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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상극(相克) 느낌아니까! 후천팔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9. 13.

기다림, 그 가슴 뛰는 마법_후천편



지난 시간에는 선천의 세계를 살펴보았다. 이제 후천의 세계와 만날 차례다. 선천과 후천이란 용어가 낯설겠지만, 어려울 것 없으니 미리부터 쫄지 마시라! 쉽게 말해서 선천은 봄과 여름이다. 시작하고 성장하는 것. 이것이 선천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시작과 성장만 있다면 지구는 폭발하고 말 것이다.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하늘을 향해서 끝없이 자라면서 양적으로 쉼 없이 팽창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우주는 어리석지 않다. 봄, 여름과 함께 가을, 겨울을 만들었다. 때마침 지금은 완연한 가을이다. 집 앞의 나무도 이제 성장을 멈추고 낙엽을 떨어뜨리고 씨앗을 맺는다.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렇듯 만물이 외적으로 발산하다가 내적으로 갈무리하는 때가 바로 ‘후천의 시기’다. 지금, 천지에 가득한 후천의 기운을 만끽하면서 후천팔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우주의 순환 선천후천. 봄,여름,가을,겨울



내공의 왕, 문왕


우리 같은 범인의 눈에는 잘 포착되지 않지만, 후천의 원리는 자연에 내재해 있다. 그런데 후천의 원리를 파악하고 괘로 형상화한 눈썰미 좋은 성인이 있으니 바로 문왕이다.('팔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우주의 DNA 혹은 아바타, 팔괘 - 선천편'을 참고하세요.) 문왕은 어떤 사람인가.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고도 죽지 않고 『사기』를 썼다. 사마천은 이런 자신을 주나라 문왕에 빗대었다. 사실 주나라 문왕이야말로 치욕을 견뎌야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은나라 백성들은 주왕을 제쳐놓고 문왕을 성인으로 숭배하였다. 주왕은 이를 시기하여 문왕을 유리옥에 가둬버린다. 문왕은 유리옥(羑里獄)에 갇혔지만 원한에 사무치지 않고 하늘의 이치를 궁구한다. 사마천도 자신의 치욕에 분노하기보다 하늘의 이치를 담은 역사서를 쓰는데 투신했다. 위대한 글은 치욕 속에서 태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후천은 수렴과 응축의 과정인 가을과 겨울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만물에게 가을과 겨울은 시련의 시기이다. 봄·여름과 달리 가을은 알곡은 수확하고 쭉정이는 버려지는 살생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만물은 가을의 시련을 겪어야만 참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문왕도 다르지 않았다. 문왕도 유리옥이라는 치욕을 마주하고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문왕은 자신의 상황을 시련이 아니라 하늘의 이치를 궁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는 ‘내공’을 쌓는 기회로 삼았다. 언제 풀려날지 모르는 여차하면 목숨을 보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기다린 인내의 왕! 내공의 왕! 그리고 드디어 문왕은 ‘후천팔괘’라는 결실을 얻었다.  



혁명은 기다림이다


문왕은 마침내 유리옥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일흔 살 노인 강태공을 만난다. 그런데 이 늙은이가 보통 요물(!)이 아니다. 강태공은 매일같이 강가에서 낚시했다. 낚시에 미쳐서 집안을 내팽개쳤으니 부인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의문은 강태공의 낚시바늘에는 미끼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물고기를 잡을 심산이 아니었던 게다. 그럼 도대체 왜? 강태공은 가짜 낚시를 하면서 자신과 함께 천하를 도모할 대인을 기다렸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주나라 문왕을 만났다. 기다림의 내공에서는 강태공도 문왕 못지않았던 것. 주나라 문왕이 강태공을 강가에서 처음 만난 장면은 극적이다.


주나라 문왕이 묻는다. “어떻게 민심을 키우고 나라를 다스려야, 천하의 만민이 귀속하여 천하를 얻을 수 있습니까?” 강태공이 대답하길, “천하는 군주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천하 만물의 천하입니다.(天下非一人天下 乃天下之天下也.)단 한 번의 대화로 두 고수는 서로 알아봤다. 강태공이 말한 ‘천하지천하(天下之天下)’야말로 문왕이 혼신을 다한 팔괘의 결정적 사유이기 때문이다. 우주 변화의 원리를 모사한 복희씨의 선천팔괘 그리고 선천팔괘를 토대로 만든 문왕의 후천팔괘는 만물의 이치가 담긴 ‘천하지천하(天下之天下)’다. 훗날 공자는 다음과 같이 선천과 후천을 설명한다.


무릇 대인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며, 일월과 더불어 그 밝음을 합하며, 사시와 더불어 그 차례를 합하며, 귀신과 더불어 그 길하고 흉함을 합한다. 따라서 하늘보다 앞서 해도 하늘을 어기지 않으며, 하늘을 뒤따라 해도 하늘을 받드나니, 하늘도 또한 어기지 아니할진대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며 하물며 귀신에 있어서랴!(夫大人者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 先天而天弗違 後天而奉天時 天且弗違 而況於人乎 況於鬼神乎.)


─ 『주역, 건괘문언전, 九五

 

선천, 후천 개념이 『주역』에 처음으로 명시된 문장이다. 대인은 천지, 일월, 사시, 귀신 등과 더불어 덕, 밝음, 차례, 길흉에 부합하게 행동한다. 그렇게 되면 하늘보다 앞서 해도(선천) 하늘을 어기지 않는다.(先天而天弗違) 그리고 하늘을 뒤따라 해도(후천) 하늘의 때를 받는다.(後天而奉天時) 즉, 대인이란 하늘의 이치와 어긋나지 않는 존재를 말한다.


문왕과 강태공은 모두 대인이었다. 문왕이 유리옥에서 겪었던 인내의 시간. 강태공이 강가에서 보낸 숱한 세월. 그것은 모두 천시(天時)를 내다본 두 사람의 지혜였다. 훗날 강태공은 문왕의 아들 무왕을 도와 폭군 주왕을 몰아내고 은나라를 무너뜨린다. BC 1122년의 일이다. 궁금한 점은 왜 문왕이 직접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냐는 점이다. 백성들의 신망, 강태공의 지략 등. 문왕이 스스로 거사를 일으키고 천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문왕은 직감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을. 천명은 아직 폭군 주왕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문왕은 몰락하는 시대를 바라보고, 새로운 시대의 터전을 닦으면서 차분히 기다렸다. 문왕에게 혁명은 기다림이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하늘을 기다렸던 문왕.

 

우리는 시련과 기다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그마한 고난에도 쉽게 좌절하고, 조급하게 행동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우리가 낳고 키우는 선천의 기운에만 치중하고, 고난과 기다림으로 만물을 성숙시키는 후천의 원리는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다양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욕심을 부려서 많은 일을 벌이지만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하거나, 자기가 좋아하고 쉬운 일만 하고 어려운 일은 회피하기,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부모님께 의지하는 캥거루족 등. 모두 선천의 기운만 쓰는 경우다. 이렇게 편향된 기운만 쓴다면 자연히 우주의 원리에도 어긋나고, 삶에 대한 어떤 내공도 기를 수 없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마무리하지 못하는 자신, 홈그라운드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자신을 보면서 자괴감을 느끼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나를 살리는 기운이 나를 죽이는 것이다. 반대로 나를 극(相克)하는 기운. 즉, 후천의 기운은 나를 살린다. 이 모순 가득한 가슴 뛰는 마법을 문왕의 후천팔괘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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