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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生동의보감] 풍병의 예방, 주리가 열리지 않게 하라

by 북드라망 2020. 11. 3.

풍병의 예방, 주리가 열리지 않게 하라



고을의 어떤 사람이 갑자기 명치 주위로 몹시 뜨거웠는데 풍을 치료하는 약을 먹고 나았다. 후에 이릉(夷陵)에 가서 한 태수(太守)를 보았는데 여름에 갑자기 열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으므로 땅 위에 물을 뿌린 다음 자리를 펴고 누워 사람을 시켜 부채질을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갑자기 중풍에 걸려 수일 만에 죽었다. 또 예양(澧陽)에 가서 한 늙은 부인을 보았는데, 여름에 열이 나서 밤에 대청 마루에 나가 누웠다가 다음날 중풍에 걸렸다. (「잡병편」 ‘風’, 1018쪽)


풍(風)은 한의학의 병명 중에서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명칭이다. 주위에 풍에 걸리는 사람이 꽤 있다 보니 증상도 익숙하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거나 몸 한 쪽을 못쓰거나 눈이나 입이 비뚤어지고 말이 어눌해지거나 못하고 목에 가래가 끓는 쇳소리를 하는 등으로. 온 몸이 쑤신다고 괴로워하는가 하면 통증은 없는데 움직이지는 못하는 경우도 있다. 『동의보감』에서도 ‘풍은 만병의 으뜸으로 몸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병을 일으킨다’고 한다.


풍은 병의 원인이기 이전에 구체적인 절기의 현상이다. 말 그대로 바람. 주로 봄과 겨울에 자주 불지만 어느 계절이나 우리 몸에 와 닿는 자연현상이다. 그러나 바람으로 인해 병이 생기면 이때 바람은 사기(邪氣) 혹은 사풍(邪風)으로 불린다. 적풍허사(賊風虛邪)라고도 한다. 몸의 기혈이 허한 틈을 타 들어와서 병의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병의 원인은 외부에 있다기 보다 내 몸, 내 삶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몸에 열이 많을 때다. 왜 열이 심할까? 섭생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몸의 기혈이 잘 순환되려면 심장의 불은 아래로 내려오고 신장의 물은 위로 올라가는 ‘수승화강’이 되야 하는데 칠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등 “섭생을 잘하지 못하여 심화(心火)가 갑자기 성해진 데다가 신수(腎水)마저 허약하여 심화를 억제하지 못하면 음이 허해지고 양이 실해지면서 열기가 몰린다.”(1018쪽)


열이 많을 때 우리 몸은 주리(피부 겉의 작은 결, 땀구멍)가 열리게 된다. 이 때 열린 주리로 들어온 바람은 사풍, 적풍이 되어 풍병을 일으킨다. 명치에 열이 나면서 아팠던 사람이 풍을 치료하는 약을 먹고 나은걸로 봐서 이 사람의 병은 풍이지만 그것은 ‘증상이고 원인은 열’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계절이 여름이면 증상은 더 심해진다. 이릉에 사는 태수나 예양에 사는 부인도 여름에 열이 나서 중풍에 걸렸다. 여름은 열이 나는 계절이니 주리가 열리기 쉽다. 이 때 몸의 정기(正氣)가 부족하여 허해지면 부채질 정도의 작은 바람이나 밤에 대청 마루에 불어온 서늘한 기운도 허사적풍이 되어 주리가 상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사는 이릉이나 예양이 중국의 남쪽 지방이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더운 지역이어서 열이 나고 주리가 열리기 쉬운 조건이다.


더구나 이들은 나이가 많다. 태수 정도의 직함을 가지려면 중년을 넘겼을 터이고 부인도 노년이니 기력이 쇠해질 나이다. 풍은 50세가 넘어 기운이 쇠약해질 즈음에 잘 걸린다.


사풍은 일단 적중되면 ‘비바람이 몰아치듯’ 빨리 체내 깊숙이 들어가기 때문에 무섭다. 이릉의 태수도 부채질한 다음 날 바로 아파 수일만에 죽어버리지 않았는가. 그래서 ‘명의는 병이 피모에 있을 때 치료하고 그 다음은 기부에 있을 때 치료하고 그 다음은 근맥에 있을 때 치료하고 그 다음은 육부에 있을 때 치료하고 그 다음은 오장에 있을 때 치료한다. 오장에 들어간 다음에 치료하는 경우는 반은 죽고 반은 산다.’


명의를 만나기는 어렵고 병은 매우 빠르게 파고드니 평소에 섭생을 잘하는게 최고의 예방책이다. 열이 몰리지 않도록 기혈 순환을 잘 시키는게 가장 중요하다. 음식을 많이 먹지 말며 땀을 내야 한다. 또한 그 해의 운기(運氣)를 알아 열이 많이 날 수 있는 해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여름이라고 해서 함부로 찬기운에 노출해서도 안된다. 특히 땀이 난 후에는 더 그렇다. 옛날 너무 더우면 마당의 평상에서 자곤 했다. 그래도 한밤중이 되면 아버지는 나를 깨워 집안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밤이슬을 맞으면 풍이 될 수 있다면서.


북쪽 지방이라고 해서 풍에 안 걸리는 건 아니다. 그러나 추울 때는 주리가 열리지 않으므로 사기가 들어온다해도 ‘천표(淺表)까지만 침입할 수 있고 발병도 비교적 완만하다.“(1020쪽) 깊이는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따스함과 추위가 적당하면 풍에 걸리지 않을까? 아니다. 그래도 걸릴 수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황제내경』을 인용하여 사람은 일월의 운행과 관계 있기 때문에 달이 차고 기울기에 따라 주리가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고 본다. ”달이 둥근 때는 해수(海水)가 서쪽에 차고 인체의 기혈(氣血)은 왕성하고 기육(肌肉)은 충실하며 피부는 치밀하고 모발은 질기며 주리는 닫혀있고 피지(皮脂)는 달라붙어 있습니다. 이 때는 비록 적풍(賊風)의 침해를 받는다 하여도 천표에 머물고 깊이 들어가지 못합니다.“(1020쪽) 달이 이지러지는 때는 그 반대. 고로 보름이 지나서부터는 주의해야 한다.




그러니 참 어렵다. 그 해의 운기도 점쳐야 하고 내가 사는 지역도 살펴야 하고 달의 기울기도 봐야하니…. 우주의 운행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사람이 우주와 얼마나 연동되어 있는가를 알려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병이 빠르니 동의보감은 구급책도 알려준다. 엄지로 인중부위를 문지르고 팔과 다리를 주물로 담기를 흩어지게 한다. 담연이 막히면 토하게 하고 열 손가락 손톱 밑에 있는 혈을 찔러 나쁜 피를 뺀 다음 양쪽 합곡혈과 인중혈에 침을 놓아 기를 돌게 한다.


대부분은 구급을 못한 채로 넘어가는데 그래도 방법은 있다. 최고의 방법은 걷기다. 필동 감이당 바로 아래 남산길목에는 80넘은 거구의 할아버지가 사시는데 중풍으로 한 발짝 떼어놓기도 힘들어 하셨다. 하지만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산을 오르내린다. 양쪽에 스틱을 의지하여 겨우 한 발짝 떼어놓는 어르신을 보노라면 과연 낳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곤했다. 벌써 육년 째이니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전과는 확연히 달라지셨다. 지금도 걷는 속도는 느리지만 확실히 전보다 걸음이 가벼워졌고 안면에 화색이 돈다. 몸은 병이 들기도 하지만 낫기도 한다. 몸은 변한다. 나도 덩달아 마음이 가벼워졌다.


글_박정복(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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