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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베짱이의역습16

예술과 철학, 일상의 힘 예술과 철학, 일상의 힘 패터슨, 평범의 경이로움 짐 자무쉬의 영화 《패터슨》은 시 쓰는 버스 드라이버 패터슨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아마추어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전형적 영화들과는 달리 패터슨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주일을 담담하게 따라갈 뿐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아내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씨리얼을 먹고, 동료의 하소연을 듣고, 버스를 몰고, 폭포 앞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버스를 몰고, 기울어진 우체통을 고쳐 세우고, 반려견 마빈과 산책을 하다가 바에 들려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지극히 단조로운 일과의 반복. 가령 《위플래쉬》의 ‘광기어린 열정’이라든가, 《원스》 풍의 ‘인디감성’, 《인사이드 르윈》이 보여주는 ‘비루한 현실’같은 건 이 영화에 없다. 그런데 .. 2018. 3. 6.
우리 나르시스트, 그 후 우리 나르시스트, 그 후 우리, 21세기의 다이스케들 “욕실에서 정성껏 이를 닦았다. 그는 평소부터 자신의 고른 치아에 만족하고 있었다. 윗옷을 벗고 가슴과 등을 깨끗이 문질렀다. 피부는 섬세한 윤기가 감돌았다. 향유를 바른 자리를 정성껏 닦아낸 것처럼 어깨를 움직이거나 팔을 올릴 때마다 지방이 살짝 붙은 부분이 도드라져 보였다. 다이스케는 자신의 이런 모습 또한 만족스러웠다. 이어 검은 머리에 가르마를 탔다. 기름을 바르지 않아도 머리카락은 신기할 만큼 말을 잘 들었다. 수염 역시 머리카락처럼 섬세하고 가지런한 모습으로 입 위를 품위 있게 덮고 있다. 다이스케는 자신의 통통한 뺨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그건 마치 여자가 분을 바를 때의 손놀림과도 같은 동작이었다. 실제로 그는.. 2018. 2. 20.
참을 수 없는 교양의 공허함 참을 수 없는 교양의 공허함 새로운 교양주의의 도래? “얼굴과 사지에 쉰 개나 되는 얼룩을 칠하고 거기 그렇게 앉아 나를 놀라게 했으니, 오늘을 살고 있는 자들이여!/ 너희가 연출한 색채의 놀이에 교태를 부리며 흉내를 내는, 쉰 개나 되는 거울을 주변에 두고 말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자들이여, 진정, 너희 자신의 얼굴보다 더 그럴싸한 탈을 너희는 쓸 수 없으리라! 그 누가 너희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지난날의 기호들로 가득 쓰이고, 그것들을 새로운 기호로 덧칠한 채. 이렇게 너희는 기호를 해독해내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너희 자신을 잘도 숨겨왔다!/ (…)/ 너희가 쓰고 있는 베일을 뚫고 온갖 시대와 민족이 다채롭게 내다보고 있구나. 온갖 습속과 신앙이 너희 자태 속에서 다채롭게 지껄여 대고 있는 것이.. 2018. 2. 6.
철학, 건강의 기예 철학, 건강의 기예 철학, 여전히 너무나 낯선 나는 연구실 바깥의 주변인들에게, 심지어는 가족들에게조차도 뭘 하고 사는지 알 수 없는 인간이다.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취직을 한 것도 아닌 주제에 바쁜 척은 다 하고 다니는. 그래서 다들 내게 묻는다. 도대체 뭐하고 싸돌아다니는 중이냐고.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런 질문에 답할 때면 ‘철학’이라는 말을 빼려고 노력하게 된다. 결국 그게 그거지만 인문학 공부를 한다고 말하거나 읽고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식으로 대답하게 되는 거다. 분명히 철학을 공부하고 있고 그걸로 글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철학’이라는 말이 낯설다. ‘철학’이라는 말이 주는 무거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난 뭔가 고원한 진리를 논할 것만 같은 철학의 진지하고 무거운 이미지가 부담스.. 2018.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