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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이 남자가 유정(遺精)을 써야했던 곡절 그리고 음곡(陰谷)!!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6. 13.

유정(遺精)한 남자의 무정(無精)한 이유, 음곡(陰谷)



이야기 하나


혈자리서당의 전략회의 가운데 한 토막.


영희: 음곡(陰谷)은 어떻게 쓸 예정이야?
시성: 아무리 봐도 대하(帶下)나 붕루(崩漏)로 써야 할 거 같아요.
영희: 쓸 수 있겠어? 경험이 없자나?
시성: 그래도 그게 음곡의 주테마인 거 같은데...
영희: 내가 보기엔 유정(遺精)으로 쓰는 게 좋을 거 같아. 나나 현수나 정옥이 모두 여자들과 관련된 글을 썼자나. 근데 신경(腎經)을 쓰면서 남자와 관련된 글 하나는 써야 되지 않겠니?
정옥: 맞아, 맞아~! 유정으로 써~! 우리는 경험할래야 경험할 수도 없자나. 몸이 안 돼~.^^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이 쓰는 게 맞지. 혹시 경험이 있을지도 모르고.^^
현수: ....조용히 웃고만 있다....
시성: 저도 경험 없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없는 걸 써요~!
영희: 너 그런 거 잘 하자나. 구라-대마왕!^^


마음이 찹찹하다. 요괴(?) 취급을 받는 건 둘째 치고 꼭 써야 할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또 뭔지. 솔직히 말하자면 왠지 끌린다.(--;) 하지만 길이 정해졌는데도 마음이 쉽게 움직이질 않는다. 유정을 안 해봐서 그런가. 아무튼 신세가 좀 처량하다. 왜 유정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 태어나 이런 상황에 봉착해야만 하는 건지. 누군가 그랬던가. 운명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두었다고.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아닌 듯하다. 운명은 그냥 몸에 있다. 유정을 쓸 수밖에 없는, 써야 하는 이 몸에!


이야기 둘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나이 20세.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인지 새벽 3~5시까지 책을 읽다가 잠드는 청년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이 범생이 청년에겐 남모를 병이 하나 있었다. “누울 때 음경이 뭔가에 스치기라도 하면 바로 사정”을 하는 끔찍한(!) 질병, 유정(遺精)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소중하다는 정(精)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병을 앓다보니 일상이 말이 아니다. “음식 먹는 것이 줄고 몸이 권태로우며 숨을 얕게 쉬었다.” 과거고 나발이고 일단 병부터 고쳐야 할 판. 청년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는지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 왈 “마음씀이 지나치면 군화(君火)와 상화(相火)가 동시에 일어나고 밤에도 자지 않으면 혈(血)이 간(肝)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어 신수(腎水)가 부족해지고 화(火)가 음허(陰虛)한 틈을 타고 하초로 들어간 정(精)이 저장된 곳을 두드리니 그러면 정이 모여 저장되지 못하고 돌아다니며 빠져나가는 것이다.”(강관, 『명의류안』, 「유정」, 동국대학교출판부, p.529)

 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밤잠 설쳐가며 과로한 탓에 몸의 물과 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게 그 원인이라는 건 알겠다. 잠도 자지 않고 공부에 매달린 대가가 이토록 가혹할 줄이야. 새삼 뭐든 열심(熱心)히 하지 말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 상식적인 말은 얼마나 양생적인 경구였던가!^^ 그런데 좀 궁금하다. 어떻게 과로가 유정이라는 끔찍한 병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일까. 음곡(陰谷)은 과로-유정과는 대체 무슨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오늘은 이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해보자.



허로생활백서


과로(過勞), 말 그대로 지나치게(過) 열심히 했다(勞)는 뜻이다. 뭐든 지나치면 병이 된다는 것은 상식. 한의학에서는 이 지나침으로 인해 생기는 몸의 피로를 허로(虛勞)라고 부른다. 노권상(勞倦傷)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 허로증의 한 종류다. 청년처럼 공부를 과도하게 해서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허로의 가장 큰 원인은 따로 있다.


허증은 흔히 성생활이 과도했기 때문이고, 화사(火邪)를 겸하기도 하며 열증은 단지 음식을 절제하지 않아 그렇다. 간혹 풍한서습의 기운이 서로 침범하여 병이 되기도 하고, 혹은 슬퍼하거나 근심하여 마음이 애통하여 그렇기도 하다.


-이천, 『의학입문』, 「붕루」, 법인문화사, p.1480


그럴 줄 알았다.^^ 보다시피 과도한 성생활, 무절제한 섭생, 감정의 극심한 동요가 주원인이다. 현대인들은 좀 더 치명적이다. 일상 대부분이 허로를 앓기 쉬운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식욕과 성욕을 부추기는 갖가지 문구들이 난립하는 인터넷 환경,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고독사하거나 쌓이고 쌓인 감정을 터트릴 데가 없어서 출구를 찾다가 절제 없이 배설해버리는 장이 되어버린 소셜-네트워크. 그것들이 우리 시대의 일상을 고스란히 비춰주는 거울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일상이 자신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나 다름없다. 자신이 어떤 꼬라지(?)로 살고 있는지 보려면 일상을 살피면 된다. 문제는 현대인들의 일상 자체가 몸 안의 물길과 불길을 꽉 막히게 한다는 데 있다. 허로도 이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기는 것은 물론이다. 몸을 순환하게 만드는 동력은 물과 불이다. 수승화강(水升火降), 물은 올라가고 불은 내려가는 상하축의 대순환이 일어나야 몸 전체가 순환의 리듬을 탄다. 헌데 이 순환의 중추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몸 전체로 그 파급력이 확산된다. 


술을 과음하고 고기를 배불리 먹은 다음 방사를 행하여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함부로 정기를 손상시키면 신수(腎水)가 고갈되어 심화(心火)를 조절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심화(心火)가 멋대로 타올라 폐금(肺金)을 손상시키게 되면 신수(腎水)의 근원이 끊어지게 된다. 이렇게 폐금과 신수가 쇠약해지면 간목(肝木)을 억제할 수 없게 되고 간목이 왕성해지면 비토(脾土)를 억눌러서 도리어 화(火)를 생하게 하나니, 화가 홀로 왕성하면 생화작용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양은 유여하고 음은 부족해져서 열만 성하므로 오래 살지 못한다.
 

-『동의보감』, 「잡병」, <허로>, 법인문화사, p.1240


신수(腎水) 하나에 문제가 생기는가 싶더니 도미노처럼 오행의 조화가 무너진다. 이렇게 오행의 조화 자체가 깨지면 몸의 음양 또한 서로 분리된다. 양기의 대명사인 화(火)가 치성해지니 상대적으로 양은 남아돌고 그것을 제어할 음은 부족해지는 상황이 펼쳐지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신수 하나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들이 연출되는 것. 헌데 곰곰이 따져보면 그 출발은 자기 몸을 함부로 다루는 데 있다. 과도하게 먹고 마시고 섹스하고 감정을 배설하고. 그 지나침이 곧 몸을 휘청거리게 하는 것이다.

몸은 그냥 기계장치가 아니다. 타자와의 소통, 먹는 음식, 감정의 양상들 하나하나가 몸 전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모를 때, 그 무지가 몸의 소외를 발생시킨다. 그렇기에 허로 자체가 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배려할 줄 모르는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은가. 더 끔찍한 건 그 상태가 지속되면서 발생하는 증상들이다.


대체로 음식을 먹는 것이 줄고, 정신이 혼미하며, 유정(遺精)과 몽설(夢泄)이 나고 저절로 땀이 나며, 담(痰)이 성하고 기침이 나는 것은 허로증의 보통 증상이다. 


-『동의보감』, 「잡병」, <허로>, 법인문화사, p.1240


보통 증상치고는 좀 과하다. 먹지도 못하고 정신줄을 놓고 생활하게 되고 정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자다가도 정이 손실된다. 땀이 나가는 것도 막을 힘이 없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가래가 끊는다. 잠시 상상해보라. 이런 신체가 나나 혹은 주변에 있다면 과연 어떨지. 일상이 어떻게 구성될지. 생각만 해도 좀 거시기하다.

여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월경량이 늘거나 줄고 월경주기가 들쭉날쭉해지는 것은 물론 심하면 붕루(崩漏)가 쏟아지고 대하(帶下)가 발생한다. 결국 무절제한 생활이 평범하고 평이한 일상 자체를 영위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버리는 셈이다. 그렇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오직 자승자박(自繩自縛)일 뿐!



5, 6, 7 – 오로, 육극, 칠상의 파노라마


그래서인지 『동의보감』에서는 허로(虛勞)를 「잡병편(雜病篇)」의 한 챕터로 구성했다. 단순히 피로가 누적된 상태가 아니라 병의 한 종류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을 영위할 수 없으니 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허로-파트에서는 허로가 발생한 원인부터 그것으로 인해 야기되는 각종 증상들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허로라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몸도 언어이자 기호다. 각자 다른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만큼 다양한 기호와 언어들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럼 이 몸의 언어들을 좀 살펴보자.

앞서 보았듯이 허로는 물과 불의 균형추가 무너지면서 발생한다. 하지만 몸 안의 오장육부가 유기적인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각각의 장부가 앓는 허로 또한 무척이나 중요해진다. 하나가 무너져버리면 전체의 기능 자체가 왜곡되거나 변형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각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 또한 의사의 중요한 임무다. 일단 오로(五勞)란 간로(肝勞), 심로(心勞), 비로(脾勞), 폐로(肺勞), 신로(腎勞)로 구성된다. 각각의 허로가 발생하는 원인과 증상들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렇다. 


오로(五勞)

원인

증상

간로(肝勞)

지나치게 생각해서 생긴다.

근골(筋骨)이 오그라들고, 병이 심해지면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어질어질해진다.

심로(心勞)

정신을 너무 쓰면 생긴다.

피가 줄어들어 얼굴에 핏기가 없고, 놀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며 몽설(夢泄)이 있고, 병이 심해지면 가슴이 아프고 목구멍이 붓는다.

비로(脾勞)

뜻밖의 일을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면 생긴다.

복부가 창만하고 음식을 적게 먹고, 병이 심해지면 토하고 설사하며 살이 빠지고 사지가 나른해진다.

폐로(肺勞)

앞일을 너무 근심하면 생긴다.

기가 빠지고 명치끝이 차고 아프며, 병이 심해지면 머리털이 까칠해지고 진액이 고갈되며, 기침을 하고 열이 심하게 난다.

신로(腎勞)

긍지와 절개를 지나치게 내세우면 생긴다.

등뼈가 아프고 유정과 백탁(白濁)이 있으며 병이 심해지면 얼굴에 때가 낀 것 같고 허리가 아프다.

(『동의보감』, 「잡병」, <허로>, 법인문화사, p.1241)


과유불급. 몸이든 감정이든 과하면 안되죠.

보다시피 정신과 감정을 지나치게 쓰면 오로증이 생긴다. 결국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 쓰는 감정들이 내 몸을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얘기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감정들을 쓰면서 살아가는가. 이것이 곧 자기 몸을 배려하면서 사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셈이다. 헌데 이게 끝이 아니다. 오로증이 일어났는데도 생각이나 감정의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육극증(六極證)으로 발전한다.

몸에 쥐가 나고 열손가락의 손톱이 다 아픈 근극(筋極), 이빨이 흔들리고 손발이 아프고 오랫동안 서 있지도 못하는 골극(骨極), 얼굴에 핏기가 없고 두발이 다 빠지는 혈극(血極), 몸 위에 쥐가 기어 다니는 것 같고 피부가 건조하고 검게 되는 육극(肉極), 무기력하고 피부엔 윤기가 없고 몹시 여위고 눈에 정기가 없으며 몸이 몹시 가렵고 긁으면 헌데(살갗이 헐어서 상한 자리)가 생기는 정극(精極), 가슴과 옆구리가 그득하고 늘 성을 내고 기운이 떨어져서 말도 못하는 기극(氣極). 대충만 훑어봐도 인생살이가 참 고단하겠다는 느낌이 든다. 문제는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참고 견디며 동일한 일상을 반복할 때 찾아오는 칠상증(七傷證)이다. 이건 좀 심각하다.


허손의 병은 오로에서 생겨서 육극이 생기고, 다시 칠상이 생긴다. 첫째는 음한(陰寒, 음부가 찬 것)이고, 둘째는 음위(陰痿, 음경이 발기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이급(裏急, 뱃속이 땅기는 것)이고, 넷째는 정루(精漏, 정액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며, 다섯째는 정소(精少, 정액이 적은 것)이고, 여섯째는 정청(精淸, 정액이 묽은 것)이며, 일곱째는 소변삭(小便數, 소변이 잦은 것)이다.


-『동의보감』, 「잡병」, <허로>, 법인문화사, p.1242


성생활은 물론 기본적인 일상생활마저도 불가능할 지경이다. 자신이 누려야 할 것조차도 누릴 수 없는 신체가 되어버리는 것. 그렇기에 허로를 단순히 피곤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었던 거다. 병은 자신의 몸에 대한 주체성을 잃어버린 상태다. 몸과 마음, 몸과 정신이 서로 따로 노는 상태. 이때 몸도 마음도 괴롭다. 병은 그런 고통이 만드는 언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패턴, 마음의 행로를 바꾸라는 말. 이것마저도 무시하면 죽음이 눈앞에 와 있다.

그렇다면 허로는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허로병은 다 신수(腎水)와 심화(心火)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 데 원인이 있는 것으로서, 화기(火氣)가 내려가면 혈맥이 화창하게 되고, 수기(水氣)가 올라가면 정신이 충만하게 된다. 그러므로 단지 심(心)과 신(腎)을 조화롭게 하는 것을 위주로 하고 겸하여 비위(脾胃)를 보해주면서 음식을 잘 먹게 되어 정신이 맑아지고 기혈이 저절로 생하게 해야 한다.”(『동의보감』, 「잡병」, <허로>, 법인문화사, p.1242) 핵심은 무너진 상하축, 신수와 심화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이미 살펴봤듯이 물과 불은 몸의 순환을 담당하는 근본 동력이다. 이 중심축이 무너지면 삶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중심이 없는데 어떻게 방향을 잡을 수 있단 말인가. 불은 양기, 물은 음기다. 이 둘은 서로가 서로를 제어하고 추동하는 관계다. 하지만 이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불처럼 타오르는 욕망에 끌려가거나 물이 한없이 밑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감정이건 생활이건 바닥을 친다. 극단을 반복하는 삶. 조증과 울증을 반복하거나, 탐욕과 후회를 반복하거나. 이런 삶엔 중심이 될 만한 평이한 일상이 없다. 또한 그 자체로 탁하다. 생각해보라. 이런 삶이 과연 맑고 청정할 수 있을 것인지. 중심은 이 탁한 일상을 만들어내는 반복을 끊는 것에서 만들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섭생과 관련된 부분이다. “『내경』에서는 ‘정이 부족할 경우는 음식으로써 보해준다’라고 하였는데, 음식은 음에 속하는 것으로서 정을 음으로써 보해준다는 것은 그 근본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쌀, 콩, 과일, 채소 등과 같이 천연적으로 영양분을 고루 갖춘 음식물이기 때문에 먹으면 음을 보해주는 공이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 끓이고 지지고 양념을 하여 치우치게 음식 맛을 낸 인위적인 것에 의지한다는 것은 아니다.”(『동의보감』, 「잡병」, <허로>, 법인문화사, p.1242) 담백한 음식을 먹어라. 그래야 정(精)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우리들의 일상과는 참 거리가 멀다. 어떻게든 더 자극적이고 색다른 것을 찾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맛집-기행들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극적이고 색다른 것을 찾다보니 무미건조한 맛, 일상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바로 여기, 무미건조하고 평이한 일상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담백하게 먹어야 정(精)을 보충된다는 말. 그래야 중심축을 세울 원천이 마련된다는 것. 이 또한 해법은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정(精)과 일상은 하나다. 지나친 것도 치우친 것도 없는 반복, 물이 물길을 따라 흘러가듯이 흘러가는 그 일상적인 흐름. 그것이 정(精)을 보존하고 정을 채운다. 알겠다. 사람들이 왜 일상에 도(道)가 있다고 하는지. 그 일상과 부딪히는 몸에 왜 운명이 있다고 하는 것인지. 정이 몸의 원천이듯 도(道)의 원천, 운명의 원천이 일상에 있다는 것을.



음곡, 신수를 고쳐드립니다!


(精)줄을 놓고 막 쓰다 보니 음곡을 놓쳤다.(이런 것이 설마 유정일까...) 용서하시길.^^ 이제 음곡이 어떻게 몸의 허로와 유정을 치료하는지 살펴볼 차례다. 최근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이라고 할 때 소음(少陰)이 들어간 이유. 그것은 소음군화(少陰君火)로 인해서 생기는 병은 이 경맥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다른 경맥들도 마찬가지다. 가령 수태음폐경과 족태음비경은 태음습토(太陰濕土)와 관련된 병에 쓰이는 경맥들이다. 몸에서 습(濕)으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는 일단 폐경과 비경으로 써서 치료한다. 그럼 소음군화로 인해서 생기는 병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소음군화의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는 장부는 수소음심경, 족소음신경. 즉, 심(心)과 신(腎)이다. 이쯤 되면 대부분 감을 잡으셨으리라. 앞서 봤던 몸의 수승화강, 상하축의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나타나는 증상들이 소음군화의 증상들인 것. 그로인해서 생기는 허로와 유정 또한 심경과 신경을 써서 치료한다는 것이다. 


음곡은 족소음신경의 합혈(合穴)이다. 합혈은 오수혈 특집에서도 보셨듯이 만성병을 고치는 혈자리로 알려져 있다. 허로가 발전해서 생긴 칠상증, 그 가운데 유정(遺精), 발기부전, 소변삭(小便數) 등은 허로가 장부까지 들어간 만성병들에 해당한다. 그런 상태들은 그냥 피곤한 정도가 절대 아니다! 오랜 시간 쌓이고 쌓여서 생긴 병들이다. 그렇기에 이런 만성병들을 고치는 데는 합혈인 음곡을 쓰는 것이 제격이다. 일단 허로를 만드는 주요원인은 신수(腎水)의 고장이다. 음곡은 그 신수를 보충하고 고장 난 신수를 고치는 데 가장 적합한 혈자리다. 오행상으로도 수혈(水穴)에 해당하는 것이 음곡이기 때문이다. 음곡은 신경에 수(水)의 기운을 불어넣어 말라버린 신수를 보충한다.

헌데 참 안타깝게도 그 자리를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음곡(陰谷)이라는 이름은 그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럼에도 잘 감이 오지 않는다. “무릎 안쪽, 뼈 뒤에 붙어 있다. 큰 근육의 아래, 작은 근육의 위로서, 맥이 뛰는 곳이고 무릎을 굽혀서 취혈한다.”(『의학입문』) 아무리 그 근접한 자리를 더듬어도 맥이 뛰는 것을 찾을 수 없을 때는 살이 쪘나를 의심하면 된다.(--;) 사진을 보면 그래도 좀 감을 잡을 수 있으실 거다.

음곡은 허로증으로 인한 유정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대하(帶下), 붕루(崩漏)에도 많이 사용되는 혈자리다. 간혹 불임으로 마음 고생하는 새댁들에게도 자주 쓰이는 혈자리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몸이 오랜 기간 허로했을 때 가장 먼저 음곡을 떠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허로, 유정. 그것들 또한 내 일상 안에서 생기는 일종의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과 마주칠 때, 삶이 좀 피곤하고 몸이 고달플 때 이제 가만히 앉아 음곡을 만지며 생각하자. 어떻게 다르게 살아볼까? 어떻게 변해볼까? 아마도 음곡의 신수가 만들어내는 정(精)이 그 아이디어를 제공해줄 거다. 유정(遺精) 못 해본 남자가 쓴 무정(無精)한 스토리는 여기서 끝이다.^^



류시성(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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