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연재 ▽/카프카와 함께22

시간아 멈추어라, 도주로가 여린다 시간아 멈추어라, 도주로가 여린다 돌연한 출발과 영원한 지연 #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 한 마리의 커다란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갑옷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누웠는데, 머리를 약간 쳐들면 반원으로 된 갈색의 배가 활 모양의 단단한 마디들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보였고, 배 위의 이불은 그대로 덮여 있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나머지 몸뚱이 크기에 비해 비참할 정도로 가느다란 다리가 눈앞에서 힘없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일까’(『변신』) 카프카가 바라본 세계에서 시간은 어떻게 흐를까요? 사건은 모두 ‘어느날 아침’ 갑자기 일어납니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그레고르는 ‘오늘’, 이유없이, 갑충의 몸으로 침.. 2018. 3. 8.
1912년, 큰 일이 일어난 해 1912년, 큰 일이 일어난 해 사기꾼의 탈을 벗기다 『관찰』(1913)은 수줍은 문학청년을 책상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공격적 작가로 변신시켜준 단편집입니다. 실제로는 1912년 말에 출판되었습니다. 카프카는 일기와 문학 노트에 써 두었던 여러 작품을 고르고 다듬은 다음, ‘관찰’이라는 이름으로 엮었는데요,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모든 단단한 지반들이 ‘단지 그렇게 보일 뿐’임을, 단 한번의 산책으로도 그 점을 알 수 있음을 그려냈습니다. 카프카는 『관찰』에 실릴 작품들의 순서에도 고심을 했습니다. 반드시 첫 작품은 「국도의 아이들」이 되어야 한다며, 출간 직전에 급히 라이프치히의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요. 저녁 무렵 부모님의 집 정원에서 슬며시 빠져나와 잠을 자지 않는 남쪽 나라로 .. 2018. 2. 22.
카프카, 산책을 나서다 - 무엇을 관찰할 것인가? 카프카, 산책을 나서다 1. 무엇을 관찰할 것인가? 카프카가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집의 제목은 ‘관찰’(1913년)입니다. 카프카는 1904년부터 1912년까지 일기와 연구 노트,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작품을 쓰곤 했는데요, 그것들을 엄선하여 펴낸 것이 바로 『관찰』입니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18편의 짧은 이야기에는 아이들, 사기꾼, 독신자, 상인, 전차의 승객, 말의 기수, 인디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출현합니다. 사건도 가출, 전차에서의 하차, 등산, 말달리기 등 산만합니다. 이후에 카프카가 집중적으로 다루게 되는 가족 드라마, 법정 공방, 민족과 예술의 문제 같은 거시적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관찰’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만 보면 더욱 희안한데요. 관찰할 만한 대상도, 관찰 가능한 도구도, .. 2018. 1. 25.
채식은 나의 삶, 육식은 나의 문학 채식은 나의 삶, 육식은 나의 문학 카프카는 채식주의자 아셔요? 카프카는 채식주의자였습니다. 얼마나 철저했는지! 베를린으로 이사를 갈 것인지 말 것인지, 노동자 재해 보험공사를 계속 다닐 것인지 그만 둘 것인지를 결정할 때에도 우선은 채식을 계속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따져보았지요. 약혼을 앞둔 펠리체가 요리 실력을 자랑할 때에는 정말 단호했습니다. ‘우리집에서 필요한 것은 고기가 아닐 것이오!’ 폐결핵을 앓을 때에 의사가 육식을 권하자, 과감히 치료를 거부하기도 했지요. 채식은 나의 삶! “아니, 나는 방 하나와 채식 식단만이 필요하며, 그 밖에는 어떤 것도 필요없다!”(일기, 1914년 3월 9일) 카프카가 채식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프라하에서는 자연요법을 표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018. 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