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낭송 아함경』 씨앗문장 - '생겨나면 죽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괜찮아요!


『낭송 아함경』 읽기

- 모든 것엔 '다함'이 있다


대왕이여 그렇습니다. 모든 중생, 모든 벌레, 모든 신들에 이르기까지 일단 생겨난 것은 다 속절없이 죽게 마련이어서 마침내 다함으로 돌아갑니다. 생겨나면 죽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바라문이나 찰리(크샤트리아), 장자와 같은 훌륭한 가문이라 하더라도 일단 태어나면 다 죽게 마련이니 죽지 않는 이는 없습니다. 설령 찰리 가문의 대왕이 정수리에 물을 붓는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올라 천하의 왕이 되어, 자재한 힘으로 모든 적국을 물리쳤다 하더라도, 마침내 다함으로 돌아갑니다. 또 장수천長壽天에서 태어나 하늘 궁전의 왕이 되어 마음껏 쾌락을 누린다 하더라도, 그 또한 다함으로 돌아갑니다.

― 최태람 풀어읽음, 『낭송 아함경』, 86쪽


희망이 샘솟는 문장입니다. 세상 모든 것에 다함이 있다니, 살아갈 힘이 나지 않습니까? 조금 이상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끝이 있어야 희망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끝나지 않고 영영 계속된다면 괴로운 것은 영영 괴로울 것이고, 즐거운 것은 권태로워질 것입니다. ‘다함’이야 말로 ‘활기’를 만드는 베터리 같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반대로 허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끝나지 않고 계속 된다는 게 더 허무하지 않은가요? 





‘다함’이라는 말도 참 좋습니다. 어감상 ‘끝’보다 ‘다하였다’가 훨씬 부드럽고 어떤 ‘완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니까요. 더 가슴을 찡하게 하는 것은 ‘다함’으로 끝이 아니라, ‘다함’으로 돌아간다는 표현입니다. 그 말은 또 다시 ‘시작’한다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다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 셈이죠.


그러나 문제는 ‘희망’이 사실은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희망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여도 그것이 또 다할 것이니까요. 그런데 ‘희망’을 절망으로 바꾸어 보면 어떻습니까? 너무 괴로워서 ‘다함’만 바라보고 살다가 결국 다하였는데, 다시 시작해서 다시 괴로워지니 절망적일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절망’도 결국 다시 ‘다함’으로 돌아가겠죠. 그렇게 ‘절망’도 ‘희망’처럼 허망합니다. 인생사가 돌고 돈다, 업을 지으면 결국 그것을 다시 받게 된다, 다음 생에 무엇으로 태어나려고 그러느냐 등등, 모든 말들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결국 세상사가 허망함을 깨달으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거기서 끝이라면 ‘에이 허무하다’하고 금세 돌아설 수 있겠지만, 그게 끝이 아니기 때문에 이 결론을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인생사가 다 허망하다’라는 말이 사실은 자기구원의 큰 의미를 품고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저 말은 인생사가 다 허망하니 괴로운 일을 당해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기쁜 일을 맞이해도 지나치게 기뻐하여 오만해지지 말라는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진짜로 ‘허무’에 빠지면 즐겁고 기쁜 것도 없고, 내내 괴롭기만 하지 않던가요? 즐거운 것을 보아도 ‘허무해’,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허무해’, 애써야 할 때도 ‘허무해’하며 그냥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사가 사실은 다 허망한 것이다’라는 말을 품고 살면서도 즐겁고 기쁜 일을 맞을 때는 즐겁고 기쁜 가운데에서도 ‘사실은 다 허망한 것이니 오만해지지 말자’라고 다짐할 수 있고, 괴롭고 억울한 일을 당해서도 ‘사실은 다 허망한 것이니 잘 참고 다음을 생각하자’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즐겁고 괴로운 것은 가르침과는 상관없이 일단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고, 가르침은 그 마음을 다잡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 장의 마지막 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파사닉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 같은책, 88쪽


파사닉 왕이 ‘모든 것은 죽는다’는 말씀에 기뻐한 이유를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었네요. 여러분들이 그저 오늘 괴롭고 힘든 일을 겪으시더라도 오늘도, 오늘 겪은 마음의 나쁜 일도 결국 ‘다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내일을 또 다시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중생(衆生)끼리니까 서로 이렇게 위로하고 격려하고 그러는 것 아니겠어요? ^^ 


낭송 아함경 - 10점
최태람 풀어 읽음, 고미숙 기획/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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