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몸과 마음은 하나다! 몸과 마음의 담을 허물어주는 간사(間使)

내 마음의 길 찾기, 간사(間使)



<궁금한 이야기 Y>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이 프로그램엔 갖가지 인생들이 등장한다. 사람을 죽인 인생, 억울한 누명을 쓴 인생, 장애인을 등쳐먹고 사는 인생, 다단계 약장수, 탈옥범, 기타 등등의 인생들. 하여,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런 거 보고 나면 잠이 와요?”(북드라망 편집자 곰진) 난... 잠이 잘 온다.(--;) 그래, 인생사 뭐 있겠나. 이런 인생 저런 인생들이 모여서 사는 것이 이 세상인 것을.^^ 가끔 이런 생각도 한다. 그 사람들의 마음이 우리들의 마음이라는 생각. 우리 안의 어지러운 마음이 시절인연을 만나 저렇게 펼쳐지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 그래서 그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재밌다.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지난주엔 특이한 할머니 한 분이 등장했다. 인천 숭의오거리에서 한 달째 노숙하고 있다는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밤이면 박스를 모으고, 문이 열린 빌딩에서 새우잠을 잔다. 낮엔 한없이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다. 마치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할머니. 주변에선 할머니가 한 달 전쯤 그 동네에 나타났다고 했다. 취재진은 할머니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완강했다. “가! 가라고! 내 것 다 빼앗아 가놓고 뭘! 당신하고 할 이야기 없다고!”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저 말들을 쏟아내는 할머니. 세상은 할머니로부터 무엇을 빼앗아 간 것일까?


할머니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할머니는 자식을 못 낳는 여자였다. 그것 때문에 남편과 시댁의 모진 구박을 받아야 했다. 구박에 견디다 못한 할머니는 종교에 매달렸다. 기도원에 들어가고 수도원을 전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토록 기다리던 자식이 생겼다. 딸을 낳은 것이다. 할머니는 그 딸을 애지중지 키웠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들어간 딸은 집을 뛰쳐나갔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딸을 찾기 위해 몇 년을 떠돌아다니다가 수도원으로 들어가 기도만 드렸다. 할머니의 남편은 2년째 돌아오지 않는 할머니를 기다리다 집을 떠났다. 이후 할머니의 인생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할머니의 마음에 무언가 큰 벽이 생긴 것만은 분명했다. 취재진의 도움으로 그토록 기다리던 딸을 찾았지만 할머니의 반응은 냉담했다. 딸 또한 할머니에게 왜 그렇게 사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할머니는 그때마다 가슴을 두드리고 깊은 한숨을 몰아쉰다. 


딸에 의하면 할머니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 할머니와 딸은 이미 4년 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딸은 할머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그 길로 할머니의 돈을 가로채 잠적해버렸다. 그 돈으로 딸은 자신의 빚을 갚고 할머니를 외면했다. 1년 뒤, 할머니는 병원을 나와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상증세는 조만간 다시 시작됐다. 갈 곳이 없는 할머니를 받아준 교회에서 행패를 부리고 기물을 때려 부쉈다. 그리곤 지금 숭의오거리를 전전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거기서 대체 누구를, 무엇을 그토록 기다리고 있는 걸까. 할머니의 병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오늘은 할머니의 병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내 마음의 담(痰)


마음의 병. 여기엔 약도 없다. 그것을 푸는 열쇠는 오직 그 마음에 있을 뿐이다. 하여, 과거의 지식인들은 자신의 삶을 구원하는 비전으로 마음 심(心), 이 한 글자를 택했다. 유교와 불교, 도교를 접목시킨 성리학자들은 심통성정(心統性情)이라는 말로 그들의 뜻을 드러냈다. 자연으로부터 받은 본성(性)과 감정(情)은 마음(心)이 통제한다. 사실 통(統)이라는 글자엔 큰 줄기, 실마리라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들의 본성과 감정을 알아가는 줄기와 실마리가 마음에 있다는 말이다. 그 마음의 활동을 남김없이 알게 될 때 마음은 활연관통(豁然貫通)하게 된다. 툭 터져서 시원하고(豁然) 어떤 것과도 통하게(貫通)된 상태. 그것이 마음의 본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마음이 막히고 통하지 않게 될 때 마음의 병이 생긴다. 


아우... 심통나 감정을 제어할 수가 없어!! 차...참아...


할머니의 병은 마음의 병이다. 누구와도 통하지 않는 상태. 이 마음의 통증을 한의학에서는 심통(心痛)이라고 부른다. 마음(心)이 본래 모습을 잃어 아프게 됐다는 것이다. 이 말을 우리는 공공연하게 쓴다. 마음이 불편하고 심기가 틀어졌을 때 심통이 났다고 하지 않는가. 이때 어김없이 나타나는 증상이 있다. 입이 한 됫박은 앞으로 나오고 얼굴이 오만상을 다 하게 된다. 할머니의 얼굴도 이 상태였다. 심통이 잔뜩 나 있는 얼굴. 한 가지 더. 심통이 나면 가슴이 답답하고 갑자기 인사불성이 되거나 열이 오르락내리락하게 된다. 한마디로 종잡을 수가 없게 된다는 것. 마음이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 이때 마음에 통증이 발생한다. 할머니가 가슴을 두드리며 답답해했던 것도 이것 때문일 거다.


칠정(七情)이란 기뻐하는 것(喜), 성내는 것(怒), 근심하는 것(憂), 생각하는 것(思), 슬퍼하는 것(悲), 놀라는 것(驚), 무서워하는 것(恐)을 말한다. 대개 지나치게 기뻐하면 기(氣)가 흩어지고, 지나치게 성내면 기가 올라가며, 지나치게 근심하면 기가 가라앉고, 지나치게 생각하면 기가 뭉치며, 지나치게 슬퍼하면 기가 소진되고, 지나치게 놀라면 기가 어지러워지며, 지나치게 무서워하면 기가 내려간다. 그 가운데서 육정(六情)은 모두 심기(心氣)를 울결시키므로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기뻐하는 것만은 기를 흩어지게 하므로 육정이 울결된 것을 흩어지게 하여 능히 통증을 멎게 할 수 있다.


─『동의보감』,「외형·흉」, 법인문화사, 2012, p.744


오랫동안 기쁨 없이 살아온 인생. 할머니의 통증은 육정(六情)으로 인해 심기(心氣)가 뭉쳐 생긴 아픔이다. 이때 듣는 약은 기쁨뿐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그런 인생을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과거의 의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과거 여창주라는 의사가 있었다. 그를 찾아온 두 명의 환자들 또한 할머니와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었다. 첫 번째 환자는 발작이 심했다. 발작할 때면 누구에게 쫓기는 것처럼 달려가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다. 더구나 사람들과 말을 할 때면 스스로 뛰어나고 지체 높은 사람인 척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할머니도 그랬다. 할머니는 취재진에게 쫓기듯 도로를 횡단하며 달아났다. 스스로 하느님에게 비밀을 전해 받았다고도 했다. 그게 곧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 환자는 노인이었다. 그는 호수 한복판에 있는 절에 머물고 있었다. 노인은 밥을 먹을 때면 화로 속의 재를 밥과 섞어서 먹었다. 또 밥을 먹을 때면 언제나 웅얼거리면서 남 욕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할머니의 마음도 그 노인과 다르지 않다. 세상은 나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그럼 여창주는 이들을 어떻게 치료했을까. 여창주는 토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 환자는 “즉시 구토하는 약을 투여하니 담연(痰涎)을 세숫대야 하나 만큼 토해내었고”, 두 번째 환자는 “담(痰)을 4~5되 토하게 하니 곧 종일 깊이 자다가 깨어나자 병이 다 없어졌다.”(『명의류안』) 결국, 담(痰)이 그들을 아프게 했던 것이다. 


(痰)은 불 때문에 생긴다. 글자만 봐도 대충 짐작이 된다. 몸 안의 불(火)이 치솟아 화염(炎)으로 번진 것. 그게 담(痰)이다. 담은 본래 진액(津液)이다. 몸 곳곳을 순환하면서 땀을 만들고 관절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물이 진액이다. 담은 이 진액이 정체되고 뭉쳐서 생긴 덩어리다. 이 담(痰)은 몸 안의 통로들을 막아 아프게 만든다. 담으로 인해 막혀버린 통로들에서는 온갖 증상들이 출현한다. 간추려서 살펴보자.


혹은 치아와 볼이 근질거리고 아프며, (…) 혹은 트림이 나고 신물이 올라오며, (…) 혹은 꿈에 괴상한 형상들이 나타나며, (…) 혹은 사지의 뼈마디가 쑤시는데 정해진 곳이 없고, (…) 혹은 온몸에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경우도 있으며, (…) 혹은 가슴과 배 사이에 두 기(氣)가 서로 얽힌 것 같기도 하고, (…) 혹은 정신을 잃고 전광증(癲狂症:미친증)이 나타나기도 하며, (…) 혹은 명치 밑이 정충(怔冲:가슴이 몹시 두근거리는 증상)과 경계(警悸: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로 두근거리며 누가 잡으러 오는 것 같이 무서워하며 (…) 힘줄이 땅기어 다리를 절기도 한다. 이와 같이 안팎으로 생기는 질병이 비단 백 가지에 그치지 않는데, 모두가 담(痰)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다.


─『동의보감』,「내경·담음」, 법인문화사, 2012, p.365-366


간추린 것만 이만큼이다. ‘혹은’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증상들. 그만큼 몸 이곳저곳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헌데, 이 담(痰)에 대한 또 다른 정의 하나가 있다. “포락(包絡)에 잠복해 있다가 기(氣)를 따라 위로 떠올라 폐(肺)로 들어가서 막고 있으면서 기침할 때 발동하는 것이 담(痰)이다.”(『동의보감』) 가끔 기침을 하다가 튀어나오는 가래 비슷한 게 담(痰)의 실체다. 이것들이 몸의 통로를 막고 있다고 생각하니 좀 거시기하다. 그런데 이게 기(氣)를 따라 올라가지도 않고 포락(包絡)에 머물러 있다면? 곧 할머니와 같은 증상을 만들어낸다. 하여, 여창주는 먼저 그 담을 제거하는 치료를 했던 것이다. 그렇다. 심통의 원인, 할머니의 마음병, 그것은 포락에 몰려 있는 담(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 담이 활연관통하려는 마음의 문을 다 닫아걸게 했다. 아니 마음을 닫자 마음의 담이 생겼다. 어떻게 이런 증상이 나타난 것일까.



심포와 숨구멍


포락(包絡)은 심포락(心包絡)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보통은 심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정확한 명칭은 심포락(心包絡)이다. 이 이름은 심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단서다. 일단 심(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심장(心臟)이다. 포(包)는 그것을 감싸고 있다는 뜻이다. 글자를 풀어보면 명확하게 이미지가 그려진다. 포(包)는 감싼다는 뜻의 포(勹)와 아직 팔이 생기지 않은 아이를 상형한 사(巳)가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다. 생명을 자궁 속에 품고 있는 형상이 포(包)인 것. 하여, 동양에선 여성의 자궁을 여자포(女子胞)라고 불렀다. 여자의 몸이 생명의 산실이라는 뜻이다. 심포(心包)는 말 그대로 심(心)을 품고 있다는 의미다. “모양이 마치 위로 향한 술잔과 같으며 심(心)이 그 속에 위치한다.”(『의관. 내경십이관론』)


보다시피 심포는 그릇이다. 심(心)이라는 생명력을 담아 보호하고 있는 그릇. 이 때문에 심포는 계속해서 담으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릇이기 때문이다. 심포는 심(心)만 담는 것이 아니라 심(心)이 주관하는 우리들의 감정, 몸 안에서 생긴 담(痰)도 담아버린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통(通)해야 하는데 너무 담다 보니 통할 구멍 하나 없는 쇠철방이 되어버린 것. 그러면 곧바로 심(心)에 문제가 생긴다. 심(心)은 몸의 화(火)를 담당한다. 화(火)는 밝게 보는 힘이자 따듯함, 양기의 대명사다. 이 밝은 화(火)의 기운으로 만물을 명확하게 판단하고 따듯하게 품는다. 태양을 떠올려보시라. 태양이 있을 때의 그 밝음과 따스함을. 그런데 이 화기(火氣)가 통하지 못하고 막혀버리면 물이 고여 썩는 것과 같이 탁해진다. 그러면 본래의 화기(火氣)가 가지고 있는 성질을 잃어버린다. 따듯함이 아니라 따갑고 뜨겁다. 이 뜨거움이 혈맥을 타고 온몸을 돌다 진액을 조리고 담(痰)을 만든다. “화(火)는 담(痰)의 근본이며, 담(痰)은 화(火)의 상태가 겉으로 나타난 것이다.”(『동의보감』) 결국,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할머니는 이 악순환을 알고 있는 듯했다. 두툼한 약봉지를 꺼내더니 먹어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되는 약이라며 약봉지를 내던졌다. 그건 정신과에서 주는 안정제였다. 그것으로 꽉 틀어 막힌 쇠철방을 부술 순 없다. 그저 잠시의 안정을 가져다줄 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할머니도 담을 몇 되나 토해내고 나면 괜찮아질까. 모를 일이다. 그럼 우리가 공부하는 경혈에서는 이런 증상에 어떻게 대처할까. 급선무는 심포를 통하게 하는 것에 있다. 그래야 심(心)에 몰려 있는 화기(火氣) 또한 빠진다. 여기서 락(絡)이 등장한다. 락(絡)은 잇고 묶고 포괄한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심포는 심(心)과 횡격막, 그리고 폐(肺)를 연결하고 잇는다. 


심포락(心包絡)은 심장 아래 횡격막 위에 있는데, 격막 아래로 비스듬히 드리워져 횡격막과 서로 붙어 있다. 그리고 누런 기름막이 넓게 싸고 있는 것이 심장이다. 넓은 기름막의 바깥쪽에는 실 같은 가는 힘줄과 막이 있어서 심장과 폐장을 서로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심포락이다.


─『동의보감』,「외형·흉」, p.735-736


횡격막은 상초와 중초의 경계다. 상초엔 심폐가 있고 중초엔 비위(脾胃)가 자리 잡고 있다. 쉽게 명치 위쪽이 상초, 명치와 배꼽 사이가 중초, 배꼽 아래가 하초에 해당한다. 여기서 상초와 중초를 매개하고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심포다. 심포와 한 세트인 삼초(三焦)는 이 상중하초 전체를 감싸면서 연결하여 통하게 만든다. 즉, 심포와 삼초는 늘 통(通)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여, 심포락(心包絡)이라고 이름 붙였던 거다. 심포는 심(心)과 그 주변을 연결하면서 통하게 만들어주는 가교역할을 한다. 


수궐음심포경의 경락입니다.


경맥의 차원에서 보자면 심포경의 이름은 수궐음심포경(手厥陰心包經)이다. 손으로 흘러가는 궐음의 기운을 가진 경맥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궐음은 풍목(風木)의 기운이다. 풍목은 쉽게 봄바람이 불 때 나무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광경을 떠올리면 된다. 심포를 궐음에 배속한 것은 심포가 잘 막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궐음의 기운으로 그 막힌 곳을 늘 뚫어줘야 한다는 것. 이게 수궐음심포경이라는 이름에 담겨 있는 뜻이다. 그렇다. 할머니에게도 이 바람과 나무의 뚫는 힘이 필요하다. 이 힘을 이용해 심포에 숨구멍(?)부터 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심(心)에 몰려 있는 화기를 빼고 담(痰)도 빼낼 출구가 생긴다. 이 담(痰)을 덜어내지 않는 한 마음의 담 또한 허물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화기(火氣) 때문에 생긴다. 화기가 담(痰)을 만들고 그 담으로 인해 막혀버린 곳에서 다시 열이 발생하고 그게 또 화기를 만들어낸다. 몸이 화기, 즉 양기로 가득 차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고 누군가 옆에서 찌르기만 해도 기겁을 한다. 할머니의 상태가 바로 이 상태였다. 가슴에 맺혀 있는 그 화기를 해소할 곳이 없어서 그렇게 살아왔던 것. 할머니에겐 숨구멍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길은 지난해 보였다.



간사(間使), 길을 찾다


수궐음심포경의 혈자리들 가운데 정신질환에 효과를 발휘하는 혈(穴)은 간사(間使)다. 왜 이렇게 간사한(?)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일까. “간(間)은 틈을 말하며 사(使)는 명령을 수행하는 자를 말한다. 간사(間使)는 마치 임금과 재상이 함께 정치를 행하여 도(道)를 실행하는 것과 같다.”(『경락경혈』) 일단 간(間)은 간사혈의 위치 때문에 붙여진 글자다. 간사혈은 손바닥 쪽에 있는 손목주름에서 몸 쪽으로 3치 떨어진 곳에 있다. 주먹을 쥐면 두 힘줄이 튀어나오는데 그 사이가 바로 간사다. 과거의 사람들은 이 사이길로 귀신이 지나다닌다고 생각했다. 하여, 간사혈에 귀로(鬼路)라는 별명을 붙였다. <혈자리서당> 초창기에 봤듯이 귀(鬼)로 시작되는 별명을 가진 혈자리는 모두 13개다. 이들을 한데 묶어 십삼귀혈(인중,소상,은백,대릉,신맥,풍부,협거,승장,노궁,상성,회음,곡지,설하,+간사,후계)이라고 부른다. 이 귀혈들은 주로 정신질환을 고치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만큼 귀한 혈들인 셈이다.


(使)는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붙었다. 부연했듯이 이들은 임금과 재상을 뜻한다. 동양에서 정치(政治)는 하늘의 뜻을 대신한다는 의미였다. 주목해야 할 글자는 치(治)다. 치(治)는 물이 넘쳐흘러서 생기는 피해를 수습한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글자였다. 이후에는 물이 그렇듯이 남들이 꺼리는 곳까지 흘러가 그곳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의미로 확대됐다. 그렇기에 정치(政治)란 가장 낮은 곳을 가장 풍요롭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강의 하구가 가장 비옥한 땅이 되듯이 말이다. 임금과 신하는 그 명령, 자연의 순리를 지상의 문명사회에 펼쳐야 하는 임무를 짊어진 존재들이었다.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냈을 때 도(道)를 이룬 성인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간사는 바로 이런 뜻에서 만들어졌다. 몸의 군주인 심(心)과 그 심(心)을 호위하는 신하인 심포가 길(道)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 그러한 기능을 하는 곳. 여기가 간사혈이라는 의미다. 


간사혈은 담(痰)을 없애고 심기(心氣)를 안정시킨다. 또 구멍들을 열어 뭐든 고이지 않도록 만든다. 『동의보감』에서는 미친증이 나고, 땀이 나오지 않고, 갑자기 심통이 생기고, 큰 추위가 가슴에 맺혀 마른기침을 하면서 사지가 차가워졌을 때 간사혈에 뜸을 뜨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적었다. 몸의 상태는 마음과 별개가 아니다. 마음의 상태가 곧 몸의 상태로 드러난다. 우리 마음이 차갑고 안정되지 못하면 몸 곳곳이 뭉치고 맺혀서 아프다. 할머니의 마음도 그러했을 거다. 할머니의 마음은 얼어붙어 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딸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말라며 또 다시 잠적했다. 할머니는 갈 곳이 없어서 숭의오거리로 돌아와야 했다. 또 버스정류장에 앉았다. 무엇을, 누구를 기다릴까. 아직 내 마음은 그 미로를 꿰뚫을 힘이 없다. 다만, 봄바람이 불어오길 기대하고 있다. 마음이 길을 잃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간사혈을 누르며 생각해보자.


류시성(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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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사이다 2013.08.22 10:21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맘이 착잡하고 심란해지네요.
    감정이입이 너무 됐나봐요.
    이를 어째...

    • 북드라망 2013.08.22 10:33 신고 수정/삭제

      사이다님, 일단 간사혈을 누르면서 마음을 추스려보아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