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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TER IS COMING - 가을의 끝자락, 술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0. 15.

가을과 겨울 사이, 술월



가을의 끝자락 술월(戌月)입니다. 가을은 신(申)·유(酉)·술(戌) 세 지지(地支)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과 유는 가을의 성격을 나타내는 금()의 기운을 가진 지지이고, 술을 가을과 겨울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토의 기운을 가진 지지이죠. 그러니까 술토는 수렴하고 갈무리하는 금기운을 가진 가을과 차가운 수(水)기운이 지배하는 겨울의 사이에 있는 추수가 끝난 황량한 땅을 의미합니다.


술토는 추수가 끝난 황량한 땅, 사막, 평야로 상징됩니다.



의미로 풀어본 술토


(戌)은 개를 상징합니다. 개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야생동물 가운데 가장 먼저 가축이 되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개는 소나 말처럼 실생활에 큰 도움을 주는 동물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른 가축들은 농사일을 돕거나 사람이 먼 거리를 갈 때 운송수단으로 이용하지만, 개는 양지바른 곳에 배 깔고 누워있는 것 말고는 딱히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죠. 그래서 ‘개 팔자는 상팔자’라는 말이 있나 봅니다. 


우리의 계절이 왔다!!


하지만 개가 무위도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는 집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합니다. 개를 뜻하는 한자 술(戌)은 칼(丿)과 창(戈)을 들고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보초서는 사람을 그렸습니다. 술(戌)은 무(戊)자와 일(一)자가 합쳐진 글자로도 보는데, 창(戊)으로 하나밖에 없는 주인(一)을 지킨다는 의미가 있죠. 개는 공교롭게도 술시(19:30~21:30)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야행성 동물이기 때문에 과거에는 밤에 출몰하는 산짐승이나 밤손님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더불어 민간신화에서는 개가 귀신이나 사기(邪氣)를 쫓아내는 영물로 나오죠.


『연해자평』에서는 술(戌)을 멸(滅)로 보았습니다. 술월을 만물이 결실을 이룬 다음에 소멸하는 시기로 보았죠. 지난달 유월(酉)에 알맹이와 쭉정이가 판가름 났다면, 이달 술월에는 알맹이는 내년을 준비하기 위해 창고에 저장되고 쭉정이는 거름으로 사용되거나 땔감으로 불태워져서 사라지게 됩니다. 『오행대의』에서도 술(戌)을 멸하는 것 혹은 죽이는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사주명리로 본 술토


술은 개를 상징한다. 개는 인간과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동물로 잘 순응하고 인내심이 많으며 충직하다. 그러나 별 볼일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잘 짖고 떠들지만 그만큼의 실속을 얻지 못하는 것도 특징이다. 그래서 술이 사주에 있는 사람은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개처럼 웅크리고 지내야 하는 세월, 때로는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고 짖어 대기만 하는 세월을 왕래하기도 한다. 책임감이 강하고 낙천적인 성격도 술의 특징이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충성을 다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냉정하고 못되게 구는 성격도 가지고 있다. 술은 사주명리에서 메마른 땅, 들판, 사막 등을 상징하며 명예살에 배속된다.


─ 갑자서당 183쪽


58년 개띠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연도에 다른 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많지만 우리나라에서 58년 개띠는 다른 띠와는 다른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58년 개띠는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의 시기에 태어나서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세대로 유독 사건과 사고(?)가 많았지만, 끈기 있고 낙천적인 성격 덕분에 지금은 각계각층에서 리더나 멘토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58년 개띠만 아니라 다른 개띠들도 덩달아 부지런하고 활동력 강한 이미지가 있죠. 그런데 사주에서는 술토를 추수가 끝난 땅으로 실속이 없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럼 실제 사주에서는 술토가 어떻게 해석되는지 함께 볼까요? 병화 일간의 남자 주인공입니다. 사주원국(사주팔자)을 보니 술토가 일지(一地)에 위치하고 있네요. 병화 일간에게 술토는 식상(食傷)이죠. 식상은 끼, 재주, 먹을 것, 말재간, 성욕 등등을 나타냅니다. 여자에게는 자식에 해당하는 자리죠. 



그런데 술토가 위치한 자리가 위태로워 보이네요. 주위에 위치한 지지의 다른 오행들 때문에 술토가 남아나질 않습니다. 먼저 시지(時地)에 위치한 오화(午火)와 합을 해서 화(火)로 변합니다.(오+술=화) 그리고 월지(月地)와 연지(年地)의 신·유가 합을 해서 금이 됩니다.(신+유+술=금). 참고로 사주에서는 가을을 상징하는 세 지지 신·유·술이 모여서 금의 기운으로 변하는 것을 방합(方合)이라고 합니다. 봄의 인묘진(목), 여름의 사오미(화), 겨울의 해자축(수)도 마찬가지로 각 계절에 해당하는 오행으로 방합(方合)하죠.


꼭 사주원국에 있지 않아도 대운, 연운, 월운, 일운으로 합과 충을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가령, 사주에 묘목(卯木)이 있다면 이번 달 월운인 술토와 합을 해서 목의 기운이 화로 변합니다.(묘+술=화) 그리고 사주에 진토(辰土)가 있다면 월운인 술토와 충(冲)을 해서 다양한 변화수가 발생하게 되죠.(진술충:辰戌沖). 대운, 세운, 일운도 마찬가지로 작용하지만 영향력은 십년을 지배하는 대운-> 일 년을 지배하는 연운-> 한 달을 지배하는 월운-> 하루를 지배하는 일운의 식으로 나타납니다.


사주의 주인공은 식상에 해당하는 술토가 화와 금으로 변하다 보니 식상의 기운이 약합니다. 사주에 금의 기운이 강한 탓에 일도 잘하고 성과도 잘 내지만, 식상이 약한 탓인지 말이 굉장히 느려서 주위의 원성(?)을 사고 있죠.^^;;; 이번 술월에는 어떨지 유심히 지켜봐야겠습니다. 사주에서 진술축미(辰戌丑未)는 명예살에 해당합니다.(명예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름의 끝자락, 휴가의 계절 미월(未月)'을 참고하세요.) 물상으로 술토를 살펴보면 갑술은 ‘황야의 사자’, 병술은 ‘휴식하는 지도자’, 무술은 ‘황야의 철학자’, 경술은 ‘황야의 석탑’, 임술은 ‘사막의 웅덩이’를 나타냅니다.(자세한 사항은 『六甲』을 참고하세요.)



술월을 보내는 방법


술월의 절기로는 한로(寒露)와 상강(霜降)이 있습니다. 한로는 술월이 시작하는 날로 올해는 10월 8일이 한로였습니다. 『갑자서당』에서는 한(寒)자를 '춥다’는 뜻을 담고 있는 글자로 보고, 이 글자는 사람이 집에서 풀더미를 깔아 밑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야 할 만큼 날씨가 추움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딱 요즘 날씨를 말하는 것 같네요. 로(露)자는 이슬을 뜻합니다. 즉, 한로는 냉기로 똘똘 뭉친 찬 이슬이 맺히는 시기라는 뜻이죠. 


이제 보름가량 남은 상강(10월 23일)이 되면 찬 이슬은 숙살지기(肅殺之氣)를 가득 품고 있는 찬 서리로 바뀝니다. 만물은 찬 서리를 맞고 죽음에 들어서죠. 서리는 “수증기가 차가운 기운을 만나 결빙되어 생기는 현상인데 무언가를 죽이고 끊어버리는 금의 기운을”(갑자서당 261쪽) 강하게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술월은 그야말로 죽음의 계절입니다. 속담에는 ‘한로가 지나면 제비도 강남으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름 철새인 제비가 따뜻한 남쪽으로 떠나고, 찬바람을 타고 기러기 같은 겨울 철새들이 하늘을 장악하죠. 하늘에서는 새들이 처량하게 울고, 해는 무척 짧아집니다. 여름내 푸르던 만물은 음울한 회색빛으로 시들어가죠. 


환절기답게 일교차가 무척 커서 몸이 쉽게 피로하고 감기에 걸리기 쉽습니다. 마음도 굉장히 쓸쓸하고 우울해지죠. 흔히 ‘가을 탄다’라고 말하는 증상들입니다. 병원에서는 그것을 계절성 우울증, 일명 ‘가을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을 우울증’은 질병이나 이상 증상이 아닙니다. 술월에 펼쳐지는 천지의 운기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증상입니다. 만물이 소멸해가는 데 자연과 연동되어 있는 인간이 즐거울 리 없죠. 오행에서도 가을을 상징하는 금의 성질은 근심(憂:근심할 우)입니다. 


술월이 가면 곧 겨울이 옵니다!!


그래서 괜히 병이라고 케어해주기를(케어해주자나!) 바라기보다 오히려 가을을 만끽하는 게 좋은 방법입니다. 다음 생을 위해 장렬히 소멸하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사하고(추석이 그런 날이죠), 그 결과물로 남은 풍성한 오곡백과를 마음껏 드세요. 그리고 이제 곧 단풍이 들 테니 단풍놀이도 가고, 가을의 제철음식인 추어탕(鰍魚湯)을 먹으면서 몸도 마음도 훈훈한 술월을 보내세요~ 곧, 겨울이 몰려옵니다. WINTER IS COMING!



곰진(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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