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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그때 그 시집10

정호승 시집 『서울의 예수』 너희에게 상처 준 자를 용서하라, 용서하라 ― 12월이면 생각나는 시집, 정호승의 『서울의 예수』 고등학교 때까지, 아니, 정확하게는 중학교 3학년 초부터 대학교 입학 전까지 교회는 내 생활의 중심처였다. 아주 작지도 아주 크지도 않은 동네에 있는 교회에는 딱 서로를 알고 어울릴 만큼의 동급생들과 선배들과 후배들이 있었고, 중등부와 고등부로만 나뉜 학생회가 있었다(작은 교회는 중고등부가 통합되어 있고, 큰 교회는 중등부만 해도 중등 1부, 2부… 식으로 나뉜다). 어디든 조직이 있으면 행사도 있는 법이다.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서 팀웍이 중요하고 팀웍을 위해서는 자주 모여야 하므로 우리는 참 교회에서 자주 만났다. 비록 각자 학교에서는 누구는 뛰어난 성적을 자랑하고, 누구는 문제아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 2015. 12. 28.
이해인 수녀님 시집 『내 魂에 불을 놓아』 편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시집 ― 이해인 『내 혼에 불을 놓아』 이해인 수녀님의 시들은 내가 교과서에 나오는 시인의 시를 제외하고 처음 접한 시(라고 기억한)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그러니까 수업마다 다른 선생님이 오시는 것도, 여자애들만 있는 교실도(남녀공학이었으나 남자반 여자반이 따로 구성된 학교였다)― 중학교 1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 덕분이다. 교사생활에 첫 담임을 맡으셨던 우리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모두 마음을 다해 자상하게 해주셨고, 강압적인 말투도 제스처도 취하신 일이 없었다. 나서거나 눈에 띄는 걸 싫어하는 편이었지만, 선생님을 좋아하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어 방학 때 선생님 댁으로 편지를 보냈다(편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의사전달 수단이었다). 사실 답장에 대한 기대가 없지는 않.. 2015. 11. 24.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영원한 이십대의 망명지,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 「장밋빛 인생」 中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비가 2 : 붉은 달」 中 십대 때는 마흔이 넘은 나를 상상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생각해 보면 자신이 뭔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은 길어야 10년 뒤쯤인 듯하다. 아무튼 십대 때는 마흔도 너무 오래 산 나이처럼 느껴진다. 노인의 모습을 한 뒤에 죽지 말고, 젊었을 때 죽었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도 곧잘 한다. 십대 후반의 나는 이십대 길어야 삼십대 초반에 죽은 문인 및 예술가들을 동경하며 서른이 넘어 사는 삶은 끔찍할 거라 생각했다. 스물여덟에 죽은 윤동주, 스물일곱에 죽은 이상은 너무.. 2015. 10. 20.
다니카와 슌타로 시선집 『이십억 광년의 고독』 “아이들이 읽으면 동요가 되고, 젊은이가 읽으면 철학이 되고, 늙은이가 읽으면 인생이 되는” 시들의 모음, 『이십억 광년의 고독』 일본의 “국민시인”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郞, 1931~ )의 시선집 『이십억 광년의 고독』의 옮긴이 해설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그의 시의 결말은 이렇게 인생을 유쾌하게 표현하곤 한다. 유치원생 정도의 아이들이 읽어도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으나, 읽는 이에 따라서 다른 의미를 얻을 수 있다. 그가 겨냥하는 것은 단지 신선함이 아니다. 괴테가 “아이들이 읽으면 동요가 되고, 젊은이가 읽으면 철학이 되고, 늙은이가 읽으면 인생이 되는 그런 시가 좋은 시”라고 했듯이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에는 동요와 철학과 인생이 있다. [김응교, 「옮긴이 해설: 하늘의 시인, 다니카와 슌타.. 2015. 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