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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본초서당

온 몸에 수분이 콸콸콸! 신장이 허할 때 좋은 숙지황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5. 9.

피땀의 원료! 숙지황




아홉 번 찌고 말려 만든 검은색 명약


여기 말장난 같은 중국의 수수께끼가 있다. 한번 도전해보시라. “나는 생판 모르는 곳을 방문했다가 잘 아는 곳으로 돌아왔다. 나는 무슨 약초일까” 짐작이 가는가? 답은 지황(地黃)이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중국말로 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처음 가는 곳을 생지(生地)라고 하며 익숙한 곳은 숙지(熟地)라 하는데 생지황이 숙지황으로 바뀌는데서 이 수수께끼의 모티브를 따 온 것이다.


오늘의 주인공! 숙지황


숙지황은 지황이라는 현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의 뿌리를 익힌 것이다. 채취한 지황을 그대로 쓰는 것을 생지황이라 하고 그늘에 말려쓰는 것을 건지황이라 하며  건지황을 술이나 생강 등에 절여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햇볕에 말리면(구증구포九蒸九曝), 이것이 숙지황이다.


숙지황(熟地黃)을 알게 되면 세 번 놀란다. 일단 그 모양새를 보자. 끈적거리는 보기흉한 검은 코르크 덩어리같이 생긴 게 바로 숙지황이다. 이런 게 약이 될까 싶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 하찮은 석탄 부스러기 취급을 하였다가는 큰 오산이다. 일단 혀를 대보고 끓여 먹어보라. 또 한 번 놀란다. 부드럽고 달콤한 설탕 내음과 단맛이 혀를 사로잡는다. 약이 뭐 이렇게 맛있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여기에 숙지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안다면 그 정성에 놀람을 넘어 감탄을 금치못할 것이다. 술 등에 적셔 24시간 정도 찌고 햇빛에 말리기를 아홉 번 반복한다. 동의보감식으로 숙지황 1근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지황 20근이 필요하다. 게다가 만드는 기간도 100일 정도 소요된다.
 
다른 약재와는 다른 숙지황만의 특성은 구증구포의 방식이다. 원래 생지황과 건지황은 모두 약성이 차갑고 맛은 쓰고도 달아 혈액의 열을 식혀주는 청열양혈약으로 쓰인다. 그러나 건지황을 찌고 햇볕에 말리기를 양수의 최대치인 아홉 번 반복함으로써 건지황의 차가운  성질은 따뜻한 성질로 바뀌고 쓴맛도 단맛으로 바뀌며 노란 지황의 색도 검은색으로 바뀐다. 아홉 번 찌고 말리는 과정에서 음성인 지황의 본성은 양의 성질로 바뀌어 숙지황은 혈을 보해주고 음을 길러주며 신을 보호해주는 명약이 된다. 그리하여 숙지황은 사물탕, 십전대보탕, 육미지황탕 등 대표적인 한약의 주요약재가 되었다.



신(腎)을 맡겨다오


중국 명나라 때의 일이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0대 신랑이 있었다. 이 소년은 본래 신체가 허약함에도 불구하고 성생활을 너무 많이 하여 신정(腎精:생명이 발생하고 활동하는데 기본이 되는 물질)이 손상되었다. 신음이 상하니 몸의 윗부분은 열증이 되고 아랫부분은 한냉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급성 열성 전염병에 걸려 아픈지 7일 만에 코피를 쏟기 시작해 한나절 동안 계속 피를 쏟아 한 되 이상이나 쏟자 가족들은 크게 걱정하여 당대의 명의 장경악(張景岳)을 모셔왔다.

그는 소년의 맥을 짚고 나서 이 소년이 신음이 상해 신에 남아있던 양기가 몸의 상부로 올라가 상열하한증(上熱下寒症)에 걸렸다며 진음전(鎭陰煎:신의 음기가 부족해 몸의 상부가 뜨거워져 피를 많이 쏟는 것을 다스린다. 약 구성의 3분의 2를 숙지황이 차지한다)을 처방했는데, 처방 중에 숙지황을 정량보다 2배나 늘려 배합했다.


숙지황을 즐겨 사용해서 장숙지(張熟地)라고도 불렸다는 장경악


소년은 진음전 한 첩을 먹고 피를 멈추고 몸도 점점 따뜻하게 되었으며 며칠 후에 완치되었다고 한다. 장경악은 그의 저서에서 기를 보하는 데는 인삼을 주로 하고 황기, 백출을 보조약으로 하며, 혈을 보하는 데는 숙지황을 주로 하고 천궁, 당귀를 보조약으로 해야 한다며 인삼과 숙지황을 기와 혈에 필요불가결의 약으로 삼았다. 그리고 숙지황을 보혈약의 으뜸으로 여겨 즐겨 사용함으로써 장숙지(張熟地)라 불리었다 한다.


숙지황은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달고 약간 쓰며, 독이 없다. 혈이 부족한 것을 크게 도와주고 수염과 머리털을 검게 하며, 골수를 보충하고, 살찌게 하며, 힘줄과 뼈를 튼튼하게 한다. 또 허약해 몸이 손상된 것을 도와주고, 혈맥을 통하게 하며, 기력을 더해주고, 귀와 눈을 밝아지게 한다


─ 동의보감, 법인문화사, 1942쪽


숙지황은 간(肝)과 신(腎)으로 들어가기에 간신을 보익하고 심장을 강하게 해서 양혈, 보혈, 정혈을 도와준다. 숙지황의 요체는 신을 보익하는데 있다.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증상은 대부분 신의 정기의 부족에서 생기는 증상들이고 이런 증상에 숙지황은 보익간신(補益肝腎)의 보약으로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다. 신은 수액대사를 주관하여 오장육부의 정기를 받아들이고 저장해 정기가 항상 충만하도록 한다.


어질 어질 ~.~ 신에 정기가 부족해서 그런가....



신의 정기가 부족하여 뇌수가 부족하면 정신이 피로하고 권태로우며 귀울림이 생기고 눈이 흐릿하며 생각이 둔해지고 허리와 무릎이 시큰거리고 연약하고 무력해진다. 신은 정(精)을 저장하고 정은 또 혈을 화생하며 혈은 모발을 자양하기에 정기가 충만하면 혈액이 왕성해지고 혈액이 왕성해지면 모발이 검고 윤택해진다. 그래서 숙지황은 혈 부족으로 사지무력하고 월경부조, 하열 때 혈을 보하고 신음부족으로 허리무릎이 시고 잘 때 땀이 나거나 정액이 새는 등 증상에 정을 보하고 신음을 보한다. 또 정(精),수(髓), 골(骨)을 생산해 간과 신을 돕는다.

숙지황은 부드럽고 단 맛이 있어 허약한 사람에게 좋으며 오래 복용해도 부작용이 없다. 그러나 진하고 탁하고, 영양분이 많고 기름기가 있으므로 장기간 복용하면 소화기능장애를 일으켜 배가 부르고 속이 그득해지거나, 설사, 위부 불쾌감 등의 부작용이 생긴다. 그래서 비위가 약한 사람은 기를 소토시키고 막힌 것을 강하게 뚫어서 소화시키는 작용을 하는 소도제(疎導劑:맥아, 산사, 신국 등)를 숙지황과 같이 넣으면 좋다고 한다.


진액은 곧 피와 땀


혈병의 명약인 사물탕에서 당귀가 붉은 피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면 숙지황은 그 혈의 물질적 원료인 진액을 만드는 일을 한다.(당귀가 붉은 피를 만드는 작용은 생혈작용 하는 약재, 내 피같은 당귀를 참조하세요.). 진액이 부족해서 혈맥 속에 진액이 마르는 상황이 생길 때 혈의 물질적 재료인 진액을 공급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신정(腎精)을 보충해주고 자음(滋陰:음기를 길러주는 것)해주는 것이 바로 숙지황이다. 숙지황이 진액을 만들 수 있는 이유는 무얼까? 일단은 색에서 알 수 있다. 숙지황은 윤기나는 검은 덩어리이다.


숙지황은 그 색깔처럼 검은색 수에 속하고 오장 중에서 신장에 작용한다.

검은 색은 수(水)에 속하고 오장 중에서 신장이 여기에 속한다. 윤기나는 검은색에서 신을 촉촉하고 부드럽게 자윤해줄 거라는 것을 유추해낼 수 있다. 신(腎)은 인체의 진액대사를 담당하는 장기이고 오장에 진액을 나눠주고 필요에 따라 변화시키는데 이처럼 숙지황은 수액을 만드는 신경과 간경으로 들어간다. 또한 구증구포의 과정 속에서 불의 힘으로 찌는 과정을 거쳤기에 성질이 따뜻해져서 신의 기운을 보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혈과 진액은 어떤 관계에 있는 걸까. 혈은 맥 안에서 흐르며 진액은 맥의 안과 밖에서 흐른다. 진액이 맥 안으로 스며들면 영기와 결합하여 적색의 혈로 변함으로써 혈액의 구성성분이 되고 또한 맥 중의 진액이 영기와 분리되어 맥의 외부로 빠져나가면 혈에서 진액으로 변한다. 진액은 물을 위주로 영양물질을 다량 포함하고 있는 액체로 눈물, 땀, 콧물, 침, 정액, 혈액 등 몸 속에 있는 수액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

진액은 장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간은 눈으로 통하므로 간에서는 눈물이 되고, 심장은 혈을 주관하는데 혈이 영기와 분리되어 땀이 되고, 폐는 코로 통하므로 폐에서는 콧물이 되며, 비는 입과 통하므로 입 밖으로 흐르는 침(연:涎)이 되고, 신(腎)에서는 신정에서 만들어져 입안에 고이는 침(타:唾)이 된다. 피부에서는 땀이 되고 기육에서는 혈액, 신에서는 정액, 입에서는 침, 비에서는 담, 눈에서는 눈물이 된다. 진액은 맥 안에서는 혈맥을 자양하고 혈액을 화생하며, 맥 밖에서는 전신의 장부와 경락 등 조직기관에 영양을 공급하는 등 정상적인 생리활동을 진행하는데 필요하다. 이처럼 피, 땀, 침 등은 각각의 다른 물질이 아닌 장부에 따라 그 역할을 달리하는 같은 종류의 진액이다.

같은 진액에서  만들어진 것인데도 피는 소중한 생명의 물질이고 땀, 침, 콧물 등은 노폐물로 생각하며 함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몸에 좋다고 사우나에 가서 일부러 땀을 내고, 운동을 해서 탈수현상이 날 정도로 땀을 빼는 경우도 있다. 땀이 곧 피다.『영추·영위생회』에서는 “혈액이 지나치게 손상되면 땀이 나지 않고 땀을 지나치게 흘리면 혈액이 없어지게 된다”고 하여 땀과 피를 같게 보았다.



‘혈한(血汗)’이라 하여 피가 땀으로 나오기도 한다. 몸에 열이 지나치게 성하면 피가 밖으로 넘쳐 혈한이 된다. 또한 『동의보감』에서는 피를 흘린 환자는 땀을 나게 해서는 안되고 진액이 손상된 환자는 피가 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니 땀도 피처럼 생각하고 침도 피처럼 아껴야 되는 것이다. 침은 신정에서 만들어진 귀중한 진액으로, 입 밖으로 나오게 되면 다시 주워담을 수 없으니 침을 함부로 뱉어서는 안된다.


밥이 우선, 그리고 나서 숙지황


우리가 먹는 음식물이 피땀 등 진액을 만든다. 그래서 평소에 끼니를 잘 챙기고 잘 먹는 것이 중요하다. 숙지황이 아홉 번 찌고 말리는 백일의 정성으로 어렵게 만들어지는 약재라 는 것을 통해서 진액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공이 들어가는 일이며 힘든 일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진액이 부족해지기 전에 일상의 음식을 잘 먹음으로써 몸에 필요한 진액을 충분히 만드는 일이 먼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밥을 잘 먹어야 한다. 쌀에는 숙지황을 능가하는 농부의 정성이 있다. 쌀 미(米)라는 글자가 농부의 손을 88(八十八)번이나 거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듯 농부의 수고로운 정성으로 쌀은 밥상에 오른다. 또한 밥을 지은 후 밥 한가운데 고이는 밥물이 원기를 키우는 최고의 보약이라고 하는데서 알 수 있듯 밥은 우리의 신정과 피땀 등 진액의 원천이다. 우리 몸속의 피, 땀 등 진액이 소중한 만큼 평소 정성껏 밥을 먹고 침 한 방울, 땀 한 방울을 아끼며 정(精)을 아끼고 잘 보존하자.



송미경(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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