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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9

삼국사기를 통해 본 대무신왕 - '약소국이라도 이런 당당함은 있어야 한다' 통치자의 초상 : 정치란 무엇인가? ② ❙ 어린 왕자, 무휼의 지혜유리왕의 셋째 아들, 동명성왕의 손자인 무휼은 6살부터 국정에 참여한다. 아니 이럴 수가! 그리고 11살에 왕위에 올랐다. 바로 대무신왕(4-44년)이다. 김부식은 무휼을 이렇게 평가한다.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웠으며 장성해서는 뛰어나게 큰 지략이 있었다.” 겨우 6살 때 무휼은 강대국의 압박을 물리칠 정도로 지혜로웠다. 부여왕 대소의 사신이 와서 작은 나라인 고구려가 큰 나라 부여를 섬겨야 한다고 협박했다. 왕을 비롯하여 신하들은 부여에 굴복하자고 의견을 모았으나, 무휼이 나서서 사신에게 말한다. “우리 선조는 신령의 자손으로서 어질고도 재주가 많았던 바, 대왕이 질투하고 모해하여 부왕에게 참소하여 말을 먹이게 하였다. 이 모욕 때.. 2016. 7. 5.
『삼국사기』,「고구려본기」 속의 광개토대왕의 모습은?! 통치자들의 초상 : 정치란 무엇인가? 그저 담담한 광개토대왕의 기록 『삼국사기』를 읽으려 할 때 무엇이 가장 궁금할까? 나는 「고구려본기」의 광개토왕 기사를 먼저 펼쳐보았다. 흠모해 바라마지 않던 왕이자, 고구려에서 가장 유명하고 훌륭한 왕이라 배웠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의 영향도 지대했다. 한반도의 지리적 위상 때문인지, 대제국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 요동 저 너머까지 영토를 확장한 왕에 대해 ‘기묘한’ 경외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광활한 영토에 발을 디디는 상상만으로도 광개토대왕은 너무나 멋진 왕이라 여겨졌던 것이다. 영토의 넓이와 국민의 행복지수가 어떤 함수관계를 갖는지 생각해본 적도 없으면서 괜히 땅이 넓으면 잘 사는 것 같은 아니 잘 살 것 같은 착각이랄까, 그런 요상한 심리가 작동했던 것도 .. 2016. 6. 21.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 - 아직 서로가 '원수'이던 때의 역사 한민족이 아니라 삼국이 있었네! #2 삼국,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 우리가 늘 생각하는 가깝지만 먼 나라는 중국이나 일본이다. 적국이기도 하고 협력국이기도 한 이웃 나라. 중국에 대해 신라, 고구려, 백제는 ‘해동(海東)’ 혹은 ‘동이(東夷)’로 묶여서 지칭된다. 그러나 『삼국사기』에서 신라, 고구려, 백제는 ‘우리는 하나’라고 의식하지 않는다. 지금의 남한과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처럼 ‘분열되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통일되어야 할’ 한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삼국의 기원과 형성이 다르듯 민족이라는 공감대는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신라, 고구려, 백제의 관계는 동북아시아 주변국 즉 중국, 돌궐, 말갈, 왜국과의 관계처럼 서로에 대해 ‘냉정’했다. 삼국은 서로에 대해 냉혹한 이해관계 위에서 움.. 2016. 6. 7.
김부식에게 한민족은 없었다! - 1 〈‘한민족’이 아니라 ‘삼국’이 있었네!〉 1탄 삼국, 다른 기원/다른 천하 『삼국사기』라는 역사책으로 진입해보자. 『삼국사기』는 중국의 역사책인 『사기』의 양식을 모방한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는 황제의 일과 행위를 다룬 본기(本紀), 제후의 일과 행위를 다룬 세가(世家), 기억할 만한 개인들의 행위를 기술한 열전(列傳), 왕력을 연표로 정리한 표(表), 문물·제도·법령을 논술한 서(序)로 구성되어 있다. 이 독창적 역사 양식이 창조된 이래, 동아시아 역사책들은 기전체라 불리게 된 이 양식을 전범으로 삼게 된다. 김부식도 『사기』의 양식에 의거하여 본기·열전·연표·잡지(雜志)의 체제로 역사를 구성한다. 중요한 것은 김부식이 신라·고구려·백제 삼국을 각각 천자의 나라, 즉 독립된 제국으로 보았다는 점이.. 2016.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