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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별자리서당

닥별! 닥치고 별 좀 보자~~^^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9. 27.

양자리와 루수와 위수
-가을철 별자리를 찾아서③


손영달(남산강학원 Q&?)



양자리 혹은 호랑이 등짝


남산에서 별을 보았다! 유난히 하늘이 맑던 엊그제 밤. 귀뚜라미 우는 가을 숲길을 혼자 터덕터덕 걷다가 고개를 젖혔는데, 머리 위에 선명한 네모 모양의 별자리가 반짝이고 있지 뭔가! 지지난 회 차에 연재했던 가을철의 대사각형, 실수(室宿)와 벽수(壁宿)였다. 야심한 남산 소나무 숲을 퇴근길 삼아 다닌 지 1년 만에 드디어 알아먹을 수 있는 별자리가 나타난 것이다. 남산 중턱에서 운명처럼 마주친 네 개의 별은 뜨거운 화인(火印)처럼 나의 가슴속을 파고드는 듯 했다. 실물이 나으시네요, 라는 말을 이럴 때 써도 좋을지.^^


그래! 난 실물도 사진도 아주 판박이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별들까지도 실물이 낫다니, 어디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사진과 그림 속에서 죽은 도형들로 익힌 가을철 별자리들이 살아있는 심장처럼 저 하늘위에 벌떡벌떡 빛나고 있었다. 그간의 포스팅에서 내가 수태 우려먹었던 천인상감(天人相感)이 어떤 것인지 새삼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저 하늘의 별은 이 곳에서 몇 억 광년 떨어진 천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곧 나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나의 두뇌, 나의 심장, 나의 배꼽, 내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수한 사건들과 함께 공명하고 있는 운명의 시계추. 하늘과 인간이 응한다는 것은 서로가 나뉘지 않는 하나라는 말이다. 분리된 객체로서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차원이 아니라 직접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의 리듬으로 동시에 함께 호흡 한다는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개념의 별 안드로메다, 그리고 규수(奎宿)를 더듬더듬 그려나갔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 할 루수(婁宿), 위수(胃宿)에 이르렀다. 서방 백호의 일곱 별자리 중 호랑이 등짝에 해당하는 별자리이다.(호랑이 새끼라고도 한다.) 서양별자리로는 양자리와 겹친다. 양자리로 치면 루수는 양의 머리에 해당하고, 위수는 양의 옆구리 쯤 된다. 서양의 황도 12궁과 동양의 28수에 모두 포함되는 별이니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 별일테다. 자~ 이것이 바로 오늘 나의 글감이로구나! 뒷목이 뻐근해져 올 정도로 하늘을 보며 양자리 혹은 호랑이 등짝의 저 별들을 한참을 궁리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 그림빨에 비해 실물이 좀 딸린다! 나의 알량한 상상력으로는 당최 양으로도 호랑이로도 안 보인다. 모양이 근사한 것도, 밝기가 밝은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궁금해진다. 밝고 모양 잘 빠진 다른 별들이 주변에 많은데 왜 이 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일까?


양자리에 위치한다는 벽수! 그러나 봐도 여전히 모르겠는 건... 내가 이상한 건가?^^ 하늘에 대해서 너무 전문화되어 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는 씁쓸함이 좀 밀려온다.

궁금증을 잠시 접어 두고, 먼저 별자리 찾는 법을 알려드리리다. 가을철 별자리는 정갈하게 차려진 고향집 밥상 같다. 복잡하지도 강렬하지도 않은 별자리들이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늘어서 있다. 한 눈에 알아보기 쉬운 별이 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난해하지도 않은 게 가을철 별자리의 특징이다. 추석 때 고향 내려가셔서 형제 누이 손잡고 꼭 한 번 찾아보기 바란다. 오늘의 별자리에 도달하기 위해선, 먼저 가을철의 대 사각형을 찾아야 한다. 해질 무렵 동쪽 하늘에 있다가 자정이 되면 남쪽 하늘로 옮겨 온다. 그 중 페가수스 사각형의 동쪽 변인 벽수(壁宿)의 두 별, 즉 벽성(壁星)에 주목하라. 이 두 별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쭉 이동하면, 이들과 이등변 삼각형을 이루는 노란별이 나온다. 이 별이 양자리의 대빵 하말(hamal)이다. 하말을 찾았으면 여기서 서쪽으로 연이어 있는 부지깽이 모양의 나머지 두 별을 찾을 수 있다. 하말부터 순서대로 알파(α), 베타(β), 감마(γ)의 번호가 매겨져 있고, 베타별은 세라탄(Sheratan)이라고도 부른다. 이 세 별이 서방 백호의 두 번째 별자리 루수(婁宿)이다.


위수(胃宿)는 하말의 북동쪽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별자리다. 밝기는 5등성. 좀 어둡다. 눈물이 시큰 베어나오 게 실눈을 떠야 알아 볼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어둡다고 무시하지마라. 이래봬도 양자리의 옆구리, 그리고 서방백호의 세 번째 별자리인 위수(胃宿)란다!  

루수(婁宿)는 목줄이다


먼저 루수(婁宿)를 살펴보자. 婁는 ‘끌 루’ 자이다. 트랜순에서『맹자(孟子)』를 배우고 있는 동지들께는 익숙한 글자일거다.『맹자(孟子)』의 네 번째 편명이 바로「이루(離婁)」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루의 밝은 눈과 공수자의 교묘한 기술로도 규구(걸음쇠와 곱자)를 쓰지 않으면 모난 것과 둥근 것을 만들지 못한다. (離婁之明 公輸子之巧 不以規矩 不能成方員 -『孟子』離婁 上 1)


여기서 몹시 눈이 밝다는 사자성어인 “이루지명(離婁之明)”이 나왔다. 이루란 천안(天眼)을 가졌다고 알려진 전설속의 인물이다. 시력이 어찌나 좋은지 백보나 떨어진 곳의 털끝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이름에 쓰인 루(婁)자는 서방백호의 별자리인 루수(婁宿)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별처럼(婁) 밝은 눈으로 멀리 떨어진(離) 것을 본다는 데서 아마 이루(離婁)라는 이름이 생겼을 것이다.


(婁)자는 어떤 것을 잡아끈다는 뜻이다. 여기서 소를 잡아맨다는 뜻도 나왔다. 별자리의 모양을 보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목줄이다. 별자리의 생김새가 짐승을 잡아매는 목줄의 모양이니, 이 별은 하늘의 짐승 우리에 해당한다. 옛 사람들은 이 별이 제사에 바쳐질 희생물들을 가둬두는 목장이라고 보았다. 무엇을 가둔다는 의미에서 이 별을 하늘의 감옥으로 보기도 하였다. 목장이건 감옥이건, 어쨌거나 뭘 ‘저장’하는 게 이 별의 역할인 것이다.


루수는 그밖에도 재미있는 5개의 별자리들을 포함하는데, 이들 역시 곡식과 가축의 저장과 관련된 의미다. 루수의 아래에 있는 별자리 중 하나가 지난 회에 고래자리로 이미 소개 된 바 있는 천창(天槍)인데, 이름 그대로 하늘의 창고라는 뜻이다. 그 곁에는 천유(天庾)라는 별자리가 있다. 유(庾)는 곳집, 마찬가지로 하늘의 곳간을 뜻하는 별자리다. 루수를 좌우에서 보필하고 있는 좌경(左梗), 우경(右梗)이라는 별자리도 있는데, 그 중 좌경은 산지기요, 우경은 가축을 주관하는 목동이다. 루수의 위에는 무운을 주관하는 천장군이라는 별이 있다. 이 별자리들의 점성적 의미는 이상에 소개된 별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별이 움직이거나 일직선으로 정렬된다거나 오성의 침범을 받는 등의 현상이 일어나면 나라의 곳간이 침범 받는 형국이니 병란이나 내란이 일어나고, 흉년이 찾아들게 된다.


루수가 목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니! 역시 중국사람들은 뭐든 삶의 실감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세계와 저 하늘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고관념!


루수는 춘분 무렵 밤하늘의 주인공이다. 해질녘에 동쪽하늘에 얼굴을 내밀어 자정이 되면 남쪽하늘에 당당히 버티고 선다. 이 별에 사람들은 가을걷이가 막 시작되는 이즈음 농촌의 풍경을 그려 넣었다. 루수를 통해 우리는 고대인들에게 수확의 시작을 알리는 추분이라는 절기가 어떤 의미였는지 거꾸로 알아 낼 수 있다.


루수의 의미가 희생제의에 쓰이는 동물들을 가둬두던 창고라는 데로 돌아가 보자. 고대인들은 음식을 곧 ‘식량’으로 여기는 우리 현대인들처럼 미개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먹는다는 행위는 분명 나의 것이 아닌 생명을 취하는 것이었다. 나의 외부로부터 다른 것을 받아들임으로 계속되는 순환에 참여한다는 것, 이게 그들의 생명관이었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생명관은 주입된 에너지를 그저 소비할 뿐인 주유소 마인드에 가깝지 않은가? 고대인들은 사냥이나 수확의 때가 되면 반드시 먼저 그 원래의 주인에게 예를 표하는 제의를 수행했다. 내가 취해 간만큼 인간도 대지에 제공해야 할 것이 있었다. 희생제의는 어디까지나 대지의 정령과 신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의미를 전하는 자리였지, 우리의 흔한 오해처럼 탐욕스럽고 광기어린 살육의 축제가 아니었다. 루수가 담당하는 역할도 바로 이것, 대지에 대한 감사와 위무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서양의 양자리를 보자. 우연의 일치인가. 양자리 역시 희생제의에서 유래된 별자리다. 이 별자리의 신화는 이렇다. 프릭소스(Phrixus)와 헬레(Helle)라는 남매가 있었다. 이들은 왕의 자식이었지만 계모의 아래에서 엄청난 아동학대를 받았다. 우연히 이를 본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남매를 위해 황금 가죽을 가진 숫양을 보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막내 헬레는 그만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해협에 떨어지고 만다. 사람들은 가엾은 헬레를 기리고자 이 해협을 헬레스폰트라 불렀다. 남매를 실어 나른 양은 불미스러운 사고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별자리가 되는 포상을 얻었다.


이게 양자리에 얽힌 이야기의 전말이다. 무지하게 운 좋은 양이지 싶다. 어린 애를 물에 빠뜨려 죽게 했으면 업무상 과실치사다. 금고형을 당해도 모자랄 판에 황도 12궁의 당당한 별자리로 올라가다니!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이 중요한 별자리에 누가 이런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짜 맞춘 것일까? 이 이야기 유래는 희생양의 신화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헐리웃 영화 식의 비장한 구출씬으로 윤색되었을지 모를 일이지만, 애초에는 희생제물로 바쳐진 양과 왕의 자식에 관한 이야기였으리라. 고대인들은 인신공희에 바쳐질 제물을 택할 때 아무나 만만한 상대를 고르지 않았다. 인간 희생양은 신을 표상할 수 있는 특별하고 이례적인 존재들 중에서 택해졌다. 그런점에서 왕의 자제들은 제물이 되기에 적격이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구출된 것이 아니라 제물로 바쳐진 것이다. 올림푸스 산맥 근처의 프릭소스 지방에서 신에게 헌납된 희생 제물 중 하나가 바다 건너 멀리 흑해 연안의 콜키스(Colchis) 지방까지 떠내려 간 그리스 판 엑소더스 신화.


희생제물을 물리치기 위해 칼을 뽑아든 용사와 아름다운 미녀. 이 맛없는(?) 스토리가 별자리에도 하나씩 담겨 있다.


양자리이건 동양의 루수이건 이 별이 희생제의와 관련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첫 수확물을 경건한 마음으로 받아 쥘 줄 알았던 고대인들. 내가 획득한 삶의 몫만큼 또한 죽음을 치러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던 지혜. 낡은 기존의 내가 먼저 죽어야 새로운 삶의 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을 알았던 고대인들. 낯설게만 느껴지는 고대의 희생제의에는 잉여 없는 순환의 장 속에 살았던 고대인의 지혜로운 삶의 흔적이 남아있다.

위수는 밥줄이다


다음은 위수(胃宿)를 살펴볼 차례. 북방 현무의 다섯 번째 별자리인 위수(危宿)와 구분하기 위해 ‘밥통’ 위수라고 흔히 부른다. 위(胃)는 우리 몸의 소화기관 위장을 말한다. 우리 몸의 깊은 곳에 장부가 감춰져 있듯이 이 별도 루수의 동쪽 어드메에 어둡게 웅크리고 있다. 모양은 세 개의 주황색별이 삼각형 편대로 모인 모습. 보천가에서는 이 별을 이렇게 읊고 있다.


세 개의 주홍색별이 솥의 다리 형상을 하고 은하수의 밑에 있네.

-이순지,『천문류초』


솥이 곡식을 담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이 별은 곡식 창고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 점에서 위수(胃宿)라는 이름은 참으로 적절한 듯하다. 곡식을 담고 저장하는 하늘의 곡식 창고가 바로 저 별의 임무인 것이다. 농사가 나라의 제일가는 중대사이던 옛 사회에서 위수가 점성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을지 쉽게 짐작이 가능하다. 그토록 어둡고 분간하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28수의 하나로 이 별이 각인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지 않을까 한다. 이 별이 밝으면 풍년이 들고 사계절의 날씨가 순조롭다. 먹거리가 풍족하니 사람들이 여유롭고 천하의 예가 바르게 선다. 반대로 별이 어두우면 흉년이 드니, 굶주려 뵈는 것이 없어진 사람들이 예를 잃게 된다. 흥미롭게도 나라에 아주 극심한 기근이 찾아올 때면 밥통 위수의 세 별이 위장이 쪼그라들듯이 가운데로 몰려든다고 한다. 이 놀라운 점성학의 세계! 별이 쪼그라드니 사람들의 밥줄도 이에 응해 쪼그라드는 것이다!


제아무리 정보와 과학기술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현대 사회라지만 인간사는 한 그릇 밥통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여전히 인간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밥이다. 천지 강산이 몇 번을 뒤바뀌어도 사람들은 입에 밥 한 덩이 떠 넣으려 고군분투하며 산다. 고로 밥이 곧 천리(天理)인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린 밥에 대한 균형감을 상실하고 말았다. 온통 무엇을 먹을까라는 질문만이 넘쳐나는 요즘, 우리에게 밥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먹을 것인지 돌이켜 보는 건 참으로 의미 있는 질문이 될 것이다.


질문은 무슨 질문! 일단 먹고 봐!! 먹고 생각해!!^^


가을의 수확 철을 맞이하야, 한 아메리카 부족의 수확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북아메리카의 크리크족 인디언들은 “부스크busk”라는 의식을 거행한다. 첫 수확물을 거두는 시기의 의례다. 새로운 곡식을 거둘 시기가 임박하면 이들은 굶는다. 일명 닥굶. 닥치고 굶는다. 음식물은 먹어서도 만져서도 안 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집안의 묵은 세간을 모조리 마당에 내 몬다. 바로 묵은 지난해의 잔해를 말끔히 태우기 위해서다. 추수로 농사일도 바쁠 텐데, 배곯으며 청소에 매진한다. 버리고, 태우고, 비우자, 이게 수확 철을 맞이하는 인디언들의 자세다. 이 또한 끝이 아니다. 인디언들은 여기 만족하지 않고 민간요법을 통해 토법(吐法)과 하법(下法)을 쓴다. 단추뱀 식물의 뿌리의 쓰디 쓴 즙을 마셔 뱃속의 남은 국물 한 방울 까지 모조리 토해낸다. 강력한 하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장의 주름 깊은 곳에 끼어 있을지 모를 마지막 묵은 변 한 덩이를 위해서! 이렇게 지난해로부터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비운 뒤에야 이들은 새로 수확한 음식물을 입에 댈 수 있었다.


얼마 후 8월 한가위를 맞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얘기다. 다 먹지도 못한 음식들을 온통 지지고 굽기에 바쁜 우리들. 음식장만 하느라 병나고 이혼하고 하는 얘기는 남의 집 얘기만이 아니다. 이런 우리에 비해 저들의 풍습은 얼마나 지혜로운가. 그들에게 먹는다는 것은 새로운 생명과의 교류였다. 특히나 새로운 수확물은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정령, 새로운 기운과의 만남이다. 그렇기에 묵은해의 속된 기운은 철저히 제거되어야 했다. 새로 들어올 신선한 기운을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 충분히 자신을 비우고 청결히 했다. 충분히 비워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새로운 한 끼 밥을 위해 남김없이 버리고 비웠던 크리크족들, 참으로 성스러운 식사이지 않은가?


곧 8월 한가위다. 사람들은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보며 복을 빌 것이다. 더 풍요롭고 더 편하게 생을 누리려는 인간의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이번 추석에는 달 말고 위수(胃宿)를 보자. 어찌나 먹는 걸 밝히는 지, 위가 배 밖으로 나올 듯 한 요즘 시대. 하지만 저 하늘의 밥통은 한 없이 어둡고 깊은 곳에 있다. 위수를 보면서 추수철 닥굶-닥토-닥싸의 신공을 발휘하던 크리크 족의 지혜를 다시금 떠올려 보시길.


일단 고개 들고 하늘을 좀 보자!! 요샌 하늘 보는 일도 참 드물다! 위수고 보름달이고 일단 하늘하고 좀 친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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