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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64괘 담긴 문왕의 자전적 에세이!? - 풍천소축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2. 14.

문왕의 아바타 - 풍천소축



감옥에서도 아무런 원망없이 64괘를 만든 문왕


때는 전설적인 폭군인 은나라 주왕의 시대. 주왕의 폭거에 지친 민심은 서쪽 땅의 제후 서백 창(西伯 昌 : 이하 문왕)에게로 향한다. 그러자 주왕은 문왕을 시기하고 두려워하여 그를 유리옥에 가둔다. 평범한 사람 같으면 주왕에 대한 원망과 복수로 이를 갈고 있을 시간. 문왕은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감옥 안에서 초연하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64괘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 오늘 우리가 살펴볼 ‘풍천소축’ 괘는 문왕 자신의 일을 이야기한 것이다. 일단 문왕이 지은 괘사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괘사


小畜 亨 密雲不雨 自我西郊(소축 형 밀운불우 자아서교)
소축은 형통하니 빽빽한 구름에 비가 오지 않는 것은 내가 서교로부터 하기 때문이라.

彖曰 小畜 柔 得位而上下 應之 曰 小畜(단왈 소축 유 득위이상하 응지 왈 소축)
단전에 이르길 소축은 유가 자리를 얻음에 위와 아래가 응하니 소축이라 하니라.

健而巽 剛中而志行 乃亨(건이손 강중이지행 내형)
굳건하고 겸손하며, 강한 것이 중을 하고 뜻이 행하여 이에 형통하니라.

密雲不雨 尙往也 自我西郊 施未行也(밀운불우 상왕야 자아서교 시미행야)
밀운불우는 오히려 가는 것이요. 자아서교는 베풂이 행하여지지 않음이라.

象曰 風行天上 小畜 君子 以 懿文德(상왈 풍해천상 소축 군자 이 형문덕)
상전에 이르길 바람이 하늘 위에 행하는 것이 소축이니, 군자가 이로써 문덕을 아름답게 하느니라. 


문왕이 지은 64괘 중 9번째에 해당하는 괘가 풍천소축이다. 앞서 살펴봤던 수지비(水地比)괘는 서로를 가까이하고 돕는 괘였다. 하여, 서로 도와 세상이 안정되면 조금씩 쌓인다는 의미로 비괘 다음에 소축괘가 왔다. 괘를 설명하는 괘사에서는 소축괘를 형통하다고 했다. 형통은 ‘모든 일이 잘되어 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소축은 그 이름처럼 조금씩 쌓이는 것이다. 그래서 형통하긴 하지만 무언가를 확 지르거나 일을 도모하기에는 힘이 약하니 기다려야 한다. 그것을 괘사에서는 ‘밀운불우’라는 시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무더운 여름날 마치 찜솥에 들어있는 것 같이 뜨겁고 눅눅한 날씨를 떠올려보자. 하늘에는 먹구름이 쌓여서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데 내리지 않는다. 한시바삐 쏴~ 하고 내려서 불타는 대지를 식혀줬으면 좋겠는데 참... 희망고문이 따로 없다. 문왕이 보기에는 지금 자신과 백성들의 처지가 딱 그랬다. 주왕의 폭정이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듯 말 듯 혼란한 상황. 문왕은 시절이 이러한 탓을 자신이 서쪽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문왕은 자신의 근거지인 서쪽을 떠나 주왕이 있는 동쪽을 쳐야 이 혼란을 끝낼 수 있다고 보았다. 학자들에 따르면 문왕의 영토는 이미 은나라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였기 때문에 힘으로는 충분히 주왕을 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왕은 아직 구름만 빽빽하게 뒤덮었을 뿐 비가 오는 때에 이르지는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때가 이르지 않았는데 섣불리 행동했다가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문왕은 가뭄에 단비가 될 때까지 자신을 갈고닦으면서 덕과 지혜를 조금씩 쌓아 나갔다. 특히 네 번째 효인 육사는 그런 문왕의 노력이 좀 더 세밀하게 기술되어 있으니 유의깊게 보기를 바란다.



효사


자 풍천소축괘의 형상을 보자. 위(외괘)는 손(☴ : 바람風)괘이고 아래(내괘)는 건(☰ : 하늘天)괘이다. 주역에서는 손괘를 겸손하고 유순한 음괘이고 건괘는 강건한 양괘로 본다. 그래서 풍천소축은 위에 있는 유순한 음이 아래의 강건한 양을 세어나가지 않고 머무르도록 누르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듯 음이 양을 그치게 해서 조금씩 쌓고 있다고 해서 소축이라고 한다. 괘상을 잘 기억하면서 효사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자.

九 復 自道 何其咎 吉(초구 복자도 하기구 길)
초구는 회복하는 것이 도로부터 함이니, 무엇이 그 허물이리오. 길하니라.

象曰 復自道 其義吉也(단왈 복자도 기의길야)
상전에 이르길 복자도는 그 뜻이 길하니라.

구양이 맨 처음에 있으니 초구라고 한다. 양(陽)은 그 성질이 동적(動)이다. 게다가 초구는 제일 첫 자리에 위치한 탓에 일단 움직이고 본다. 그러다 ‘아직 내가 세상물정 모르는 애송이구나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본래 자리로 돌아오니 길하다고 하는 것이다. 초구는 천방지축 어린아이와도 같다. 그런데도 본래 자리로 돌아오는 영특함(?)을 발휘하는 것은 올바른 친구(짝)를 두었기 때문이다. 주역에는 절대(!) 홀로 있는 건 없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처럼 모든 것은 파트너가 있다. 하여, 효를 해석할 때도 파트너와의 관계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초효-삼효, 이효-오효, 삼효-상효. 모두 파트너가 있다.


초구의 파트너는 바로 육사다. 육사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음효다. 고로 구오와 육사는 음양응(應)하는 환상의 커플이다. 그래서 초구가 육사를 만나기 위해 올바른 길(道)로만 갈 뿐 옆길로 새지 않으니 길하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했던 괘사의 단전에는 ‘畜 柔 得位而上下 應之(축 유 득이위상하 응지)’라고 했다. 음유한 육사가 제자리를 얻어서 초구(혹은 다른 양들과) 서로 잘 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九二 牽復 吉(구이 견복 길)
구이는 이끌어서 회복함이니 길하니라.

象曰 牽復 在中 亦不自失也(단왈 견복 재중 역부자실야)
상전에 이르길 견복은 가운데 있음이라. 또한 스스로 잃지 않음이라.

구양이 두 번째에 있어 구이다. 구이는 자신의 짝인 구오와 음양음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구이를 길하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주역서당 애독자라면 이미 눈치 챘겠지만 구이는 그 자리가 특별하다. 내괘(건괘)의 중앙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상전에서 말하는 것처럼 ‘중을 얻었다(在中)’라고 한다. 이렇듯 재중한 자리만큼 심성 바른 구이는 초구를 잘 이끌어서 육사와 만나게 하는 후견인 역할을 잘 수행하니 길하다. 



구이에 대한 또 다른 해석도 있다. 앞서 괘상에서 보았듯 구이는 음(손괘)에 의해 머물러서(기다리면서) 쌓이고 있는 양(건괘)의 맨 가운데에 위치한다. 즉 머무름의 주체가 되는 효이다. 그래서 멋모르는 초구와 막무가내로 뛰쳐나가는 구삼을 잘 다스리면서 때를 기다린다. 혹은 음이 양을 누르는 것처럼 구이의 짝인 구오(어른)가 구이(아이)를 붙잡아서 기다리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아직은 세상으로 나갈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九三 與脫輻 夫妻反目(구삼 여탈복 부처반목)
구삼은 수레의 바퀴살을 벗김이며, 부부가 반목함이로다.

象曰 夫妻反目 不能正室也(상왈 부처반목 불능정실야)
상에 이르길 부처반목은 능히 집을 바로 하지 못하느니라.

구양이 세 번째에 있어 구삼이다. 구삼은 막무가내로 나아가다가 중을 넘어선 상황이다. 거기다 양이 세 번째 자리(홀수는 양의 자리)에 위치하여 더욱 양강해졌다. 그래서 괜한 치기로 육사를 탐내고 도전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육사는 풍천소축괘의 나머지 양들을 다 상대할 만큼 외유내강한 여장부다. 육사를 음효라고 만만하게 보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 


육삼은 부부가 반목한다.


육사는 구삼이 접근조차 할 수 없도록 구삼이 타고 다니는 수레의 바퀴살을 빼버린다. 발을 묶어 버린 것이다. 구삼과 육사를 부부싸움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구삼 남편이 양강한 에너지를 참지 못하고 벌이는 오버 액션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육사 아내. 상전에서는 부부가 반목하면 집을 바로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점을 쳤을 때 구삼 효가 나오면 집단 내에서 불화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고 한다.
   
六四 有孚 血去 惕出 无咎(육사 유부 혈거 척출 무구)
육사는 믿음을 두면, 피가 사라져가고 두려운 데서 나와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有孚惕出 上合志也(상왈 유부척출 상합지야)
상전에 이르길 유부척출은 위와 뜻이 합함이라.

육음이 네 번째에 있어 육사이다. 풍천소축괘에서 유일한 음효이고 주인공 문왕을 대변해주는 효이기도 하다. 처음 괘사를 설명할 때 풍천소축이 문왕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효사를 설명하면서 문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문왕이 등장하니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왜 계속 딴소리하다가 지금에서야 본론이 나오는 거야?’라고 말이다.(엄밀하게 ‘기다림’이나 ‘소축’이라는 문왕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앞에서도 계속 나왔다.) 그런데 이건 다른 책과는 다른 주역의 특이성이다. 


우리는 보통 하나로 쭉 이어지는 매끄러운 스토리에 익숙하다. 하지만 주역은 인간의 천변만화를 드러내는 다양한 해석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갖가지 이야기들이 중층적으로 얘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역의 구성 또한 주역을 변화의 책이라고 부르는 이유 중 하나다. 자 그럼 문왕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육사의 효사를 보도록 하자. 


육사는 강건한 양들을 유순한 덕목으로 대처했다.


육사는 매우 위험하고도 힘든 상황이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강건한 양들을 음유한 음 혼자서 감당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육사가 나머지 양효들과 맺는 관계가 뭔가 남다르다. 고양이 앞에 쥐처럼 있는 힘을 다해 발악하지 않는다. 구삼의 효사에서처럼 반목하는 것도 아니다. 육사는 부드럽고 겸손한 음의 덕성으로 양에게 대처하고 있다. 


문왕이 유리옥에 갇혔을 때를 보자. 그때 문왕은 육사와 같이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문왕은 폭력으로 주에게 대항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이 환란이 끝날 것임을 믿고 그 이후를 대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행했다. 세상의 이치를 담은 64괘를 만든 게 바로 그것이다. 즉, 문왕은 기다림의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낸 것이 아니라 64괘라는 자신의 처지에 맞는 ‘소축’을 이룩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그 아들 무왕은 장대비가 대지를 휩쓸 듯이 폭군 주를 멸하고 천자의 자리에 오르는 ‘대축(大畜)’을 이룩할 수 있었다. 

九五 有孚 孿如 富以其隣(구오 유부 연여 부이기린)
구오는 믿음을 두느니라, 이끌어서 부를 그 이웃으로써 하도다.

象曰 有孚攣如 不獨富也(단왈 유부연여 부독부야)
상전에 이르길 유부연여는 홀로 부하지 않음이라.


부를 함께 누려~~


구양이 다섯 번째에 있어서 구오이다. 주역에서는 5효를 인군의 자리라고 말한다. 풍천소축괘에서는 육사에 비해서 그 비중이 적지만 어찌하였든 풍천소축괘의 인군은 구오다. 구오는 축(쌓음)이 끝날 무렵이다. 믿음을 두고 신하와 백성들을 이끄니 나라가 저절로 부강해진다. 그런데 만약 구오가 이 부를 혼자서 누리려고 한다면 흉하다. 함께한 고생한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 단전에서 ‘健而巽 剛中而志行 乃亨(건이손 강중이지행 내형)’이라고 했는데 구이는 내괘의 중을 얻었고 구오는 외괘의 중을 얻어서 내외적으로 강하여 자기 뜻이 세상에서 행해진다는 말이다.  

上九 卽雨卽處 尙德 載 婦 貞 厲 月幾望 君子 征 凶(상구 기우기처 상덕 재 부 정 려 월기망 군자 정 흉)
상구는 이미 비 오고 이미 그침은 덕을 숭상하여 가득함이니, 지어미가 바르게만 하면 위태하리라. 달이 거의 보름이니 군자가 가면 흉하리라.

上曰 卽雨卽處 德 積載也(상왈 기우기처 덕 적재야) 
상전에 이르길 기우기처는 덕이 쌓여서 가득 참이요.
君子征凶 有所疑也
군자정흉은 의심할 바가 있음이라.

구양이 맨 위에 있어서 상구다. 괘사에서는 밀운불우라고 해서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효사에서는 상구에 이르면 드디어 비가 온다. 세상을 타들어 가게 했던 주왕의 폭정이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아직 세상이 안정된 것은 아니다. 비 온 뒤 땅이 단단하게 굳기 전까지는 흙탕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직 주왕을 달처럼 우러러보고 문왕을 적대시하는 소인배들이 남아 있다.(月幾望) 이때 문왕(부 : 婦)이 시세(時勢)를 고려하지 않고 일을 너무 곧이곧대로(貞) 처리한다면 반발을 살 수도 있다. 충분히 심사숙고하고 사리에 맞게 행동해서 대업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것이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목숨이 날아가는 무도한 세상. 세상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주왕에 맞서거나 깊은 곳으로 은거했다. 하지만 문왕은 그 혼란의 한가운데서도 꿋꿋하게 참고 견뎠다. 남들보다 문왕의 힘이 남달리 강해서였을까? 아니면 지략이 뛰어나서? 둘 다 틀린 건 아니지만 진정 문왕을 살린 건 다른 데 있었다. 그 해답이 담겨 있는 게 바로 ‘풍천소축’괘이다. 


외유내강한 괘, 풍천소축


외괘인 손괘는 겸손함과 유연함, 내괘인 건괘는 강건함을 나타낸다. 문왕은 외부로는 겸손과 하심(下心)으로 주왕을 위시한 적대자들을 대함으로써 자신을 지켰다. 그리고 내부로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언제 올지 모를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데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 덕분에 문왕은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의 덕을 천하에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풍천소축의 지혜가 사라진 지 오래다. 겉으로는 강하고 쎈 척하지만 속으로는 인정욕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이건 내강외유도 아니다. 겉으로는 너무도 강해 보이는데 속은 유리구슬처럼 연약하다. 그러니 다른 양강한 것들과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고집과 자만, 상처만 커져간다. 게다가 성급한 성과주의 때문에 무조건 ‘대축’을 외치기도 한다. 그런데 문왕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 ‘소축’과 ‘대축’은 단순히 크기로만 환원될 수 없다. 스스로의 능력과 자신을 둘러싼 배치 다시 말해 '시절인연'에 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는 것이다. 문왕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세밀하게 주시했고 그 상황에 맞도록 풍천소축으로 행동했다. 하여 풍천소축의 문왕을 보여주는 아바타다.       
 


곰진(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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