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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리포트34

[쿠바리포트] 코로나를 ‘뻬스끼사’ 하라(2) -커뮤니티, 바이러스를 걸러내는 마법의 필터 코로나를 ‘뻬스끼사’ 하라(2) - 커뮤니티, 바이러스를 걸러내는 마법의 필터 지금 나는 내 구역 주민들의 이름을 거의 다 외웠다. 이름뿐인가. 몇 명이 한 집에 사는지, 연령대는 어떠한지, 친하게 지내는 이웃은 누구인지, 가족 분위기는 어떠한지도 대충 알게 되었다. 두 달이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매일 동일한 내용을 필사하는데다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얼굴을 보기 때문이다. 이제 주민들도 나와의 거리가 좀 가까워졌다고 느끼는지, 어떤 할머니들은 커피를 건네거나 나를 붙잡고 아침 수다를 떠신다. 습하고 끈적거리는 날씨를 피해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나로서는 좀 곤란하다. 그래도 호기심 때문에 떠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6호 아파트 할머니의 아들은 에콰도르에 살면서 약을 보내주는데 지금 국경이 막혀서 곤.. 2020. 6. 23.
[쿠바리포트] 코로나를 ‘뻬스끼사’ 하라 (1) – 쿠바산 타가진단 앱 코로나를 ‘뻬스끼사’ 하라 (1) – 쿠바산 타가진단 앱 잠든 자들의 도시 조용하다. 뜨겁다. 아무 일도 없다. 요즘 내가 보는 쿠바의 모습이다. 전국 격리 조치가 실행된 지 벌써 두 달이 꽉 차게 흘렀다. 3월 말에 닫혔던 국경은 6월에도 닫힐 예정이고, 매연을 뿜는 올드카로 소란스러웠던 거리는 완벽하게 비워졌다. 살 태우는 햇볕 아래서 시간만 증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쿠바의 코로나 확진자는 2,000명을 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정말 선방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죽음의 전운이 감도는 고요는 아니고, 기약 없이 영영 잠들어버린 도시의 고요다. 이 집단 수면 상태에서 시간의 흐름을 유일하게 알려주는 것은 조금씩 늘어나는 확진자 통계와 날씨뿐이다. 올해 특히 변덕스러웠던 날씨는 몇 번 추위를 타더니 결국 완.. 2020. 6. 22.
[쿠바리포트] 말 너머의 세계(2) - 코로나바이러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놈 말 너머의 세계(2)- 코로나바이러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놈 바이러스는 어디 안 간다 누구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 기술만 믿고 오만방자해진 인간에게 자연이 코로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또, 반대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유행 따라 돌아오는 자연스러운 감기의 일종이며, 높지 않은 사망률 4% 앞에서 우리만 괜히 패닉하는 거라고.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를 감기로 협소하게 정의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한 배고픔과 죽음의 고립은 감기로 소급되지 않는다. (이것을 단순한 유행병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여유가 있는 사람은 이미 소수다. ‘죽음다운 죽음’을 보장할 의료체계와 충분한 식량을 보유한 공동체가 지구상에 소수이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가 정말 자연의 메시지라 하더라도, 그래서 .. 2020. 5. 12.
[쿠바리포트] 말 너머의 세계 (1) - 말 너머의 세계 (1)- 쿠바의 코로나, 전염병과 식량의 부재 관성적인 트랙에서 벗어나는 것, 연구실에서 흔히 표현하는 대로 ‘탈주하는 것’에는 사소한 단점이 하나 있다. 예전에 알던 사람들이랑 말이 예전만큼 잘 안 통한다는 것이다. 내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메이저리그의 세계니까. 그러나 그들에게 나를 이해시키는 작업은 좀 어렵다. 마이너리그의 세계는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데다가, 좌충우돌 길을 만들면서 가다보면 나조차도 내가 뭐하고 사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러니 그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은 오죽하겠는가. 처음에는 원래 노선에 각도를 살짝 비틀었을 뿐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옛날 길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바닥으로 탈주 이런 탈주.. 2020.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