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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아기가왔다 1

딸의 감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_아빠

by 북드라망 2018. 5. 18.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고, 그 말은 곧, 끝은 다른 시작이라는 말과 같다. 지난 주 엄마편에서(바로가기) ‘끝이 있는 건 좋은 것’이라 했던가? 우리 딸의 돌발진이 그 말대로 끝났다. 그리고, 감기가 시작되었다. ㅠㅠ 우리 딸은 지금 생애 두번째 감기를 앓는 중이다. 우리 가족은 딸의 돌발진 열이 가라앉고 이틀 정도 즐겁게 지냈다. ‘열만 떨어져도 이렇게 좋네’ 하면서 말이다. 그랬는데... 혹시나 싶은 마음에 체크해본 딸의 체온이 37.5도, 곧 37.8도... 아빠는 그때 ‘어...어...’ 했더랬다. 




아기가 열이 나면 관련된 대응 매뉴얼을 모두 숙지하고 있어도 당황스럽다. 그게 별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그걸 알고 있다는 점을 되뇌어 보아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별 일 아님’이라는 판단을 구성하는 그 모든 구성요소를 고려하더라도 아기에게 열이 난다는 건 일단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여서 그런 것 같다. 이때 양육자에겐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뭘 잘못해서 애가 이렇게 된 건가?’ 당연하게도 대개는 그렇지 않다. 아기가 아픈 건 부모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막상 아픈 아기를 보고 있자면 자연히 그런 생각이 들고 괜히 미안해진다. 그리고 몇몇 장면들을 떠올린다. ‘그때 바람을 너무 정면에서 맞게 했나’, ‘물을 좀 따뜻하게 해서 줄 걸 그랬나’, ‘목에 스카프빕이라도 감아줄 걸 그랬나’ 등등 온갖 생각들이 나게 마련인데 이 모든 의문들이 정말이지 아무 의미가 없다. 외출을 하지 않고, 따뜻한 물을 먹이고, 목에 스카프를 감아주었더라면, 아마 그것들이 아닌 다른 이유들을 찾아내고 있었을 테니까. 


아빠는 아기가 다시 열이 오르고 콧물이 나고, 컹컹거리며 기침을 하는 동안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아프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면 좋았겠지만, 영영 아프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기왕지사 이렇게 병이 난 마당에 무려 ‘주양육자’인 아빠라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아기를 ‘안쓰러워하는’ 역할을 모두 엄마에게 떠넘기고 아빠는 내내 태연하게 아기가 먹을 약을 준비하곤 했다. 물론 마음이야 아빠도 초조하고, 안쓰럽고 그랬지만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빠가 ‘든든’한 느낌을 준다거나 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든든’까지는 아니고 그저 ‘덤덤’ 정도에서 만족하자.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나도 사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딸과 엄마 사이엔 아빠가 끼어들 수 없는 에너지의 띠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원래도 우리 딸은 자고 싶을 땐 엄마, 놀고 싶을 땐 아빠를 찾는 경향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컨디션이 나빠지자 내내 엄마에게만 매달려 있으려고 했다. 엄마의 멘탈과 체력이 탈탈 털려가는 중에 아빠가 나서서 안아주려고 하면 울고, 떼쓰고, 아빠를 밀치는 그 행패라니...쩝. 



다시 돌아와서, 아기가 아픈 건 부모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말하자면 피할 수 없는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 바에야 ‘내가 뭘 잘못했나’를 떠올려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아기의 병치레를 잘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편이 더 났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알고는 있어야 한다. 아기들이 주로 열이 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열이 나기 시작하면 어떤 패턴으로 더 오르거나 떨어지는지, 해열제를 먹여야 하는 시점은 언제고, 응급실엔 언제 달려가야 하는지 같은 정보들을 말이다. 조금 다른 말이지만 아빠는 사람이 겪는 일이라는 게 특별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가 비슷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말인즉 아기들 역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비슷비슷하게 아프고, 자라고 그런다. 따라서 지금 내 아이가 겪는 일을 무수히 많은 다른 아기들도 겪어왔고 또 겪는 중이다. 그러므로 예측도 할 수 있고, 그에 맞는 대응도 할 수 있다. ‘아기가 아픈 건 당연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마음을 다잡는 건 이런 것들을 숙지한 다음 문제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열은 돌발진 때처럼 고열로 치솟지는 않았다. 높아져 봐야 38도에서 약간 못 미친 정도까지였다. 다만, 콧물이...콧물이... 거의 하루 종일 줄줄 흐른다. 만성 비염 환자인 아빠는 사실 그 콧물이 참말로 안타까웠다. ‘저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서 연신 닦아주었다. 아마 큰 도움이 안 됐을 거다. 아빠도 어쩌다 콧물이 터지면 어떻게 해도 답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 안타까움과 짐짓 꾸며낸 덤덤함 속에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렇게 시간이 자꾸 흘러 딸의 감기도 슬슬 막바지에 온 듯하다. 감기가 뚝 떨어지고 나면 아빠도 엄마도 딸도 얼마나 후련할까! 그렇지만 그런 와중에 아빠는 또 생각한다. ‘아마 금방 또 걸리겠지’라고. 아마 딸의 생애 세번째 감기엔 이번보다 더 가뿐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빠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바닥에 떨어진, 딸의 콧물 묻은 과자부스러기를 먹으며 단련된다. 

_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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