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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선생의 도서관10

[약선생의 도서관] "그 한 부분에 머리를 내던져 적어도 금이라도 가게 하자" 전락의 훈련, 철저한 제로 - 나쓰메 소세키의 『갱부』 - 소세키의 강연 중 「문예의 철학적 기초」라는 제목의 강연이 있다. 이 강연은 마흔 살이 된 소세키가 동경미술학교 문학회 개회식에서 진행한 것이다. 강연이라지만 요즘 같은 그런 대중 강연은 아니었던 듯하다. 강연 내용에는 만만치 않은 논리들이 촘촘하게 스며들어 있다. 소세키 입장에서도 그랬던지, 강연 후에 소세키가 녹취록을 정리하고 보니 들고 간 강연 원고보다 두 배나 긴 글이 되고 말았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오래전에 이 글을 읽을 때는 그리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아마 소세키 강연의 백미는 ‘자기본위(自己本位)’를 묘파한 「나의 개인주의」이지 않느냐하는 편견 아닌 편견이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인간 인식의 불행은 집합적 대상의 어느 한.. 2016. 9. 6.
[약선생의 도서관] "상처를 반복하지 않고서 어떤 상처를 돌파할 수 없다" "반복되는 상처가 새로운 삶을 만든다" 주디스 버틀러의 『혐오 발언』 신혼 시절이었을 것이다. 출근은 언제나 그렇듯 지옥철로 움직여야 했다. 다행히도 집과 역이 가까운데다, 갈아타지 않고 회사로 출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고 다녔다. 그러나 자리는 늘 만석이어서 서서 한 시간은 족히 가야했다. 전날 과음이라도 했을라치면 온통 피로에 찌든 몸을 이끌고 문 옆에 기대어 서서 졸며 가기도 했다. 좀 익숙해지자 노약자석 옆이 좀 더 호젓하고 졸기에도 적당한지라 가끔 그곳을 애용하기도 했다. 어느 날 역시나 과음에 찌든 몸을 이끌고 노약자석 벽에 붙어서 출근 중이었다. 내 앞에는 무척 조용하실 것 같은 단아하신 할머니께서 앉아 계셨다. 나이는 꽤 들어 보였지만, 지갑 하나를 두 손으로 포개어 잡고 똑.. 2016. 8. 23.
[약선생의 도서관] 원문에 갇힌 의미를 해방하는 번역 『번역하는 문장들』 번역, 타자가 들어오는 관문 조재룡의 『번역하는 문장들』 프랑스어에는 ‘에크리튀르’(écriture)라는 단어가 있다. 인터넷 포털 사전을 활용해 찾아보면 ‘문자, 글씨, 글쓰기, 문체, 화법이나 작곡법’ 등등으로 번역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로 문자와 관련된 의미들을 지칭한다. 물론 사전에 나와 있는 뜻으로만 보면 그리 어려운 단어가 아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현대철학에 와서 무척이나 문제적인 단어가 된다. 형이상학의 시대, 신의 시대에 ‘신의 음성’, ‘존재의 목소리’, ‘양심의 목소리’는 우리를 움직이는 강력한 배후였다. 우리가 바라보는 현상 이면에 실체적 진리가 존재하며, 세상은 언제나 그것으로부터 움직인다는 초월적 신념은 강고한 것이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했을 때 신은 바로 이런 .. 2016. 8. 9.
[약선생의 도서관] 『노인과 바다』 속의 플라톤, 『프로타고라스』 "플라톤의 반플라톤주의"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 대서(大暑)의 태양이 뜨겁다. 태양(日)을 머리에 인 사람(者)의 형상도 끔찍한데, 그것도 크다(大)고 하니 도무지 속수무책인 절기다. 그래도 온종일 에어콘 옆에서 먼지바람만 삼키는 신세가 처량하다. 알고도 들이킬 수밖에 없는 처지라 차라리 비극적이라고 해야 한다. 회사일이고 뭐고, 바다에 나가 한바탕 첨벙거리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고 꼭 시원함 때문만은 아니다. 어느 바다나 그곳은 내 몸을 발 없이 위로 뜨게 해주는 곳이다. 나는 니체가 중력의 악령에서 벗어나라고 했을 때 머리에 맨 먼저 떠올리는 곳은 바로 한바탕 첨벙거리며 떠있을 이 바다다. 그러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그리는 바다는 그리 시원한 바다는 아니다. 노인 산티아고는 거대한 청새치와.. 2016.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