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연재 ▽/한의학의 고전들

전쟁의 시대에 대세였던 처방과 인물들

by 북드라망 2012. 1. 3.
한의학의 형성 - 위진남북조 시대

김동철(감이당 대중지성)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들어는 보셨나요? 제2의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큼 분열과 다양성이 극치였던 시절. 그러나 이 시대는 생각보다 조명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저 한나라와 수당 통일왕조 사이에 슬그머니 ‘낀’ 시절로 여겨지고 있지요. 대략 이때를 뭉뚱그려 위진(魏晉)·남북조(南北朝) 시대라 합니다. 삼국시대까지는 중원을 무대로 펼쳐진 한족들간의 투쟁이었다면, 이제는 북방 유목민족 5대 세력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그들은 바로 흉노(匈奴), 선비(鮮卑), 갈(羯), 저(氐), 강(羌) 등이었습니다. 이를테면 김두한 패가 종로에서 하야시 일파 등과 신나게 싸울 때, 윗동네 무서운 형들이 치고 내려오는 거라 할까요? 그 바람에 중원을 통일했던 사마씨(司馬氏)의 진(晉) 왕조는 황망히 강남으로 피난을 갑니다. 이때부터 그 동안 변두리 지역으로 소외 당하던 강남 개발 열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강남이 변두리라니! 마치 서울 강남이 몇 십 년 전만해도 허허벌판이고, 잠실이 누에를 키우던 곳이었던 것처럼 도무지 상상하기 힘드네요. 아무튼 양자강을 경계로 윗동네 형들이 세운 나라와, 피난 온 아랫동네 애들이 맞서게 되지요. 이때를 역사상으로 남북조(南北朝) 시대라 부릅니다. 어디든 간에 강북과 강남의 구도는 항상 생기기 마련이군요. ^^ 정치적으로는 혼란스러울지 모르나, 한족의 Go 강남, 이민족의 대거 유입, 불교와 도교의 본격 성행 등 이종융합의 시대였던 것이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우리가 알고 있는 약의 처방법은 오랜 세월에 걸쳐 연구되고 검증된 것들이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니, 의학의 수요 또한 증가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비급방(備急方), 즉 응급처치법이 중시됩니다. 전쟁터에서 두꺼운 의학서적을 펴놓고, 한가롭게 치료를 할 수는 없는 일. 다치면 바로 치료할 수 있게끔 간편하고 쉽게 써먹을 수 있는 의서가 간절히 요청되던 시대였던 것이지요. 전장에서 의무병을 소리 높여 부르는 군인처럼 말입니다. Medic~~!! 이러한 부름에 부응해 홀연히 등장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의 별호는 포박자(抱朴子)요, 성명은 갈홍(葛洪)이라 했습니다. 갈홍은 이 시대의 위대한 연단술사이자 병리학자였지요. 또한 양생의 대가로 도교의 중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가 진단한 당시의 의학서적 상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가 읽고 비교해 본 결과, 특히 불비(不備)가 많고 여러 가지 급병에 대한 내용이 대단히 불충분하다. 더욱이 무질서하게 섞여 있어서 그 흐름을 파악하기 힘들고, 찾아서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곧바로 찾아낼 수가 없다. 그것도 갑자기 나타난 증후를 고치는 데 있어, 모두 귀한 약재를 수십 종이나 처방으로 기재하여, 수도에 사는 부자가 아니면 미리 상비해 둘 수가 없고 급히 마련할 수도 없다. [‘포박자’(抱朴子) ‘내편’(內篇) 중 ‘잡응’(雜應)]

─ 야마다 게이지 지음, 『중국의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사이언스북스

찾아서 쓰려고 하는 데 너무 복잡해! 책을 뒤져서 겨우 처방을 찾았는데, 필요한 약재가 무지 비싸! 대략 이런 식이지요. --; 이러했으니 당시 병자와 의사들이 겪은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겁니다. 한마디로 의서가 있어도 그 활용도가 무척 낮았던 것이지요. 갈홍은 이와 같은 실태를 개선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래, 결심했어!

『구졸(救卒)』 3권은 모두 단독 약물을 이용하는 손쉬운 것이며, 간단하고 시험해 보기도 쉽다. 울타리나 밭둑길 근처를 둘러보면 모두 약이므로, 많은 급병에 대해 하나하나 처방이 있다. 집에 이 처방이 있으면 의자(醫者)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좋다. [‘포박자’(抱朴子) ‘내편’(內篇) 중 ‘잡응’(雜應)]

─ 야마다 게이지 지음, 『중국의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사이언스북스

마당에 자라난 잡초, 길가에 핀 들꽃이 모두 약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곧 약이지요. 그래서 옛말에 약식동원(藥食同源), 즉 약과 밥은 하나라고 했습니다. 주변에 널린 것이 약재이니, 이를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이 있으면 스스로 병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굳이 의사에게 몸을 의탁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요. 갈홍은 곧 그에 걸맞는 의서의 폭풍 집필에 돌입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책 이름이 바로 『주후구졸방』(肘後救卒方), 줄여서 『주후방』 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인간에게는 생득적으로 타고난 원초적 본능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치유본능만큼 자연스러운 것도 없다. 누군가가 아플 때 그 아픔을 덜어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는가."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432쪽


주(肘)는 팔꿈치, 후(後)는 뒤, 즉 주후(肘後)는 팔꿈치 뒤편이라는 뜻이지요. 이게 뭔 소리여? 바로 팔꿈치에 끼고 다녀도 불편하지 않은 미니멈한 사이즈의 의서였던 것입니다. 요컨대 문고본 보급판 서적이라 할까. 어려운 말로 수진본 의서라고도 합니다. 아이패드처럼 가방 속에 쏙 들어가는 슬림한 체형으로 휴대성을 대폭 강화하고, 얇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최첨단 의학서적 플랫폼이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갈홍은 당시 의학계의 스.. 스티브 잡스!? ^^; 이렇게 갈홍의 서적이 널리 유용하게 쓰이자 이에 감명받은 또 한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앞편에서 본초(本草)파의 중요 인물로 거론되었던 ‘중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리는 도홍경(陶弘景) 선생입니다. 그는 갈홍의 열렬한 팬으로 ‘주후방’을 개정 증보해 갈홍 선생 헌정서적 『주후백일방』(肘後百一方)을 저술합니다. 그때까지 알려져 있던 양방(良方), 즉 널리 효능이 알려지고 효력이 증명된 것의 요점만 게재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주후방』의 소프트웨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2세대 기종이었던 셈이지요. 더 날씬해지고, 더 빨라졌다! 라는 카피가 잘 어울리는...

역시 이종융합복합시대다 보니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이도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갈홍과 도홍경 같은 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사상 쪽에서는 도덕경에 주석을 단 천재 소년 왕필(王弼)을 비롯해 여러분도 한번쯤은 들어 봤음직한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출현합니다. 게다가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 명필로 유명한 왕희지(王羲之), 이름난 화가 고개지(顧愷之) 또한 모두 이 시대를 배경으로 활약한 인물들이지요. 이질적인 것이 서로 마주쳐 낯선 지평을 열어젖힌 시대라고 할까요? 그래서 더욱 관심 가는 시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의학 또한 이런 지반에서 울퉁불퉁하게 발전을 해나갑니다.

※ 한의학의 고전들이 어떤 지반 위에서 형성되었는지에 관해 알아보았던 <한의학의 고전들>코너는 3편으로 막을 내립니다. 아는 이름보다 모르는 이름이 더 많지만, 차츰 낯선 이름과 용어들에 익숙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중국 의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 10점
야마다 게이지 지음, 전상운 외 옮김/사이언스북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