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사랑하는 사람을 애인(愛人)이라 부르는 이유는?

편집자의 Weekend 소개코너


한자덕후 시성's

회인(懷人) 애인(愛人)



지난달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솔로대첩이 성사됐다. 남자는 흰 옷, 여자는 빨간 옷만 입으면 누구나 참전(?)이 가능했던 짝짓기 페스티벌. 사상 초유의 집단맞선에 사람들은 들썩였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엔 진정 먹을 게 없었다! “경찰이 제일 많았고, 다음은 비둘기, 그 다음이 남자, 그리고 여자.” 곳곳에서 성비가 맞지 않았다는 불만 가득한 소리들도 터져 나왔다. 결국 ‘남자대첩’이라는 불명예만을 안고 끝이 나버린 이 페스티벌. 솔로탈출을 부르짖던 수많은 솔로-레타리아트들은 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 반짝 이벤트는 금방 우리들의 기억에서 지워졌다. 솔로탈출의 지난함만을 남겨둔 채 말이다.^^


비둘기와 커플! 이게 바로 솔로대첩 귀갓길 모습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짝을 원한다. 그게 몸의 생리고 마음의 회로다. 성숙한 남녀가 성적인 상대를 찾는 것, 마음이 통하는 이성에 끌리는 것.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렇게 만난 짝에 우리는 흔히 애인(愛人)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최고의 찬사? 그렇다. 그건 한문의 세계에선 최고의 찬사 가운데 하나다. 왜냐고? 이유가 있다. 동아시아를 2500년 간 지배했던 『논어』에서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덕인 인(仁)애인(愛人)으로 설명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게 인간이 갈 수 있는 최고의 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구절을 가지고 휴머니즘의 선구자로 공자를 치켜세웠다. 2500년 전에 벌써 휴머니즘이! 하지만 좀더 들어가 보면 이것이 오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더구나 그것은 성적인 연대(?)를 뛰어넘는 지대에서 뛰어나온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 이 ‘애인(愛人)의 역사’에 대해서 짤막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과거엔 사랑하는 이성을 애인(愛人)이 아니라 회인(懷人)이라고 불렀다. ‘나 애인 있어~’가 아니라 ‘나 마음속에 품은 사람이 있어~’라고 했던 것. 회(懷)라는 글자를 살펴보면 그 뜻이 더 선명해진다.


성부인 회(褱)자는 '품을 회(懷)'자의 본의를 담고 있다. 회(褱)자는 옷(衣) 사이에 눈(目)과 눈물(::)을 그려 '옷에 눈물 쏟다·눈물을 옷으로 감싸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회(懷)자는 쏟아지는 눈물을 옷으로 감싸듯(褱) 마음(忄)을 감싸므로 '품·마음·생각·품다·싸다·편안하다·편안히 하다·위로하다·달래다'라는 뜻이 된다.


—손인철, 『한자학습혁명』, 어학세계사


아주 신파가 따로 없다.(글자의 세계에도 요런 신파극이 있다^^) 옷에 눈물을 쏟을 만큼 그리워하는 사람. 옷으로 감싸듯이 감싸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이 회인(懷人)이다. 그런데 가만히 이 글자를 보고 있으면 뭔가 마음이 동한다. 마음에 품는다는 것이 어떤 경지(?)인지도 궁금해진다. 더구나 요즘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동네방네 아니 전 세계와 연결된 인터넷에 홍보를 하고 다니는 정서와는 사뭇 다른 감정이다. 남들이 볼세라 마음에 잘 품어둔 사람. 『논어』에서는 이 회(懷)자가 덕(德)이라는 글자와 함께 등장한다. 군자회덕(君子懷德). 군자는 덕을 마음속에 품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라는 이 구절은 잘난 체하고 싶어서 견디지 못하는 소인(小人)들의 행태와 비교되곤 한다.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쌓아나가면서 스스로 존재가 충만해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 그게 덕(德)이고 회(懷)였다. 아니 그게 사람을 마음속에 품는다는 것, 사랑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렇다. 이 글자(懷), 만만치 않은 글자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한 장면, 그가 마음에 품은 사람은 누규? 므훗~ *=_=*


그럼 애인(愛人)은 어떤 의미였을까.


애(愛)자는 본디 마음(心) 깊숙이 감싼 심중과 두 사람의 발을 그려 ‘사랑하다(愛)’라는 뜻이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애(愛)자의 의미는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간직하고 다가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디 그림의 두 발은 지금의 애(愛)자에서 하나는 ‘잡아당기는 손(爪)’과 ‘천천히 걸어가는 발(夂)의 꼴로 바뀌었다. 따라서 지금의 애(愛)자는 소중하게 감싼 마음(心)에 따라 손(爪)과 발(夂)이 움직인다는 의미로 유추하여 ’사랑하다(愛)‘라는 뜻이다. 사랑(愛)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대를 아끼고 그리워함으로써 소중하고 너그럽게 여기는 마음이나 베푸는 것이다.


—손인철, 『한자학습혁명』, 어학세계사


(愛)도 회(懷)와 같이 감싸고 품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애(愛)가 아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베푼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사실 한문에서 애(愛)는 사랑한다는 의미보다 아낀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아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아끼는 마음이 손발을 저절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을 만들어낸다는 것. 이 글자(愛)가 그런 실천을 의미하는 글자라는 것만은 선명하게 다가온다. 아끼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무엇 하겠는가.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아닌가.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손발을 타고 흘러나가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드러나는 것. 이게 애(愛)라는 글자의 의미다. 그래서 애인(愛人)이란 마음으로만, 입으로만 사람을 사랑하고 아낀다는 차원을 넘어서 있다. 손발로 구체적으로 행동하라! 인정(仁政)을 베풀고 사람들을 아끼라! 그런 점에서 애인(愛人)은 한 명의 상대방, 이성과의 뜨거운 사랑도 넘어서 있다. 보편적인 사랑!(좀 관념적이긴 하지만 지금의 내 언어구사력으로는 애인(愛人)의 의미를 표현할 길은 저것뿐이다. 이해해주시길^^)


애인(愛人)이라는 말이 그동안 너무 협소하게 쓰였던 것은 아닐까? ^^


그런데 이게 왜 휴머니즘과 다르다고 하는가. 휴머니즘은 인간을 모든 가치들 가운데 최상위에 둔다. 반면 『논어』에서 애인(愛人)이란 일종의 입구이자 훈련이다. 니가 살 부대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들로부터 애(愛)의 마음을 실천하라. 그것에 능수능란해지면 그 마음을 물(物)로, 천지(天地)로 확충해나가라. 그런 점에서 공자에게 휴머니즘은 끝이 아니라 출발점에 해당한다. 간혹 유학에서는 이런 말을 한다. 천지가 만물을 아끼고 사랑하듯 인간에게도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그 마음을 확충해서 천지(天地)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원대한 비전을 꿈꾸라고. 여기에 인간의 길이 있다고. 궁금하다. 저 경지가 어떤 경지인지. 또 우리 시대의 애인(愛人)들은 어떤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다음 주에는 붕어 편집자의 음악 소개 코너가 올라갈 예정입니다.

따뜻한 나라에서 충전을 하고 돌아올 그녀가 소개할 곡은 어떤 것들일까요?

기대해주실거~죠? 다음 주에 또 만나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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