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설국열차를 전복시키자 죽음이 아닌 평화가 왔다! - 지천태

전복과 평화


작년 여름 나는 <설국열차>를 봤다. 사람들은 너무 직설적이라서 지루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오히려 직설적이어서 구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추상적으로 여기던 많은 사유들이 생생해졌다.

‘자리’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메이슨 총리에게는 랑시에르가, 18년 전 꼬리칸에서의 식인 현장을 말하는 커티스에게선 루쉰이, ‘윌포드 엔진실’의 문 앞에서 차라리 기차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자는 남궁민수에게는 들뢰즈가, 윌포드가 커티스를 설득하며 제시하는 ‘균형론’에는 푸코의 생명정치가 숨어 있다. ‘7인의 반란’을 증거하는 창문 밖 탈주자들의 얼어버린 모습에선 라깡의 상징계와 실재계가 너무나 리얼하다. 더군다나 ‘문’을 하나씩 뚫고 나가는 커티스의 모습은 레닌 그 자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지천태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레닌’ 커티스가 마지막에 가서 체제 자체(머리칸과 꼬리칸)를 정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체제를 뒤집어 정지시키고, 밖으로 나가는 걸 선택한다. 밖의 세계와 만나는 것이다. 그것은 결정적으로 역사의 기관차를 정지시킨다는 벤야민적인 결론과도 일치한다. 또한 커티스가 자기의 팔을 자르며 흑인 아이를 구하는 장면과, 남궁민수와 함께 ‘최후의 아이들’을 구하는 장면은 완전히 루쉰의 영화적 변용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오히려 봉감독이 직설적이어서 좋았다. 혁명과 관련한 거의 모든 사유가 영상으로 표현된 셈이었다. 『설국열차』의 많은 장면들은 앞으로 혁명을 말할 때마다 두고두고 소환할 역사적인 시퀀스들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예카테리나 다리 장면에서 커티스가 우리나라 용역 비슷한 놈들과 싸우는 장면, 그리고 뒤이어 찾아오는 새해 인사 장면은 진정 아름다움의 극치다. 그 순간만큼은 완전한 평화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작 만화를 보았다. 마지막 페이지부터 열어보았다. 아주 놀라운 이미지가 있었다. 이 원작 만화의 마지막은 놀랍게도 오늘 이야기할 지천태괘였던 것이다. 아, 이 영화는 바로 그 평화를 이야기하는 거구나.



<괘사>


泰 小往大來 吉亨(태 소왕대길 길형)
태는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니 길하여 형통하니라.

음은 작은 것이다. 양은 큰 것이다. 외괘는 가는 것이고 내괘는 오는 것이다. 그런데 외괘는 모두 음효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내괘는 모두 양효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작은 것은 가고, 큰 것은 온다. 원래 땅인 곤삼절은 아래에 있어야 하고, 하늘인 건삼련은 위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서로 절대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뒤집혔다. 땅기운은 올라가고 하늘기운은 내려왔다. 상하가 서로 사귈 수 있게 된 것이다. 군자인 양이 아래로 내려‘오고’, 소인인 음이 위로 올라‘간다’. 이 괘가 길하고 형통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설국열차』에서 열차가 전복한 후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도 이와 상통한다.


지천태는 하늘 위에 있는 땅? 물상으로 표현하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처럼 지천태괘는 천지가 사귀는 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지의 도를 잘 마름해야 한다. 그러니까 천지의 움직임을 잘 살펴서 책력 등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배포한다. 그것으로 농사짓는 일이 문제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천지의 기후나 지질을 알맞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천지의 도를 마름질하는 것을 체(體)로 하고, 천지의 마땅함을 보상하는 것을 용(用)으로 한다.

 

<효사>


初九 拔茅茹 以其彙 征 吉(초구 발모여 이기휘 정 길)
초구는 띠뿌리를 뽑음이라. 그 무리로써 감이니 길하니라.

초구는 백성의 자리다. 땅 속에서 띠뿌리를 뽑으면 모든 뿌리가 쭉 뽑혀 나온다. 그래서 무리로 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고통 받던 세상이 지나가고 태평을 구가하는 자유로운 시대가 왔다. 이렇게 태평한 때가 왔으니, 그동안 배운 것을 세상에 펴기 위해 벼슬자리를 구하러 나간다. 뒤집힌 기차에서 나와, 요나가 이제 리얼한 세상으로 나간다.

九二 包荒 用馮河 不遐遺 朋亡 得尙于中行(구이 포항 용빙하 불하유 붕망 득상우중행)
구이는 거친 것을 싸며 하수를 맨발로 건너는 것을 쓰며 먼 것을 버리지 아니하며 붕당을 없애면, 중도를 행함에 합함을 얻으리라.

구이는 음자리이지만 양이므로 강하고 현명하다. 더군다나 중의 자리다. 그런 구이이기에 육오 인군과 잘 응하여 중책을 맡아 태평한 세상을 다스린다. 지천태괘가 말하는 구이의 정치법은 네 가지다. 먼저 나라의 땅 어느 곳이든 모두 옥토로 개척해야 한다(包荒). 둘째는 하수(河水)를 걸어서 건너갈 만한 용단이 있어야 한다(用馮河). 셋째는 먼 곳에 있는 백성을 한 명도 버리지 말고 인재를 선발해 써야 한다(不遐遺). 넷째는 파벌정치, 붕당이 없어야 한다(朋亡). 두루두루 평화롭게 다스린다.



九三 无平不陂 无往不復 艱貞 无咎 勿恤 其孚 于食 有福
(구삼 무평불피 무왕불복 간정 무구 물휼 기부 우식 유복)

구삼은 평평해서 언덕지지 않음이 없으며, 가서 돌아오지 않음이 없으니,

어렵게 하고 바르게 하면 허물이 없어서, 근심치 않더라도 그 미더운지라, 먹는 데 복이 있으리라

세상이 계속해서 태평할 수는 없다. 이제 내괘가 끝나고, 외괘로 넘어가는 순간, 걱정이 앞선다. 즉 항상 낮이 끝나면 밤이 오는 것처럼, 소인이 다시 돌아온다. 어쩌면 설국열차 시대가 다시 올 수도 있다. 소인들에 의해 체제화되는 그런 것이 다시 오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므로 방심하며 편히 살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매 순간 현재의 체제를 정지시키고 새로운 체제를 향해 다시 나가야 한다. 소인의 세상을 항상 두려워하며 분수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현재 체제의 지배자가 되고, 그것을 유지하려고만 하는 것은 체제뿐 아니라 자신을 무너뜨리는 행위이다.

六四 翩翩 不富以其隣 不戒以孚(육사 편편 불부이기린 불계이부)
육사는 나는 듯이 부하려 하지 않고 그 이웃으로써 하여, 경계하지 아니해도 미덥도다.


육사는 군자의 시대가 지나고 소인의 시대가 도래한다. 음인 소인들이 정권을 잡으려 한다는 말이다. 서로 잘하는지, 못하는지조차 알지를 못한다. 그저 군자를 몰아낼 생각만 한다. 소인들은 이 한마음으로 서로 뭉쳐서 갈 수 있다는 믿음만 가지고 똘똘 뭉친다.


소인(!)의 시대가 온다!!


六五 帝乙歸妹 以祉 元吉(육오 제을귀매 이지 원길)
육오는 제을이 누이동생을 시집보내는 것이니, 이로써 복이 되며 크게 길하리라.

제을은 은나라가 망할 무렵 주라는 군주의 윗대 선왕이다. 제을 이전에는 왕족끼리만 혼인을 했었는데 제을시대에 와서 처음으로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신하와 혼인을 했다고 한다. 그 후에야 다른 성을 가진 사람끼리 혼인을 하게 되었다. 인군인 제을은 네 가지 정치를 잘하는 구이 신하에게 공주를 시집보낸다(帝乙歸妹). 인군이 왕족끼리만 혼인하면 위화감 때문에 민심을 얻기가 힘들다. 그래서 몸을 낮춰 신하에게 공주를 시집보내는 것이다. 태평한 시대가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한 지혜이다.


上六 城復于隍 勿用師 自邑告命 貞吝(상육 성복우황 물용사 자읍고명 정린)
상육은 성이 터에 돌아옴이라. 군사를 쓰지 말고 읍으로부터 명을 고할지니.

낮이 가면 밤이 오듯이 언제나 태평한 시대만 계속될 수는 없다. 이제 혼란이 찾아온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전쟁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마음속에서부터 해결책을 찾아야한다. 똑같이 국가라면 각 읍에서부터 제 잘못을 고백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버티기만 하면 너무 늦어버릴 수 있다. 그런 순간 모든 것이 인색해진다.



영화 『설국열차』의 마지막은 곰이다. ‘문’을 뒤집으면 ‘곰’이다. 공교롭게도 커티스는 문을 하나씩 뚫고 나간다. 전생에 문 하나 못 열고 죽은 귀신이라도 되듯이 말이다. 물론 그것은 혁명의 과정들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은 17살 '요나'다. 그리고 땅을 딛고 맨 처음 만난 것이 곰. 어쩌면 이 기표의 장난이 영화의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 원작 만화의 마지막이 지천태라는 것은, 어쩌면 영화에서 문을 뒤집은 게 곰이듯이, 지금의 변하지 않는 천지를 뒤집는 것, 즉 체제를 뒤집는 것(전복)이 평화라고 일러주는 거대한 농담일지 모른다.



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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