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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은 지금

읽기에도 부담 없고 권하기에도 좋은 단편 만화 세 권

by 북드라망 2013. 3. 29.

장편 만화는 한번 빠지면 읽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작년 추석 연휴 때, 퇴근길에 『강철의 연금술사』를 사서 집에 돌아갔었지요. 저녁 먹고 정주행을 시작했다가 중간에 끊지 못하고 계~~속 읽어서 마지막 27권을 다 읽으니 결국 아침이 되었더군요. 허허허허허허;; 굳이 이런 경험을 따라할 분은 안 계시겠지요? 양생에 좋지 않습니다. ㅠㅠ 그런 점에서 단편 만화는 읽기에도 부담 없고, 권하기에도 좋지 아니한가 싶어서 오늘은 단편 만화 세 권을 골라보았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잔잔한 이야기들


우연한 산보
쿠스미 마사유키 원작 | 타니구치 지로 그림 | 대원씨아이

주인공이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며 만난 풍경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3화 중고 그림책’입니다. 주인공은 문구 회사 마케팅 팀에 소속되어 있는데, 시장조사를 나간 한 편의점에서 대학 시절에 함께 밴드활동을 했던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친구가 마침 그 편의점의 사장님이었던 것이죠. 두 사람은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다음번에 만나 회포를 풀기로 합니다. 그리고 역까지 걸어가는 주인공. 대학 때 술값으로 돈을 다 써버렸기에 늘 걸었던 길이지만 다시 걸어보니 산책하기에 좋은 길이고, 심지어 역과도 매우 가까웠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한 정거장을 더 걸어보기로 마음먹죠.



가다가 만난 중고서점에서 발길이 멈춥니다. 어릴 때 집에서 읽었던 그림책이 주인공의 발길을 붙잡았거든요. 서점에 쌓인 책을 살펴보면서 어린 시절 자신의 방을 떠올리던 주인공은 한 권의 그림책을 집습니다. 개구쟁이였던 주인공이 학교에서 읽었던 책, 내용은 떠오르지 않지만 “엄청 슬펐던 걸로 기억”하는 책은 바로 『행복한 왕자』였습니다. 주인공은 이 책을 사서 다시 읽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학시절 친구와 자신의 관계를, 함께 꿈꾼 행복이 무엇이었던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되지요. (읽는 저도 함께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ㅋ)

책은 이런 잔잔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실화에 기초한 이야기라는 점~~~ 빠르게 빠르게 살다 보면 놓치는 것들, 그 마음들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이한 이야기의 끝판왕

사가판 어류도감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 김동욱 옮김 | 세미콜론


‘어류도감’이라고 해서 정말 도감인줄 알았지 뭡니까. 하하; 이 책은 『사가판 조류도감』과 쌍을 이루는 책입니다. ‘사가판’이라는 뜻은 한정 부수만 찍어 낸 자비 출판 도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처음 이 책을 출간할 때에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에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작품이 많이 소개 되고 있어서 이 책들도 함께 번역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는 모로호시 다이지로 버전의 인어공주입니다. 인어공주는 워낙 유명하고, 많이 각색되었지요. 인어 만화는 란마 1/2 작가 다카하시 루미코의 <인어 시리즈>도 있습니다. 요기에서 인어는 영생의 상징으로, 인어고기를 먹으면 불로불사의 몸이 되어 영원히 살게 된다는 무서운 이야기가 담겨있지요. 중학교 때인가 인어공주 같은 이야기인줄 알고 무심코 읽었다가 며칠 동안 잠을 설쳤던 기억이 납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게 무서운 일이라는 걸 만화로 알게 되었다는;;

여튼 『사가판 어류도감』의 인어 이야기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어공주 이야기처럼 로맨틱 하거나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읽고 나면 ‘이게 뭐지…?’ 싶달까요. 굳이 구분을 해보자면 ‘신기하고 기이한’ 이야기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책 띠지에는 현대판 『산해경』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작품들은 대체로 이런 계열입니다. 태극과 음양에 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는 『암흑신화』나 『공자암흑전』은 읽고 나면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드는 게 매력 포인트죠. ^^;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이토 준지와 함께 공포 만화의 거장(!)으로 분류되곤 하는데요, 저는 이토 준지와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스타일이 다르다고 봅니다. 기이한 이야기가 무서울 수는 있지만, 무서운 만화를 그리기 위해 기이한 이야기를 그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되거든요.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그리는 세계는 신화와 설화의 세계에 가깝습니다. 파푸아 뉴기니의 신화(설화?)를 소재로 한 『머드맨』은 두 권짜리인데, 저는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작품 중에서 『머드맨』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런 게 바로 모로호시 다이지로 스타일이다 싶었거든요.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도 한번 만나보세요~ ^^


'물고기 학교'라는 챕터는 코믹하기까지 합니다. ^^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권함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마스다 미리 지음 | 박정임 옮김 | 이봄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이라 골랐습니다. (표지에 나온 주인공과 헤어스타일이 비슷해서 끌린 것도 있고요. ㅋㅋ) 인터넷 서점 책 소개를 보니 작가가 일본 30대 싱글 여성들의 정신적 지주라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이 만화는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와 『주말엔 숲으로』와 함께 <여자 만화 3종 세트>(-.-;)라는 시리즈에 속해있습니다.

결혼을 왜 하는 걸까, 귀찮게…라는 귀차니스트인 저도 작가가 던진 질문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깊이 생각하진 않아서 여전히 혼자 사는 게 편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뿐이지만요. 이 만화를 읽으며 놀랐던 점은 주인공 수짱이 엄마와 통화를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제가 부모님이랑 통화할 때랑 내용이 똑같아서요. 허허허;; “결혼 안 하고 나이 먹고 아플 때 누가 너를 돌볼거라 생각하느냐, 엄마는 못 한다”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에는 건성으로(잔소리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일 없을 거라고 넘겨버리곤 했습니다. 노후를 위해서 결혼하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노후대비랑 결혼이랑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었는데, 만화책에서도 '노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가정이 안전장치같은 역할도 한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네...전 정말 이런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흑;;)


주인공 수짱도 결혼에 관해 생각하면서, 그 고민을 파고들다 보니 자신의 일, 그러니까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계속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구체적으로 묻게 되고, 몸이 아프거나 다쳤을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더라구요. 수짱이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유서를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사서 읽는 부분이 있는데, 저도 지금 당장 죽으면 집에 있는 고양이들은 어떻게 될까를 상상하니 문득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아, 그렇다고 이 만화가 결혼을 막 권장하는 만화는 아닙니다(결혼 권장만화의 甲을 보고 싶으시다면 『결혼해도 똑같아』을 추천합니다!). 등장 인물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나면 '나'는 사라지는 것일까 등등…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고민과 겹치는 지점을 발견하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고 공감하게 되는 것, 이 책이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이런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물론 일본이건 한국이건 부모님의 애정(?)의 잔소리는 비슷하구나 싶은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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