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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패기 넘치는 혈자리, 척택!

by 북드라망 2012. 5. 25.
척택(尺澤), 물길을 내다

조현수(감이당 대중지성)

물 위의 삶

“요즘 애들은 패기가 없어.” “젊은 애들이 왜 그래.” 어른들에게 곧잘 듣는 말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패기가…… 어딨어? 다 이렇게 사는 거 아냐? 패기가 뭐길래, 그토록 찾으실까.

패기의 사전적 정의를 보자 ㅡ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해내려는 굳센 기상이나 정신". 사실 이런 거라면 꼭 가져볼 만하다. 그렇다,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는 거, 울타리에서 조금만 나가면 겁에 질리고 죽을 듯이 괴로워하는 거. 그거 버려야 한다.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는 건 다른 사람, 다른 삶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내 두 발로 선다는 것은 물질적인 자립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20대는 돈 없고 백 없는 게 당연하다. 대신 그 자리를 부모님과 학교, 제도의 과한 서비스가 메운다. 젊은 애들이 왜 힘든가. 다 빚지고 살아서 그렇다. 과한 보호에 기대는 건 마음에 빚을 만든다. 기댈 곳이 있는 거. 울타리가 있는 거. 내가 사고 쳐도 누가 수습해 주는 거, 그게 정신을 다 흐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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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는 삶에 대해 투덜거리면서, 단 한 번이라도 패기만만하게 내질러 본 적이 있었을까? 그것이 때밀이라도 말이다. ㅡ네이버 웹툰 <목욕의 신> 中 한 장면

아니라고? 나는 기대는 게 편하다고? 자신은 느끼지 못할지라도, 패기를 쓰지 않는 동안 폐기(肺氣)는 서서히 약해진다. 내 뜻대로 움직일 힘, 타고난 아우라를 잃어버리고, 결국 남이 깔아 놓은 길 위만 터벅터벅 걷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당당해야 한다. 내가 마음을 달리 먹는다고 소년 소녀 가장처럼 벼랑 끝에 선 듯 환경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과 이하 어른들은 여전히 조바심 내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바로 당당하게 패기 넘치게 사는 비결, 정신적 의존을 만들지 않는 길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살아온 습이 있으니 없는 패기를 갑자기 넘치게 할 수는 없다. 패기도 키워야 한다. 연습이다.

폐기(肺氣) with 패기(覇氣)


어떤 무형적 에너지의 총칭을 기(氣)라고 한다면, 패(覇)기도 하나의 기다. 우리 몸에서 기를 주관하는 장기는 폐(肺)다. 그러므로 폐를 드나드는 기는 곧 온몸을 순환하는 전신의 기다. 우리 몸에서의 기란 무엇인가? 일차적으로는 호흡을 통해 받아들인 공기, 곧 하늘의 기운이 폐로 들어와 온몸을 순환할 때 그것을 기, 혹은 양기라고 부른다.

폐로 들어온 기는 전신에 흩어져 쓰인다. 간에 들어가면 간기가 되고, 심에 들어가면 심기가 되어 각 장부가 그 역할을 다하도록 운동성을 부여한다. 폐를 움직이는 데에도 기가 필요하니 폐에 머무르며 폐가 해야 할 임무를 수행하도록 만드는 기가 폐기이다. 폐기도 결국은 전신을 순환하는 기의 일부다. 그 말인즉슨, 폐를 통해 들어온 기의 양 자체가 충분치 않기 때문에 폐기도 모자라다는 말. 기는 호흡을 통해 들어오니 기가 모자란 것은 호흡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말이다. 깊은 호흡은 마음의 평정에서 나온다. 불안하거나, 긴장하거나, 분노한 상태에서는 깊은 호흡이 이뤄지지 않는다. 눈을 감고 한번 떠올려 보시라, 잔뜩 화가 나있거나 겁에 질렸을 때 숨을 어떻게 쉬는지를. 어깨를 바싹 올린 채 씩씩, 쌕쌕 몰아쉬는 가쁜 숨. 이런 호흡은 폐를 꽉 채우고 뱃속까지 내려가지 못한다. (경거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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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맞아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루피. 루피의 패기는 바로 이 깊은(?) 호흡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기가 중요한 이유는 기가 혈을 움직여 흐르게 하기 때문이다. 기와 혈은 서로 상호작용관계다. 무형의 에너지인 기는 혈이 없이는 모이지 못하고, 음적이며 정적인 혈은 기의 추동 작용 없이는 흐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가 부족하면 자연히 혈액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부족하여 흐르는 속도가 느려진다. 기가 부족하여 온몸을 힘차게 순환해야 할 피의 운동이 느려지면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현대인의 기본 증상인 피로, 권태, 무력감, 등등과 더불어 소화불량, 탈모나 피부병, 그리고 오늘의 메인 병증인 부종이 있다.

폐기가 없으면? 부종


우리는 흔히 붓는다, 고 하면 신장의 문제를 떠올린다. (‘짜게 먹어서 그래~’) 그런데 폐경(肺經)의 혈자리인 척택이 부종을 치료한다고? 부종이 생기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폐기가 약해도 부종이 생긴다. 그 이유는 선발(宣發)과 숙강(肅降)이라는 폐의 역할에 있다. 혈은 물(진액)과 양분을 공급한다. 혈에는 음식물을 소화시켜 얻은 지기(地氣)와 호흡으로 얻은 천기(天氣)가 함께 흐르고 있다. 혈에 올라타 필요한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 바로 기다. 필요한 곳으로 길을 잡아 잘 쏴주는(!) 것이 선발 작용, 또한 쏘고 남은 물을 모아서 방광으로 내려 주는 일이 숙강이다. 이처럼 폐기는 혈이 가야 할 방향을 정한다. 아무 데로나 막 흐르지 않도록! 그런데 폐기가 부족하여 혈의 흐름이 느려지면, 진액이 서서히 혈이 다니는 통로 밖으로 빠져나온다. 그리고 올라가야 할지 내려가야 할지 우왕좌왕, 갈 길을 잃고 방황하며 엉뚱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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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되고 싶나? 그럼 패기 없게 시키는 대로 살면 돼. 머리는 좀 커지지만 살만 해……."


부종. 뜰 부(浮)에 종기 종(腫) 자를 쓴다. 이 부(浮)자의 의미를 살펴보면 '(위로)뜨다 / 가볍다'는 뜻도 있지만 ‘넘친다’는 뜻도 있다. 본래 안에서 흘러 다녀야 할 진액이 통로를 뚫고 살갗 아래로 ‘넘쳤다’는 뜻이다. 물이 넘치면 피부가 ‘뜬다’. 부은 몸과 얼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근육과 살갗 사이에 물이 차 피부가 팽창하기 때문이다. 부종이 있으면 피곤하다. 온몸이 무겁고 축축 처진다. 몸이나 얼굴이 퉁퉁 부은 사람치고 쌩쌩하고 활기 넘치는 사람 못 보셨을 것이다. 당연하다. 온몸을 순환해야 할 피의 일부가 새어 나와 뭉쳐 있는데 상태가 좋을 리 있나. 이렇게 부종이 생겨 피곤하면 혈액의 볼륨도 줄어든다. 콸콸 잔뜩 쏟아지는 물이 빠르게 흐르듯이, 반대로 진액이 빠져나가 양이 적어진 혈은 느릿느릿 흘러 다니며 또 몸 곳곳에 정체를 만든다. 숨 막히는 러시아워! 피곤하고 지친다고 또 술과 기름진 음식을 마구 먹는다. 소화되고 쓰이지 못한 잉여의 에너지들은 또 몸에 쌓여 습담이 된다. 으! 악순환이다.

물이 넘쳐 생긴 것이 부종이라면서 피부도 촉촉하긴커녕 어쩐지 거칠고 푸석하다. 이상할 것 없다. 전신의 윤택함은 단지 물기(水)가 많은 것이 아니라 물길의 원활함, 기혈의 조화로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부종을 없앨 때 - 척택(尺澤)

척택은 수태음폐경의 오수혈 중 패기 넘치는 ‘보스’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소상과 어제, 경거 등등을 거쳐 척택은 정형수경합(井滎兪經合) 중 마지막인 합혈(合穴)이다. 합(合)이란 우물(井)에서 시작해 조금씩 커진 물줄기(기혈의 흐름)가 전부 모여, 바다로 들어가기 직전의 큰 강을 이루는 곳이다. 기와 혈의 출입이 유독 많은 곳이라고 보시면 되겠다. 오수혈은 손가락 끝에서 샘솟듯 시작해 손바닥, 손목, 등으로 점점 안쪽에 위치하는데, 증세가 가벼운 병일수록 사지 말단의 혈을 쓴다. 척(尺)은 원래 거리를 나타내는 척도로 손목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를 한 척이라고 한다.

척택은 바로 손목 아래의 가로줄에서 한 척(尺)이 떨어진 팔꿈치 안쪽에 위치해 있어 척택(尺澤)이다. 팔을 살짝 안으로 구부려 보시라. 다른 손으로 구부린 팔의 안쪽, 즉 팔꿈치 안쪽을 만지면 단단한 힘살이 느껴질 것이다. 이 힘줄 정중앙에서 몸 바깥쪽(손등쪽)으로 손가락 반 마디쯤 떨어진 곳이 척택이다. 이곳은 동맥이 지나는 곳이기도 하므로, 손가락 끝으로 잘 더듬으면 맥이 팔딱팔딱 뛰는 게 느껴진다.

척택은 폐기가 상역하고 열기가 폐에 찼을 때 아주 효과적이다. 폐에 열이 차면 호흡이 짧아진다. 곧 천기를 효과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이다. 척택을 자극하면 폐열이 내리고 거스르던 기가 순행하므로 폐기를 조절할 수 있게 돕는다. 폐는 본래 심장의 보좌관이라고 한다. 군주인 심장 밑에서, 심장이 하지 않는 중요하고 많은 일들을 몽땅 도맡아 하는 것이다. 말했듯 척택은 수태음폐경의 합혈인데, 음(陰)경의 합혈은 수(水)기운에 배속된다. 그래서 척택을 자극하면 폐는 많은 할 일 가운데서도 물과 관련된 기능을 작동시킨다. 이것이 척택이 부종에 득효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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