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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리뷰

[나이듦리뷰] 디어 마이 솔로 프렌즈!!

by 북드라망 2023. 8. 28.

디어 마이 솔로 프렌즈!!

  
비혼 이야기가 없다!
『에이징 솔로』의 저자 김희경은 기자, NGO 활동가, 문체부와 여가부의 관료를 두루 거치며 ‘순차적 N잡러’로 살아왔고, 결혼 경험이 있지만 아이는 없는, 20년 차 솔로이다. 1967년생이니, 우리 공동체의 기린, 노라, 달팽이, 뚜버기 등과 동년배이다. 이력만 보자면 솔로이긴 해도 (우리와는 달리^^)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자 네임드 작가이다. 그런 그녀도 솔로여서 종종 열패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솔로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일까?

확실히 그녀는 “남에게 폐 끼치는 상황을 극도로 꺼린”, 그리고 “나 하나쯤 건사할 역량”이 충분한 매우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어쩌다 솔로’가 되었지만 아마 특별한 결핍이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어느 날 ‘에이징 솔로’의 ‘현타’가 온다.

 

“건강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진 뒤 뇌변병 장애로 인지증(치매)를 앓게 됐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불안이 몰려오더라. ‘나도 아버지 같은 상태가 되면 어떡하나, 나는 아버지처럼 대리해줄 자식도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한동안 되게 우울했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봐도 사람이 죽을지는 선택하지 못하잖나. 완벽히 대비가 되는 일도 아니고. 거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됐던 것 같다” (김희경-김은형 대담, ‘중년의 혼자 삶에 대하여’, 2023년 4월22일, 한겨레 신문)


그러나 그녀에게 참고가 될만한 텍스트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깨달은 두 가지!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는 중년솔로여성의 담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중년’도 ‘솔로’도 ‘여성’도 우리 사회에서는 마이너들이니 이 세 개가 더해지면 이들은 “사회에 없는 존재처럼 취급되거나, 있다고 해도 무언가 좀 비정상적인 사람처럼 여겨진다.”(10쪽) 그러니 2019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 청문회에서 모 남성 국회의원이 50대 중반 비혼여성 조성욱 후보에게 “아이만 낳았으면 정말 100점짜리 후보자”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1인 가구의 폭발적 증가이다. 2021년 현재 우리나라 세 가구 중 한 가구는 혼자 살고 있으며(33.4%), 이런 1인 가구의 37.6%가 중년 1인 가구이다. 또한  솔로의 확대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이제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이 새로운 표준”(에릭 클라이넨버그,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 더 퀘스트, 2013)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둘째, 중년솔로여성 담론이 없으니 당연히 중년솔로여성의 나이듦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없다. 하여 저자는 1인 가구의 폭발적 증가와 중년솔로여성 담론의 부재라는 간극을 메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결혼의 경험이 있건 없건 스스로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로 살기를 선택해 현재 그렇게 살고 있는 40대에서 60대의 ‘에이징 솔로’ 열아홉 명을 찾아가 그들의 비혼 이유와 외로움에 대해 나아가 혼자인 사람들의 돌봄, 나이듦, 죽음에 관해 물었다. 그 인터뷰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에이징 솔로』이다.

-<에이징 솔로> (2023, 김희경)

 


비혼은 혼자 살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이 비혼인 이유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건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질문이다. 결혼한 사람에게는 결혼의 이유를 묻지 않는데 왜 비혼에는 비혼의 이유를 물을까? 쩝!) 저자가 인터뷰한 열아홉 명도 비슷해서 가부장적 이성애 결혼제도에 대한 반감으로 자발적 비혼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쩌다 보니’ 비혼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것이 결혼제도로 진입하는 데 실패했다거나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비혼이 인생을 건 결단이나 비장한 선택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가치관과 자기 삶의 맥락 안에서는 무리 없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는 뜻이다”(43쪽)

『비혼 1세대의 탄생』의 저자 홍재희는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초반부터 “결혼을 늦추고 자신의 삶에 더 집중하는 여성”이 출현하였는데, 이들은 주로 ‘신세대’ 혹은 ‘X세대’라 불린 1970년대생이라고 한다. (홍재희, 위의 책, 40~41쪽) 그러니까 내 막냇동생도, 공동체 동료인 둥글레나 자작나무도 결혼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은 없었지만, 커리어를 포기하면서까지 혹은 자신의 취향과 상관없이 결혼으로 달려가지 않았던, 비혼 1세대인 것이다.

문제는 ‘페미니스트 비혼’이든 ‘어쩌다 비혼’이든, 모든 비혼에 끈질기게 달라붙는 어떤 통념, 즉 그들은 일상적으로 외로움에 시달릴 것이며 아프기라도 하면 외로움이 더욱 뼈에 사무칠 것이라는 외부자의 시선이다. 87세의 우리 엄마도 50대 중반 대학교수인 비혼 막내딸에 대한 걱정이 아직도 태산이어서 지금도 수시로 나에게 그 애의 ‘짝꿍’을 찾아오라는 미션을 내린다.

그러나 현실은 통념과 다르다. 통계만 보더라도 현재의 걱정거리로 ‘외로움’을 꼽은 1인 가구는 30대 남성이 1위였고, 이어 20대 남성, 40대 남성, 50대 남성 순으로 중년솔로여성과는 큰 관계가 없다. (80쪽) 우에노 지즈코도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한다』라는 책에서 자녀 없이 혼자 사는 노인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고, 외로움과 불안을 느끼는 정도도 더 낮았다고 한다. 또한 저자가 인터뷰한 에이징 솔로 중 한 명은 “내가 외롭다고 느낀 순간은 혼자 사는 지금보다 이혼 전이 훨씬 많았다”라고 했다.(82쪽) 나도 비슷한데, 언젠가 이혼 결심을 밝힌 나를 앉혀놓고 친구들이 이유를 물었을 때, 나는 “배려받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 함께 사는 데도 성격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달라 혼자 사는 느낌”이라고 대답했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외로운 것은 주변 사람과 불통했을 때 오는 것이지 혼자 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솔로 라이프는 요즘 같은 초 접속 시대에 “혼자서 장악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있고, “혼자 자거나 ‘멍 때리기’를 해도 좋고, 책을 읽거나 산책하거나 동식물을 키우는 등 각자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달래고 북돋고 비우고 채우는 것이 가능”한 (84쪽) 좋은 고독을 즐길 수 있다. 한 인터뷰이는 그런 좋은 고독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는 이 세계에 소속돼 있어요. 필요한 만큼. 그리고 분리돼 있어요.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인터뷰이 남지현, 85쪽)


그리고 무엇보다 에이징 솔로는 “혼자 살지만 혼자 살지 않는다.” 낭만적 사랑의 ‘가장 사랑하는 단 한 사람(only one)’이라는 판타지를 걷어내면 모든 사람은 다양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들며 살아간다. 에이징 솔로들이 친밀감을 추구하는 방식도 “식욕이 사람마다 다르듯” 저마다 달라, 원가족과 더 긴밀한 사람도 있고, 친구나 공동체 혹은 스스로 만든 모임 속에서 친밀감을 충족하는 사람도 있다.(122쪽) 그러니 솔로라고 아프거나 적적할 때 혼자 방치되는 건 아니다. 얼마 전 비혼인 내 둘째 여동생이 쓸개 제거 수술을 받았는데, 배우자가 없는 동생을 돌봐준 것은 동생의 아들들이 아니라 자매와 친구들이었다. 몇 년 전 비혼 막내 여동생이 암 수술을 받았을 때도, 원가족과 그녀의 친구들이 돌봄을 제공했다. 우정의 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내의 비혼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가족이 아니라 개인 중심의 사회정책을!

“모든 성인의 과제인 돈벌이가 에이징 솔로에게는 단순한 생활방편을 넘어 존재의 확인과도 같다. 자신이 돈을 벌지 않으면 ‘혼삶’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혼여성은 배우자에게 잠깐 의지할 수도 있고 자녀 양육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기회도 있겠지만, 에이징 솔로는 돈을 벌지 못하면 자존이 흔들릴 정도로 타격이 크다......『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를 쓴 김송희는 1인 생활자로서 갖는 가장 큰 공포가 ‘늙어서 폐지 줍는 노인이 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가난한 독거노인이 될까 봐 두려워하는 솔로는 그 혼자만이 아니다.” (180쪽)


처음 이 부분을 읽었을 때는 약간 의아했다. 우리 일리치 약국 직원을 봐도 그렇고, 비혼이든 기혼이든 생계 문제에서 자유로운 성인들이 있을까? 그리고 책까지 낸 작가가 ‘폐지 줍는 노인’이 될까 봐 걱정이라니 좀 과장 아닐까? 이 책의 다른 인터뷰이들도 약사, 공무원, 설치미술가, 프리랜서 기획자, 보험설계사 등 ‘버젓한’(?) 직업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상대적 빈곤율 4위, 노동시간 3위, 갈등 지수 3위, 자살률 1위, 우울증 1위, 저출산율 3위, 행복지수 꼴찌의 헬조선, 버틀러의 용어로 이야기하면 ‘불안정성(precarity)’이 극대화된 사회이다. 그리고 이런 불안정성은 계급이나 젠더 등에 따라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노인이나, 여성, 솔로, 장애인 등에게 더 강도 높게 나타난다. 통계를 보아도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3.4%로 OECD 1위이고 1인 가구 빈곤율도 47.2%에 달한다. 그러니 늙어가는 비혼 1인 가구의 ‘폐지줍는 노인’ 공포를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비혼들도 공포 때문에 삶을 질식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미래는 누구나 예측 불가능하고, 가난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중요한 것은 설상 점차 가난해진다 해도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는 삶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 아닐까? 책에는 최은영의 소설 『밝은 밤』이 인용되어 있는데 그 소설에 등장하는 혼자 사는 할머니는 놉을 다니며 품삯을 받아 생계를 꾸리고 있지만, 풍족하진 않아도 가끔 놀러도 다니고 젊은 주인공보다 훨씬 더 여유롭게 산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소소한 노동을 하면서라도 스스로 돌보며 사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한 인터뷰이는 이렇게 말한다. “저도 늙어서 돈이 많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밝은 밤』 할머니 정도로는 살 수 있지 않을까요?” (190쪽)

그러나 기후 위기에도 ‘적응(adaptation)’ 전략뿐 아니라 ‘완화(mitigation)’ 전략이 필요하듯, 노년의 불안정성에도 ‘트러블과 함께 사는’ 적응 전략뿐 아니라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완화’ 혹은 ‘저감’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건 무엇보다 ‘싱글리즘(singlism)’*과 연결된 주거정책 그리고 가족정책의 변경을 요청한다.

 

우선 현재 가장 핫한 이슈인 ‘주거권’! ‘주거권’은 역세권 아파트를 소유할 권리가 아니라 적정한 가격으로 최소한의 면적**의 주거 공간을 점유할 권리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정부의 주택공급제도, 특히 저소득계층을 위한 영구임대주택, 청년, 사회초년생, 신혼부부를 위한 행복주택, 고령자에게 우선순위를 주는 국민임대주택 중 어느 것도 에이징 솔로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200쪽) 뿐만 아니라 비혼이 누군가와 함께 살려고 할 때. 그들은 현실적으로 공동으로 대출받아 집을 사는 것도, 공공임대주택을 함께 신청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정부의 주택공급정책이 법적 가족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건 돌봄 문제도 마찬가지여서 솔로가 입원하거나 혹은 죽음을 앞두고 최종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혈연가족이 아닌 파트너나 친구를 법적 보호자나 대리인으로 내세울 수 없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는 가족이 아니라도 돌봄 제공자가 자신과 “매우 가까운 사람 closely-related person”을 돌볼 때 ‘돌봄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캐나다에서도 노동자가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쉰다면 임금의 55%를 보전해주는데, 이때 돌봄을 받는 자는 꼭 가족이 아니어도 된다. 또한 호주의 빅토리아 주와 영국에서는 자신을 대신하여 의료결정을 내릴 자를 임의로 선택할 수 있고, 미국에서는 성인이면 누구나 의료 관련 의사결정 대리인으로 ‘건강돌봄대리인 Health Care Agent’을 지정할 수 있다. (292~293쪽)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내용이 제도화되면 나는 요요님을 나의 의료결정 대리인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곧 마음을 바꿨다. 그때 공동체에서 가장 젊고 빠릿빠릿한 친구에게 맡기는 걸로^^)

저자는 이 모든 것이 “가족이 아니라 개인이 복지의 기본 단위”가 되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꿔야 하는 문제라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도 최소화할 수 있고, 노인, 장애인 등 일상적 돌봄과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가족에 의존하지 않고도 국가의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이른바 비혼들의 주요 불만 사항인 ‘싱글세’***도 사라질 수 있다. (312쪽)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나도 에이징 솔로이다. 자식이 있기는 하지만, 저자처럼 “나 하나쯤 건사할 역량”이 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왜 이혼했는지가 아니라 내가 왜 결혼했는지가 의아할 정도로 “혼자 지내는 시간과 공간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또한 나도 저자처럼 부모 돌봄을 떠맡고 있다. 지은숙은 일본의 경우 “2000년을 전후해 이전과 달리 비혼 딸에 대한 돌봄기대가 공공연해졌다”라고 말하는데 ( 「비혼여성의 딸 노릇과 비혼됨의 변화: 일본의 부모를 돌보는 딸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 2017) 저자가 인터뷰한 에이징 솔로 19명 중 5명도 부모, 가족 돌봄의 책임을 맡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처럼 부모 돌봄과 관련하여 기혼 형제자매와 갈등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내가 비혼이어서 어머니 돌봄을 떠맡은 것인지, 딸이어서 떠맡은 것인지, 아니면 K-장녀여서 떠맡은 것인지 좀 헷갈린다. 하지만 부모 돌봄이 며느리에서 딸로 이행해가는 경향은 뚜렷한 것 같고, 비혼자녀와 기혼자녀의 돌봄을 둘러싼 잠재적 갈등도 점차 커져 나갈 것이다.

에이징 솔로는 누구와 함께 어떻게 늙어갈 수 있을까? 책에서는 두 개의 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하나는 전주의 1인 가구 네트워크 생활공동체, ‘비비(비혼들의 비행)’이고 다른 하나는 나도 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세 명의 여성이 함께 사는 여주의 ‘노루목 향기’라는 시니어 코하우징이다. ‘비비’는 2006년 같은 공공 임대아파트에 모여 살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23가구나 되어 “자신이 사는 베란다 밖으로 비비 구성원들이 사는 동이 보이는 것만으로 안전한 느낌”을 주고받으면서(157쪽) 산다. 이 느슨하지만, 상호의존적인 네트워크를 그들은 “세상 가벼운 ‘땡큐’를 주고받는 비혼공동체”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2022년 8월29일), 혹은 “서로의 꼴을 봐주는 사는 공동체”라고 부른다. 그들 중 몇 명은 직장을 그만두고 의기투합해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지금은 노후의 주거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제도로서의 결혼이 아니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발명하는 것이다.


“가족을 넘어 마을로”(2010년 문탁네트워크 인문학축제 주제)를 부르짖은 지 14년 만에 요즘 내 주변엔 에이징 솔로들이 득실거린다. 작년 초 <양생프로젝트>**** 엠티 때는 함께 간 열 한 명 중 일곱 명이 솔로였고 올해 <양생프로젝트>에서는 총 열다섯 명 중 아홉 명이 솔로이다. 역시 내가 참여하는 <나이듦과 자기서사>라는 세미나도 참가자 열다섯 명 중 에이징 솔로가 다섯 명, 퀴어가 두 명이다. 그리고 드디어 문탁 내에서도 비혼들의 모임이 생겼다. (그런데 이들은 내가 모여보라고 권했는데, 나만 빼놓고 모인다^^) 꼭 같은 집에 살지 않더라도 걸어서 10분 거리 안에서 모여 살면서 함께 공부하고 활동하는 시니어 코하우징을 꿈꾸는 나에게 이들은 아주 든든한 백그라운드이다. 물론 기혼자를 배제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그래도 몸이 가벼운 비혼들이 먼저 움직이면 속도가 더 나지 않을까? 디어 마이 솔로 프렌즈! 우리 노후를 함께 도모해보지 않으시렵니까? 우선 비비 공동체 탐방부터, 오케이?

 
* ‘싱글리즘singlism’은 사회심리학자 벨루 드파울루가 처음 사용한 말인데, 사전적 정의는 “결혼이 비혼보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비혼자에게 편견을 갖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녀에 따르면 싱글리즘은 단지 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법률, 제도 등 모든 구조에 스며들어 있어서 일상에서 차별을 겪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싱글들도 피해 갈 수 없다.” (p271)

** 2021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1인 아파트의 적정규모는 32.6제곱미터(9.9평)이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707/107832969/1

***‘싱글세’는 소위 연말정산 시기 배우자나 자녀 등 부양가족 인적공제를 받을 수 없는 비혼들이 불만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실제로도 독신가구 홑벌이 두 자녀 가구보다 2배의 세금을 더 내고 있는데 액수로 계산하면 연간 약 79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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