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 지은이 인터뷰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 

지은이 정철현 인터뷰


1. 선생님께서는 왜 수많은 생물학자들 중 ‘스티븐 제이 굴드’의 생명론을 소개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스티븐 제이 굴드는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과학자이자 작가입니다. 그의 생명론을 소개하고 싶었던 첫 번째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일 겁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면 그의 사소한 모든 것을 좋아하게 되는데요.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그의 열정, 재치있는 유머와 위트, 그의 진정성과 진솔함, 본질을 파고드는 날카롭게 파고드는 급진성, 학문적 깊이에서 나오는 간결함과 명확성, 엄청난 글쟁이, 뉴욕 양키스의 열렬한 팬인 야구 마니아, 아마추어 합창단원, 왠지 모를 수다스러움, 27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한 끈기 있는 에세이스트, 달팽이 연구자 등등. 굴드가 왜 좋은지를 꼽으라면 한이 없을 겁니다.



물론 굴드의 이런 점이 좋다면, 이것들을 개인적인 수준에서 표현하고 끝내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굴드를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는 굴드를 통해 제가 어떻게 과학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책의 머리말에서도 썼다시피 굴드를 만나기 전까지 저는 과학은 단순히 암기해야 할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굴드로부터 과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자 렌즈임을 배웠죠. 굴드는 과학이라는 관점을 통해서 어떻게 삶을 사유하고, 어떻게 인생과 우주에 대해 배울 수 있는지 보여 주었습니다. 즉, 과학적 앎이 우리 삶을 통찰하는 인문학적인 소재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몸소 보여 주었죠. 굴드는 제게 저 같은 대중들이 과학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과학에 대해 이런 태도를 지닌 과학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그가 들려주는 생명이야기는 정말 매력이 있습니다.


그의 생명관에 대해 얘기해 보죠. 굴드가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그는 장구한 생명의 역사에서 살아간 경이로운 생명으로부터 경이로운 생명관을 배웁니다. 제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굴드의 생명관에서 핵심이 되는 키워드는 불완전성, 불연속성, 우연성입니다.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생명과 생명사의 본질을 다루고 있죠. 불완전성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불연속성과 우연성은 각각 불완전하게 살아가는 생명들의 시간적 측면과 공간적 측면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불완전성이라는 주제로부터 주어진 현실의 조건(역사적 제약) 속에서 어떻게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즉 자신의 삶과 운명을 어떻게 긍정하며 살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또 불연속성이라는 주제로부터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며, 변화 혹은 새로움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배웁니다. 즉 우리들의 지닌 시간관과 변화관에 대해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기도 하죠. 마지막으로 우연성을 통해서, 우리는 생명이 진화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배우며, 생명 개개가 만들어 가는 일상이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굴드의 힘과 매력은 생명의 역사로부터 우리 자신(인간)을 되돌아보게 하는 데 있습니다.


결코 굴드의 생명관은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생명이고, 생명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인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사점과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생명은 수십억 년간 어떻게 살았고 죽었는가? 생명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로부터 우리는 어떤 지혜와 통찰을 배울 수 있는가? 생명답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이 반(反)생명적인가? 등등. 굴드는 우리에게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고민의 장을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2. 책 제목이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인데, 정말 모든 존재는 옳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개개의 계통들이 자신들만의 길을 창조해 나가고 있는 진화사의 명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경이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생명체 각각은 모두 아름답고 옳다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굴드는 이를 여러 가지 생물들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죠. 판다의 엄지, 오리너구리, 람프실리스 조개, 어룡의 지느러미, 캄브리아기의 고생물들 등등. 저는 이들을 비롯한 모든 생명들이 그 자체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이 말이 정말 낭만적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말에는 여러 가지 단서 조항이 붙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을 자기합리화의 수단으로 받아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일단, 이 얘기는 생명의 역사(진화사)라는 규모(scale)에서 얘기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라는 말은 생명의 역사에서 존재했고, 지금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 존재할 생명들은 모두 의미 있고 가치있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고, 자신이 서 있는 조건을 발판삼아 어떻게든 새로운 길들을 창조해 내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생명 자신들이 자신의 역사와 삶을 써 나간다는 의미에서 그들 모두의 삶은 그 무엇과도 비교 불가능하고, 그 자체로 옳은 것이죠. 그래서 이 말은 인간중심주의, 생명을 척도화하고 순위를 매기는 것, 그리고 진화를 진보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반대하는 말로 쓰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해 온 계통 각각의 독특성과 유일무이함에 경이로움과 존경심을 표현한다는 의미에서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우리 인간의 일상으로 끌어올 때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 말은 무조건인 상대주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누구나의 생각과 행동이 옳지는 않을 겁니다. 여기에는 굴드가 생명의 역사를 통해 보여 준 생명, 그러한 ‘생명처럼 산다면’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할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고, 그 속에서 각기 자기 삶의 길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삶의 창조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 각각은 유일무이한 독특성을 뽐내고 있죠. 이들을 어떤 척도로 평가할 수 없죠. 모두가 옳은 겁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이런 말을 쓰려면 바로 ‘생명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 말은 하나의 윤리적 지침으로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그 자체로 옳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화두처럼요. 



스티븐 제이 굴드


3. 이 책에서 11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굴드의 생명론을 설명해 주셨는데요, 그 중에서 특히 ‘불완전성’ 그리고 ‘우연성’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는 말인가요?


불완전성은 굴드가 바라본 생명이 살아가는 모습이자 생명의 본성 그 자체입니다. 불완전성이란 말은 통상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집니다. 불완전한 생명이라 하면, 무언가가 결핍된 생명의 모습을 그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굴드가 제시한 생명의 삶에서는 그 어떤 결핍감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충만하게 살아갑니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도약대 삼아 각자 자신만의 길들을 창조하며 진화해 나갔습니다. 생명은 그러한 창조적 힘을 불완전성에서 얻었습니다. 자신들의 환경적 맥락과는 상관이 없는 신체의 대물림(역사적 제약), 신체기관의 중복성은 생명이 창조의 원천이자 삶의 도약대로 삼았던 불완전성의 장이었습니다. 생명은 불완전성을 어떤 장애이자 한계로 여기지 않고, 이를 삶의 발판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즉 생명은 불완전성 덕분에 살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만 존재했던 것이죠. 결국 불완전성이 생명의 존재양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굴드는 불완전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연성에 대해서 말해 보죠. 굴드는 우연한 세계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생명의 역사는 바로 우연적인 사건들이 만들어 낸 것이죠. 여기서 우연이라는 말은 필연이란 말에 반대되어서 쓰이는 무지의 표현이 아닙니다. 이것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연성을 통해 굴드는 역동적인 생명사의 장을 보여 줍니다. 생명이 어떻게 변모해서 진화해나가고, 각자의 역사를 써나가는지를 우연성이란 개념은 잘 보여 줍니다. 우리는 보통 생명사, 생명의 진화를 이끄는 원동력을 자연선택 법칙이라 보며, 이 단일한 법칙에 의해서 생명의 역사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굴드는 생명의 역사에는 자연선택의 힘 말고도 다양한 힘들이 존재했고, 이들이 상호작용하고 충돌하는 역동적인 장 속에서 진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러 힘들의 긴장과 충돌이 예측불가능한 사건들을 만들어 내고요. 바로 이 우연적인 사건들, 우연성이 역사를 만들어 갔죠. 


둘째로 우연성은 생명의 역사 속에서 진화의 주체로서 활약하는 능동적 주체로서의 생명을 보여 줍니다. 우연성의 장 속에서 생명은 더 이상 자연선택에게 변이란 재료를 제공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닙니다. 법칙에 좌지우지 되는 종속변수가 아닙니다. 셋째로 우연성은 우리 생명의 삶을 멋지게 만듭니다. 우연한 세계 속에서 생명들은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는 일들을 필연으로 만듭니다. 기적과도 같은 소중한 매 사건들을 통해서, 현재의 삶들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러면서 생명은 스스로의 삶에 어떤 의미들을 작성해 가고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들입니다.



4. 흔히 과학적 지식은 삶에 어떤 통찰을 주기보다는 일상적 편리함이나 실용성 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선생님께서는 과학이 인문학처럼 삶에 통찰을 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런지 예를 하나 들어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입니다. 물론 과학적 탐구만의 방법적 특이성이 있지만 말입니다. 굴드 말대로 과학은 창의적인 인간 활동입니다. 과학자 혹은 과학자 공동체들이 자신의 판단과 창의력을 발휘해 고안한 것이 과학이론입니다. 그래서 과학이론에는 반드시 이를 수립하고 창조해낸 사람들의 관점과 질문방식이 드러나 있기 마련입니다. 또한 그 이론이 제기하고 있는 세계가 드러나게 되죠. 우리는 이러한 과학이론과 과학적 지식을 보며 그것이 이 세계를 어떻게 그려내고 있고, 우주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파악해낼 수 있습니다. 


굴드가 1970년대 초에 제시했던 단속평형설을 예로 들어보죠. 단속평형설은 신다윈주의의 점진주의에 반대하여, 그 대안으로 굴드가 제시한 이론입니다. 이 가설은 단속적 변화를 주장합니다. 이 가설이 나온 이후, 이 가설은 과학계 내에서 수많은 반대와 논쟁의 장에 부쳐졌습니다. 그런데 제 입장에서 단속평형설이 과학적으로 참인 이론인지, 거짓인 이론인지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굴드라는 사람이 어떤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지, 어떤 시간과 변화에 대한 철학을 펼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굴드는 단속평형설을 통해 생물의 변화(새로움)란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 변화의 속성은 무엇인지, 생물에게 변화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또 그가 어떤 시간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그 이론을 통해 굴드가 그리는 세계가 우리에게 ‘턱’ 하니 주어지는 것이죠. 우리는 이러한 굴드의 시각들을 통해 우리 삶을 비춰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 삶의 입장에서 그의 세계를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과학이론을 통해 우리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죠. 나는 그동안 차근차근 천천히 노력하면 변화할 줄 알았는데, 굴드가 이와는 전혀 다른 불연속적인 변화를 얘기한다면,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변화관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겠죠. ‘도대체 변화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변화를 꾀해야 하지’처럼요. 또한 점진주의에 대한 생각도 할 수 있구요. 과학이론의 참/거짓 문제를 넘어, 이를 우리 삶으로 당겨와 이해해 보는 겁니다. 뭐 이런 식입니다. 


또 불완전함 속에서 이를 자신의 토대로 삼아 살아가고, 진화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고 있는 생명을 보면, 우리는 저절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매우 자주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들에 대해 결핍감을 느끼며 비관적으로 생각하죠. 굴드가 그려내는 생명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불완전성을 자신의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창조할 수 있는 도약대로 전환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죠. 이를 보며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이러한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런 식으로 우리는 굴드가 얘기하고 있는 우연성, 불완전성, 불연속성, 역사적 제약, 중복성과 같은 개념들을 가지고 우리의 삶과 일상을 사유하고 통찰할 수 있습니다.



5. 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분들께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굴드는 27년간 거의 매달 『자연사』(Natural History)라는 잡지에 자연학 에세이를 썼습니다. 그 연재 후반부의 굴드의 목표는 자연학 에세이를 통해 인문학과 과학을 통합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즉 과학이론들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인문학적 사유를 진행하려 한 것이죠.

이 책은 굴드의 과학 에세이들을 읽고, 가장 굴드다운 방식으로 굴드의 생명관을 사용해 보려고 노력한 흔적일 것입니다. 굴드의 생명 이야기, 과학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비추어보고,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굴드가 그려내는 매력적인 생명의 세계를 따라가면서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굴드가 제시한 과학이론이 철 지난 이론일 수도 있고, 반증된 이론일 수도 있습니다. 또 굴드의 이론이 과학계에서 어떤 평가받고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부분이 아니라, 굴드 이론의 기저에 있는 세계관과 여러 전제들을 보고자 했습니다. 그 이론을 통해 한 과학자가 구성하여 품고 있는 하나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마음껏 사유의 나래를 펼칠 수 있습니다. 굴드가 그려내는 우연한 세계 속에 살고 싶은지 아닌지, 굴드가 그려내는 생명체들의 모습처럼 살고 싶은지 아닌지, 불연속적인 변화는 왠지 모르게 두려울 것 같다는 등등, 가치 판단에서부터 개인적인 감정까지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굴드의 생명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 삶과 윤리의 측면에서 자유롭게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굴드의 생명론뿐만 아니라 다른 과학이론도 이렇게 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과학을 풍성하고 폭넓은 삶을 위한 재료로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계기로 말이죠.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