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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민의 진료실인문학

[이여민의 진료실인문학] 건강한 다이어트!

by 북드라망 2023. 6. 2.
 『대중지성, 금강경을 만나다』의 저자 이여민 선생님의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코너명은 <이여민의 진료실인문학>인데요, 30여년동안 내과의사로 활동하시는 여민샘의 진료실 일상을 들여다보실 수 있답니다. 의사이면서 꾸준히 인문학을 공부해오신 여민샘의 진료실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더더욱 궁금해집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_<


 건강한 다이어트!

 
50대 S는 거의 10년째 고혈압과 고지혈증으로 2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내원하고 있다. 며칠 전 약을 탈 때가 아닌데 내원한 S는 자리에 앉더니 머뭇거리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다른 병원 처방전이었다. 처방전을 살펴보고 약 이름이 10개가 넘어서 놀랐다. 아는 약도 있었지만 대부분 모르는 약이라 그녀에게 어디가 많이 아프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살짝 부끄러워하며 다이어트약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살짝 통통했던 그녀의 얼굴이 약간 핼쑥해 보였다. 

사실 나도 30년 전 비만 학회가 처음 생긴 후 가끔 참석한 적이 있었다. 비만 치료제는 계속 개발 중이라 신약들이 연일 쏟아져 나온다. 또 보험에 해당하지 않아 진료비나 약값이 일반 진료보다 비싼 편이다. 사실 단기간에 살을 뺀다 해도 대부분은 지속적인 관리가 어려워 요요현상이 온다. 하여 나는 비만 환자를 끝까지 감당하는 것이 버거워 다이어트 치료를 병원에서 하지 않기로 했다. 그 후 비만 학회에도 참석하지 않아서 다이어트약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런 나로서는 이런 약을 먹으면 살이 빠진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S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살 빼려고 너무 많은 약을 한꺼번에 먹어 부작용으로 어지러움과 구토가 났던 것이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약을 복용 중인 그녀가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일단 다이어트약을 중단하자고 했다. 덧붙여 왜 살을 빼고 싶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녀의 대답이 좀 의외였다. S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내 눈에 그녀는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약간 통통해 보이는 정도라 굳이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농담조로 애인이 생겼냐고 물었다. 그러자 S는 거울을 보면 자기 얼굴이 예쁘지도 않으며 옛날에 입던 옷도 맞지 않고 몸도 여기저기 아파서 우울하다고 했다. 그다음 말은 나를 더 놀라게 했다. 이렇게 많은 다이어트약을 먹기 전에 한의원에 가서 침과 한약을 먹고 몸무게를 7kg를 줄인 상태라고 고백했다. 그렇지만 살이 빠져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살을 더 빼려고 비만 치료를 잘한다는 병원을 친구에게 소개받아서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이어트약을 하루 정도 먹고 어지러움과 구토의 부작용이 생긴 상태였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항상 신년 목표가 다이어트였던 내 모습이 겹쳐 보여서 쓴웃음이 났다. 사실 나도 꼭 살을 뺄 만큼 뚱뚱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나나 S처럼 많은 사람이 매번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이어트 상품 시장 규모가 1년에 10조 원 (「Money S」, 제574호 기사, 2019.1월)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과 전쟁을 하는 걸까?
 

 

건강을 위해서
내가 살을 빼야 한다고 느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특활시간에 탈춤을 배웠는데 덩실덩실 추면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니 무릎이 몹시 아팠다.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갔더니 몸무게가 많이 나가면 그런 동작을 할 때 무릎에 무리가 간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신년 계획에 다이어트가 꼭 포함되었다. 직립하여 사는 인간으로 과체중은 허리와 무릎 관절에 과부하가 걸린다. 허리와 무릎이 아프다고 병원에 가면 대부분은 꼭 살을 빼라고 이야기한다. 내과적으로도 기존 몸무게보다 5kg 정도 감량하면 당뇨, 고혈압, 지방간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당뇨와 고혈압 전 단계에서는 몸무게만 줄여도 약으로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 몸무게를 줄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손쉬운 것이 먹는 양을 줄이는 것이다. 『법구경』에도 밥을 너무 많이 먹던 빠세나띠 왕에게 부처님이 처방을 내린 것도 이 방법이다.
 
2500년 전 꼬살라 국왕 빠세나띠는 엄청난 대식가였다. 빠세나띠는 끼니마다 쌀 두 되 반으로 밥을 지어 엄청난 양의 고기반찬과 함께 먹었다. 이렇게 많이 먹는 왕은 당연히 몸이 뚱뚱했다. 어느 날 왕은 다른 날과 같이 아침밥을 또 많이 먹고 부처님을 뵈러 갔다. 왕은 수도원에 와서 설법을 듣는 중 식곤증에 시달려 큰 몸집을 앞뒤로 흔들며 조는 일이 많았는데, 그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법구경 2』. 제15장 행복의 장 게송 204 꼬살라 국왕 빠세나띠 이야기, 67쪽)
 
식곤증은 뇌로 가는 피의 양이 충분하지 않아 뇌가 쉬려고 조는 것을 말한다. 뇌의 무게는 1.3~1.5kg으로 자신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전체 에너지의 20~25%를 사용한다. (「Neuro brain」, 뇌의 구조와 기능, 한국 B&S 교육 문화 진흥원) 에너지를 전달하는 피 순환이 가장 활발히 많이 가는 곳이 뇌라는 뜻이다. 음식을 많이 먹으면 소화기 쪽으로 혈류가 몰려 뇌로 가는 피의 양이 줄어 일시적으로 졸린 증상인 식곤증이 나타난다. 흔히 의사들은 점심 먹고 졸린 것을 coma(혼수상태) (코마; 뇌로 가는 혈관에 혈전이 생기거나 하여 산소 공급이 멈추어 뇌세포 일부가 손상되어 의식이 없는 상태)라는 전문 용어로 농담하기도 한다. 식곤증을 해결하는 방법은 먹는 양을 줄이는 것과 식후에 하는 가벼운 산책이다. 
 
부처님은 졸고 있는 왕을 보고 말했다. “앞으로 끼니마다 양을 한 홉씩 줄여서 밥을 짓고, 식사 끝에도 마지막 밥 한 숟가락을 남기는 습관을 들여 식사량을 줄여보세요.” 부처님에 대한 신심이 깊었던 왕은 식습관을 개선하라는 부처님의 충고를 바로 받아들이며 먹는 양을 조금씩 줄였다. 음식량을 조절하다 보니 조금 먹어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점차 몸무게도 줄고 식곤증도 사라졌다. 이제 부처님 설법을 들어도 왕은 졸지 않게 되었다. 
 
병원에 오는 환자분 중에서도 이 방법으로 2달 만에 3kg을 감량한 분이 있다. 고혈압약을 복용하는 82세 여자 환자분은 자꾸 배가 나와 숨이 차다고 했다. 그녀에게 빠세나띠 왕처럼 어제보다 1숟가락 적게 먹는 방법으로 몸무게를 줄여보길 권했다. 연세가 있어 무리한 운동이나 갑자기 식사량을 많이 줄이면 위험해서 이런 처방을 내렸다. 환자는 자신이 먹는 식사량을 관찰하면서 규칙적으로 천천히 식사하고 조금씩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 음식량을 줄였다. 그랬더니 2달 만에 나왔던 배가 들어가고 숨 차는 것도 줄었다. 이렇게 건강을 위해서는 다이어트가 꼭 필요할 때가 있다. 
 
이렇듯 가장 건강한 다이어트는 자신의 식습관을 살핀 뒤 지금보다 먹는 양을 줄이고 식사 시간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82세 환자처럼 성실히 한다면 대부분 성공한다. 동의보감에서는 습관을 바꾸는데 최소 21일이 걸린다고 한다. 100일을 꾸준히 하면 거의 모두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그 뒤 2년을 지속하면 ‘이 몸의 상태가 나에게 최선이다.’라는 지각이 생겨 자연스러운 생체리듬이 된다. 
 
 

 
  
더 예쁜 나를 꿈꾸며
사실 현대인이 다이어트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더 예뻐지고 싶고 더 젊어 보이고 싶어서이다. 다이어트약을 먹고 부작용인 생긴 환자 S도 그랬다. 그녀는 7kg을 감량했으나 더 많이 빼서 예뻐지고 싶어 무리수를 둔 것이 화근이었다. 그런데 이런 다이어트의 전제는 지금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한다. 지금의 나를 부정하는 것은 현재를 결핍된 상태로 보는 것이다. 그러면 더 예쁜 나를 끝없이 원하는 갈애(渴愛)가 생긴다. 갈애는 그칠 줄 모르는 욕망으로 갈증이 생겨 짠 바닷물 먹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비유한다. 이처럼 결핍에서 시작한 욕망은 채워도 끝이 없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다이어트가 성공해도 그 목표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더, 하다가 결국은 몸이 망가지는 지경에 이른다. 병적으로 다이어트에 집착하면 거식증이 되기도 한다. 거식증은 음식을 거부하는 아픈 상태이며 심하면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다이어트를 할 때 대부분은 TV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자체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연예인은 하루 거의 모든 시간을 몸과 얼굴을 가꾸는데 투자한다. 그런데 그 결과로 나온 예쁜 얼굴과 몸을 보고 지금의 나와 비교하고 바라게 되면 우리 몸은 스트레스 상태가 된다. 그러면 전쟁 시 비상식량을 비축하듯이 스트레스를 인지한 몸은 먹은 것을 축적한다.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 살찌게 된다. 설령 다이어트에 성공해도 남과 계속 비교하는 마음은 자신의 어떤 모습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극단적으로 쇼윈도에 진열된 마네킹 모습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끝없이 깡말라 간다. (EBS 다큐 프라임. 나의 몸 사용 설명서)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남과 비교하는 것은 마음이 쉬지 못한다.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멈추기보다 비교 대상이 계속 나타나니 상상의 나를 그리며 쉼 없이 달려가게 만든다. 결국 평생 다이어트를 해도 대부분 만족하지 못하고 괴롭다.

다이어트 정보는 넘쳐나는데 정답은 없다. 무슨 말인가? 사람의 모습이 다 다르듯이 다이어트 방법도 다 다르다는 뜻이다. 나이도 다르고 사는 환경도 다르고 습관도 다르다. 결국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식단 일기를 쓰면 좋다. 이때 기쁘고 화나는 감정을 같이 관찰하고 운동량과 수면 일기를 쓰면 건강한 다이어트를 즐겁게 할 수 있다.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 “나는 왜 살을 빼려고 할까?” 자신의 의도를 물어보면 도움이 된다. 의도가 자기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라면 대부분 성공한다. 생리적인 균형을 맞추기 때문이다. 이때 ‘먹기 명상’이 큰 도움이 된다. ‘먹기 명상’은 음식 먹을 때 신문, 핸드폰을 멀리하고 오로지 먹는 순간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천천히 먹게 되고 음식과 내가 만나는 기쁨에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당연히 적게 먹어도 마음이 충만해지고 건강에도 참 좋다. 부처님도 몸무게를 줄인 빠세나띠 왕에게 말한다. “대왕이여, 건강은 실로 으뜸가는 소유이며, 만족함을 아는 것은 가장 큰 재산이오.”  (같은 책, 68쪽) 건강에 만족할 줄 안다면 다이어트도 성공할 수 있다. 빠세나띠 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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