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불교가좋다] 연인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나

정화스님 멘토링

남자친구와 흐뭇하게 만나는 법

 


질문 : 남자친구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Q> 아까 말씀해주신 것처럼 남자친구를 만날 때, 이 사람을 나와는 다른 존재다라고 이해하면서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만나다 보면 너무나 다른 지점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냥 다르다고 이해해주면서 넘어가기에는 뭔가 좀 불만족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그러면 남자친구도 다른 친구들처럼 맛있는 거 먹고 다니는 그런 정도로만 만나야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화스님 : 우선 남자친구는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어요. 먼저,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에요. 딱 한번만이라도 내 뺨을 때렸다고 하면 무조건 헤어지든지 아니면 병원치료를 받아야 돼요. 그 사람은 사람을 때리기 위해 만나는 거에요.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여자친구와 만나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1이고 폭력을 행사하면서 느끼는 만족도는 99에요. 그럼 이 사람이 여자친구와 그냥 만나려고 하겠어요, 아니면 폭력을 행사하려고 하겠어요? 아무 트집이나 잡아서 폭력을 행사하려고해요. 폭력을 행사할 때 자기 존재의 만족도가 현저히 높아져요. 혹시라도 남자를 만나면서 언어폭력이든, 실제적 폭력이든, 딱 한번만이라도 행사하면 바로 헤어질 것을 각오해야 돼요. 아, 저 사람이 날 사랑해서 그랬다고 하면 120% 거짓말이에요. 혼자 거짓말을 만드는 거예요. 그 사람은 헤어지면 또 다른 폭력의 대상을 찾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했을 때 자기 존재감이 가장 강화되고, 권력을 그런 방식으로 행사하는 거예요. 




자, 이제 그런 폭력의 방식이 아닌 사람을 만났어요. 대부분이 이렇습니다. 근데 서로 만족하는 방향성은 다 달라요. 그래서 저 사람이 내 입맛에 맞도록 행동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그 마음만큼 데이트는 괴롭다는 말이에요. 구태여 그런 데이트를 할 이유가 없잖아요. 아까 말한 대로 그냥 편히 만나서 놀고, 음식 먹고 이야기하고 헤어지는 거예요. 더 이상 바라지 않으면 좋아요. 남자사람친구라고 해서 조금 더 친밀해진 것이지 그것을 ‘남자친구’, ‘여자친구’라고하는 범주로 묶으면 문제가 생겨요. 그러니까 ‘내 인생에 네가 더 많은 보탬이 돼, 나도 네 인생에 더 보탬이 될테니.’라고 말해요.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싸움을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한 50년쯤 싸우고 나서야 조금 이해가 돼요. 괜히 싸울 필요가 없는데 싸웠다는 거예요. 


그냥 서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만나야 돼요. 만남에도 어떤 만난 환경, 배경이 있습니다. 여기 가만히 앉아있는데 멀리 부산에 사는 남자를 만날 확률은 드물어요. 물론 만날 순 있겠지만요. 자기가 평소에 만나는 주변사람들과 친해지는 거예요. 그 친해진 주변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이 남자친구가 되는 거죠. 그런데 남자친구라고 해서 아까 그냥 친한 남자인 친구들보다 더 많이 바라는 것이 있으면 싸울 일만 더 많아지는 거예요. 그냥 남자인 친구하고는 별로 싸울 일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에겐 별로 바라는 것이 없는 거에요. 남자친구한텐 뭔가 원하잖아요. 내 뜻이 관철되기를 원하는 거죠. 아까 말했잖아요. 원(願)을 가지는 순간 이제 그 원(願)이 자기를 배신한다. 그래서 그냥 남자인 친구인데 좀 더 친한 친구 정도가 가장 좋아요. 그런 사람하고 결혼해도 돼요. 남편이 됐다 그래서 남자인 친구보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 안돼요. 그러면 서로가 서로를 고치려고 계속해서 싸우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고칠 수 없는 이유는 생각의 길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뇌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자기가 세상을 보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릅니다. 또 생물학적으로 남자하고 여자하고 다른 것도 있죠. 그런데 서로가 ‘내가 생각하는 길대로 네가 좀 생각해줘. 내가 말도 안했는데 좀 알아줘.’ 이것은 굉장히 힘든 것을 원하고 있으면서 그 원(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혼자 괴로워하는 거예요. 말 하지 않으면서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 외의 것은 다 말을 해줘야 돼요. 그래서 서로가 말을 하는 거예요. 그 말을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두 번째로 기억해야할 것은 내가 원하지 않거나 힘든 일은 거절해야 한다는 거에요. 다 들어줄 이유가 없어요. 내가 그 사람의 ‘여자친구’지 ‘여자 하인’이 아니에요. 나한테 이런 일을 해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니에요. 근데 그렇게 서로 해주려고 되는 거예요. 자, ‘내가 열 개 해줬는데 열한 개 왜 안 해줘?’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의 말을 듣고 해줄만한 것은 해주고 해주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나쁘게 볼 필요가 없어요. 그래야 나도 솔직하게 말할 수가 있어요. 근데 상대가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할 수 없어. ‘어, 그럼 그래.’라고 해야 되는데 ‘남자친구가 되가지고 그런 것도 못해주나?’ 하면은 말이 안됩니다. ‘너는 여자친구가 돼서 그것도 못해줘?’라고 하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결국, 가능하면 이렇게 서로에게 원하는 것들을 줄여가야 됩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원하는 것이 없어져야 되어요. 


결혼하는 사람들도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만나면 그나마 덜 싸웁니다. 사람은 원하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또 결혼을 하고 나서는 서로에게 호감을 갖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어요. ‘호감을 갖게 만든다.’라는 것은 상대로 하여금 나를 보면 기분 좋은 호르몬이 나오도록 나 스스로를 조건화시키는 거예요. 이건 힘든 일이에요. 결혼을 하고 한 2년 지나고 나면 안 하게 돼요. 근데 결혼은 2년이 지나더라도 몇 십 년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 때부터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을 기르도록 연습해야 합니다. 지금은 서로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행위를 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니까 좋아 보이는 측면이 많아요. 하지만 이건 힘이 들어요. 그래서 나중에 서로에게 좋아 보이려는 행동은 안하게 됩니다. 이제는 정말 흔히 말하는 서로에게 잡힌 물고기입니다. 지금은 남녀 모두 잡은 물고기한테는 먹이를 안주듯이 하는데 이런 방식은 각자의 인생을 즐겁게 하지 못합니다. 더 이상 서로에게 좋아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때가 되기 전에 그냥 흐뭇한 마음을 계속 연상하는 거예요. 실제로 행동하는 것하고 내가 연상하는 행동하고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남자친구를 생각하면서 혼자 흐뭇한 마음을 연습하면 돼요. 그러면 내 안에서 즐거운 생각이 드는 호르몬이 방출돼요. 그 연습을 자주 하는 사람만이 훨씬 덜 싸우고, 서로가 흐뭇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질문 : 남자친구를 꼭 ‘수행’하는 느낌으로 만나야하나요?

Q> 오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저도 실제로 남자친구와 사귀면서 ‘수행’하는 느낌이 많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근데 ‘이럴 거면 왜 남자친구를 만나나’라는 생각도 들고, 호감이나 이런 것들은 내가 충분히 없앨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 만남을 계속 수행으로 느끼면서까지 굳이 왜 만나야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화스님 : 그런 생각이 강하면 만날 필요는 없어요.(웃음)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현실이에요. 제가 아는 분 중에 그림을 그리는 분이 있어요. 1980년대 쯤 되었을라나. 한 30년 전 일인데, 그 분이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데 결혼을 했어요. 자기 부인 되는 분의 직업이 은행원이에요. 본인은 유명해서 그림을 여기저기 파는 사람이 아니고 이제 막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요. 제가 어떻게 결혼하셨냐고 물었더니 별게 없었어요. 아내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은행에 취직했대요. 17, 18살에 취직한 거죠. 그러니까 그 때는 방금처럼 담담한 게 만나는 게 아니고 뭔가 끌리는 거에요. 후손을 낳고 싶어 하는 그런 것이 끌리는 것이에요. 그렇게 은행을 다니던 중 자기가 적극적으로 대시를 하니까 결혼을 한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린 나이니까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거예요. 그 사람 말대로 하면 속없을 때 데려온 거예요, 속없을 때. 허허. 근데 그 나이가 이팔청춘이에요. 열여섯 살 때면 그렇게 결혼하는 거예요. 근데 그 때부터 열 살만 지나서 26살만 돼도 절대 그렇게 안 돼요. 물론 그 나이에도 이팔청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래서 지금처럼 이팔청춘보다 훨씬 더 담담해지는 것이 현실적인 신체가 되어 작동하는거에요. 이상한 게 아니에요.




그리고 이제 이팔청춘의 나이를 지나게 되면, 남성하고 여성하고는 좀 차이가 있어요. 텔레비전에 나와서 하는 말이, 남성이 여성 고르는 기준은 3번 이쁘냐, 2번 이쁘냐, 1번 이쁘냐 라는 거예요. 남성은 그냥 ‘이쁘냐’가 답이에요. 근데 여성분은 절대 그렇게 선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첫째, 신체적으로 건강한지 두 번째로 돈을 잘 버는지에요. 모든 동물의 암컷들이 다 하고 있는 거예요. 자기하고 짝이 되는 수컷이 내가 애를 가졌을 때 나의 아기하고 나를 살려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무의식적으로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여성분들이 통장에 잔고 있어 없어 라고 묻는 게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내가 경제활동을 할 수 없을 때 내가 아기를 키워야하는데 몇 년동안 경제활동을 못하잖아요, 그 때 수컷이 나와 아기를 살려야 해요. 


여성분들이 나이가 들면 남성을 선택하는게 훨씬 어려우실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10대는 그런 판단기준이 약한 거예요. 이제 26세만 딱 되면, 저 남자가 돈을 잘 벌어오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 훨씬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거예요, 10대보다. 그러니까 아까 말한 대로 후손을 낳는 끌림보다는, 이 두 가지를 보는 게 훨씬 많은 거예요. 36세가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엄마들이 아들 딸 장가보낼 때 직업이 무엇인지 보는 게 다 그런 거예요. 딸 시집보낼 때 사위가 얼마나 튼튼한 직장을 가지고 있느냐가 엄마 아빠가 훨씬 더 눈 여겨 보는 지점이에요.  그 때 부모가 제일 먼저 보는 것은 우리 딸 우리 손주 잘 건사할 수 있을까하는 게 먼저 들어올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근데 그런 일들을 요즘은 본인들, 결혼하는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훨씬 십대보다 담담해지는 겁니다. 그게 전혀 이상한 게 아니지요. 남자를 볼 때 이미 다른 요소가 강하게 들어가 있는 것이지요. 


또 한참 지나다보면 이제 그런 느낌보다도 그냥 사는 느낌이 강해지게 돼요. 자식들 때문에 산다는 말이 그냥 산다는 거랑 똑같아요. 부모가 자식들 때문에 산다고 하잖아요. 물론 자식들이 있으니까 사는 이유가 있긴 하지만, 그밖에 다른 것은 없다는 것과 비슷해요. 인생은 실제로 그냥 사는 거예요. 이것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무의식적으로 그런 느낌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열다섯 살쯤만 지나면 일 년마다 급속도로 담담해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연애를 잘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콩깍지가 덮이지 않아도 그 이가 아까 말한 언어폭력이나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잘 만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어느 정도 밥벌이하고 있으면 돼요. 열여섯 살보다 훨씬 지났지요? (웃음)


정리_깨봉청년백수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 10점
정화 지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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