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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동아시아 최초의 철학자 복희씨가 밝혀낸 우주의 비의, 하도(河圖)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8. 2.

하도(河圖), 수와 괘의 기원이 된 그림


주역서당 2회 포스팅에서는 하도의 원리를 살펴본다. 『주역』과 하도는 무슨 관련이 있기에, 하는 궁금증이 즉각 생겼을 것이니, 복희 신화를 먼저 읽어보도록 하자.


용마의 등에 새겨진 천지의 이치!


복희가 왕이 되었을 때 백성들이 황하 물가에 모여서 아우성을 쳤다. 군중을 헤치고 물가로 가 보니, 머리는 용이요 몸통은 말의 형상을 한 용마(龍馬)가 나왔는데, 용마의 등에 솟아 있는 선모(旋毛)의 무늬가 1에서 10까지 수를 나타내는 듯했다. 복희는 이 무늬를 보고 우주만물이 오직 1에서 10까지의 수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고, 이를 법하여 처음으로 팔괘의 획을 그었다.


황하에서 튀어나온 용마의 등에 새겨진 무늬가 바로 하도(河圖)라는 그림이다. 하도는 동양에서는 제법 유명한 단어이자 그림이다. 3회 포스팅에서는 낙서(洛書)에 대해 설명할 텐데, 하도와 낙서란 말에서 ‘도서(圖書)’란 낱말이 유래했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아두면 좋겠다. 하도는 『주역』이란 책을 구성하는 64개의 괘 중에서, 변치 않는 기본괘를 일컫는 ‘팔경괘(八經卦)’를 낳은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 하도는 어떻게 생긴 그림이며, 복희는 그것에서 무엇을 간파했고, 왜 팔괘를 그려서 그 이치를 널리 알리려 했을까. 적어도 7천~5천 년 전의 이야기이므로 이어지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약간의 상상력이 요청되지만, 결코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다. 동양에서 면면히 이어져 왔고 지금도 유효한 철학적 인식이 막 탄생하려던 그때로 돌아가 보려는 것이니, 호기심을 갖고 지켜보면 좋을 듯하다.


역사 속의 하도 - 제왕의 그릇


복희 신화는 이야기가 짧기도 하거니와, 용마의 출현만 걷어내고 나면 그리 신화적일 것도 없다. 복희처럼 전설적인 인물의 탄생과 왕위계승 같은 사건에는 반드시 이적이 일어나서 인물의 비범한 면모를 부각시키는 것이 신화의 문법이다. 복희는 사회적 변동기에 왕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생업에 종사해야 할 백성들이 군집해 있다는 것은 세상이 태평스럽지 않음을 짐작케 하는 암시다. 그러한 때, 복희는 지배계급이 신주처럼 떠받드는 어떤 그림의 상징적 의미를 직관적으로 간파한다. 그것은 1부터 10까지의 수를 나타낸 것이며, 그것은 세상의 이치를 고스란히 함축하고 있다! 자, 여기에 조금 리얼한 장면 하나를 배치해보자.


주강왕(周康王)이 왕위에 즉위하는 즉위대전(卽位大典)이 있을 때에 전당 안에는 각종 옥기(玉器)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하도’였다. …… 하도 밑에 낙서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고 한다. 하도와 낙서는 일종의 문물로서 제왕의 지위를 전위케 하는 일종의 보기(寶器)였다.


─ 주백곤, 『주역산책』(예문서원), 169쪽


위 인용문은 ‘하도(河圖)’란 말을 최초로 언급한 '상서(尙書)'의 기록을 설명하고 있다. 하도란 왕위 계승자가 즉위식에서 제왕의 증표로서 받는 보배로운 그릇의 이름인데, 그 밑에는 낙서란 글자도 새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상서와 동시대 문헌들에도 이와 유사한 의미를 띠는 구절들이 왕왕 발견된다. “봉황도 이르지 아니하고, 황하의 도(圖)도 나오지 않으니 나의 운명도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논어, 자한) “하河에서 도圖가 나오고, 낙洛에서 서書가 나왔으며, 지地에서 승황乘黃(산해경에 나오는 기묘한 동물)이 나왔다.”(관자, 소광) 같은 구절들이다. 요컨대, 하도는 왕이 천명을 받는 것과 같은 상서로운 일의 증표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왕의 증표가 되는 그릇에는 왜 하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을까.



상생의 이치를 담은 그림


복희는 선대의 왕들이 품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 “하도란 무엇인가?” “왕이 된 자에게는 왜 하도가 주어지는가?” 그리고 오래도록 궁구한 끝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냈다. “하도란 1에서 10까지 수로써 그려진 그림이다. 이 수들은 가히 천지자연과 인간사회를 두루 관통할 만한 이치를 담고 있다.”


천지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는 하도!


天이 1이고 地가 2이며, 天이 3이고 地가 4이며, 天이 5이고 地가 6이며, 天이 7이고 地가 8이며, 天이 9이고 地가 10이니, 天의 수(數)가 다섯이고 地의 數가 다섯이다. 다섯 자리가 서로 맞아서 각각 합함이 있는 바, 천의 수는 25이고 지의 수는 30이다. 그리하여 무릇 천지의 수가 55이니, 이것이 변화를 이루고 귀신(鬼神)을 행한다.


─ 『역전易傳』, [계사전繫辭傳]


하도에는 1에서 10까지의 수가 있다. 그 수들은 낳고 낳는 쉼없는 생성의 원리와 상생의 이치를 담고 있다. 1~5는 생하는 수라고 하여 ‘생수(生數)’, 6~10은 이루는 수라고 하여 ‘성수(成數)’라고 한다. 생수 가운데 홀수(1 3 5)는 양이며 천수(天數)이고, 짝수(2 4)는 음이며 지수(地數)이다. 이를 일러 삼천양지(參天兩地 : 3개의 천수와 2개의 지수라는 뜻)라고 한다. 삼천양지는 역에서 수가 변하고 분화하는 기본원리가 된다.


1과 2, 3과 4가 상하좌우 축을 이루고, 5가 중앙에 정립하고 나면 5를 매개로 성수가 생겨난다. 5는 1과 합하여 6을 이루고, 2와 합하여 7을, 3과 합하여 8을, 4와 합하여 9를, 스스로는 자생하여 10을 이룬다. 10은 다시 1~4를 낳고(10의 분화), 1~4는 5의 매개로 6~9를 이룬다. 이 같은 사이클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생수가 성수를 이루고, 성수는 생수를 낳는다. 


생수인 1,2,3,4 각각에 중앙의 수인 5를 더하면 성수 6,7,8,9가 이루어진다.


시작과 끝이 맞닿아 있는 무한한 순환이 끝없이 계속되는 가운데, 천수와 지수 사이에서도 음양의 화합이 발생한다. 천수는 하도의 안쪽 사이클이고, 지수는 바깥쪽 사이클을 그린다. 이들은 이웃한 수들보다 먼 관계다. 그래서 혼인이 가능하다. 천수와 지수의 혼인으로 출생하는 것이 오행(五行)이다. 1과 6은 水를, 2와 7은 火를, 3과 8은 木을, 4와 9는 金을 5와 10은 土를 낳는다. 그래서 하도의 원리 안에서 오행의 순서는 ‘수화목금토’가 된다. 하늘의 기운은 땅에서 유형의 물질을 이룬다. 수화목금토의 기운은 물, 불, 나무, 쇠, 흙으로 형과 질을 갖춘다. 양수를 낳는 것은 천이요, 음수를 낳는 것은 지다. 천지가 곧 음양이니 수의 생성과 변화는 음과 양이 합하고 화하는 이치를 따랐을 뿐이다.



복희씨의 자연철학


팔괘는 천과 지를 상징하는 건괘과 지괘로부터 생겨난다. 팔괘의 생성 또한 수와 마찬가지로 음양의 원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복희는 음양을 추상화하여 가로획을 그어 표현했다. 양은 꽉 찬 가로획( ㅡ : 양효라고 함)으로, 음은 끊어진 획( - - : 음효라고 함)으로 긋는다. 음양은 고요히 머무르는 법이 없다. 음과 양이 낳은 태양(노양), 태음(노음), 소양, 소음을 사상이라고 한다. 사상은 한 번의 전변을 더 거쳐서 팔괘를 낳는다. 팔괘의 이름은 ‘건태리진손감간곤’이다. 팔괘는 표현방식만 다를 뿐, 세상의 모든 수 1~10과 동일하다.


건괘(乾卦 : ☰)는 9다. 생수 중 양수 1, 3, 5를 모두 더하면 9가 된다. 건괘는 가로획 3개로 구성되니 순양의 기운이 가득찬 하늘이자 아버지다. 아버지가 있으면 어머니도 있기 마련이다. 지괘(地卦 : ☷)가 어머니에 해당한다. 숫자로는 6이다. 6은 생수 중 음수 2와 4를 더한 값이다. 요컨대 천지부모에 해당하는 건괘와 지괘는 생수로부터 형성된 괘이며, 이 두 괘와 짝한 9와 6은 각각 노양수(태양수), 노음수(태음수)라고 한다. 하나는 순양의 수이고, 하나는 순음의 수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천지부모가 있으니 그로부터 자연의 사물과 아들딸이 생겨난다. 손괘(巽卦 : ☴)는 바람(風)이고 장녀(長女)다. 음효가 맨 처음 나타났으므로 장녀라고 하는 것이다. 리괘(離卦 : ☲)는 불(火)이며 중녀(中女)다. 태괘(兌卦 : ☱)는 못(澤)이자 소녀(少女)가 된다. 진괘(震卦 : ☳)는 우레(雷)이며 장남이다. 감괘(坎卦 : ☵)는 물(水)이며 중남이고, 간괘(艮卦 : ☶)는 산이며 소남이다. 이렇게 하여 바람, 불, 못, 우레, 물, 산이 생겨나고 세 딸과 세 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천지부모의 수 9와 6이 나은 수가 7과 8이다. 아들괘가 7이고 딸괘가 8이다. 그 이치는 삼천양지에 따른 것이다. 아들괘(소양괘)의 효는 1양 2음으로 구성되므로, ‘1×3 + 2×2 = 7’이 된다. 딸괘(소음괘)의 효는 2양 1음으로 구성되니, ‘2×3 + 1×2 = 8’이 된다. 건괘와 지괘가 9와 6이 됨은 삼천양지법에 따라도 마찬가지 결과를 얻는다.



복희와 하도


하도는 바둑판 위에 놓인 흰돌과 검은돌도 아니고, 단순히 수를 고정시켜 놓은 판도 아니다. 그것은 음양을 기본으로 천지자연의 만물이 생성되는 이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동영상이다. 1부터 10의 수가 낳고 이루고 순환하는 동적인 흐름, 하늘과 땅 사이에 만물이 소생하는 사이클, 부모가 자식을 낳고 그들이 이웃과 어우러져 태평하게 살아가는 천하의 도가 하나의 이치로 꿰어져 있다. 


왕위에 오른 복희는 순하고 소박한 삶을 조롱하듯 힘의 논리가 이러한 도道를 대체해 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천명을 받들어 왕이 되었다는 자들이 다스려온 세상이 이와 같다면 천명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천명을 빙자한 왕의 무능함과 부덕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는 왕권을 강화하고 법치를 확립하거나 엄격한 제도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천명의 증표로 받는 하도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 천착하여, 인간을 포함한 천지만물은 상생하고 화합하는 가운데 부단히 이어지고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러니 복희는 고대희랍의 철학자들에 비견될 만한 뛰어난 철학자였던 셈이다. 복희가 밝혀낸 하도의 비의란 초월적 이상이 아니라 누대로 천하에 존재한 지극히 자연스런 도였을 따름이다. 허나, 주나라 중반에 이르러 천지의 도는 다시 땅에 떨어지게 되니, 복희를 잇는 또 다른 성군이 나타나 상생의 균형추로서 상극의 이치를 역설하게 된다. 이것이 궁금하면 다음 회를 보시라.


다음 시간에 만나용~


경금(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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