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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내강외유의 힘을 보여주는 여군주의 괘, 화천대유

by 북드라망 2014. 4. 10.

내강외유의 힘을 보여주는 여군주의 괘, 화천대유



외강내유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는데 안은 부드럽다는 의미로 풀이하기도 하고, 겉모습은 강해보이는데 속은 여리다 혹은 약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내강외유는 이 반대의 경우다. 그런데 외강내유건, 내강외유건 겉과 속이 다르다는, 반전이 있다. 특히 '내강외유'라는 표현은 여성 리더들에게 자주 사용되는 표현인 것 같은데, 선덕여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선덕여왕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당태종이 선덕여왕에게 꽃 그림과 씨앗을 선물한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보셨으리라. 선덕여왕은 처음 보는 꽃 그림을 보고, 이 꽃은 피어도 향기가 없을 것이라며 당태종의 의도를 간파했다. 모란과 장미의 겉모습은 무척 닮았다. 그래서 신하들은 설마 그럴리가요…라고 생각하며 선덕여왕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꽃이 다 피고 나니 향기가 나지 않았다. 신하들은 선덕여왕에게 어찌 알게 되었냐고 물었고, 선덕여왕은 그림에 나비나 벌이 없었기 때문에 알게 되었다고 했다. 대개는 선덕여왕의 총명함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로 회자되고 마는데, 오늘은 이 총명함이 특유의 섬세함과 관찰력에서 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러한 내강외유 스타일의 '강함'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장미와 비슷하지만 향기가 없는 모란



화천대유 괘사


『주역』에도 괘마다 나름의 흐름이 있다. 지난 글인 천화동인 괘는 64괘중 13번째인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하는 그림을 떠올리게 된다. 오늘 만날 괘는 14번째 괘인 화천대유이다. 전체적인 상을 그려보자. 아래에 있는 3효를 내괘라고 하고, 위에 있는 3효를 외괘라고 한다. 천화동인은 아래에는 불(리괘)을, 위에는 하늘(건괘)를 품고 있는 형상이다. 화천대유는 위아래가 바뀌어서 아래에는 하늘, 위에는 불이 떠있는 형상이다. 천화동인이 해가 아래에서 떠올라 하늘과 같이하는 모습이라면, 화천대유는 해가 이미 떠있고 하늘 가운데 걸려 천하를 비추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이것이 천하 동인의 괘!이것이 화천대유의 괘이다.



大有 元亨(대유 원형)
화천대유는 크게 이롭다.

彖曰 大有 柔 得尊位(단왈 대유 유 득존위)
단전에서 말하길, 대유는 부드러운 것이 높은 자리를 얻어 한가운데에 위치하면서

大中而上下 應之 曰大有(대중이상하 응지 왈대유)
위아래가 그에 응하므로 대유라 한 것이다.

其德 剛健而文明(기덕 강건이문명)
그 덕이 강건하고 문명하며

應乎天而時行(응호천이시행)
하늘에 응하여 때맞게 행한다.

是以元亨(시이원형)
이 때문에 일을 잘 시작하고 크게 번창한다.


앞 괘인 동인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많은 일을 하게 되므로, 여기에서 무언가 생산되고 그것들이 모이니 이롭다는 의미이다. 대유는 다섯번째 효만 유일하게 음(陰)이다. 각 효들은 각각의 자리가 있는데, 다섯 번째 효의 자리는 군주의 자리이다. 그래서 "부드러운 것이 높은 자리를 얻어 한가운데 위치"했기 때문에 다섯번째 효를 여왕이라 보는 것이다.


겉모습만 봤을 때에는 양효들에 둘러싸여 약해보이지만, 이러한 섬세함을 바탕으로 다른 양효들을 다스린다는 반전있는 괘인 것! 음(陰)은 발산보다는 수렴하는 방향을 가진다. 그래서 여왕은 다섯 양효들의 보좌를 받아 영토를 확장하고 재물을 불린다고 해서 괘의 이름이 대유(大有)가 된 것이다.


象曰 火在天上 大有(상왈 화재천상 대유)
상전에 이르길, 불이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대유니

君子以 遏惡揚善 順天休命(군자이 알악양선 순천휴명)
군자가 이로써 악한 것을 막고 선한 것을 드날려서 하늘의 명을 따른다.


불은 무언가를 밝혀준다. 이처럼 군주(여왕)가 정치를 밝게 한다는 의미이다. 정치를 밝게 하면 물질이 풍요롭고 살기 좋은 시절이 된다. 그러나 밝을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 풍요로운 가운데 빈부의 격차가 많이 나면 없는 사람은 가지려고 죄를 짓고, 있는 사람은 더 갖기 위해 죄를 짓기 때문에 악을 막아야 하고(遏惡), 선을 북돋아 드날려야 한다(揚善)고 했다.



화천대유 효사  


初九 無交害 匪咎 艱則無咎(초구 무교해 비구 간칙무구)
초구는 해로운 데에 사귐이 없으니 허물이 아니나, 어렵게 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大有初九 無交害也(상왈 대유초구 무교해야)
상전에 이르길, 대유초구는 해로운데 사귐이 없느니라.


가장 첫번째 효는 양효, 순서상으로 첫번째이므로 '초(初)', 양효이기 때문에 '구(九)'이며 합쳐서 '초구'라고 부른다. 맨 처음에 나왔기 때문에 아직 순수한 상태이다. 막 부임한 지방공무원의 느낌이랄까. 그래서 어렵게 하면 허물이 없다는 의미는, 욕심을 부리거나 유혹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초구는 세번째 효와 서로 친하게 지내게 되는 자리이므로, 특히 세번째 효의 유혹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대개 첫번째 효는 네번째 효와 서로 끌리는 사이인데, 대유에서는 특이하게도 첫번째 효와 세번째 효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九二 大車以載 有攸往 無咎(구이 대차이재 유유왕 무구)
구이는 큰 수레로 짐을 싣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가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大車以載 積中不敗也(상왈 대거이재 적중불패야)
상전에 이르길 큰 수레로 짐을 싣는 것은 속에 쌓아도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효는 양일 경우 구(九), 음일 경우 육(六)이라는 숫자로 표현한다. 두번째 효는 양이므로, 구이(九二)라 한다. 두번째 효는 군주의 신임을 받는다. 그래서 중요한 임무를 맡아 수레로 짐을 싣고 떠나는 모습이다. 이러한 중책을 맡을 수 있는 이유는 두번째 효가 그만큼 강하고 현명한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믿고 맡기는, 구이!



九三 公用亨于天子 小人弗克(구삼 공용향우천자 소인불극)
구삼은 공이 천자에게 바침이니 소인은 능하지 못하느니라.

象曰 公用亨于天子 小人害也(상왈 공용향우천자 소인해야)
상전에 이르길 '공용향우천자'는 소인이면 해로울 것이다.


세번째 효 역시 양이므로 구삼(九三)이라 부른다. 군주인 다섯번째 효와의 거리를 가늠해볼 때, 왕의 바로 위아래에 있는 효(구사와 상구)는 수도 안에 있다면, 이제까지 등장했던 초구, 구이, 구삼은 모두 수도와 떨어져있는 신하들이다. 특히 구삼에게는 공(公)이라는 표현이 나왔는데, 제후의 위치로 보면 된다. 亨(형)은 '형통하다'는 의미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향헌(亨獻)하다는 의미이므로 '향'이라고 읽는다. 제후들이 일정한 양의 세금이나 공물을 군주에게 바치는 것을 뜻한다. 재물이 많으면 욕심이 생기는 법, 그러므로 소인이 이 자리에 있으면 자기의 욕심을 채우느라 역적모의를 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계하였다. 모의를 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구삼은 초구를 꼬드기려고 한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는 중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어쩌면 세번째 효가 첫번째 효와 네번째 효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九四 匪其彭 無咎(구사 비기방 무구)
구사는 그 화려한 것이 아니면 허물이 없다.

象曰 匪其彭無咎 明辨晢也(상왈 비기방무구 명변제야)
상전에 이르길 그 화려한 것이 아니면 허물이 없는 것은 분별을 밝게 하기 때문이다.


네번째 효도 양, 그래서 구사(九四)이다. 왕의 바로 밑에 있는 중요 인물로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최측근이라 보면 된다. 원래 네번째 자리는 순서상 음의 자리이다. (1: 양, 2: 음, 3: 양, 4: 음, 5: 양, 6: 음) 그런데 음의 자리에 양이 있으므로, 군주인 육오의 눈에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잔치를 하거나 화려한 의상을 입고 세력을 과시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육오가 다 지켜보고 있기 때문! 유일한 음인 육오의 마음을 지혜롭게 잘 헤아리게 되면 허물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대개 첫번째 효와 네번째 효가 서로 이끌리는 사이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 네번째 효인 구사는 초구 보다는 육오에게 더 관심이 쏠려있다. 


육오님이 지켜보고 계시다능!



六五 厥孚交如 威如吉(육오 궐부교여 위여길)
육오는 그 미덥게 사귀니 위엄이 있으면 길하리라.

象曰 厥孚交如 信以發志也 威如之吉 易而無備也(상왈 궐부교여 신이발지야 위여지길 이이무비야)
상전에 이르길 '궐부교여'는 믿음으로써 뜻을 발함이요, '위여지길'은 쉽게 하면 갖추지 못하기 때문이라.


다섯번째 효는 음효이므로 육오(六五)라 부른다. '궐부교여'는 백성들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면 바른 정치가 안 되기 때문에 믿음으로써 하라는 의미이다. '위여지길'은 위엄있게 하면 길하다는 뜻인데,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냐면 군주가 '음'이기 때문이다. 음은 부드럽고, 양은 강하다. 그래서 약해보이는 외형때문에 자칫 업신여김 당할 수 있다. 따라서 믿음과 위엄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부드럽지만 강한 카리스마의 육오! 그리고 좌주의 양효들. ^^



上九 自天祐之 吉無不利(상구 자천우지 길무불리)
상구는 하늘로부터 돕는지라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도다.

象曰 大有上吉 自天祐也(상왈 대유상길 자천우야)
상전에 이르길 '대유상길'은 하늘로부터 도움이라.


여섯번째 효 역시 양효이므로, 상구(上九)라 한다. (가장 첫 번째 효와 마지막 효는 각각 초, 상이라고 하며 숫자를 뒤에 붙이는데 일단 이렇게 알고 넘어가자. 깊게 들어가면 너무 심오하다.) 이 자리는 군주의 바로 위이기 때문에 군왕의 자리를 지난 왕, 고문의 자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군주의 존경을 받고 있다. 화천대유가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가득한 괘이고, 군주인 육오도 물질적인 것을 확장하는 데 관심을 두는데, 상구(上九) 할아버지(^^)는 이러한 시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그래서일까, 공자는 특별히 이 상구를 부연설명하면서 "하늘은 천리에 순하는 자를 돕고 사람은 신의를 지키는 자를 돕고자 한다"고 하였다.



주역의 세계, 주역의 매력


누군가에게 들은 말 하나. 『주역』을 공부하려면 삼대(三代)가 덕을 쌓아야 한단다. 처음에는 우스개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역』은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고, 64괘 전체를 읽어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주역』의 세계에 발딛게 된 것은 어쩌면 『주역』이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런 점에서 조상님들에게 감사드려야겠다고 말이다. ^^

우리보다 먼저 『주역』과 접속한 선배님들이 많다. 8괘를 처음 그린 복희씨, 8괘에 의미를 담은 문왕과 주공, 여기에 자신의 해설을 달았던 공자, 주자 등등… 그런데 독특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우리가 흔히 유학자로 분류하는 학자들이 『주역』에 대한 주석을 달았다는 점이다. 특히 18세기 조선지성사 두 개의 별 중 하나인 다산도 『주역』을 깊게 공부하고 자신만의 해설을 책으로 남겨두었다고 한다. 우리는 '점(占)=미신'이라는 등식을 쉽게 떠올린다. 그래서 유학자, 특히 실학자로 알려진 다산 정약용마저(!) 『주역』에 관심을 가졌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칼 구스타프 융 역시 『주역』에 매료된 사람 중 한명이다. 그는 과학적 세계관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자신의 지적 풍토에서 『주역』을 소개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 『주역』의 입장은 어떠한지, 영문판 『주역』의 서문을 쓰는 자신의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 고민은 지금 『주역』을 만나는 우리의 마음과도 통하는 것이 아닐까.

이 특별한 책이 뒤흔들어놓을 오만 가지 의문, 의심, 비판들에 대해서 난 답할 수가 없다. 『주역』은 증거와 결과를 거저 주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고,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 자연의 일부분처럼 그것은 발견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것은 사실이나 힘을 주지 않으며, 자신에 대한 깨달음(자각)이나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그를 위한 책일 것이다. 한 사람에게 그것의 정신은 대낮의 밝음처럼 드러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여명의 어스름처럼 나타나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한밤의 어둠처럼 보인다. 그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 그것을 세상에 더 나아가게 해주라, 그것의 의미를 알아챌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융, 영문판 『주역』 서문 마지막 부분, 『주역, 인간의 법칙』에서 재인용, 338쪽  


이민정(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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