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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편집자 k의 드라마 극장

[편집자 k의 영화극장] 소설 VS 영화, 이광수의 ’재생’

by 북드라망 2014. 4. 23.

소설 VS 영화, 이광수의 ‘재생’


결코 ‘재-생’되지 못한 사랑



‘이광수’, 라고 검색창에 입력하면 <런닝맨>의 ‘이광수’가 가장 먼저 뜨는 이 시대에 제가 이광수의 소설을 읽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한국 최초의 현대소설(이라고 외웠으나 직접 읽어 보지는 못한…… 기죽지는 않으렵니다. 저만 그렇지 않죠?^^) 『무정』의 작가, 그 이광수 말입니다. 그것도 『무정』, 『유정』, 『흙』과 같은 대표작도 아닌, 숨은 걸작(?)을 읽었습지요. 춘원이 1920년대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재생』이라는 작품입니다(무려 장편!). 그럼 제가 이 숨은 걸작을 어찌 알았느냐, 바로 저희 북드라망의 최신작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 덕분입니다. 『재생』은 2권 『연애의 시대』에서 민족, 연애, 돈 등에 대한 근대적 욕망의 구조를 적나라하게 묘사해 놓은 소설로 소개되고 있는데요, 저는 이 소설을 고미숙 선생님만큼 ‘지적으로’ 읽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저 역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가 춘원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이 없기에 다른 작품은 잘 모르겠지만, 『재생』은 오늘날 막장드라마의 원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하여, 이번 편은 ‘편집자 k의 소설극장’이 될 뻔도 하였으나, 알아보니 『재생』이 영화로도 만들어졌었더라구요. 1960년과 1969년에 걸쳐 두 번이나요. 하지만 1960년작은 남아 있지 않고, 한국영상자료원에 가니 1969년에 제작된 강대진 감독의 영화 <재생>을 볼 수 있었습니다(무려 컬러!). 자, 이제 영화 속으로 고고씽!

영화 <재생>의 포스터. 이때는 신성일 아저씨보다 문희 언니의 전성시대였나 봅니다. 포스터에 얼굴이 크게 나온 걸 보니^^;


영화는 독립운동의 현장을 재연한 부조 작품들을 내보내면서 시작합니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3·1운동 즈음이다, 라는 걸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인 듯한데요. 해서 첫 등장부터 주인공 순영과 봉구는 왜경에게 쫓기며 대자보를 붙입니다. 가난과 기침과 사랑은 숨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까요? 별 하는 것도 쫓기며 뛰어다니는데 벌써 둘은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사랑도 포기하지 않는 저 성실한(?) 젊은이를 보게나!’ 하며 감탄하기엔 아직 저에게 소설의 여운이 많이 남아 있었던 탓일까요? 첫 장면부터 저는 한숨이 푹 나옵니다. 소설과는 굉장히 다른 설정으로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소설에서는 봉구 혼자서만 순영에게 일찌감치 ‘썸을 타고’ 있었고, 순영은 그런 봉구를 ‘재발견’하면서 돈과 육욕의 화신 백윤희와 순정의 화신 봉구를 두고 저울질하게 됩니다. 순영의 고뇌에 찬 어장관리(?)는 앞에 있으면 뺨이라도 한 대 올려붙이고 싶을 만큼 생생합니다. 


백은 ‘옜다, 금강석 반지를 받아라, 자동차를 받아라, 음란한 육욕의 만족을 받아라!’ 하고 거만하게 점잖게 자기를 부르고 그와 반대로 봉구는 ‘내 몸을 받으소서, 내 맘을 받으소서’ 하고 자기의 발밑에 꿇어앉았다. 순영은 그 사이에 서서 이 팔을 내밀까 저 팔을 내밀까 하고 망설인다. 순영은 둘을 다 가지고 싶었다. 백에게 좋은 것이 있었고 봉구에게도 좋은 것이 있었다. 백의 음탕한 것과 돈과 봉구의 깨끗하고 어린 것과 뜨거운 사랑과 이것을 다 아울러 가지고 싶었다.


-이광수, 『재생』,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 『연애의 시대』에서 재인용


그러나 영화에서 순영과 봉구는 이미 “장래를 약속한 사이”이기 때문에 대사가 난리가 납니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애국적 열정까지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 봉구와 영화 속 봉구는 결코 같지 않지만 연인에게든, 민족에 있어서든 ‘오버’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순영이, 내 피를 삼키는군”(왜경에 쫓기다 부상당한 봉구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는 중입니다. 이상한 상상은 마셔요^^;;)
“봉구씨 피는 제 피가 아닌가요? 봉구씨 피는 조국을 지키는 조국의 피예요.”
“순영이 피도 마찬가지야 …… 내 단군의 피가 흐르고 있는 한, 난 이천만 동포를 구하고 말겠어!”


결국 봉구는 검거되고, 순영은 봉구의 구명을 위해 노력하던 중 친구의 선배이자 마담뚜인 선주를 통해 백작 백윤희와 만나게 됩니다. 이 역시 소설과는 다른데요. 순영이 봉구와 독립운동을 함께하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그에게 별 마음이 없었고, 본격적으로 밀당을 하게 된 것은 봉구가 감옥에서 나온 뒤 순영을 찾아오고 나서의 일입니다. 순영은 이미 둘째 오빠 순기의 꿍꿍이로 백윤희를 만났고, 자의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처럼 백윤희와 몸을 섞은 후였지요. 

다시 영화로 돌아오면, 봉구는 출소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은 두부를 들고온 노모뿐. 그 길로 어머니는 내버려둔 채 순영의 학교로 찾아가지만 순영이 백윤희의 소실로 들어갔다는 소식만 얻게 됩니다. 더구나 영화에서 봉구는 순영의 큰오빠와 함께 백윤희를 찾아가 군자금을 요구한 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하게 된 것인데 말입니다. 쇼크를 받은 봉구는 결심합니다. ‘돈을 벌자! 그 돈으로 순영이 얼굴에 뿌려주리라.’ 소설에서는 “내가 왜 그년을 살려 돌려보냈어요? 고년을―고 혓바닥과 마음을 둘씩 셋씩 가진 년을 내가 왜 칼로 박박 찢고 오리지를 못하였어요?” 하며 발광을 하지만 영화에서는 남자 배우의 ‘가오’가 있는지라 저 정도로 그친 듯합니다. 주인공이 당대 최고의 스타, 신성일이었거든요(봉구는 약간 맹해야 하는데 말이죠, 에잉!).
  

봉구는 돈을 벌기 위해 인천으로 가 미두상의 사환 겸 점원으로 들어갑니다. 가끔 껄렁한 사장 아들이 나타나 “술 먹게 돈 백 원만 줘” 하며 삥을 뜯어가지만(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살짝 뿜었습니다. 이 역할을 맡은 분이 1998년에 돌아가신 이낙훈 선생님이셨는데, 전 노년기의 점잖은 배역만 하실 때만 봤기에 저렇게 젊고 퉁퉁한 얼굴로 등장하셔서는 “백 원만” 하시는 게 웃겨서요;;;) 그래도 능력을 인정받으며 나름 잘 살고 있었더랬지요. 그런데 어느 날, 사장의 심부름으로 인천에 온 백윤희를 찾아가게 되고, 이때 순영도 봉구를 보게 됩니다. 소설에서는 봉구를 본 순영이 “어쩌면 그동안에 그렇게도 늙었을까” 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가, “봉구가 죽어 주었으면”도 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탑니다만, 영화에서는 그런 과정이 싹 생략되고 순영이 봉구 하숙집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바로 건너뜁니다. 거기다 원작과 전혀 상관없이 몇 단계나 점프하여, 순영은 봉구에게 봉투를 건네며 조국을 위해 (상해로) 떠나라고 합니다. 봉구는 “이런 더러운 돈으로는 조국을 위해 살 수 없어!”라며 매몰차게 거절해버렸구요.   
 

옛 여자가 찾아온 것만으로도 심란한데, 느닷없이 봉구는 살인 누명까지 쓰게 됩니다. 사장의 신임을 이용해 그를 죽이고 미두상을 가로채려고 한 살인범으로 몰리게 된 것이지요. 공교롭게도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시간은 순영이 봉구의 하숙방을 찾아갔던 시간. 이에 순영은 봉구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청하여 증인으로 나섭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 <재생>이 야심차게(?) 감추고 있었던 비밀이 드러납니다. 순영이 백윤희의 첩이 된 것은 봉구를 빨리 출소시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이요. 5년형을 받았던 봉구를 좀더 빨리 출소시키기 위해 백에게 가기로 한 것이었지요. 바로 이 지점이 관객들이 감동의 눈물을 철철 흘리는, 감독이 계산한 신파의 클라이맥스였을 텐데, 저의 입에서는 절로 영어가 나왔습니다. 오 마이 갓!


『동아일보』에 연재된 『재생』1회. 삽화 속 여인이 순영으로 당시 ‘퀸카’로 이름났던 순영이 예배당에 뜨자 좌중의 시선이 몰리는 장면입니다. 순영의 맞은편에 보이는 턱이 움푹 패인 남자가 봉구일 것 같네요.


이후 진범이 잡히고(누구일까요? 범인은 이 안에 있습니다, 후훗), 순영이 백에게 떨어져 나오고 순영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큰 줄거리상으로는 영화와 소설이 같지만, 영화보다 소설이 훨씬 참담한 데다, 영화는 소설의 디테일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어차피 영화는 보시기도 어려우니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꼭 소설을 보셔요(고미숙 선생님의『연애의 시대』도 잊지 마시구요!^^).  
 

사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서부터 저는 폭풍 하품을 하며, 영화가 몇 분이나 남았는가를 계산했습니다. 장편소설을 영화 한 편으로 압축시키는 데서 올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이 빠짐’이었겠지만 영화가 너무 촘촘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하지만 이 영화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1920년대에 비해 하등 나아진 것이 없는, 오히려 훨씬 더 갑갑해진 1960년대의 여성성과 연애에 대한 표상을 보여준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조국을 위해 일하는 남자(의 장래)를 위해 자신의 유력가의 소실이 되고(이미 자신도 충분히 ‘배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남자가 앞으로도 애국, 애족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더렵혀진’ 자신은 죽음으로써 조용히 퇴장합니다(이걸 멜로의 업그레이드로 봐야 하는 건지…--;;).


20년대의 순영에게는 순정이냐, 애욕이냐를 두고 머리 터지게 계산을 하지만 60년대의 순영은 오직 한 남자(이자 조국)만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그 끝이 결국은 죽음이라는 데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20년대의 순영이건, 60년대의 순영이건 게다가 순영의 사랑을 ‘멜로의 정석’으로 받아들인 많은 멜로드라마의 주인공들이 기어코 죽음으로 사랑을 완성시키고야 마는 연원을 탐구해 보고 싶으시다면, 지금 바로 『연애의 시대 : 근대적 여성성과 사랑의 탄생』을 만나보셔요~^^.


편집자 k


 

연애의 시대 - 10점
고미숙 지음/북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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