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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리포트

[쿠바 리포트] 택시는 왕이다

by 북드라망 2018. 11. 27.

택시는 왕이다

 

아바나의 상상초월 교통수단

요새 나와 친구들은 만나기만 하면 이런 말을 한다. ‘차를 사고 싶다!’ 길을 가다가 외국인들이 빌린 아반떼나 소나타가 지나가면 그저 감탄만 나온다. ‘저 차가 내 차라면!’ 고작 5km를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2시간이나 기다린 후에는 이런 탄식이 나온다. ‘제발, 모닝 중고차라도 좋다!’


사실 내가 살면서 이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운전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어서 운전면허도 미루고 미루다가 작년에 뉴욕을 떠나기 전에 겨우 땄다. (필기시험도 운전면허시험도 한 번씩 떨어졌다.) 뉴욕에서 룬핀이 차 사고 싶다고 노래를 부를 때 내가 얼마나 타박을 했던가. 가난한 학생 주제에 욕심 부리지 말라고. 지구상에 차가 얼마나 많은데 너까지 매연을 내뿜는 주범이 되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지금의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빚이라도 내서 코딱지만 한 중고차라도 사고 싶다. 그 정도로 아바나의 교통수단은 마비 상태다.




아바나에는 총 다섯 가지의 교통 수단이 있다. 이 모든 수단이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특이하다. 첫째는 구아구아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구아구아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이는 순전히 가격 때문이다. 아바나에서 가장 싼 것을 꼽으라면 구아구아 요금을 들 수 있다. 쿠바 페소로 40센트, 한국 돈으로 환전해보면 약 20원이다. 그렇지만 아바나에서 가장 괴로운 것을 꼽으라면 역시 구아구아를 들 수 있다. 타야 할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은데, 버스는 늘 부족하며, 배차는 불규칙하다. 밤에는 버스를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때도 많다. 출퇴근 시간의 구아구아는 한국의 지옥철보다 더 붐비고 위험하다. 성추행이나 도난 사건도 수시로 일어난다. 나도 한 번은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가 도난당한 적이 있는데, 돈을 빼내갈 때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렇지만 도난당한 금액은 겨우 15CUP, 600원이었다. 도둑이 불쌍해질 지경 이었다!) 어지간한 정신력을 가진 여행자가 아니라면, 그리고 어지간히 가난한 생활자가 아니라면 구아구아를 사랑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쿠바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최근 몇 년 간 구아구아의 형편은 상당히 나아진 것이라고 한다. 중국이 많은 버스를 헐값에 팔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구아구아는 중국 회사 ‘유통운수(流通運輸)’의 차체를 이용한다. 그 전에는 버스가 거의 제 구실을 하지 못해서 차 없는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그 거리가 10km든 20km든 상관없었다. 먹는 것도 별로 없는데 운동만 실컷 하니, 모든 사람들이 젓가락처럼 말라갔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자주 이용되는 수단은 택시다. 쿠바의 택시는 미터기가 없다. 그래서 택시가 운영되는 시스템을 미리 알지 않으면 곧바로 ‘호갱’이 된다. 택시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합승 택시(Taxi Colective : 딱시 꼴렉띠보)다. 합승 택시는 아바나의 주요 대로를 따라 달린다. 사람들은 이 대로에서 저 대로로, 저 대로에서 그 대로로 함께 이동하면서 자신의 목적지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 내린다. 합승 택시에는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가격이 있다. 그래서 합승 택시를 이용하려면 아바나의 지리 일반과 가격에 대한 감을 확실히 익혀야 한다. 기본요금은 10CUP, 약 500원이다. 굉장히 싸게 들리지만 쿠바인들의 평균 월급이 5만 원 정도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도 싼 편은 아니다. (100만원 월급 기준으로 보면 택시 기본 금액이 만 원인 셈이다.)

 그 다음은 루떼로(Rutero)다. 루떼로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합승 택시인데, 가격은 일반 합승 택시의 절반이고 차체는 더 고급스럽다. 정류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합승 택시를 잡기 위해서 길가에서 쿠바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만 고려하면 루떼로는 최고의 이동수단이다. 그러나 문제는 노선이 극히 제한되어 있고, 밤 7시가 넘어가면 운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루떼로로 실제로 갈 수 있는 장소는 손에 꼽는다.


마지막 택시 종류는 직통 택시(Taxi Directo : 딱시 디렉또)다. 이 택시는 공공의 적이다. 내가 원하는 장소까지 데려다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미터기가 없는 만큼 택시 기사가 부르는 게 값이다. 아무리 깎으려고 노력해도 기본적인 가격은 합승택시의 10배다. 그래서 주로 아바나를 잘 모르는 어리버리한 외국인들이 직통 택시를 애용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직통 택시가 늘어날수록, 일반 거주민들을 위한 합승 택시의 숫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교통수단이 언제나 부족한 아바나에서는 택시 숫자보다 손님 숫자가 훨씬 더 많다. 길가에서 합승택시와 구아구아를 기다리는 수많은 쿠바인들은, 외국인 관광객을 달랑 한 명을 태운 채로 달리는 직통 택시를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쿠바인들도 응급 상황에는 직통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지만, 직통 택시 기사들은 이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비가 내리는 날,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가 인도에서 어찌할 줄 몰라하며 택시에게 손짓을 해도 텅 빈 직통 택시는 그를 그냥 지나친다. 이 손님이 5,000원을 낼 돈이 없는 쿠바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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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차를 살 수가 없다

이 모든 교통수단을 두루 경험해보고 나면, 결론은 언제나 ‘그래도 내 차’로 나게 된다. 구아구아에서는 구겨진 종이처럼 사람들에게 밟히고, 직통 택시는 터무니없이 비싸며, 루떼로는 실용적이지 않고, 합승 택시는 언제나 경쟁이 치열하다. 돈과 유지비가 아무리 많이 들더라도 내 차를 갖는 게 가장 속 편한 길일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 차를 갖는 것이야말로 이 다섯 가지 교통수단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일단 외국인은 차를 살 수 없고 연중연시 렌트카를 사용해야 한다. (참고로 쿠바에서 렌트카는 아무리 싸도 하루에 6만원은 한다.) 또, 쿠바인이라도 절차가 너무나 복잡해서 차를 구매하기까지 일 년 이상이 걸린다. 차가 늘 부족하기 때문에 차 가격은 하늘 높이 치솟고, 심지어 세금까지 굉장히 비싸게 매겨진다. 차를 소유할 수 있는 특권층은 정부 관계자와 해외에 연줄이 있는 부자를 제외하면 ‘의사’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차가 없는 사람들은 차가 있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다. 사적 소유를 지양하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가장 맹렬하게 차를 욕망하게 되다니. 이것이야말로 역설이 아닌가!


이동 수단이 없다는 것은 쿠바에서 더 큰 문제가 된다. 모든 물건들이 이곳 저곳에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A마트에 갔는데 필요한 물건이 없을 때는 B마트에 가야 한다. B마트에도 없을 때는 내일 다시 돌아와서 확인하거나, 택시를 잡아타고 더 먼 곳까지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미 설명했지만 ‘택시를 잡아탄다’는 것은 이곳에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30분째 택시를 잡지 못하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차 생각이 간절히 나는 것이다. 아, 나는 언제쯤이나 쿠바에서 내 차를 가질 수 있을까? (차를 갖기 위해서 의사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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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 꿈과 배반의 직업

이런 사정 때문에 쿠바에서 ‘택시 기사’는 엄청난 권력을 갖는다. 택시 기사가 왕이고 갑이다. 택시 기사들은 손님을 골라 태우고, 택시 값을 자기 마음대로 책정하며, 일하고 싶을 때 일한다. 무엇보다, 가장 돈을 많이 번다.




이 말은 농담이 아니다. 의사 월급이 한 달에 10만원을 넘지 못하는 반면, 택시 기사는 이 돈을 하루 만에 벌 수 있다. 아바나에 처음 온 ‘호갱’ 관광객을 20명만 찾으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정부에 반납해야 할 세금도 높긴 하지만, 다른 직업에 비한다면 돈을 만들어낼 방법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낮에는 병원에서 일하는 전문의가 밤에는 택시 기사가 된다. 의사 월급만으로는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는 쿠바인들에게 원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외국인에게 과하게 돈을 뜯어서 먹고 살며, 현지인들에게는 불편을 초래하는 것. 이것은 사실상 히네떼로(jinetero : 외국인에게 성적으로 접근해서 돈을 뜯는 ‘삐끼’)와 무엇이 다른가? 그러나 이 말을 대놓고 하지는 못한다. 택시 기사가 되는 것 말고는 달리 당장의 대안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시 기사는 꿈과 배반의 직업이다. 오늘도 나는 차로 10분이면 갈 거리를 움직이기 위해 30분 일찍 움직인다. 아바나의 왕이신 택시 기사님의 마음에 들어야 싼 가격에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싫다면? 두 다리로 개똥 천지인 길을 걸어 다녀라!

 

글_김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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