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북드라망 이야기 ▽

고미숙 선생님 홈어택! -다산과 연암 그리고 곰샘!

by 북드라망 2013. 6. 3.

안녕하세요.

북드라망 멤버 전원이 선생님의 댁을 습격(!)한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

때는 바야흐로 2월… 고미숙 선생님은 다산과 연암, 두 라이벌의 진검승부를 글로 풀어내고 계셨지요. TV나 잡지에서 소개되는 집은 화려하고 신기한 것이 많지만, 저는 선생님의 원고에 관련된 사진에 집중했음을 미리 밝혀드리는 바입니다. 하하;;




출입문을 들어서니 곰이 반겨줍니다. 왠지 만지면 말랑말랑, 푹신푹신할 것 같은 느낌! 여튼 이 곰은 졸린듯 눈을 감고 있지만 문지기 노릇을 하는 건 아닐까~ 요런 상상을 하게 되더군요.



선생님 노트북 화면에 떠있는 것은 바로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입니다. 주변에 자료들이 수북하지요~



책상 뒷편에도 큰 책장이 있습니다. 책이 많아지면 이중으로 쌓게 되지요. 선생님의 책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도 보이니 반갑습니다. 선생님께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의 마지막 부분에 쓰신 것을 한번 옮겨볼까요?


끝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세대 차이가 있긴 하지만 연암과 다산은 동시대인이다. 게다가 둘 다 정조시대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들이다. 문체반정시에는 양극단에 맞서기도 했다. 박제가, 이덕무, 정철조 등 연암의 절친한 벗들과 다산은 직간접으로 교류를 나누었다.


그런데 둘은 서로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남기지 않았다(다산의 만년작 『경세유표』에 『열하일기』에 관한 간단한 멘트가 있을 뿐이다). 몰랐을 리는 없다. 절대로! 둘 사이에 있던 정조가 연암의 사소한 움직임까지도 체크했는데, 정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던 다산이 어떻게 연암의 존재를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그들은 서로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침묵했다!


평행선의 운명을 아는가? 두 선분은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다만 서로 바라보며 자신의 길을 갈 뿐. 하지만 그들은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평행선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나지는 못하지만 절대 헤어질 수도 없는 기이한 운명! 아, 연암과 다산은 마치 평행선처럼 나란히 한 시대를 가로지른 것인가?


─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401~402쪽


선생님이 이 책을 쓰신 후 딱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다산과 연암에 대해 끝내 풀리지 않았던 미스터리가 이제 고미숙 선생님을 통해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어때요? 두근거리지 않습니까? 호홋!



고미숙 선생님과 함께 이 '미스터리'를 풀어갈 원정대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함께 하실거죠? ^^


그렇다! 『열하일기』를 통해 나는 연암과 다산이 아주 다른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아주 놀라운 ‘반전’이었다. 그 이전에는 결코 상상하지 못한 바였으므로. 그래서 생각했다. 언젠가 이 둘의 차이가 연출하는 ‘평행선의 지도’를 그려보고 싶다고.

… 2012년 여름, OBS팀과 ‘신열하일기’ 다큐멘터리를 찍느라 『열하일기』의 전 여정을 되밟아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연암과 다산의 평전을 쓰겠다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저 ‘때가 되었다’는 것뿐! 말하자면, 10년이라는 ‘시절인연’이 나로 하여금 오래 전의 단상들을 호출해낸 것이다.

그럼 어떻게 쓸 것인가? 평전이되 평전이 아니고 싶었다. 솔직히 동서양을 막론하고 평전들은 지루하고 재미없다. 사실들의 연대기적 나열과 업적에 대한 옹호와 변명. 그런 상투적이고 도식적인 배치를 거스르고 싶었다. ‘라이벌 평전’이라는 아이디어는 이렇게 해서 탄생되었다. 두 사람은 다르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것은 둘을 함께 다루었을 때 더더욱 빛난다. 그 ‘빛의 서사’들을 길어올리노라면 수많은 사건들이 탄생한다. 그 사건들을 뒤쫓다 보면 전혀 예기치 못한 ‘생의 지도’가 그려진다. 그것은 연암도 다산도 아닌, 연암과 다산 그 ‘사이’를 가로지를 때만 가능한 글쓰기다. 하여, 그 자체가 모험이요 탐사다.

그래서인가. 지난해 겨울에서 올 봄까지 이 책의 원고를 쓰면서 아주 특별한 신체적 감응을 맛볼 수 있었다. 독자들께도 이 ‘울림과 떨림’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고미숙,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머리말 중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