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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의 커리큘럼, 문탁넷이 사랑한 책들

by 북드라망 2018. 12. 12.

활동과 공부와 우정으로 만들어 온 마을인문학공동체의 커리큘럼 

―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

 



출판일을 하게 된 이래 언제나 대형서점에 가면 꼭 기분이 잠시 가라앉는다.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우리 출판사의 책이 대형서점에서는 하나 특별하지 않게 묻혀 있고, 이렇게 많은 책들 속에서 과연 독자들이 우리 책을 알아봐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거꾸로 이렇게 많은 책들 속에서 우리 책을 찾아주고 직접 구매해 읽어 주는 분들을 생각하면 진짜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한 사람의 독자를 만나는 일은, 그래서 내게 언제나 기적 같다.




또 세상에는 수많은, 이른바 ‘서평집’이 있다. 서평집이 그토록 많은 것은, 역시 그토록 많은 책 가운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또 내가 읽은 그 책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잠깐 옆길로 새는 말이지만, 내가 느낀 그것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싶은 것은 거의 본능적인 일인 것 같다. 포털사이트에 달린 그 무수한 댓글들의 존재 이유도 그것이 아닐까. 


아무튼 이미 많은 서평집이 있었고, 있고, 있을 테지만, 그 가운데서도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 은 가장 특별한 서평집 중 하나일 것이다. 왜냐면 이것은 서평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잉? 싶은 말이지만, 이것은 사실 커리큘럼집이다. 경기도 용인 수지의 한 아파트 거실에서 시작된 모임이 어떻게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마을인문학 공동체가 되었는지, 그 활동의 비밀이 담겨 있는 책인 것이다.


동양고전, 인류학, 철학, 교육학의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각 부마다 ‘인트로’ 글이 실려 있다. ‘인트로’는 이 카테고리에 속하는 책들이 어떤 활동의 맥락에서 어떻게 읽혔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이 자체가 마을인문학공동체나 또 다른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에게 여러 시사점을 주는 독립된 에세이로 손색이 없다. 


1부 동양고전 부문의 인트로와 2부 인류학, 3부 철학의 인트로를 살짝 맛보자. 




동양고전 탐구는 문탁 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오랫동안 꾸준히 해온 공부의 영역이다. 시작은 솔직히 말해 아주 현실적인 이유였다. 이웃들에게 ‘문탁네트워크’라는 인문학공동체가 출범했다는 것을 알리고, 그들에게 함께 공부하자고 말하는 데에 동양고전만 한 텍스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당시 난, 서양철학이나 사회과학 공부를 떠나 아주 낯선 동양고전을 읽어야겠다고 발심했던 상태였다. 삶에서 어떤 전환이 필요했고 그걸 위해 여행을 떠났는데, 다만 그곳이 크로아티아나 아이슬란드나 마다가스카르가 아니라 『논어』, 『사기』, 『노자』 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2010년 1월, 문탁네트워크는 6강짜리 <논어 강좌>를 열어서 우리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이희경, 「1부 동양고전에서 삶의 지혜를_인트로」,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 17쪽)


우리에게는 ‘마을경제’라는 화두가 있다. ‘시장경제와는 다른 원리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공통의 질문을 구성해 냈다. 이 질문과 씨름하는 과정에서 문탁의 공동체 화폐 ‘복’이 탄생했고, 공동생산의 장소인 마을작업장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공동체 화폐 ‘복’과 마을작업장이 곧바로 ‘마을경제’에 대한 깨달음을 주지는 못했다. 우리는 ‘어떻게?’라는 질문에 계속 부딪쳤다. 

질문이 있으면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무엇인가에 따라 공부의 키워드도 계속 달라져 왔다. 마을화폐를 고민하던 사람들이 <마을과 경제 세미나>로 모였다. 함께 마을작업장을 만든 후에는 작업장 매니저들이 공부하는 <마을작업장 세미나>가 되었다. 마을작업장이 자리가 잡히자 다시 공동체 화폐 ‘복’ 연구로 과제가 바뀌면서 <복작복작 세미나>가 탄생했다. <복작복작 세미나>는 다시 마을경제에 대한 정의를 궁구하는 <마을경제 아카데미>로 바뀌었다. (김혜영, 「2부 인류학에서 영감을_인트로」,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 104쪽)


매주 토요일 오전에 열리는 <파지사유 인문학>은 그간의 공부를 ‘강좌’로 만드는 적극적인 계기가 되었다. 평일 세미나에 참여하기 힘든 직장인이나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려는 입문자를 대상으로 ‘문탁이 사랑한 책들’을 이해하기 쉬운 강좌로 만든다면, 파지사유는 더 많은 접속과 확장이 일어나는 ‘낮은 문턱’으로 기능하게 되리라는 바람에서였다. <파지사유 인문학>은 인문학공동체에 대한 호기심이나 인문학 공부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가이드라인’이 되리라는 처음의 기대효과와 함께 예상하지 못한 부대효과를 가져왔다. 매달 강좌를 열어야 하는데 강의는 누가 해야 하는가? 그 많은 강사진을 배출하기 위해, 문탁 세미나회원들은 의도치 않게 ‘대거’ 강사로 등판되었고, 세미나팀이 고통 분담의 차원에서 집단강의체제를 만들기도 했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일리치의 『학교 없는 사회』 등 <파지사유 인문학>을 거쳐간 텍스트들이야말로, ‘문탁을 만든 책들’이라고 공언할 수 있다. (박연옥, 「3부 철학에서 비전을_인트로」,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 200쪽)



현재 문탁네트워크에는 인문학 강의와 세미나는 기본이고, 공동체밥상을 책임지는 주방과 베이커리, 찬방, 카페가 있고,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마을작업장과 공방이 있으며, ‘학교를 벗어난’ 마을학교도 있고, 청년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고 함께 일하는 ‘청년 인문-스타트업’ ‘길드-다’도 있다. 어떻게 몇 명의 사람이 거실에 모여 시작한 공부 모임이 이렇게 수많은 가지를 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 공동체는 10년을 보내온 걸까. 공부와 활동이 하나가 되는 삶은 가능한 걸까. ‘문탁네트워크’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이 가져온 의문에 이 책은 작은 답변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_문탁네트워크 생활영상 "동상이몽"



이미지를 클릭하면 문탁네트워크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문탁네트워크를 전혀 알지 못하더라도 지금, 새로운 삶을 바라는 이들, 새로운 공부를 바라는 이들, 새로운 관계를 바라는 이들에게 이 책은 어떤 지혜, 어떤 영감, 어떤 비전을 보여 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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