일시적으로 기능이 떨어진 신장 대신 기계를 이용하여 혈액투석을 한다. 몸에 쌓인 노폐물을 빨리 밖으로 배출해야 장기들이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염증을 치료하고 깨진 전해질 불균형을 맞추어 주면 신장 기능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급성’이라고 일컫는다. 잠시 신장 기능이 저하되고 돌아온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만성’ 신부전은 신장 기능이 완전히 망가져 살아있는 동안에는 기계로 혈액투석을 지속해서 해야 한다. 말없이 묵묵히 등 뒤에서 일하는 신장이 얼마나 고마운지 새삼 알게 하는 대목이다.

 


신장, 듣기와 말하기 

 

신장에 속하는 것들(腎屬物類); 하늘에서는 차가운 기운이고, 땅에서는 수(水)이며, 괘(卦)에서는 감(坎)이고, 몸에서는 뼈이다. 또한 오장에서는 신(腎)이고, 색으로는 검은색이며, 음에서는 우(羽)이고, 소리로는 신음(呻)에 해당된다. 병적인 변화에서는 떨림이 나타나고, 구멍에서는 귀(耳)이며, 맛에서는 짠맛, 그리고 지(志)에서는 두려움이다.(『내경』) 안도균 지음,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 작은길, 202쪽, 2015.11.11. 초판 1쇄

 


『동의보감』에서는 몸을 하나의 우주이며 천지 만물과 소통하는 시공간으로 본다. 신장은 추운 겨울에 흐르는 물을 상징한다. 물은 색깔이 없지만, 겨울밤 깊은 강물은 검은빛을 띤다. 검은 강물은 두려움을 자아낸다. 그래서 신장이 병들면 두려워하며 앓는 신음이 난다. 실제로 급성 신우신염에 걸리면 덜덜 떨고 오한이 나고 끙끙 앓는다. 마치 두려운 무엇을 만났을 때와 아주 비슷하다. 각각의 장기 기능을 따로 떼어 배우는 서양 의학의 관점과 달리 동의보감에서는 오장육부와 얼굴의 구멍을 연결한다. “간의 구멍은 눈”이고 “신장의 구멍은 귀”라는 식이다. 신장에서 물의 기운이 올라와야 귀의 청력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귀는 단지 소리를 듣는 것만이 아니라, 남의 말을 듣는 힘이기도 하다. 청력이 약하면 잘 듣지 못한다. 한마디로 타인들과의 소통능력에 문제가 생긴다.” (고미숙 지음,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북드라망, 280쪽, 2020.12.22. 초판 20쇄)  잘 듣는다는 것은 곧 총명(聰明)함을 상징한다. 총명하면 보고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할 수 있다. 그러면 귀의 청력은 언제 약해질까? 동의보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뜻밖이다. “좌측 귀가 먹은 것이 부인에게 많은 이유는 분노가 많기 때문이다. 우측 귀가 먹은 것이 남자에게 많은 이유는 색욕이 많기 때문이다. 좌우 측 귀가 먹은 것은 기름지고 단 음식을 많이 먹은 탓이다.” (같은 책, 281쪽) 내가 잘 듣고 총명해지고 싶다면, 나아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면 분노와 성욕, 고량진미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 『동의보감』의 놀라운 통찰력이다. 
  

“목소리는 신(腎)에서 나온다.” (「직지」) 중략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 양기다. 양기는 음기로부터 발생한다. 양의 기운인 목소리는 음적인 물질로부터 나온다. 그 물질이 바로 진액(津液), 즉 물이다. 몸에서 내는 양기는 모두 음기인 물에서 나온다. 기가 혈에서 나오듯이 말이다. 그래서 물을 주관하고 정을 저장하는 신장이 목소리의 뿌리가 된다.  안도균 지음,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 작은길, 252~253쪽, 2015.11.11. 초판1쇄

 


목소리는 신장에서 나온다. 그래서 목소리에 힘이 있다면 신장이 튼튼하다는 말이다. 목소리에 힘이 없고 잘 두려워하며 가라앉는 경우(안도균 지음,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 작은길, 254쪽, 2015.11.11. 초판1쇄)는? 신장이 약해서 그렇다. 이때 신장의 기운을 좋게 하는 방법이 있다. 신장과 연결된 혈(穴) 자리인 발바닥에 있는 용천혈(湧泉穴)을 자극하는 것이다. 바로 ‘걷기’이다. 자주 걷는 것만으로 신장이 건강해져 목소리에 힘이 생기고 또박또박 말하게 된다. 두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용기가 나고 당당하게 말하는 배포가 생긴다. 듣기와 말하기, 모두 신장과 관계가 있다. 상대의 말을 잘 경청해야 내 목소리도 크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몸의 물을 관장하는 신장!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처럼 묵묵히 몸 안 노폐물을 배출하여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별 탈이 없게 만든다. 신장 기능이 정상일 때는 이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뇨나 고혈압으로 신장 기능이 망가지면 이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이때는 투석하거나 남의 콩팥을 이식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체내에 노폐물이 쌓여 구역질이 나서 음식을 먹지 못한다. 마지막에는 독소가 쌓여 신체 장기들이 고장이 나고 결국은 죽게 된다. 어느 장기인들 소중하지 않겠냐 만은 개수가 2개인 신장은 좀 특별하다. 듣기도 중요하고 말하기도 중요한 것같이 말이다. 잘 듣지 못하면 제대로 답을 할 수 없고,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면 상대방 역시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이러면 타인과의 소통은 요원해진다. 말을 잘못하는 것은 잘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읽기와 쓰기처럼 듣기와 말하기, 둘은 서로 연결되어 균형을 이룬다. 이 균형을 조절하는 것이 신장이라니! 우리 몸의 물을 다스리는 장부, 신장은 조화와 균형의 관제탑이었다.

 

 

글_이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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