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존 스튜어트 밀, 귀를 열어야 진리가 된다

#기안문서-존 스튜어트 밀-귀(耳)

관료제에 싹튼 새로운 신체



정기 감사 때가 되면 매번 옛 기안문서들을 보게 된다. 보는 문서마다 당시 실무자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잘못 처리했다가는 모가지 댕강 날릴지 모를 문서에 사람들의 마음이 출렁거린다. 단어 쓰임새, 짧은 지시 단문들, 심지어 구두점까지 권리와 책임을 둘러싼 내밀한 다툼으로 웅성거린다. 회사의 의사결정구조는 복잡하다. 기안 하나가 시행되려면 전결권자들이 칸칸이 사인해야 한다. 좀 큰 주제라면 수직적인 결정뿐 아니라 합의 같이 수평적인 결정도 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안들이 거절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슈가 되어 낭패를 보는 때도 생긴다. 그래서 실무자들은 가능하면 간단한 경로를 찾아 해결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문서에 얹힌 사인의 무게가 가벼워야 처리가 빠르고 고단함이 덜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빠른 의사결정만큼이나 오류는 많아진다. 특히 전문가가 많은 조직일수록 토론 없이 일이 처리되어 오류의 크기는 더 커진다. 전문가일수록 자신의 일에 대해 무류성(無謬性:오류가 없다)을 잠재적으로 전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윗사람의 지시조차 귀담아 듣지 않으려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비전문가의 조언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자꾸 이야기하면 자신을 무시하는 줄 알고 더 발끈한다.


영국의 진보적 자유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그의 주저 『자유론』 중 가장 백미인 「2장 사상과 토론의 자유에 관하여」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밀은 먼저 사람들이 흔히 갖게 되는 ‘무류성의 가정(자신의 의견에 오류가 없다는 가정)’을 비판한다. 그것은 ‘타인들로 하여금 반대편의 말을 들어볼 수 있게 하지 않고 타인들 대신에 그 문제를 결정하려는 시도’(『자유론』, 펭귄클래식, 102쪽)이다. 즉, 상대에게 자기편의 이야기만 듣게 하여 독단으로 일을 결정하려는 것이다. 역사에는 이런 식으로 억눌린 진리의 예로 가득하다. 소크라테스의 독배, 종교 개혁에 대한 탄압 같은 것이 그렇다. 그래서 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공할 만한 해악은 진리의 여러 부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갈등이 아니라 진리의 절반에 대한 조용한 탄압이다. 사람들이 양편에 다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때에는 항상 희망이 있다. [그러나-인용자] 사람들이 오직 한편에만 유의할 때, 오류는 편견으로 굳어지며, 진리 자체는 허위화됨으로써 더 이상 진리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

『자유론』, 펭귄클래식, 144쪽


자기 의견이 아무리 참이라고 해도 토론이 없다면 살아 있는 진리가 아니라 죽은 교조가 된다는 뜻이다. 어쩌면 진리는 토론에 의해서 진짜 진리가 된다. 진리는 진리로서 효과를 내야만 진리인 것이다. 그러나 토론이 없다면 진리는 오만방자해지면서 스스로 무너진다. 그래서 밀은 ‘반대자들의 주장을 가장 일리 있고 가장 설득력 있는 형태로 알아야 한다’(『자유론』, 펭귄클래식, 121쪽)고 말한다. 그래야 자기 의견의 문제점을 분명히 깨닫게 되고, 오류를 고칠 기회를 획득한다. 그래서 이를 위해 우리는 ‘온갖 종류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그 주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오류를 고치는 기계는 ‘귀’다.



한의학적으로 귀는 신(腎)이 주관한다. 신(腎)은 물(水)이다. 따라서 신수(腎水)가 부족하면 귀에 이상이 생긴다. 이렇게 귀가 안 들리는 것을 이롱(耳聾)이라고 한다. 이롱은 대개 화(火)에 의한 열증에 속한다. 신수가 부족해 각 경맥에 화(火)가 성해서 생긴다. 그런데 귀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폐금(肺金)이 신수를 생해주기 때문이다. 폐는 기를 주관하는데 몸의 기들은 귀를 관통하므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이클은 이렇다. 기가 부족하므로 신장의 물이 부족해진다. 그런데 간혹 담이나 간이 일으키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화(火)가 치솟는다. 결국 속에서 불통이 악순환을 만든 것이다. 신수가 부족한데다, 화가 치성하니까 귀가 안 들릴 수밖에. 동의보감은 이를 “신정이 부족하여 음이 허해지고 화가 동했기 때문”(『동의보감』 외형편 권이 655쪽, 법인문화사)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족소양담경(足少陽膽經)과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의 화가 치솟으며 생긴 경우다. 신체의 불통이 공동체의 불통을 만들었다.





진리는 귀를 열어야 진리가 된다. 귀를 열지 않으면 아직 진리가 아니다. 그러나 화(火)가 거침없이 치솟아 자기 자신이 불통이 되어버리면 자신에게 오류가 없다고 맹신하게 된다. 어쩌면 그 오류를 공동체의 친구들과 나누지 않아서 더욱 그 오류로부터 움츠러들어서 생긴 문제일지 모른다. 들뢰즈의 카프카는 말한다. 관료제, 회계에서도 리좀이 싹튼다고. 관료제를 자기 자신을 위해 이용하기 시작할 때 그리된다. 귀를 열어 친구의 소리를 듣고, 진정으로 토론할 때 관료제 안에서도 우리가 리좀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관료제에서 싹튼 새로운 신체다. 그때서야 비로소 밀의 말대로 우리는 자신에 대해 주권자가 될 수 있다(『자유론』, 펭귄클래식, 82쪽). 그래서 관료제의 닫힌 방에서도 중요한 것은 귀다. 



글_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자유론 - 10점
존 스튜어트 밀 지음, 권기돈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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