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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

“선생님, 메마른 나무에 불을 지르지 마세요”

by 북드라망 2014. 5. 19.

『연애의 시대』와 함께 읽어요
“메마른 나무에 불을 지르지 마세요”
― 20세기판 ‘열녀함양박씨전’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아저씨, 계란 좋아하우?”라는 명대사를 탄생시킨 1961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저는 참 좋아합니다. 가끔 명절에 특선 한국영화로 방영되거나 EBS ‘고전영화극장’ 등을 통해 한 서너 번은 족히 본 것도 같은데 일단 한번 보기 시작하면 채널을 돌리기가 어려운, 참 이상하게 사람을 끄는 영화입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옥희 역의 아역을 떠올리지만 저에게는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희대의 헤로인 최은희(존칭은 모두 생략하겠습니다)나 지금 봐도 헉 소리가 절로 날 만큼 잘 생긴 김진규보다, 계란장수 역의 김희갑입니다. 영화의 원작 단편소설에서 계란장수는 사랑방 손님에 대한 어머니의 연정을 간접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장치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영화에서는 원작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옥희네 식모와 화끈한 로맨스를 펼치면서 그렇게 할 수 없는 옥희 엄마와 사랑방 손님의 관계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큰 임무를 맡은 조연입니다. 특히 점심을 먹다 체해서 켁켁거리는 식모 아줌마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아주 스무스하게 가슴까지 주무르는 장면은 참말로 (저에게는;;) 명장면입니다(놓치지 마셔요^^).

사랑과 연애의 달인, 계란장수와 식모아줌마 성환댁!



원작 소설은 1935년에 발표,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1961년. 거의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과부의 재가는 쉽지 않습니다. 제1회 대종상영화제 감독상과 각본상을 수상할 만큼 이 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은 원작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이 당시에도 유효했기 때문이겠지요. 더구나 여섯 살 아이의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통해 옥희 엄마나 사랑방 손님의 심리가 간접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소설에 비해, 옥희의 나래이션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감독이 보여 주고 싶은, 스물여덟 과부의 욕망과 좌절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영화를 보면 우리는 자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어찌 과부라고 정욕이 없겠느냐?”(박지원, 「열녀함양박씨전」)라고요.  


옥희가 (거짓말로) 사랑 아저씨가 엄마를 주라고 했다며 건네준 꽃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옥희 엄마의 행동 외에도 영화에는 사랑방 손님에 대한 엄마의 연정이 아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단연코 압권은 사랑방 손님이 나간 사이 그 방에서 손님의 옷에 묻은 체취를 흠뻑 느끼고 있는 식모 아줌마를 쫓아내곤 사랑방 아저씨의 중절모를 쓰고는 거울을 보며 이런 저런 표정과 포즈를 취하는 모습인데요. 그때만큼은 쪽진 머리에 단아한 한복을 입은 수절 과부 옥희 엄마는 싹 사라지고, 수절녀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아찔한 요부가 등장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옥희 엄마…, 이럴 줄은!



이렇듯, 정욕이 펄펄 끓는데도 왜 옥희 엄마의 사랑은 1935년에 이어 1961년에도 이루어지지 못한 것일까요? 일단 소설의 명장면부터 보시죠.


옥희가 이제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세상이 욕을 한단다. 옥희는 아직 철이 없어서 모르지만 세상이 욕을 한단다. 사람들이 욕을 해. 옥희 어머니는 화냥년이다, 이러구 세상이 욕을 해. 옥희 아버지는 죽었는데, 옥희는 아버지가 또 하나 생겼대. 참 망측두 하지, 이러구 세상이 욕을 한단다. 그리 되문 옥희는 언제나 손가락질 받구, 옥희는 커두 시집두 훌륭한 데 못 가구. 옥희가 공부를 해서 훌륭하게 돼두, 화냥년의 딸, 이러구 남들이 욕을 한단다.”


그리고 영화에서 옥희 엄마는 사랑방 손님의 편지에 이런 답장을 보냅니다.


선생님 메마른 나무에 불을 지르지 마세요. 걷잡을 수 없이 타는 날에는 어떻게 되겠어요.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제겐 다만 옥희가 있을 뿐이에요.”


만화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 중



화냥년이라는 손가락질, 걷잡을 수 없이 타 버릴까 두려운 것, “그래서 심하면 죄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 몸을 망치는 짓”이자 “모두가 원하지만, 원하지 않는다고 내숭을 떨어야 하는 것, 사람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도 아주 무관한 듯이 보여야 하는 것”(고미숙, 『연애의 시대』)이 성(性)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성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면 지금도 옥희 엄마를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우리에게는 왜 옥희 엄마는 「변강쇠가」의 옹녀처럼 여러 남자를 ‘잡아먹고’도 당당하지 못하고 하다못해 「덴동어미화전가」의 주인공 덴동어미처럼 자유롭게 개가를 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는 그 의문을 해결해 줄 충실한 길잡이,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근대적 여성성과 사랑의 탄생’이라는 부제를 가진 2권 『연애의 시대』가 조금 더 빨리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것이라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네이버 TV캐스트 ‘한국고전영화극장’에서, 저희 책 『연애의 시대』는 전국 온·오프라인서점에서 언제든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상, 간만의 자사제품 PPL을 마친 편집자 k는 물러갑니다. 다음번 PPL에서 또 만나요~^^



편집자 k


연애의 시대 - 10점
고미숙 지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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