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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

읽고 쓰기의 초심자에게, 읽기는 깊게, 쓰기는 넓게!

by 북드라망 2014. 8. 18.

어떤 읽기와 쓰기

― 초심자일수록 읽기는 양보다 질, 쓰기는 질보다 양으로
승부해 보면 어떨까



어떤 읽기

아침에 달리기를 할 때,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걸어갈 때,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할 때, 점심 먹고 앉아 있을 때, 잠시 외근 나가는 버스 안에서. 찾아보면 시간은 많았다. 나는 그 시간을 철학이라는 기묘한 물건을 다루는 데 사용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투여해도 책들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 단락이 채 안 되는 니체의 아포리즘 중 어떤 글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 몇 페이지를 공책에 몽땅 써서 주어, 동사, 목적어로 분해하고, 난립하고 있는 지시대명사들이 각각 어떤 것들을 지시하고 있는지를 따지고, 또 따지고 했던 기억이 난다. 마치 수학문제를 풀듯이 풀고 또 풀었다. 

강민혁, 『자기배려의 인문학』, 북드라망, 2014, 234쪽



또 다른 어떤 읽기

저는 어머니 쪽이 쓰가루 출신이어서 "무당이냐?"라는 놀림을 가끔 받습니다. 저는 몇 권 안 되는 책을 반복해서 읽기 때문에 입에 붙어 거의 원문 그대로 술술 나옵니다. 반복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말 어리석은 일이지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런 어리석음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송태욱 옮김, 자음과모음, 2012, 45쪽



그렇게 시간을 투여해도 책들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 마치 수학문제를 풀듯이 풀고 또 풀었다.




어떤 쓰기

이 순간 놀라운 전환이 발생했다. 바로 언어가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생각하니까 글을 쓰는 게 아니고, 글을 쓰니까 생각하게 된다는 전도가 일어났다. 그러자 글쓰기가 글읽기와 다르지 않았다. 글을 읽으며 했던 방법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지은 튼튼한 집을 따라 지어 보는 일이 사유의 작업이었다. 이것은 중대한 돌파구였다.

그래서 나는 글을 베끼기 시작했다. 아주 단순했다. 책을 읽을 때마다 필요한 부분은 통째로 베꼈다. 그리고 몇 개의 베낀 문장을 여러 방식으로 고쳐 보았다. 그 일은 놀랍게도 재미있었다. 내 문체로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예기치 않은 즐거움을 주었던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발견하고 이 작업에 깊이 빠져들었다. '내가 생각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글이 생각한다'고 생각하면서 오로지 베낀 문장이 주는 리듬을 따라갔다. 그러면서 문장들을 이리 바꾸고, 저리 고치면서 수많은 조립품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자 그러는 과정 자체가 생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이 글을 썼다. 마치 마술 같았다. 

강민혁, 『자기배려의 인문학』, 북드라망, 2014, 237쪽



또 다른 어떤 쓰기

서정인의 「행려」를 읽고 「강」을 읽던 중이었다. 나는 「강」을 그대로 옮겨 써보고 싶은 충동으로 만년필에 잉크를 채웠다. 그리고 노트를 폈다. 한 자 한 자 옮겨 적기 시작했다. …… 「강」을 시작으로 나는 그 여름을 내 노트에 선배들의 소설을 옮겨 적는 일을 하며 지냈다. …… 그냥 눈으로 읽을 때와 한 자 한 자 노트에 옮겨 적어 볼 때와 그 소설들의 느낌은 달랐다. 소설 밑바닥으로 흐르고 있는 양감을 훨씬 더 세밀히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부조리들, 그 절망감들, 그 미학들. 

필사를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것이다. 나는 이 길로 가리라. 필사를 하는 동안의 그 황홀함은 내가 살면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각인시켜 준 독특한 체험이었다. 

신경숙, 『아름다운 그늘』, 문학동네, 2011, 194~195쪽



'내가 생각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글이 생각한다'고 생각하면서 오로지 베낀 문장이 주는 리듬을 따라갔다. … 그러는 과정 자체가 생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이 글을 썼다. 마치 마술 같았다.



독서와 장서(藏書)는 별개의 행위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장서의 규모로 그의 독서를 파악하곤 한다. 많이 읽을수록 좋다(혹은 똑똑하다 혹은 유식하다!―리얼리??)라는 통념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는 어떻게 읽느냐의 문제가 빠져 있다. 내용을 파악했든 안 했든, 얼마나 집중해 읽었든 안 읽었든 상관없다. '어떻게'보다는 '얼마나'가 중요한 것이다. 왜 독서에 '얼마나'라는 양이 중요해졌을까? 그것은 책과 나와의 만남보다는 남에게 비쳐지는, 남이 생각하는 내가 중요해진 것과 적잖은 관련이 있을 듯싶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에게 그 책이 의미를 남기는 것이다. 설령 단 한권이라도, 딱딱해진 내 생각에 균열을 내주고, 좁아터진 내 마음에 작은 물꼬를 터주고, 나밖에 보지 못하는 내 눈을 조금이라도 밖을 향해 돌려주는, 그런 책을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만남은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책에서보다는 내가 읽기에 조금 어렵다고 느껴지는 책에서 찾을 가능성이 훨씬 많다. 당연하지 않을까. 딱딱한 내 머리, 좁은 내 마음에 아무 불편함을 주지 않는 책이라면 지금의 내 머리와 내 마음에 꼭 맞는 책이라는 것일 테니까. 오랜 습관을 조금 바꿔, 이제 내가 읽기에 조금 벅찬 책을(많이 벅차도 상관없다. 많이 벅차면 더 큰 균열과 더 큰 물꼬를 가져올 테니까) 잡고 반복해서 읽어 보는 건 어떨까? 외울 만큼 읽어 보는 건 어떨까?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두고 반복해서 읽고 생각하고 또 읽다 보면 조금씩 그 책이 내것이 되어 가는 걸 반드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처음에 엄두 내기가 힘들다면 친구들과 세미나를 하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책에서 균열과 물꼬를 가져오는 건 '나'일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자). 


중요한 건, 나에게 그 책이 의미를 남기는 것이다. 설령 단 한권이라도, 딱딱해진 내 생각에 균열을 내주고, 좁아터진 내 마음에 작은 물꼬를 터주고, 나밖에 보지 못하는 내 눈을 조금이라도 밖을 향해 돌려주는, 그런 책을 만나는 것이다.



글쓰기는 업무용 메일 한통이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힘겹다. 하물며 자기 생각을 써내려가는 글을 쓴다는 건 엄두 내기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뭔가 내 얘기를 하고 싶고, 내가 읽은 책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시작도 겨우 하긴 했는데, 맺기가 힘들다. 자꾸 더 많은 자료를 봐야 할 것 같고, 더 근사한 이야기를 붙여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럴수록 글은 더욱 쓰기 힘들어진다.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데, 많이 써보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승-전-결이 갖추어진 완결된 글을 쓰는 것이다(글 한편의 분량과 상관없이). 쓰다 말고, 또 다른 글을 쓰다 말고, 하는 방식으로는 아무리 많이 써도 글 한편을 완성해 내기 힘들다. 


나에게는 이것이 좀 이상하다. 책은 많이 읽을수록 좋게 생각하며 독서의 질을 따지지 않는다. 글쓰기는 많이 쓰는 것보다 근사한 글 한편 쓴 것을 더 쳐준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근사한 글 한편은 수없이 많은 별로인 글들을 통과하며 나온 것이고, 질 높은 독서는 그 근사한 글쓰기의 탄탄한 기반이 되어 준다. 그래서 나는 읽기와 쓰기의 초심자일수록 읽기는 양보다 질, 쓰기는 질보다 양에 무게를 두는 것이 그 사람의 읽기와 쓰기 근육을 키우는 데 좋다고 생각한다(물론 아예 읽기와 쓰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 말고, 관심을 갖고 의욕적으로 시작하려는 사람의 경우다). 남보다 늦게 읽고 남보다 느리게 쓰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책의 내용을 내것으로 만들고, 그 글이 내 언어로 써지는 게 문제다. 그리고 연암의 처남이자 지기(知己)였던 지계공(芝溪公) 이재성이 연암의 읽기에 대해 했던 다음의 말은 속독과 다독에 가치를 두는 우리 시대의 독서에 어떤 참조점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연암은 책을 매우 더디게 보아서 내가 서너 장 읽을 때 겨우 한 장밖에 못 읽었다. 또 암기 능력도 나보다 조금 못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읽은 글에 대해 이리저리 논하거나 그 장점과 단점을 말할 때에는 엄격한 관리가 옥사(獄事)를 처결할 때처럼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공이 책을 느리게 보는 것이 철저하게 읽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기배려의 인문학 - 10점
강민혁 지음/북드라망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10점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자음과모음(이룸)
아름다운 그늘 - 10점
신경숙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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