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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편집자 k의 드라마 극장

[편집자 k의 드라마극장] "그런데 말입니다." 김상중과 <거짓말>

by 북드라망 2014. 6. 18.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거짓말>이란 드라마에도 출연했습니다



지난 두 달여간 참으로 많은 사람이 울었습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하나 이상할 일도 아니었는데 유난히 ‘눈물’ 때문에 (네… ‘눈물’만입니다. ‘즙’은 아닙니다) 화제가 된 사람들도 있지요. 그중 한 명이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김상중 아저씨(라고 하고 싶네요. 오늘은 왠지;;)입니다. 일명 '여대생청부살인사건'의 전모를 밝힌 '사모님의 수상한 외출' 편과, 영훈중학교 입학 비리 사건을 다룬 '수상한 배려 귀족학교 반칙스캔들' 편과 같은 상류층의 '수상한' 작태를 고발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그것이 알고 싶다>의 사회자인 그는 정의롭지만 한편 너무도 '냉철한' 사람이었기에 그 눈물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하여 요즘 상중이 아저씨는 연기로든 인간성으로든 '신뢰의 상징'으로 재차 급부상하고 계신 상황인데요. 이렇게 전성기 아닌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지금,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요즘 드라마 <개과천선>이나 <닥터 이방인>이 아닌 방영된 지 20년 조금 안 된 드라마에 나왔던 그를 추억하는 저란 여자…… 좀 별로인 듯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에서 너무너무 멋지게(♥.♥) 나왔기 때문에 꼭 소개해 드리고 싶네요. 하지만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런 드라마가 있었나?' 하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흑.





노희경 작가의 '불운의 명작' 드라마 <거짓말>. 1998년에 방영됐던 드라마니까 몇 년만 더 있으면 방영 20주년을 맞게 됩니다. <별은 내 가슴에>로 정점을 찍은 트렌디 드라마가 드라마계를 장악하고 있던 그 무렵, 30대 중반(요즘엔 한창 나이지만 당시만 해도 노땅;;;)의 사랑을 그렸던 (아, 60대의 사랑도 있었어요. 당시에도 전 이 커플을 제일 좋아했다는^^;;) 이 드라마는 참으로 시대에 뒤떨어지고, 시청률은 더 떨어질 데가 없었던 그런 드라마였습지요. 그래도 <거짓말>이란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사상 최초로 드라마 동호회가 만들어졌던 '매니아 드라마'의 원조였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김상중 아저씨가 맡았던 역할은 신문기자 이동진.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알콩달콩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이 남자는 군대에서의 사고로 남성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맙니다. 그렇게 해서 첫사랑을 떠나보냈지요(뭐 이런 이유가 아니라도 대개 첫사랑은 떠나지만요;;). 그후 자신이 '남자'가 아니란 생각에 모든 여자들도 그저 '여자사람'으로만 보이던 그 어느 날, 소매치기도 됐다가 돈 5만 원에 남자들의 술상대가 되기도 하는 부랑아 세미가 눈에 들어옵니다(세미역은 추상미 씨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캐스팅 대박이었던 드라마였습니다. 시청률이 쪽박이었던 건, 흠흠). 안쓰러운 마음에 밥도 사주고, 용돈도 주다가도 한 번씩 안타까운 마음에 그리 살지 말라고 벌컥 화를 내기도 하지만 마음이 점점 기웁니다. 



드라마 「거짓말」중 한장면 내가 이렇게 살지 말랬지!



하지만 여러 장벽이 있습니다. 우선, 아무리 사내구실을 할 수 없다고는 하나 자신은 신문기자라는 인텔리, 상대는 구걸과 절도를 오가는 노숙인입니다. 게다가 당장은 세미에게 그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가와 세미가 자신을 받아줄 것인가도 문제입니다. 세미 역시 자신의 처지 때문에 쉽사리 동진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갈등하다 결국 동진에게서 사라지고 맙니다.


동진 : 세미가 없어졌어.

은수 : 없어져?

동진 : 아니. 도망갔어. 그래. 도망갔어.

은수 : 니가 도망가게 한 건 아니구?

동진 : 난 아무래도 속물인가 봐. 차라리 잘됐다 싶어.

은수 : 우리 언니, 프랑스에서 현지인하고 사는 거 알지? 언닌 강의 나가고 형부는 중장비 트럭 운전해. 

   그 사람들한텐 학벌이나 가진 게 문제가 되지 않아. 그 사람들한테 문제가 되는 건 사랑 뿐이야.

동진 : 외국 얘기야. 그리고 걜... 사랑하지 않아.

은수 : 너하고 준희는 도대체가 정말... 어느 정도가 사랑이니?


하지만 결국 동진은 '여자'(는 세미의 본명이기도 합니다. 세미는 엄마가 수세미 공장에 다녀서 별명이고 낳아봤더니 여자라서 '여자'가 됐다는…;;)가 있어야만 자신이 '남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제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은 돈 많고 배운 게 많은 여자랑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란 걸 깨닫고 세미와 외국으로 떠납니다. '결혼해서 갈 거니까 결혼한다고 불러달라고 하는 일도, 아이는 안 낳을 거니까, 애 때문에 들어오겠다고 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며 모두들 꺼리는 해외지사 발령을 신청할 때의 이동진은 20화 중의 가장 멋집니다. 드라마 내내 보이지 않았던 자신감이 대폭발하는 순간이기 때문이지요. 못난 자신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로 '훌륭하게' 확 바뀌고 마는 것, 요게 에로스의 묘미 아닙니까요. 잠시 옆길로 새자면 <거짓말>로부터 예닐곱 해 뒤에 김상중 아저씨가 연기하게 되는 인물은 <내 남자의 여자>의 홍준표였습니다. 지금은 김상중 아저씨의 멋있는 면만 부각되고 있기 때문에 잊혀졌지만 이때 '찌질이' 연기가 아주 대박이었습죠. 이때 대표 대사는 "화영이, 감자 좀 쪄줘"였죠. 자기를 못나게 만드는 것, 그건 절대 사랑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통감하게 됩니다(이 역할 이후 어쩐지 좀 노숙해 보이시게 된 듯한 건 제 기…기분 탓이겠지요;;;).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중 김상중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ㅠㅠ




  다시 <거짓말>로 돌아오겠습니다. 동진과 세미의 사랑은 좀 빙빙 돌기는 했지만 <노처녀가>의 멜로 버전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연애의 시대』에 나오는 "일신이 갖은 병신"인 노처녀, 아시지요? 그녀는 곰보에 한쪽 눈이 멀고, 귀가 멀었을 뿐 아니라, 왼손과 왼쪽 다리도 쓰지 못합니다. 이에 비하면 <거짓말>의 동진은 정말 양반인데도 그에게는 '나는 남자가 아니야'라는 자의식이 들러붙어 있는 반면, 이 처녀는 무한 긍정의 아이콘이지요. "내 얼굴 얽다 마소 얽은 궁게 슬기 들고 / 내 얼굴 검다 마소 분칠하면 아니 흴까 / 한편 눈이 멀었으나 한편 눈은 밝아 있네 /……/ 왼편 다리 병신이나 뒷간 출입 능히 하고" 그런데도 시집을 못 가니 화증이 납니다. 급기야 자기가 신랑감을 찾아나서는데, 지성이면 감천인지 정말 자기가 원하던 김도령과의 혼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몸이 불편한 마흔 노처녀가 시집을 가게 되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요것은 약괍니다. 소원을 성취하자 "먹은 귀 밝아지고 병신 팔을 능히 쓰게" 됐지 뭡니까. 끝이 아닙니다. 노산에 초산임에도 불구, 쌍둥이 옥동자까지 낳았다는 사실! 그런데 이게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노처녀의 불편했던 몸이 치유되는 건 결코 우연이나 기적이 아니다. 그녀가 겪은 온갖 장애가 욕망의 억압을 표현한 것이라면, 욕망이 해소되는 순간, 그 신체적 장애들이 한꺼번에 치유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장애를 겪을 때도 그녀는 그것을 결핍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소망이 성취되었을 때, 그녀에겐 더 이상의 결핍이 있을 수 없다.

 - 고미숙, 『연애의 시대』


<거짓말>의 동진과 세미는 멜로드라마의 연인이니만큼 <노처녀가>의 처녀처럼 유쾌하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도 긍정하지도 못했지만, 돌고 돌아 저만큼이라도 한 건 장하다고 봅니다. 이제는 자신들에게도 "자기의 존재를 온전히 긍정하고, 욕망에 충실하며, 관습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랑. 관습이고 통념이고 다 무시하고 ‘행복하게 살아라!’라는 존재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사랑"(고미숙,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 덕에 드라마 <거짓말>에서 가장 심한 다크 포스를 풍기다가 결국에는 가장 많은 깨를 방출하게 되셨지요들.



'남자' 동진과 여자



  드라마 <거짓말>은 김상중 아저씨의 풋풋했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명대사들이 폭발한 드라마였는데도 (그리고 앞서 말씀 드렸듯 호화 캐스팅!) 많은 분들이 보지 못하셨단 사실이 지금도 참 아쉽기가 그지없습니다. iptv로도 서비스 되고 있으니, 기회가 되시면 꼭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그런데 말입니다" 다음으로 많이 하는 대사라네요^^) 상중이 아저씨는 지금 30대 분들은 모두 기억하실 청소년드라마의 명작 <사춘기>에서 체육선생님 역할로도 나왔었다는 사실! '육체미 소동'이라는 회차(는 7차 교육과정의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시나리오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검색해 보시면 나옵니다)에서 동민(정준)이의 '브라자'를 발견한 공(?)을 세운 역할이셨다네요. 또 초기 출연작 중에 재밌는 것은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에 모두 출연했었는데 <제3공화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형이었던 박상희의 역을, <제4공화국>에서는 육영수 여사를 저격했던 문세광의 역을 맡았답니다. 참, 묘하게 다른 역할을 연기했겠네요(못 봐서요;;;). 이제 마지막, 후배 배우인 김수로 씨의 본명이 '김상중'이라고 합니다. 본관까지도 같은 광산 김씨라고 하네요. ㅎㅎ


  "그런데 말입니다." 필모그래피를 주욱 훑어보니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으신 1991년부터 지금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오셨네요. 그 꾸준함이 바로 오늘의 김상중 아저씨를 '신뢰의 상징'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잘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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