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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와 불교산책

[요요와 불교산책]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by 북드라망 2023. 11. 28.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고행을 멈추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는 어떻게 수행했을까? 붓다의 수행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엄청난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행을 해야지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에게 깨달음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오해다.

간다라 미술품 중에 유명한 고행상이 있다.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붓다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한계 끝까지 정진한 붓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깨닫기 전의 붓다가 한 고행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것이었다. 하루에 곡식 한 톨로 연명하는 곡기를 끊는 수행의 결과 문제의 고행상처럼 등뼈과 창자가 들러붙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사지의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개월이고 잠을 자지 않아 피부와 눈은 그 빛을 잃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는 수행을 하다 보니 힘센 사람이 머리를 가죽끈으로 조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설명하는 도식이 팔상성도(八相成道)이다. 도솔천으로부터 어머니의 자궁에 드는 입태(1)와 룸비니 동산에서의 출생(2), 성밖에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마주하는 사문유관(四門遊觀)(3), 고뇌 끝에 집을 떠나는 출가(4), 설산에서의 고행(5), 보리수 아래에서의 깨달음(6), 다섯 비구에 대한 첫 설법(7), 사라쌍수 아래에서의 열반(8)이 그것이다. 깨닫기 전 고행이 팔상성도에 포함된 것을 보면 그의 고행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출가 수행자 누구도 경험한 적 없는 강도높은 수행을 6년간이나 이어갔음에도 붓다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고행은 깨달음으로 이끄는 길이 아니었다. 극단까지 고행을 밀어붙였던 붓다는 마침내 회의했다. “깨달음에 이르는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출처 - 중앙일보

 

 

마음의 집중과 통찰로
고행은 괴로움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괴로움의 끝없는 반복이었다. 붓다는 고행이 올바른 수행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숙고하고 고행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붓다는 출가하던 그 날처럼 다시 출발점에 섰다. 그간의 수행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고 ‘깨달음에 이르는 다른 길’을 찾기로 한 그때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간 농경제에서 잠부나무 그늘 아래 선정에 들었던 기억이었다. 아마도 고대 인도의 명상적 문화의 전통 속에서 가능한 경험이었겠지만 그때 느꼈던 기쁨과 평화를 떠올린 것이다. 그동안 여러 고행을 해 온 붓다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와 같은 기쁨과 평화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 순간을 붓다는 이렇게 회고한다.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나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와는 관계없는 즐거움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나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나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와는 관계가 없는 즐거움에 대해서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맛지마니까야』 36 「삿짜까에 대한 큰 경」)

 

 

당대의 고행자들이 그랬듯이 붓다는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피해왔다. 즐거움이란 감각적 쾌락이나 불선한 마음의 상태라고 보고, 수행자를 삿된 길로 이끄는 마라의 속삭임이라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세속적 즐거움과 다른 영적인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자 그간 붓다를 지배해왔던 통념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어떤 두려움도 없이 기꺼이 영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엄청나게 중요한 전환이 일어났다. 이 전환으로부터 붓다는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어떤 조건에서 일어나고 어떤 조건에서 사라지는가를 살피는 해방의 길, 중도의 길을 찾아냈다. 그것은 거대한 파도가 될 영적 혁명의 시작이었다. 이제 붓다는 강에 들어가 몸을 씻고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쌀죽을 먹었다. 붓다가 고행주의를 버린 것을 알게 되자 함께 수행하던 동료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손가락질 하며 떠나갔다. 붓다는 혼자가 되었다.

팔상성도에는 이 전환의 장면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고행의 장면이 아니라 고행을 버리는 장면이야말로 붓다를 붓다로 만든 가장 위대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붓다의 출가는 세속이 귀하게 여기는 부와 명예와 쾌락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출가의 목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첫 번째 떠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당시 거의 모든 출가자들이 귀하게 여기던 고행으로부터 떠나는 두번째 떠남이 있어야 했다. 고행으로 피폐해진 몸을 회복한 붓다는 보리수 아래에 앉아 깨어있는 마음으로 분명히 알아차리며 호흡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단단한 음식이나 쌀죽을 먹어 힘을 얻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첫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맛지마니까야』 36 「삿짜까에 대한 큰 경」)


선정이 점차 깊어지자 평온과 고요 속에서 마음은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게 확립되어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지고 평정하고 동요 없는 상태가 되자 마음의 눈을 가리는 것이 없어진 만큼 통찰의 힘도 커졌다. 고요하고 집중된 마음은 번뇌의 발생과 소멸에 대한 앎으로 향했다. 붓다는 무상(無常)을 봄으로써 모든 것이 조건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어디에도 ‘나’와 ‘나의 것’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아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났다. 마침내 생로병사의 두려움과 탐·진·치의 번뇌로부터 자유로운 자,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깨달은 자, 붓다가 되었다.

 


와서 보라
언젠가 꼬살라국의 왕 빠세나디는 번다한 일상에 지쳤을 때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왕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숲으로 갔다. 그런데 숲의 아름다운 정경을 보자 불현듯 숲에서 명상하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며 사는 붓다의 제자들이 떠올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었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과 달리 모든 것을 보시와 탁발에 의존함에도 불구하고 평화와 안락을 누리는 수행자들의 행복이 대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수레를 돌려 붓다를 찾아갔다. 그리고 붓다를 만나 경외하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생각을 털어놓았다.

 

세존이시여, 여기에서 수행승들이 미소를 짓고, 즐거워하고, 참으로 기뻐하고, 감관이 청정하고, 평안하고, 두려움이 없고, 다른 사람들이 주는 것으로 살고, 사슴처럼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내는 것을 보니 세존의 가르침 안에서, 차츰차츰 이루어지는 명상의 뛰어난 특징들을 깨닫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맛지마니까야』 89 「진실에 대한 장엄의 경」)

 


빠세나디 왕의 말에서 우리는 명상적 삶에 대한 찬탄을 발견한다. 선정의 행복을 누리는 붓다의 제자들의 모습은 빠세나디 왕에게도 다른 수행자 집단과 확연히 달라 보였다. 바로 그렇게 즐거움을 누리는 모습 때문에 당시 붓다의 제자들을 향해 ‘몸은 닦지 않고 마음만 닦는 자들’이라는 비난이 퍼부어지기도 했다. 붓다는 이런 비난에 대해 반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정으로 얻는 내면의 깊은 만족감이야말로 탁발 음식으로도 기쁨을 얻고, 나무 밑 처소에서도 안온하게 살고, 풀 섶을 깐 침구로도 만족하며 수행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붓다가 제자들에게 마음을 집중하는 명상[samādhi, 定]만 중시하고 명상법만을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붓다가 고행을 버리는 전환의 순간에 생각한 것을 다시 환기해보자. 명상의 즐거움은 감각적 쾌락이나 다른 존재는 아랑곳 없이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불건전한 마음의 상태와는 관계없는 영적인 즐거움이었기에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윤리적인 삶, 즉 계[sīla, 戒]를 지키는 삶을 토대로 한다. 계를 지키는 삶은 타자의 생명을 해치지 않고, 다른 존재의 고통과 행복에 관심을 갖는 일상의 윤리 바로 그것이었다.

또 감각적 쾌락이 우리를 애착하게 하는 것과 달리 명상은 애착을 내려놓는 지혜를 향한다. 물론 우리는 명상의 즐거움에도 쉽게 집착한다. 그러나 붓다는 명상의 즐거움조차 조건적으로 생겨나고 조건적으로 사라지는 것을 통찰하게 했고, 그럴 때 명상은 지혜의 완성, 통찰지[pannā, 慧]로 향하는 길이 된다. 그러므로 붓다가 제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끈 것은 ‘오직 명상’이 아니라 계·정·혜 삼학(三學)이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명상 또한 일시적으로 마음의 안식을 얻는 것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길에 충실했던 붓다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스승의 가르침을 이렇게 찬탄했다.
  

벗이여, 나는 눈앞에 분명한 것을 제쳐두고 시간이 걸리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벗이여, 나야말로 시간이 걸리는 것을 제쳐두고 눈앞에 분명한 것을 추구합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감각적 욕망이란 시간이 걸리는 것이고 괴로움과 절망이 가득하며 거기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지금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것이고,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사람들을) 향상시키는 것이고, 슬기로운 이들이 스스로 알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쌍윳따니까야』 1:20 「사밋디경」)

 


 

수행은 기쁘고 즐겁다
붓다의 시대와 달리 오늘날은 누구도 고행의 미덕을 찬탄하지 않는다. 고통을 참고 견디느니 차라리 진통제를 찾는다. 그래서 그런가, 명상이 일시적으로 괴로움을 없애주는 힐링 상품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명상이 영성의 외피를 쓴 세속화된 상품이 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명상이 영적 수행이라면,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위로가 아니라 전체적인 삶의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증요법에 그치고 마는 것은 어떻게 아름답게 포장이 된다해도 영적 수행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명상은 우리에게 어떤 물질적인 이득을 주지 못한다. 일용할 양식과 안전한 주거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며, 질병의 고통과 노화와 죽음을 없애지도 못한다. 당장 기후위기와 전쟁의 위기와 방사능의 위협을 줄여주지도 못한다. 불평등을 낳는 사회구조를 바꾸지도 못한다. 그러나 명상은 아주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사회적이고 우주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분노하고 미워하는지 또렷이 알아차리게 한다. 그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우리는 고통과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분별과 망상에 지나지 않는 온갖 이야기를 지어내며 끊임없이 자기를 강화한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의 동요 없이 다른 존재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필 수 있게 된다.

지난 몇 년간 지속적으로 명상하는 루틴을 통해 나는 비록 짧은 순간이나마 영적인 즐거움을 느끼고 때로 깊은 고요와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것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감정과 번뇌를 가라앉히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명상은 현세에서 효과가 있고 유익을 가져다 주는 수행이 틀림없다. 단지 호흡을 지켜보는 수행만으로 무상과 무아를 통찰하는 힘이 커지는 경험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사실 붓다가 가르친 무상과 무아라는 개념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단순해 보이기까지 한 가르침을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런데 수행은 내 속에서 일어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명상하는 동안의 마음의 고요와 평화도 기쁨을 주지만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들이 일어날 때 그 만족감은 더욱더 깊어진다.

그러나 이 실감은 단지 경험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과 세계를 보는 인식의 구조를 바꾸는 실감이기 때문에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삶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다. 그 효과로서 자아의식이 점점 힘을 잃고 약해진다. 이 과정은 모든 존재가 깊이 서로에게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존재의 실상을 깨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더 윤리적인 삶을 살고, 더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더 지혜로워질 수 있다. 그러니 어찌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의 하루하루가 기쁨을 음식으로 삼는 광음천의 천신들처럼 즐겁고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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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요요와 불교산책>의 마지막 편이다. ‘공부한 것을 글로 쓰는 것이 문탁의 윤리’라는 친구들의 강압과 은근한 권유가 있었다. 그 응답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 편 쓰겠다는 약속을 수시로 어긴 탓에 열 여섯 편의 글을 올리는 데 2년이 걸렸다. 솔직히 글쓰기는 고행에 가까웠다.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의 순간을 만날 때 비로소 고행적 글쓰기는 명상적 글쓰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매번 새로운 글을 올릴 때마다 부끄러웠다. 그러나 내가 쓴 글 역시 내 것이 아니라 한 시절의 이야기요 인연 조건의 산물이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 진전이 있었다. 연재를 마치게 되어 기쁘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_요요(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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