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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머티즘2

[아파서 살았다 최종편] 오랜 고통과 불안을 '만나다, 철학하다' ‘경험’에서 ‘지성’으로 근대 이전, 학인들은 스승을 찾아 천하를 떠돌았다. 부처님을 따르던 무수한 제자들과 공자의 문도 3천 명을 위시하여, 주자의 강학원을 찾았던 2천 명의 학인들, 양명의 뜰에 모여든 개성 넘치는 문사들. 비단 이들 대가들만 그랬던 건 아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수많은 문사가 있었고, 그곳엔 가르침을 받기 위해 천 리를 마다않고 오는 학인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배움터란 기본적으로 ‘코뮌’이었다. 스승, 도반, 청정한 도량으로 이루어진 앎의 ‘코뮌’. 그럼 왜 그토록 스승을 찾아 헤매었던가? 그 ‘코뮌’에 접속해야만 지리멸렬했던 공부가 단번에 도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생역전’이 가능한 것이다. ─고미숙, 『나비와 전사』, 휴머니스트, 2006,.. 2013. 6. 14.
스물두 살, 내 삶을 바꾼 '아픔'을 만나다 금요일에 새로운 연재가 시작됩니다. 라는 코너입니다. '아팠기에' 살 수 있다는 말, 조금 이상하지요?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병'을 없애야 할 무엇으로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요?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에서 고미숙 선생님은 "산다는 것 자체가 아픔의 마디를 넘어가는 과정"으로 병을, 고통을 '앎의 의지'로 전환시키면 누구나 '자기 몸의 연구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똑같은 병도 없을지 모릅니다(물론 동일한 병명은 있습니다;;). 누구와 만나 어떤 화학작용을 하느냐에 따라 말이지요. 그래서 이 코너에서는 '자기 몸의 연구자'가 된 '아파서 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매주 금요일, 여러분의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2013.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