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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한국근대소설극장

[근대소설극장] 삶은 진창이다, 그래도 나는 살 것이다! ― 한설야의 「이녕」

by 북드라망 2014. 7. 4.

한국근대소설, 등장인물소개로 맛보기 8

삶은 진창이다, 그래도 나는 살 것이다!



맛볼 소설 : 한설야, 이녕」(泥濘; 진창), 『문장』, 1939년 5월



시놉시스 


1930년대 ○○ 청년회의 활동으로 4년간의 옥살이를 한 민우는 출감한 지 벌써 반년이나 되어가지만 아직 취직자리를 찾지 못했다. 고만고만한 나이의 아이가 다섯이나 있는 터라 민우의 처는 늘상 민우에게 “살아갈 연구”를 하라고 말을 하고, 아내와 생김도 성격도 판이하게 다른 민우는 이런 아내와 툭하면 이웃 아이들에게 맞고 들어오기 일쑤인 자신의 아이들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민우에게는 남을 때리기보단 맞는 쪽인 아이들이 늘상 남에게 물쩡해 보이고 어리숙해 보이는 자신과 겹쳐져 볼수록 울분이 쌓이는 것. 한편 보호관찰소에서 민우의 일자리가 논의된다는 사실을 알고 아내는 희망에 부푼다. 어느 날 한때 청년회의 동지들로 모두 감옥살이를 하고 온 동료들의 부인들은 민우 집에 모여 남편 자랑과 흉을 늘어놓고, 그 이야기를 방 저편에서 듣는 민우에겐 이 세상이 진창과 같이 느껴진다. 못마땅한 것만 보이고 삶의 의욕이 꺾여가는 민우에게는 괜찮은 취직자리 얘기가 거의 끝나간다는 보호관찰소 다무라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그에게는 아직 적어도 삼십 년은 더 살날이 남았다는 사실이 소름 돋는 일로만 느껴진다. 민우네 막내가 옆집 아이와 장난하다 넘어져 무릎이 완전 깨져서 들어와 민우의 심기가 또 한번 뒤틀린 날 밤, 닭의 비명에 민우는 잠에서 깨는데……….



잇 신 (it scene) 


- 조선 사상범들의 취업을 알선해 준다는 보호관찰소에 민우가 불리어 다녀온 날 저녁, 민우의 처가 퉁명스러운 민우에게 차마 취업 얘기가 어떻게 됐는지 직접 묻지는 못하고 둘러말하며 민우의 동정을 살피고는 밥도 국도 수북이 퍼담아 저녁상을 차리는 장면. 


"민우는 그러한 아내의 성미가 비위에 맞지 않아서 때로는 … 국그릇을 통으로 집어 내려놔도 아내의 타고난 지방질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저 수북수북 담아 놔야 맘이 놓이는 거다."



- 민우의 감옥 동지들의 아내들 모임. 그 중 가장 팔자가 늘어졌다는 수득 어미가 남편 흉에 여념 없는 덕근 아내와 별 얘깃거리 없는 만수 어미, 아직 취업 못한 남편을 둔 민우 아내 앞에서 자기 남편 자랑을 시작할 틈만 노리고 있는 장면. 결국 육담 잘하는 수득 어미는 남편 자랑을 질펀하게 늘어놓고, 이젠 끝이구나 싶으면 다시 시작하는 기염을 토함. 


- 모여서 수다 떨던 아낙네들이 돌아간 밤, 워낙 텁텁하여 애교와 거리가 멀었던 민우의 아내가 단속곳 바람으로 잠자리를 펴고는 간드러진 목소리로 민우에게 말을 거는데, 말할 기분조차 나지 않는 민우는 자기 몸이 부쩍 쇠약해져 일찍 죽을 거 같다며 이불을 둘둘 말고 저편으로 돌아눕는 장면.


- 아이들이 동네 아이들과 다투는 걸 두고 벌이는 민우와 아내의 싸움 장면. 아이들이 몸이 약하고 비쩍 마른 까닭에 아내는 다투는 소리만 나면 나가서 제 아이들 편을 들어 주는데, 왜 자식 편을 드냐면서도 아이들에게는 그놈 허벅다리라도 물어뜯지 못하냐며 소리치는 민우. 사실 그렇게 몸도 맘도 약한 아이들을 낳은 자신에 대한 발악으로, 나쁜 놈이면 이로 물어뜯고 돌멩이로 머리를 까도 좋다고 말하는 남편 민우와 자기가 착하면 그만이지 남한테 못할 일 안하니까 아무 무서운 거 없다며 아이들을 감싸는 아내.


- 막내가 또 무릎을 잔뜩 깨져 들어온 날 깊은 밤, 닭이 꽥꽥 소리치는 것에 놀라 깬 민우 눈에 들어온 광경은 단속곳 바람으로 족제비를 쫓는 아내. 한 마리밖에 없는 민우네 닭을 족제비가 물어가려는 걸 아내가 발견한 것. 결국 족제비는 도망가고 볏을 물려 대가리가 온통 피투성이가 된 닭을 발견하고 아내와 함께 닭에게 약을 발라주며(저녁녘에는 서로 투닥거리며 막내의 깨진 무릎에 발라준 그 약), 족제비를 놓치고 부들부들 분함에 떨던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민우의 모습.




등장인물


▶ 민우

서른 살에 4년의 옥살이를 마친 생각하는 것이 본시 자기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 성격: 마른 외모처럼 약한 성격. 하지만 못마땅한 사람에게는 남 안 보는 그늘에 가서 침이라도 뱉어 줘야 마음 한구석이 좀 풀어지는 타입. 

- 자신에게 못마땅한 것: 길을 갈 때도 못생기고 순하고 껄렁한 늙다리들이 그 많은 사람 중에서 꼭 자기를 골라 보고 길을 묻는 것. 그만큼 자기가 남에게 물러 보이고 어리숙해 보이는 것.

- 아내에게 못마땅한 것: 세상과 타협하여 어우러져 사는 게 제일이라는 생각과 음식을 담박하게 하지 못하고 뭐든 기름지고 수북하게 하는 것.

- 아이들에게 못마땅한 것: 아내를 닮아 잘 우는 것과 자신을 닮아 나약한 성격으로 남을 때리기보다 맞고 다니는 것.

- 옥살이 후 변한 것 : 식성(예전엔 잡곡밥과 채식만을 하고 고기류나 국은 거의 안 먹었는데, 이젠 흰밥도 고기도 국도 먹게 됨), 자식에 대한 태도(예전엔 애들이 울면 무조건 욕하고 때리고 집어 던지고 했는데 이젠 그 버릇이 없음), 취직운동을 함(예전엔 생각하는 게 자기 직업이라고 하며 버텼는데 이젠 별말 없이 취직운동을 다님), 또 하나는 오입질을 끊은 것(예전엔 부자이자 한량인 덕근이와 어울려 오입깨나 했는데, 싹 없어짐). 


삼십 년 동안 세상에서 받은 가지가지 체험들에서 우러나온 울분에 가득 찬 사내. 세상이 못마땅하여 마음속은 항상 격분으로 들끓지만 약한 성격을 타고나서 겉으로는 필요 이상 공손히 살아왔다고 생각함. 그의 생각에 “악한 놈들은 맘속에 도적놈이 두세 놈씩 들어앉아 있으면서도 그것을 용케 숨겨 가지고, 그리고 강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제 몸을 사람들에게 좋게 인식시키고, 그리하여 어진 사람보다 버젓하고 영화롭게” 살아가고 있음. 따라서 자기처럼 약하고 착한 사람은 못난이, 열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여김. 보호관찰소의 다무라에게 취직이 거의 확정되어 간다는 말을 들은 날, 곱게 살려고 버둥거린 자신의 생이 오히려 이 색 저 색으로 잡탕이 된 “악물스러운 잡색”으로 느껴짐. 삶에 대한 환멸이 가득한 그날 밤, 닭을 물어 가려는 족제비를 아내와 함께 쫓으며 족제비에 대한 분노로 몸이 떨릴 정도인 그는, 아내와 닭을 치료해 주며, 내일은 꼭 덫을 사다가 족제비를 잡고야 말겠다고 다짐함. 한편으로 함께 족제비를 쫓고 분노한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낌. 다음날 아침, 민우는 닭이 기운을 좀 차리는 걸 보면서 그 전날과는 달리 ‘유쾌한’ 마음으로 집을 나섬. 



▶ 민우 처

서른 전후로, 깡마른 스타일의 민우와 반대로 살피듬이 좋은 편.

- 성격 : 괄괄하고 수선스러운 스타일. 화끈한 편. 

- 세상살이에 대한 생각 : 요즘 세상은 싫건 좋건 덮어놓고 돈으로 청탁을 가리지 말고 모나지 않게 두루뭉술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함.

- 남편에게 못마땅한 것 : 재주도 없는 주제에, 게다가 사람 많은 데서는 변변히 말도 못하면서 가정에서나 활개를 치는 것. 돈 벌 생각은 안하고 “가난뱅이 되는 연구”만 하는 것.

- 잘하는 일 : 토정비결책에서 태세, 월건, 일진을 보는 일. 

- 민우가 생각하는 아내의 특기 : 남편이나 누군가에게 불만이 생기면 날짜, 경위, 증인까지 하나 빼지 않고 몇 번이든 곱씹어 외우고 사설하고 욕지거리하는 것.


민우가 옥살이하는 4년 동안 다섯 아이들을 돌보며 “글보다 장작 팰 도끼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함. 친척도 별로 없는 탓에 누구 하나 돌봐주는 사람도 없고 오롯이 자기가 생계를 책임져 왔음. 막내를 낳고 사흘 만에 쌀을 꾸러 갔던 일은 두고두고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음. 남의 말을 들으면 남편이 퍽 재미난 사람이라는데 집에서는 전혀 말이 없음. 이불을 돌돌 감고 돌아누웠거나 책과 씨름할 뿐. 그럴 때마다 책을 모두 불살라 버리고 싶음. 하지만 한 마리뿐인 닭이 알을 낳으면 언제나 남편에게 주는 심성의 소유자. 최근에는 남편이 곧 취직자리를 구할 것 같아 기분이 좋음. 어느 날 밤, 어슴푸레 잠이 들었는데 어디서 꽥 소리가 나기에 뛰쳐나가 보니 족제비가 닭을 물고 있었음. 헛간에서 작대기를 가져와 나뭇단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 족제비를 닭에게서 떼어 놓고 도망가는 족제비에게 작대기를 던졌으나 빗나감.



▶ 민우네 다섯 아이들(4남 1녀)

① 맏이(男): 소학교 졸업이 오래지 않은 나이.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전다. 세 살 때 아빠인 민우에게 앞개천에 내팽개쳐진 일이 있음. 가장 순함. 음식을 덜 먹고 말이 없는 것이 장점(이라는 게 민우의 생각). 민우 처는 먹성이 적어서 아이가 약한 거라고 생각하며 안쓰러워 함.

② 둘째(男): 성미가 팩하고, 재주가 있고 자존심이 강한 편. 어릴 때 민우의 무슨 책을 찢어 놓아서 민우가 김칫독 파낸 구멍에 아이를 절반이나 파묻은 적이 있음. 아내가 기겁해서 꺼냄.

③ 셋째(男): 순하지만 감정 기복이 좀 있고, 비위가 좋은 편. 방에 잉크를 엎질렀을 때 민우에게 따귀를 맞아 코피가 터진 일이 있음. 아내는 둘째와 셋째의 경우 어렸을 때 자기의 젖이 모자라 우유와 설탕물을 먹여서 몸이 약하다고 생각함.

④ 넷째(女): 위로 세 명의 오빠를 오히려 이겨 먹으려고 하는 성격. 이 집안 아이로는 드물게 쌍꺼풀이 있음. 엄마를 닮아 울기를 잘해 아빠 민우에게 제일 귀염을 받으면서도 여러 번 맞기도 함. 민우 눈에는 자기 아이들 중 유일하게 외갓집 모습이 없는 아이라서 그것이 또 좋음. 

⑤ 다섯째(男): 민우가 감옥에 가던 날 새벽에 태어남. 그래서 감옥에서 이름(계봉이)도 지어 보냄. 다섯 살밖에 안 되었는데, 제법 형들을 따라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흉내를 내는데, 민우가 무슨 글자든지 써주면 그대로 받아쓰는 게 기특함. 그러나 욕심이 많은 것이 어쩐지 민우의 성미에는 안 맞음. 아내는 넷째와 막내의 몸이 약한 건, 민우가 감옥에 간 탓에 굶기를 부잣집 쌀밥 먹듯 해서 그렇다고 생각함.


"민우의 눈에는 정말 아이새끼들이 너무 성질이 약해서 걱정이다. 그놈들이 범광장다리처럼 날쳐도 지금 세상에 나가서 가엾은 꼴 안 하고 살아가기가 나나한데 지금 보는 바로는 어디 가서 어떻게 곯아 떨어질지 알 수가 없다."



▶ 민우의 청년회 친구들로 역시 옥살이를 했던 동료들의 아내들 

① 수득 어미 : 남편자랑계의 일인자. 어느 목재 회사의 무슨 주임으로 있는 남편이 돈도 잘 벌고 오입질도 안 하고 자기밖에 모른다는 자랑을 곳곳에서 늘어놓아 다른 아내들의 빈축을 삼. 자신은 아이가 둘밖에 없는데, 게다가 아이를 봐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도 힘에 부쳐서 밥해주는 사람을 하나 더 두고도 여유가 없다는 말로 다섯 아이 건사하는 민우 처의 속을 긁고, 자기 남편은 “천하없는 양귀비라도 제 계집만 못하다”며 자기를 그렇게 못 살게 군다고, 바람둥이 남편 땜에 속상해하는 덕근 아내를 긁고도, 남편 자랑을 멈출 줄 모름.

② 만수 어미 : 수득네처럼 돈을 잘 벌지도 못하고, 덕근네처럼 속 썩이는 일도 없는 무던한 남편을 둠. 하지만 옛날엔 사립학교 교원이었던 남편이 지금은 목수일을 하는 게 좋지는 않음. 벌이는 예전이 못했지만 그래도 “선생님” 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으며 학생 집에서 닭이며 달걀꾸러미를 가져오던 때가 그리움. 한편으로 아낙들이 이렇게 모여 남편 흉이든 자랑이든 늘어놓는 것이 사실은 “남편 욕심이 육실하게 많아서 아가리를 가만두고 배기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함.

③ 덕근 아내 : 여자 바람 잘 날 없는 남편 때문에 늘 속 끓이며 살고 있음. 원래 남편이 유복한 집안이라 청년들 호기 놀랍던 시절에 돈 드는 일은 남편 덕근의 몫이었음. 활동을 위한 돈뿐 아니라 친구들 술값도 어지간히 대주었지만 덕근 아내는 남몰래 나가는 오입 밑천이 그보다 훨씬 많았다고 생각함. 남편이 밖에서 늦게 들어오기만 하면 술냄새 계집냄새 맡아 보는 건 예사고, 특히 겨울철에는 갓 들어온 남편 발을 만져서 따뜻하면 “어느 년 궁둥이에 늘어졌다 왔느냐”고 달려들어, 부부간에 싸움이 그칠 날이 없음.


▶ 다무라  

민우 담당의 보호관찰소 직원. 민우의 동료였던 박의선도 좋은 취직자리를 알선해 준 인물. 민우를 위해서 창고회사를 알아보아, 거의 확정이 되었는데, 딸린 자식이 다섯이나 되는 민우 형편을 고려해서 조금이라도 더 월급을 받게 해주려고 교섭 중.


▶ 박의선  

민우의 친구로, 청년회 패 중에서 연설도 잘하고 제일 똑똑하다고 꼽히던 인물. 박의선이 먼저 감옥에 갔을 때 민우가 책이나 휴지 등을 차입해 주었고, 민우가 옥살이 할 때는 박의선이 책들을 넣어주곤 했던 사이. 출감 후 다무라의 알선으로 도청 사회과에 취직하여 꽤 많은 월급을 받고 있음. 우연히 보호관찰소에서 마주치게 된 민우와 의선 사이에는 어색함이 흐름. 겨우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돌아서 나오는 민우 눈에 얼핏 비친 박의선의 왼쪽 얼굴이 누군가를 연상시킴. 생각해 보니, 꼭 그(박의선)의 아버지 모습으로, 그렇게나 싸우던 자신의 아버지 모습으로 차차 변해 가고 있는 박군의 모습은 민우에게 사람의 일이란 정말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함. 들리는 소문에는 그렇게 물과 불처럼 서로 떨어져 일생을 마칠 것 같던 박의선과 그의 아버지가 요즘은 사남매 중 박군을 가장 좋아한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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