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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편집자 k의 드라마 극장

[편집자 k의 드라마극장]『대학연의』를 아시나요?

by 북드라망 2014. 7. 16.


조선을 탄생시킨 it book!

대하드라마 <정도전>의 『대학연의』



요즘 종영된 드라마 <정도전>을 보고 있습니다(네, 늘 그렇듯 뒷북입니다^^;). 보기 시작한 지, 만 일주일인데 그래도 절반을 끊었습니다. 볼 때마다 빨리 보고 싶은 마음 반, 아껴서 보고 싶은 마음이 또 반인데요. 이렇게 열심히 본 대하드라마는 <토지>(sbs에서 했던 거 말고 kbs에서 했던 것입니다. 방영 당시는 ‘초1’을 전후한 나이라 열심히 봤다고 할 수 없고, 98년도인가 99년도에 kbs 위성방송에서 다시 틀어준 걸 열심히 봤습죠;;) 이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 정통사극은 재미도 없는데 왜 하는 걸까?(아흑, 관계자분들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도전>을 보면서 싹 고쳤습니다. 정통사극은 현대극에서는 대개 조연으로 정형화된 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 중년 연기자들이 자신들의 연기력을 펼칠 수 있는 진검승부의 장이었습니다. 박영규, 서인석, 유동근, 조재현(가나다순입니다;;) 아저씨들 같은 분들은 물론이고 이지란 역할을 맡았던 선동혁 아저씨(이분 제가 좋아했던 드라마 <왕룽일가>에도 나오셨었는데!!), 정도전의 가노 역을 맡으셨던 이춘식 아저씨(이분 어느 드라마에선진 모르겠는데 유행어가 있었어요;; “콱 쎄려버리!” 이...이런 느낌이었는데;;;), 염흥방 역을 맡으셨던 김민상 아저씨(염흥방 역을 너무 짜증나게;; 잘하셔서 찾아볼 수밖에 없었어요!+.+) 등등 도무지 딴 짓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배우분들의 촘촘한 연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아직 다 보진 못했지만 매회가 감동입니다(ㅠ.ㅠ)!!




<정도전>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오늘은 스테디셀러 『맹자』를 제치고, 극중에서 주연급(?)으로 등장한 『대학연의』(大學衍義)라는 책으로 <정도전>을 조금만 살펴보려 합니다. 극 초반 정도전이 한시도 손에서 떨어뜨리지 않았던 『맹자』(정도전의 절친 그러나 후일 갈라서게 되는 포은 정몽주가 유배를 가는 정도전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며 건네준 책이었지요. 극 중반부터 이 둘의 입장이 달라지는 것이 서서히 표면화되는데요. 둘을 보고 있노라면 정치적 이념이라는 것도 결국은 시절인연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디다요;;)가 정도전의 ‘대업’ 프로젝트의 교과서였다면, 『대학연의』는 이성계의 대업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극중에서 이성계는 『대학연의』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이인임 일파에게 역적으로 몰리게 됩니다(참, 여러 가지 사건들이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지요? 대사와 상황뿐 아니라 소품―공민왕이 피살당하고 혼란한 가운데 전국에 붙어 있던 방에 ‘계엄’이라는 글자가 따~앟―에서까지 한국 현대사의 사건들을 상기시키려는 작가의 의도에 장년층의 시청자들이 TV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까 봐 심히 걱정되었사옵니다;;).


 『대학연의』는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진덕수(眞德秀)가 저술한 책으로 사서 중 하나인 『대학』의 주석서입니다. 제왕위학차서(帝王爲學次序) · 제왕위학본(帝王爲學本) · 격물치지지요(格物致知之要) · 성의정심지요(誠意正心之要) · 수신지요(修身之要) · 제가지요(齊家之要)의 여섯 가지 주제로 『대학』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책인데요, 첫 번째 주제에 잘 드러나 있듯, ‘제왕위학’ 즉 제왕을 위한 학문으로 임금 자신에게 있어서는 ‘임금’이 되기 위한 기본 자질과 소양을 키우기 위해, 신하들에게 있어서는 그런 임금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였지요. 그러니 지붕 위에 올라가 기왓장이나 날리고, 아버지의 계비였던 그러니까 자신에게는 어머니뻘 되는 정비에게 치근덕대기까지 하는 망나니(로 그려지고 있는) <정도전>의 우왕이라고 할지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극중에서 이인임은 수염까지 달린 왕의 보령(寶齡, 임금의 나이를 높여 부르는 말)이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대학연의』를 읽을 수 없게 합니다. 우왕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 하는 일 없이 계속 자신의 꼭두각시로 남아주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지요. 


『大學衍義』 (甲), ‘『대학연의』가 갑이다’란 뜻은 물론 아닙니다만 <정도전>에선 충분히 갑이었습니다. 흠흠



그런데 왕에게도 읽히지 못하게 한 이 책을, 점점 이인임 자신을 대적하는 세력으로 우뚝 서려고 하는 이성계가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성계가 뽑은 『대학연의』의 씨앗문장은 “군이지인위명”(君以知人爲明, 임금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을 밝음으로 삼는다)! 그야말로 ‘딱’ 걸렸습니다. 없는 역모죄도 뒤집어 쓸 판에 비록 북방이긴 하지만 독자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구 격퇴 등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이성계가 이 문장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 도당에 전해지자 천하의 최영 장군도 더는 이성계를 감싸주지 못합니다. 이성계는 이제 왕의 처분(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이인임의 결정)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성계가 이 위기에서 탈출하는 것은 <정도전> 극 초반의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니 꼭 드라마로 확인하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럼 자신을 생사의 기로에 서게 했던 『대학연의』를 이 사건 이후 이성계는 멀리하였을까요? 그랬을 리가 없지요.^^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대학연의’로 검색을 하면 가장 먼저 뜨는 기사의 제목은 “태조가 무인이면서도 문인과 경사를 토론하고 『대학연의』를 즐겨 보다”입니다. 내용을 살피면 『대학연의』 보는 것을 좋아하여 밤중에 이르도록 자지 않았으며, “개연(慨然)히 세상의 도의(道義)를 만회(挽回)할 뜻을 가졌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개국 후에도 자신을 ‘임금’으로 만들어 준 이 책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는지, 앞의 기사 이후로는 강연에서 『대학연의』를 강론케 했다는 기사가 줄줄이 이어집니다. 


의외로, 왕자의 난으로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 역시 『대학연의』를 사랑했습니다. 궁전 벽에까지 『대학연의』의 문장을 써 붙여 신하들이 볼 수 있도록 했으니까요. 드라마와 관련하여 눈에 띄는 기사는 태종 1년(1401년) 11월의 것입니다. 태종은 가까운 신하들과 『대학연의』 세미나를 마친 후 주과(酒果)를 나누며 무인년의 사건에 대해 “안으로는 부왕의 책망을 받고, 밖으로는 군의(群議)가 흉흉하니,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착잡하다는 심사를 털어놓습니다. 무인년의 사건은 일명 1차 왕자의 난을 지칭하는 것인데요, 이때 정도전이 방원에 의해 살해됩니다. 아직 다 보진 못했으나 <정도전>에서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처단된 뒤 시신도 어딘가에 버려지고 마는 것이 마지막회에서 그려지지요. 그런 최후를 맞은 둘이었지만, 한때는 (극 중에서) 둘이 짠 것도 아닌데, 이방원과 정도전이 각각 이성계에게 제왕의 운명을 받아들이라며 『대학연의』를 내놓았었지요. 이럴 때 보면 책이란 것이 참으로 ‘요물’이지요? 같은 책이지만 책을 읽은 각자에게 다른 운명을 선사하니 말입니다.  





정도전이 역성혁명의 힌트를 얻었던 『맹자』도 <정도전> 초초반 정도전이 유배를 갔던 부곡의 업둥이 처녀 ‘양지’(良知,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착한 심성이라는 뜻으로 정도전이 『맹자』에서 그 뜻을 빌려와 양지의 이름으로 붙여줍니다)와의 우정의 매개물로 여러 역할을 합니다만 『대학연의』만큼의 임팩트는 없었지요. 또 『맹자』보다 『대학연의』가 드라마의 굵직한 에피소드를 주도하는 소재로 쓰였다는 것은, 타이틀이 ‘정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이성계, 이인임, 최영, 정몽주가 주인공보다 더 돋보였던 극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인공임에도 방송 40회(총 50부작이었지요;;)까지 자신이 잘 나오지 않아 속병 아닌 화병이 나서 작가에게 “이성계는 인간적으로 잘 그렸다. 정몽주는 재탄생, 이인임은 새로 만들었다. 최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입체적으로 그렸다. 정도전은?”이라는 문자를 보냈다는 조재현 아저씨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괜/찮/다! 괜/찮/다!) 맹자님도 살아계셨으면 “『맹자』는?”이라고 문자를 보내셨을까요?ㅋㅋ 마지막으로, <정도전>이 드라마에서 『대학연의』를 소개한 첫 사례가 아닐까 했는데, 아니었네요. 2008년에 방영되었던 <대왕세종>이란 드라마에서도 몇 차례나 나왔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종의 애독서가 바로 『대학연의』였거든요. 왜 그랬을지는 짐작이 가시지요? 


  ‘트랜스포머’ 같은 영화에서도 긴장감이고 박진감이고 뭐고를 잘 느끼지 못하는 저란 여자, 요즘은 <정도전> 덕분에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날의 연속입니다. 저 같은 자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본방사수를 하셨던 분들의 열정이 2014년 상반기 출판계에는 정도전 열풍이 불었었지요. 부디 이 흐름이 열풍은 아니더라도 훈풍으로나마 계속 지속되길, 고전 분야로까지 솔솔 불어오길, 그래서 조선 전기의 정도전을 찍고(?), 후기로 넘어와선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 이옥 등등을 영접하게 되는 독자들이 많아지기를 두 손 모아 비옵네다(응?). 



글_편집자 k



그리고… <정도전> 최대의 반전;;; 후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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