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어느 반지하 생활자의 수기

어느 반지하 생활자의 수기



매달 12일의 울분


학교 기숙사를 신청했는데 여지없이 떨어졌다. 입주자 선발은 랜덤 추첨 방식이었고 입사 경쟁률은 4대 1정도로 높았다. 때문에 집이 먼 학생들은 대부분 자취를 하는데, 고스란히 ‘서울 집값’의 쓴맛을 보는 수밖에 없다.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은 사실상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었다. 평균 월세보다 조금이라도 싼 곳에 살기 위해서는 왕복 세 시간 이상 걸리는 먼 지역을 선택하거나 반지하나 옥탑방 같은 위아래 극단을 고르는 수밖에 없다. 햇볕이 안 들고 창밖으로 사람들의 발만 보이는 반지하, 여름엔 찜통이고 겨울엔 입김이 나오는 옥탑방. 그런 곳에 살면 좀 어떠냐는 말을 들으면, 뭐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오만원 십만원 싼 곳에 살아도 여전히 월세가 부담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이 정도 방은 꿈에서나...



매달 12일, 나는 괜히 가슴 언저리가 시리다. 반지하인데도 불구하고 한 지출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월세를 내는 일은 내게 너무 치명적이었다. 전역 후 알바해서 모은 돈은 가을 안에 동날 것이 뻔하다. 이런 상태로는 옷을 산다거나, 술을 마시고 논다거나, 또는 데이트를(혹시라도) 하는 것이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계산이 나오고 동시에 한숨이 나온다. 이렇게 결여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주변을 둘러본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어디에 살며 어떻게 월세를 내고 있는 거지? 아니 그러면서 어떻게 옷도 사고, 놀러 다니고, 데이트도 하는 거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개강 후 만나는 친구마다 어디에 사는지, 월세는 얼마인지, 그 돈은 어떻게 내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비록 인싸가 아닌지라 표본은 크지 않지만, 대학생들의 주거 실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어색한 친구들과 몇 마디 주고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3주간의 앙케이트 결과에 따르면, 기숙사, 자취, 고시원 등 주거 형태는 다양했지만 원룸에서 혼자 자취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2018년 서울시 원룸 평균 월세 52만원, 보증금 1000만원. 내가 파악한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월세 50만원 이하의 집에 사는 친구는 드물었다. 시간으로 환산한다면 월세 5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시급 7600원 기준으로 한 달에 66시간 알바를 해야 한다. 주 16시간 이상 알바를 해야만 겨우 월세를 벌 수 있다. 그러나 밥을 먹고, 핸드폰을 쓰고, 생필품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이상 30~40만원은 더 든다. 이것이 최소 비용, ‘숨만 쉬고 사는’데 드는 비용이고 이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주 30시간 이상 알바를 해야 한다. 이쯤 되면 대학을 다닌다고 하기가 애매해진다. 딱 한 명 이렇게 생활하는 친구를 알고 있다. 초밥집에서 알바를 하는 A는 거의 매일 수업이 끝나면 일하러 가고, 주말 내내 일한다. 놀기 좋아하는 A는 요즘 늘 죽겠다는 말뿐이다.


A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경우가 부모님께 월세를 지원 받고 있었다. 다만 여기서 추가적으로 용돈을 얼마나 더 받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B는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교내 사무실에서 근로를 한다. 지난달에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이번 달은 아껴 써야 한다고 툴툴거리지만, 동아리 활동과 맛집 탐방은 빼먹지 않는다. 별다른 알바를 하지 않고 있는 C는 술자리에 빠지지 않으며, 매일 색다른 코디를 보여준다. 저녁이면 한강까지 자전거를 타러 다니기도 하는 C는 심심하다며 내게 같이 놀러가자는 말도 한다. 고맙게도. 여기서 나는 대학생들의 생활 형태가 부모님의 원조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대학생이라는 시기는 사회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수입은 없고,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놀고 싶은 욕망도 큰 시기이다. 바로 그런 때에 어떤 빛깔의 원조가 들어오느냐에 따라 대학생들은 ‘캠퍼스의 낭만’의 주인공이 될 수도, ‘월세 난민’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어느 날 D의 집에 갔더니 맛술을 포함한 사과식초, 올리고당 등 온갖 조미료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냉장고도 정성어린 반찬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D는 달리 해먹는 음식도 없는, 밥보다 피자를 더 자주 먹는 친구다. D의 밥솥은 최대 보온 시간인 199h로 표시되어 있는데, 그 안에 까맣게 딱딱해진 알갱이들은 몇 백 시간이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런 D에게 맛술이라니...! 또 어떤 친구는 저녁마다 헬스클럽에서 스피닝을 하며 다이어트를 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허기져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는다. 나는 이럴 거면 헬스장은 왜 다니느냐고, 그 돈은 어디서 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그 친구는 다음 날 경복궁 야간 개장을 예약해 데이트를 갔다. 맛술과 새 옷과 데이트.



반지하 인간을 괴롭히는 것들?


10월이 다되어 가는데도 잠들만 하면 귀 옆을 앵앵거리는 모기들, 7시면 창문 언저리를 왔다갔다하며 텃밭에 물을 주는 집주인 아주머니의 발소리, 신발장 구석에 몰래 몰래 피어나는 곰팡이, 구석마다 쳐있는 거미줄. 반지하 생활은 여러모로 나를 힘 빠지게 한다.  그래도 4일 동안이나 빨래가 마르지 않을 정도로 습했던 여름이 지나간 후로는 제법 쾌적하다. 그럼에도 월세 내는 날은 꼬박꼬박 찾아와 나를 다시 침울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물리적인 것들 말고도 반지하 속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맛술과 새 옷과 데이트’에 대한 앙심(?) 같은 것이다. ‘지상층’에 살고 있으면서 그런 것들까지 누리고 있다니! 나는 아무래도 그들이 누리는 것들이 부럽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을 깔보고 있기도 하다. 부모님께 월세와 용돈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애들을 어린애 같다고 생각했고, 그 돈으로 헬스장을 갔다가 야식으로 무화시키는 이상한 낭비가 한심해 보였다. 그에 비하면 앞으로 몇 달이나 버틸지 모르지만 알바로 모은 돈으로 어떻게든 월세를 내고 생활하고 있는 내가 더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묘한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반지하 방 속에서 남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배 아파하고, 한편으로는 손가락질하고 있다. 비교하면서 비참해하고, 비교하면서 우쭐해하는 내 모습은 이러나저러나 우스워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혼자 끙끙대는 것이 얼마나 슬기로움과는 무관한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글_민호(고전비평공간 규문)


'슬기로운복학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반지하 생활자의 수기  (0) 2018.11.28
슬기로운 복학생활을 위하여  (2) 2018.10.24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