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신정(腎精)의 신(神)! 태계사용설명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5. 30.

신정(腎精)의 신(神) 태계



드라마 <직장의 신>을 재밌게 봤다. 모두가 정규직을 꿈꾸는 이 시대, 대한민국 최초로 스스로 자발적 계약직을 선택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미스 김씨다. 이름하야 국내 최초 자발적 비정규직 미스 김씨. 그런데 그녀는 회사에서 마음대로 짜를 수 있는 계약직이 아니다. 정규직 직원에게 할 말 다 하고, 부장님도 쩔쩔 매는 슈퍼갑 계약직이다. 어디서나 서로 모셔가려고 애쓰는 미스 김씨. 미스 김씨가 슈퍼갑 계약직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건 그녀의 무한변신능력 때문이다. 딱! 3개월만 한 직장에 머무는 미스 김씨. 3개월마다 직장을 갈아치워 그동안 거쳐간 회사는 수백 개에 이른다. 그녀는 그 수백 개의 회사에서 수백 번의 변신을 거듭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3개월마다 직장을 갈아치우는 것, 그게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회사를 다니면서 연결되는 인연과 업무, 거기에 얽히고 얽힌 욕망들을 단번에 끊어버리고 다른 회사를 찾아다니는 것이 그렇게 마음과 뜻같이, 휙휙 책장 넘기듯 되는 일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미스 김씨는 그 일을 수년간 가뿐하게, 정말 책장 넘기듯이 잘해왔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무한히 키워나갔고 쌓인 경험은 그녀를 직장의 신의 경지에 이르게 했다. 


미스 김씨의 이 무한변용능력!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 않은가? 흡사 미스 김씨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변신이야기의 영웅처럼 느껴진다. 또 108 요괴들을 물리치기 위해 변신술을 자유자재로 쓰는 손오공도 연상된다. 또 있다! 들뢰즈가 얘기한 ‘기관 없는 신체’가 이런 신체가 아닐까? 어떤 기관도 고착되지 않는 잠재성의 상태로 있다가 접속하는 항이 달라지면 그 강밀도에 따라 그때그때 변신하는 신체! 오, 놀랍고 부럽다. 이런 신체가 되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우리 쉽게 포기하지 말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저마다 잠재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걸 활용하는 방법을 모를 뿐이다.(쩝!) 그래서 그 용법을 터득할 지혜가 필요한 법. 일단 이 무한한 잠재성의 신체에 대해 알아보고 차차 그 변화무쌍한 용법을 익혀보자.



정(精),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 몸에서 잠재성의 상태, 잠재적 에너지의 순수한 흐름 그 자체를 말하라면 정(精)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의보감』은 정의 정체를 이렇게 밝혀 놓았다.


음양(陰陽, 부모)의 신(神)이 합쳐져서 형체가 생기는데, 육체보다 먼저 생기는 것이 있으니, 이를 정(精)이라 한다. 따라서 정은 몸의 근본이 된다. 또한 오곡의 진액이 화합하여 지고(脂膏, 기름)가 되는데, 이것이 속으로 들어가서는 뼛속에 스며들고 위로 올라가서는 뇌수를 보익해주며, 아래로 내려가서는 음부에 흘러든다. 그런데 음양이 고르지 못하게 되면 진액이 넘쳐 나서 음규(陰竅, 음부)에서 흘러내리게 된다. 이것이 지나치면 허(虛)해지고, 허해지면 허리와 등이 아프며 다리가 시큰거린다.


─『동의보감』, 「내경편」, ‘정’ 법인문화사, 230쪽


몸이 생기기 전에 먼저 생겨나는 정(精)은 오곡의 진액과 화합하면 기름이 되고, 속으로 들어가 뼛속에 스며들면 골수를 채우고 위로 올라가면 뇌수를 채운다. 아래로 내려가면 음부의 정액이 된다. 정이 어떤 것과 접속하느냐에 따라 생명의 기초를 이루는 물적 토대는 달라진다. 그래서 정은 그 자체로는 잠재성의 상태지만, 그 잠재적 에너지의 순수한 흐름에 따라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된다. 이 흐름과 변화의 국면들이 몸을 만든다. 그래서 몸은 어떤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몸은 변화무쌍한 세계이며 관계들의 장이다. 생명의 근원, 몸의 근원인 정이 애초에 몸을 그렇게 만든 셈이다. 



이 소중한 정을 저장하는 장부는 신(腎)이다. 신은 허리 좌우에 각각 하나씩 붙어 있다. 좌측에 있는 것이 신이고 우측에 있는 것은 명문이다. 신은 정이 저장되어 있으므로 인체의 생장·발육·생식을 주관한다. 따라서 신기(腎氣)가 성하면 정기(精氣)가 성하므로 인체의 치아·뼈·모발의 생장상태가 윤택하다. 하지만 신에 정을 충분히 저장하지 못하면 골수를 채우지 못해 허리와 등이 아프고 다리가 시큰거린다. 이렇게 물고 물리는 관계들의 장 속에 병리가 배치되어 있다. 이 접속과 변이, 이동의 배치를 보는 안목이 몸을 보는 용법이다. 이 변화무쌍한 용법을 익히면 우리도 미스 김씨처럼 능수능란하게 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정(精), 타자와의 공감능력


앞서 보았듯이 신이 저장하는 정기(精氣)는 인체 생리활동의 근본이다. 이에 대해 역대 의가들은 정기의 음양에 대한 개념과 상호간의 관계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지금은 장경악의 이론을 따르는 추세다. 장경악은 정기를 신과 명문의 형을 이루는 질료로서 그 조직과 기능의 물질적 기초를 원정(元精)과 원기(元氣), 진정(眞精)과 진기(眞氣)라고 하였다.


신과 명문의 형질 작용은 수(水)·화(火)로 구분되고, 또 신정과 신기의 기능은 음양으로 나뉜다. 즉 인체의 각 장부조직기관을 자양하는 것은 신음(腎陰)이고, 인체의 각 장부조직기관을 온후하고 촉진하는 것은 신양(腎陽)이다. 신이 저장하는 정기는 인체 생명의 근본이므로 신음은 원음(元陰)·진음(眞陰)이라고도 하고 신양은 원양(元陽)·진양(眞陽)이라고도 한다.


─『기초한의학』, 「장상」, ‘신’ 성보사, 174쪽


‘정기가 음양으로 나뉜다’는 것은 ‘정’(음)과 ‘기’(양)가 모두 인체를 조직하는 기본물질임을 나타낸다. 여기서 음양은 물질간의 음양 속성을 가리키는 것이지, 물질과 기능을 음양으로 따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신음과 신양은 인체 내부에서 상대하고 상호 제약하며 상호 의존한다. 신음이 부족하면 조열(몸의 열)·도한(잠자는 사이에 저절로 나는 식은땀)·두훈(어지러운 증상)·이명·유정(무의식중에 정액이 몸 밖으로 나오는 일)·몽교(여자가 꿈속에서 이성과 성교 하는 것)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신양이 부족하면 정신이 피로하고 허리와 무릎이 쑤시면서 시리고, 몸통과 팔다리가 차갑고 소변이 잦거나 참지 못하며, 남자는 양위(발기부전)·조루, 여자는 자궁이 냉하여 임신이 되지 않는다. 


신음과 신양은 모두 정기에 바탕을 두므로 신음허와 신양허는 모두 신의 정기가 부족한 탓이다. 따라서 신음허가 일정 정도에 이르면 신양을 손상시키고, 신양허 역시 신음에 영향을 미친다. 이와 같은 음양의 상호 의존·제약은 각 장부의 음양으로 연결된다. 장경악은 『유경부익·구정록』에서 “오장의 음기는 이것이 없이는 자양되지 못하며, 오장의 양기는 이것이 없이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여기서 ‘이것’은 신음과 신양을 말한다. 신의 음양이 실조되면 각 장부의 음양까지 실조된다는 말이다. 반대로 장부의 음양실조가 지속되어도 역시 신에 영향을 미쳐 신의 정기를 손상시킨다. 이것이 바로 병이 오래되면 신에 영향을 미친다는 구병급신(久病急腎)의 이론적 근거다.


정은 이렇게 신과 장부에까지 그 영향을 두루 미친다. 그것은 정이 생명의 물질적 토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정은 우리 몸의 타자들을 구성하고 그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한다. 때론 웃고 때론 싸우고, 지지고 볶고 얽히고 설키고…. 몸의 소통을 원한다면 이 수많은 타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질의 타성을 너머 상호침투하는 능동적 힘! 이 자발적 힘이야말로 언제든 변신할 수 있고 언제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능력이다. 한마디로 말해 정의 능력은 이 타자들과의 공감능력이다.



태계, 너의 정(精)을 길러주마


태계(太谿)는 깊은 계곡이란 뜻을 가진 혈자리다. 보통 혈자리들이 신체의 우묵한 계곡에 자리해 있는데 거기에 태자를 붙였으니 더 깊고 더 중요한 혈자리임에 틀림없다. 태계는 족소음신경의 수혈(兪穴)이다. 수토혈(兪土穴)은 몸이 무겁고 뼈마디가 아픈 것을 주로 치료한다. 또한 태계는 신(腎)의 허실(虛實)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원혈이기도 하다.주지하듯 신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정기를 저장한다. 그 선천의 정기가 강한지 약한지 알려주고 그것의 허실이 있을 때 물을 대줄 수 있는 혈이 태계다.



태계는 발목 안쪽 복사뼈 끝과 발꿈치 힘줄 사이에 맥이 뛰는 오목한 곳에 있다. 일명 여세(呂細)라고도 한다. 여는 율려의 음률(陰律)을 따서 붙였고, 세는 신경(腎經)이 음 중의 음이라 가늘고 미세하다해서 붙인 이름인 듯하다. 모든 환자가 태계에서 맥이 뛰면 살고 뛰지 않으면 죽는다.


태계를 두고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장사걸(張士杰)이라는 침을 잘 놓는 의사가 은침으로 교통사고로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는 34세의 청년을 치료했다. 그는 명의로 이름이 높았는데 자유자재로 태계를 사용해 환자를 치료했다. 오랜 기간 동안의 모색 끝에 그는 태계 하나만을 이용하거나, 태계와 함께 또다른 혈자리 하나둘을 사용해 좋은 치료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치료 과정에서 대개의 경우 태계혈을 취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장태계”라고 불렀다. 


태계가 왜 이렇게 여러 가지 질병에 좋은 치료효과를 가져올까? 앞서 말했듯이 태계는 신경의 원혈이기 때문에 그 원기가 이곳에 모인다. 신경의 원기는 우리 몸의 물적 토대를 이룬다. 신(腎)은 선천의 정을 간직하고 신음과 신양으로 생장발육한다. 오장육부, 사지백해가 모두 신을 뿌리로 두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 몸의 많은 병이 신에 문제가 생겨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때 태계는 신기능을 도와준다. 신음을 자양하고 신양을 강하게 한다. 이렇게 안정된 신정(腎精)은 허리와 무릎관절 기능을 윤택하게 하고 신허로 생긴 열을 식혀주기도 한다.



이처럼 태계는 정의 변용능력을 향상시킨다. 미스 김씨가 아름다운 건 그녀가 자기 일을 똑부러지게 해내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 아니다. 언제 어느 때든 주어진 상황을 돌파해내려는 파워풀한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파워풀한 에너지로 신정을 보충하는 태계! 너를 신정(腎精)의 신(神)으로 임명한다. 빠샤!


이영희(감이당 대중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