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육아, 그것의 핵심은 컨디션 관리

육아, 그것의 핵심은 컨디션 관리



육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아기를 향한 무한한 애정? 시간을 벌어주는 각종 아이템? 돈? 뭐 다 좋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이다. 구체적으로는 ‘컨디션 조절’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이것은 순간적으로 얼마나 많은 힘을 낼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작은 힘이라도 얼마나 꾸준히 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출력이 들쭉날쭉 하면, 아기도 힘들고 아빠도 힘들고, 엄마도 힘들다. 모두가 힘들다. 그래서...  아프면 안 된다. 그런데 내가 요즘 아프다. 그러니까...크흑...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콧물, 코막힘에 이은 인후통으로 여간 고생스러운 게 아니다. 나는 원래 감기를 달고 사는 편은 아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걸려서 고생하기는 하지만, 한 달이 멀다하고 감기에 걸리곤 하는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는 말씀. 물론, 나의 평소 건강상태에 비춰보자면, 약간 의외이기는 하다. 반년에 한번씩 결막염에 걸리기도 하고, 비염은 거의 늘 달고 있으니 어쩐지 ‘이 친구 감기도 달고 살겠군’ 싶지만, 그리고 이미지상 ‘감기 참 잘 걸리게 생겼어’ 싶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번 걸렸다 하면 된통 걸리지만 가벼운 감기 따위는 아예 걸리지도 않는다. 기왕이면 무거운 감기에 걸리지! 그랬었다.


_ 생애 첫 감기로 병원 방문


여하튼 각설하고, 그렇게 비실거리는 몸을 가지고 있는 관계로 아기가 태어나기 몇 달 전쯤부터 내심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감기든 안질이든, 여하간 전염성 질병에 걸리면 곧장 아기와 격리되어야 하니 말이다. 특히 만삭의 엄마에게 감기를 옮긴 전적까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런 신체적인 약점 외에도 꼭 어떤 인생의 결정적 순간마다 병은 나를 피해가지 않았다. 말하자면 운명론적으로도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태랄까. 아기가 태어나는 중차대한 상황에서 아빠가 코를 훌쩍여서는 아니 될 일. 그리하여 예정일을 전후로 개인 위생관리에 만전을 기하였다. 그리하여 220일이 지나도록, 감기는 스치지도 않았으며, 기타 염증성 질환은 ‘왔나?’ 싶은 순간에 떠날 정도였다. 한차례 안질 비슷한 것이 있기는 했지만, 하룻밤 잘 자고 나니 깨끗하게 나았다. 나는 짐짓, 내가 대견스러울 정도였다. ‘역시 아빠란 이런 것인가?’ 싶은 기분을 만끽하기도 하였다. 아기를 향한 아빠로서의 애정과 책임감이 어우러져 축복의 항체를 형성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는, 유래없는 건강을 누렸던 것이다. 


그런데, 220일, 바로 그때가 고비였나 보다. 어느날 저녁 무렵부터 왼쪽 손목이 마구 아파오는 것이었다. 아기를 들 때마다, 기저귀를 갈려고 바닥을 짚을 때마다, 찌릿하기도 하고, 욱신하기도 한 것이 왼손을 거의 쓰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픈 건 아픈 거다. 그러니까 그냥 아픈 거다. 내가 아프다고 해서 아기가 만들어내는 일이 줄어드는 법은 결코 없다. 게다가 이 친구에게는 양해를 구할 수도 없다. ‘아빠가 아프니까 똥을 하루에 한 번만 싸면 어떨까?’ 같은 제안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상황은 아프기 전이나 아픈 중이나 똑같다. 그러니 별 수 있나. 아파도 이를 악물고 해내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전염성 질환이 아니라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달까. 여하간 나는 육아의 어려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하는 사람의 상태는 아무 변수가 되지 않는다. 상황은 그대로 흘러갈 뿐이다. 결국 참느냐 못 참느냐에 문제가 아니라, 참는 수밖에 없는 문제여서 어려운 것 같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돌보는 우리집의 경우도 이러한데, 독박육아의 경우라면 말해 무엇하랴.



여하튼 아빠는 고장난 손목을 부여잡고 버티다가 결국 병원을 찾았다. 엄마는 진작에 병원에 가라고 했건만, 어쩐지 그냥 두면 나을 것 같아서 일주일여를 버티다가 간 병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나 싶다. 아마 추워서 그러지 않았을까... 찾아간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으나, 원인이 안 나온다. 이런 경우 결국 병명은 ‘염증’이 되고 마는데, 그래서 결국 처방은 진통소염제 뿐이다. 그걸 먹으면서 병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었으나, 그렇게 하기엔 내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었다. 나는 빨리 나아야 했으니까. 그래서 그길로 정형외과를 나와 한의원을 찾았다. 아무래도 이런 경우엔 침을 맞는 편이 훨씬 빠르고 확실하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 왜 처음부터 한의원엘 가지 않은 걸까? 뭐랄까, 그래도 사진은 찍어봐야 안심이 되니까. 그렇게 간 한의원에서 한의사 샘과 아래와 같은 문답을 나눴다.


“최근에 다치신 적이 있나요?”

“아니요.”

“무거운걸 드시거나 그러셨나요?”

“아니요. 아니, 네, 매일 아기를 들고 있어요. (백수로 보이는 건 싫으니까 덧붙였다) 육아휴직 중이어서요.”

“네, 아기를 (양손을 아기 겨드랑이에 끼워서 드는 시늉을 하며)이런 식으로 자주 드시나요?”

“네. 딱 그렇게 듭니다.”

(몹시 해맑은 얼굴로) “아, 그러면 아플 수가 있어요. 보통 요즘은 할머니들께서 아기를 봐주시다가 손목이 아프다고들 많이 오세요.”


‘아니, 이보시오, 의사 양반, 할머니라니!’라며 소리치며 항의하고 싶은 기분이 되었으나, 엄밀히 말해 ‘할머니’가 나쁜 것도 아니고, 내가 할머니들과 비슷한 증상을 앓는다고 해서 기분이 나쁠 이유도 없고 하여 가만히 있었다. 그래도 역시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였다. 진짜로 체력 수준이 할머니급이어도, ‘당신 체력이 할머니 같구만!’ 하면 자존심이 상하는 법이다. 게다가 그런 이야길 그렇게 해맑게 하다니....... 그래서 여하튼 그 한의원에서 침 두 번 맞고 씻은 듯이 나았다. 여전히 조심하고는 있지만,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빨리 나았다. 침을 맞은 당일엔 잘 모르겠더니 이튿날에는 전혀 통증이 없는 게 아닌가. 그야말로 엄지척!


그런 부상의 과정 속에서 아빠는 다시금 생각했다. 역시 육아를 잘하려면 마치 패넌트레이스를 뛰는 프로야구 선수처럼 컨디션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그러자면, 무엇보다 돌발변수를 최대한 없애야 한다. 최소한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 것들은 철저히 지켜줘야 하는 것이다. 가령 늦은 시간까지 무언가에 홀딱 빠져서 잠을 자지 않는다거나, 맛있는 음식이 있다고 와구와구 과식을 한다거나, 이른바 현대인을 현대인으로 특징짓는 그런 행위들 말이다.


_ 사과맛에 흠뻑 빠진 자


그런데, 바로 이번 주에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돌발변수가 생기고야 말았다. 아기가 생애 첫 감기에 걸려 병원에 다녀온 날, 엄청나게 추웠던 그날, 할머니집(그러니까 아빠의 엄마집이다) 보일러가 고장난 것이다. 아니, 고장이 난 게 확실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고장인지, 조작을 잘못하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말인즉 가봐야 알 수 있었다. 아빠는 그날 밤에 감기에 걸린 아기와 엄마를 집에 두고 할머니 댁으로 차를 몰았다. 엄청 추웠다. 히터를 틀기는 했지만, 손 끝이 어찌나 시린지, 도착할 때까지 덜덜 떨면서 갔다. 급기야 집에 도착하고 보니 할머니 이미 감기에 걸린 상황, 보일러는 고장까지는 아니고, 약간 애매한 상태여서 어떻게 저떻게 잘 살려놓기는 했다. 그나마 잘 된 일이다. 그러나 대신에 아빠는 감기를 얻었다. 아마 할머니에게 옮았으리라. 그리고 그 감기가 오늘 엄마에게도 붙은 것 같다. 아, 그렇게 우리 세식구는 사이좋게 감기를 나눠 가졌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이것도 괜찮지 않나 싶다. 아기 혼자만 감기에 걸렸다면 마음이 참 안 좋았을게다. 잘 때 코 속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 듣고 있자면 불쌍해 죽을 지경이었는데, 나도 그 모양이 되고 보니 죽을 지경까지는 아니게 되더라. 엄마 혼자 멀쩡할 때는 ‘엄마한테까지 옮기면 안 되는데...’ 하며 초조했으나 엄마까지 걸리고 보니, 기왕 이리 된 거 걱정도 없고 조금 시원하달까? 결론은 그러니까, 사이좋게 다같이 병에 걸리자,로 하면 이상하니까, 올 겨울 감기는 이걸로 퉁 치자 정도로 해야겠다.

_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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