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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소리객소리딴소리] 다른 60대의 탄생, 웃는 노년의 탄생

by 북드라망 2023. 4. 12.

다른 60대의 탄생, 웃는 노년의 탄생
 

빵이 다 떨어져서 커피숍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 걸어서 2분 만에 도착했다. 돈만 내면 아침을 먹을 수 있다니 도시는 굉장하다. (……) 벽을 따라 테이블이 6개 정도 늘어서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벽을 등지고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전부 여자였다. 전부 할머니였다. 그 중 넷은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전부 늦은 아침을 먹는 듯했다. 
전부 홀몸으로 보였다. 예전에 파리 변두리의 식당에서 매일 밤 같은 자리에 앉아 혼자 저녁을 먹는 노파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목을 앞으로 굽힌 채 혼신의 힘을 다해 고기를 썰고, 기이할 정도의 에너지로 고기를 씹어 삼키고 있었다. 나이는 아흔쯤으로 보였다. (……) 그 무렵의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 커피숍에서 아침을 먹는 할머니들은 파리의 노파를 서서히 닮아간다.
(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이지수 옮김, 마음산책, 2015, 12~13쪽)


사노 요코(佐野洋子, 1938~2010)가 파리에서 식당에 앉아 혼신의 힘을 다해 고기를 써는 아흔쯤의 노파를 보고 놀랐던 것처럼, 2000년대 초반의 어느 해 내가 일본에 처음 갔을 때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 역시 사람들이 분주히 출근하는 아침에, 카페에서 빵과 커피로 식사를 하는 일군의 노인들 모습이었다.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신문을 보며 식사하는 할아버지도 계셨고, 편안한 복장으로 있는 할머니도 계셨지만, 그들은 아무도 누구와 함께 있지 않았다. 모두 혼자 앉아 계셨던 것이다. 당시는 ‘혼밥’이라는 말도 없었을뿐더러 노인들이 카페에 앉아 있는 모습도 드물었던(노인들의 카페인 다방이 아직 있던 때다) 때로, 내 머릿속에는 (동양의)노인이 혼자서 카페에 앉아 빵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모습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로부터 15년쯤 흐른 지금, 카페에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은 더이상 하나도 새롭지 않다. 아니, ‘노인’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 예전에 노인은 외모부터 티가 났다. 오랜 육체 노동으로 등이 굽어 있었고, 머리 모양도 천편일률적이었다. 그런데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에 태어난 세대) 그중에서도 60년대 초반생들이 환갑을 넘기면서, 만나는 노인들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졌다. 사실 60대를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젊은(?) 느낌이고, 중년이라고 하기에는 나이 든 느낌이다(할저씨, 할줌마 등의 표현도 있지만 적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70대 중반 이후의 해방 전후 세대와 이들은 단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모습은 너무나 새로운 60대가 하는 활동은 그 이전 노인들과 아직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물질적으로 좀더 여유로워서 할 수 있는 활동(여행이나 취미 등)이 늘어났을 뿐, 은퇴 이후의 시간을, 자녀가 독립한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사실 물질적으로 이렇게 풍요로운 시절에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우리는 아는 바가 너무 없다. 이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노년과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한 것은(책 종수가 몇년 새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새로운 60대에게 새로운 노년은 발등의 불이기 때문일 것이다.(이미 2017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서서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2025년이면 고령자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


노년과 관련해 지금 급급하게 이야기되는 것은 아무래도 ‘테크’와 ‘건강’이다. ‘돈’과 ‘몸’만 있으면 다른 노년을 맞을 수 있을 리 없건만, 청년 때도 중년 때도 노년 때도 불안의 해답은 언제나 돈이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돈으로 되지 않는지, 가장 가깝게는 내 마음부터 돈으로 평안을 얻을 수 없음을 수없이 경험해 왔음에도 말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건, 한 사람이다. 손을 건넨 한 사람. 해결책이 돈이었던 경우에도 그 돈을 건넨 사람이 있었다. 결국 어느 때건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다. 자녀가 독립하고, 회사에 나갈 일이 없고, 친구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노년에, 아무도 찾아주지 않고 아무도 만날 일 없는 하루가 매일매일 계속된다고 생각해 보자.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노년의 네트워크다. 이것은 노년으로만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뜻하지는 않는다. 청년과 노년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네트워크. 지금 감이당을 비롯해 공동체 네트워크에서 실험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각 공동체 특성에 따라 실험의 양상은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이 네트워크에 함께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무엇보다 ‘웃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사노 요코의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늙은이는 공격적이고 언제나 저기압이다. 
(……)
이 영감은 노상 화가 나 있다. 대각선 건너편의 정육점 아저씨도 거만한 데다 항상 언짢은 기색이다.
(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81~82쪽)


통상 ‘노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무표정한 얼굴이나 화를 내는 모습, 내가 옳다고 떼쓰듯 하는 모습 등이다. 노인이 되기까지의 무수한 경험이 너른 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좁은 아집이 되는 건, 슬픈 일이다. 아무튼, 나는 요즘 잘 웃는 60대 언니들을 종종 만난다. 이것이 너무 좋다. 이 언니들은 잘 웃는 70대가 될 것이다. 그 웃음은 혼자만의 웃음이 아니라 청년에게까지 번지는 웃음이 될 것이다. 나도 이 언니들과 함께 잘 웃는 할머니가 될 것이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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