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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3

[약선생의 도서관] 원문에 갇힌 의미를 해방하는 번역 『번역하는 문장들』 번역, 타자가 들어오는 관문 조재룡의 『번역하는 문장들』 프랑스어에는 ‘에크리튀르’(écriture)라는 단어가 있다. 인터넷 포털 사전을 활용해 찾아보면 ‘문자, 글씨, 글쓰기, 문체, 화법이나 작곡법’ 등등으로 번역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로 문자와 관련된 의미들을 지칭한다. 물론 사전에 나와 있는 뜻으로만 보면 그리 어려운 단어가 아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현대철학에 와서 무척이나 문제적인 단어가 된다. 형이상학의 시대, 신의 시대에 ‘신의 음성’, ‘존재의 목소리’, ‘양심의 목소리’는 우리를 움직이는 강력한 배후였다. 우리가 바라보는 현상 이면에 실체적 진리가 존재하며, 세상은 언제나 그것으로부터 움직인다는 초월적 신념은 강고한 것이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했을 때 신은 바로 이런 .. 2016. 8. 9.
별일없이 산다, 쓴다 ― 이태준의 「장마」 한국근대소설, 등장인물소개로 맛보기 10 별일없이 산다, 쓴다 맛볼 소설 : 이태준, 「장마」, 『조광』, 1936년 10월 시놉시스 1930년대 성북동에 사는 주인공 나는 2주간 계속되는 장마에 집 안에만 있게 되자 아내와 말다툼이 잦아지고, 전날 싸움의 화가 풀리지 않은 듯한 아내의 모습에 오래간만에 외출 복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있는 곰보 남편과 곱추 아내의 가게에서 들려오는 싸움 소리에 자신이 아내를 소개받던 시절을 떠올리며 걷던 나의 코앞에서 한 번도 제때 타 본 적 없는 버스가 오늘도 꽁무니를 보이며 출발해 버린다. 딱히 갈 곳을 정하지 않았던 나는 방향과 상관없이 먼저 오는 버스에 몸을 싣고, 안국동에서 전차로 갈아탄 후 1년간 근무했던 조선중앙일보사에 들른다. 편집.. 2014. 10. 17.
가을남자들이여, 하늘을 그물질하라! 사냥꾼의 그물 혹은 하늘의 눈물 -상강의 대표별자리 필수 손영달(남산강학원 Q&?) 수렵의 추억 이슬 시리즈의 종결자 상강(霜降)이 지났다. 서리가 내리고 초목이 시드는 때, 단풍의 빛깔은 하루가 다르게 농익어가고, 가을 막바지의 따순 볕 속에 낙엽이 하나 둘 부서져 내린다. 이 시기를 형용하는 참으로 빤한 멘트가 있으니, 바로 ‘낭만’이다. 낙엽과 함께 찾아온 우수, 바바리 끌고 다니는 남자의 계절…… 여기 동의하시는 분들이 혹 계실라나 모르겠다. 대체 이 계절의 어디에서 낭만이란 두 글자를 읽어낸 것인지, 나로선 당최 납득이 안 되는 이야기다. 이곳 필동 골짜기는 벌써부터 뼛속시린 한기가 가득하다. 그 옛날 필동에 살았다는 간서치(看書痴) 이덕무가 아침에는 동쪽 창가에 책상을 놓고, 점심때는 남쪽, .. 2012.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