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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리포트

쿠바 리포트 : 고기를 온 몸에 붙이고 스페인어를 배운다

by 북드라망 2018. 8. 28.

쿠바 리포트 : 

고기를 온 몸에 붙이고 스페인어를 배운다 




까리와 빠삐 : 고기를 온 몸에 붙여라


요즘 살이 통통하게 붙었다. 6월부터 9월까지 강행군을 이어가면서 빠진 살이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이만큼이나 살이 찐 적은 없었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쿠바에는 정말 먹을 게 없기 때문이다. 생활비를 아끼느라 간식도 안 사먹고 (사먹을 간식도 별로 없다), 빠삐가 저녁을 너무 많이 주는 바람에 나중에는 점심을 거르기까지 했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이건 음식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상태 때문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마음이 너무 편한 것이다. 수세미가 없어도, 순간 온수기 케이블이 목숨을 위협해도,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없어도, 선생이 수업에 오지 않아도, 일상의 스트레스가 사라진 내 마음은 평온하기만 하다.


어느새 나의 양부모가 되어버린 까리와 빠삐



이 소식을 들은 우리 집 주인 빠삐와 까리는 몹시 기뻐했다. 8파운드나 찌다니, 그것도 쿠바에서! 파티를 열자! 그들은 나를 두고 “엔 부엘따 엔 까르네(en vuelta en carne)” 라고 말했다. 고기를 온 몸에 둘렀다는 표현이다. 옛날에 네이버 웹툰 <낢이 사는 이야기>에서 정확히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을 보았다. 주인공 낢이 1kg 쯤 찐 건 상관없다고 말하자, 엄마는 삼겹살 한 근 반을 온 몸에 얇게 둘렀다고 상상해보라고 이죽거린다. 그렇다면 내 몸에 둘러진 8파운드의 고기는 얼마나 두껍다는 소리인가?! 그러나 쿠바에서 ‘엔 부엘따 엔 까르네’는 즐거운 칭찬이다. 쿠바인들은 아직도 먹을 게 없어서 길거리의 고양이와 개를 몽땅 잡아먹고, 플라스틱 가짜 치즈를 사용한 피자를 먹고 병원에 실려갔던 90년대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런데 이처럼 가난한 땅에 온 외국인이 도리어 통통해지다니, 그들에게는 풍악을 울려야 마땅한 일이다.


나를 ‘엔 부엘따 엔 까르네’로 만들어준 장본인인 까리와 빠삐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 노부부는 현재 내 쿠바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가족 같은 사이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에 안부를 묻고, 저녁에 수다를 떨고, 밤에는 잘 자라고 인사를 한다. 친구들과 노느라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빠삐는 잠을 자지 않고, 까리가 아픈 날에는 내가 그녀의 탄식을 들어준다. 외국에서 별 다른 인간관계 없이 홀로 살 때는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 같이 사는 사람과의 관계가 참 중요하다. 뉴욕에서는 룬핀이 그 역할을 했고, 아바나에서는 까리와 빠삐, 그리고 이들의 손녀딸 야리가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들과 가족이 되는 경험은 낯설었다. 차가운 뉴욕에 살면서 3년 동안이나 파티를 열며 친구들을 가족 같은 관계로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바나 생활에 아무 기대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친해지면 친해지는대로, 서먹하면 서먹한대로 마음 편하게 사람들과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처음 쿠바에 왔을 때는 스페인어를 거의 할 수 없었고, 불통의 두려움 때문에 내 좁은 방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굳이 거실로 나가서 이들과 관계를 맺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게는 한 가지 사명이 있었다. 스페인어를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직 이 이유 때문에 나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빠삐와 까리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알아듣는 척 하며 그들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자 빠삐와 까리는 (알아듣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곧바로 나를 가족의 영역에 끼워주웠다. 여러 단어를 가르쳐주고, 텔레비전 방송에서 무슨 뉴스를 보내고 있는지 더 쉬운 말로 번역해주고, 내가 뉴욕에서 3년을 살아도 친구들에게 듣지 못했던 자신들의 개인사를 자발적으로 들려주었다. 나는 그저 아침 저녁으로 잘 주무셨느냐, 잘 주무시라는 인사를 꼬박꼬박 했을 뿐인데 나를 두고 굉장히 사교적이라고 칭찬해주었다. 나는 두 달 만에 이 집의 한국인 딸이 되어 있었다.


빠삐와 까리와 살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왜 아기는 언어를 빨리 배울까? 뇌가 말랑말랑한 까닭도 있지만 온갖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두들 아기의 말소리를 듣고 싶어하고, 더듬거리는 단어조차 열심히 들어준다. 이런 호의 속에서 아기는 소통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동시에 키우게 된다. 외국어를 배울 때 우리는 아기와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외국에서 외국어를 쓰는 외국인이 되어서야, 나는 내가 타인의 호의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 ‘외국어 부모’가 되어준 까리와 빠삐에게 돌려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25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그들 앞에서 애교와 재롱을 피우고 있다.


지금 내 스페인어 실력의 7할은 그들 덕분이다. 내 온 몸에 들러붙은 살의 7할도 그들 덕분이다. 행복한 돼지로 사는 게 낫다고, 지금 나는 행복하다. 이런 호시절을 다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게 아깝기도 하다. 이 행복한 시간을 빠삐와 까리와 함께 보내게 되어서 행운이다.

 


 

선생님 A : 번뇌의 화신


이번에는 내게 번뇌를 안겨준 쿠바인을 소개한다. 바로 나의 학교 선생님 A다. 그녀는 9월에 내가 짧은 코스를 들을 때 우리 반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10월에 긴 코스를 들을 때도 우리 반 선생님이었다. 그녀의 수업방식은 명쾌했고, 성격은 유쾌했다. 과외를 해줄 개인튜터를 찾고 있던 나는 이 선생님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학교 수업도 과외도 모두 같은 선생님에게 배우면 내 스페인어의 문제점을 더 빨리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의 악연은 시작되었다.


첫 번째 과외날, 나는 그녀에게 돈을 어떻게 지불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한 달 치를 선불해달라고 했고 나는 그 말을 따랐다. 그리고 그 첫날 이후로 그녀는 절대로 제때 나타나는 법이 없었다. 30분 씩 늦는 건 예사요, 일방적으로 수업시간을 바꿨다. 어느 날은 수업 시간이 15분이나 지났는데 갑자기 문자로 수업을 취소했고, 나중에는 그냥 말 없이 오지 않았다. 그때마다 내가 문자를 넣고 전화를 해도 답은 없었다. 나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거실에 앉아서 혹시 그녀가 오지 않을까 기다려야 했다.


처음에는 학교 수업에서 A를 만나면 무슨 일이냐고 따졌다. 그런데 나중에 그녀는 아예 학교 수업조차 나오지 않았다! 우리 반 친구들은 4번씩이나 오지 않는 선생님을 기다리며 복도에서 서성거려야 했다. 사무실에 가서 물어봐도 그들 역시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사무실 직원들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선생님이 오지 않으니 다른 반 수업을 청강하라고 해놓고는 그게 무슨 교실인지 알려주지 않았고, 겨우 그 교실을 찾아가니 이번에는 의자가 부족하니까 다른 교실에서 의자를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수업 4번을 빼먹은 만큼 수업료를 돌려달라고 말하자, 수업이 없는 4번 동안 우리는 여전히 학생 비자로 쿠바에 머물면서 길거리에서 쿠바인들의 스페인어를 들었으니 그것 역시 수업 아니냐고 답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논리인가? 쿠바에서는 교육이 모두 무료여서 ‘수업료’라는 개념을 아예 모르는 걸까?)




A가 5번째로 나와의 약속을 어기고 학교에도 나오지 않았던 어느 날, 나와 친구들은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학교나 선생이나 외국인 학생의 돈을 우습게 아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문자를 넣었다. 더 이상 내 과외를 진행할 수 없어 보이니 그냥 나머지 돈을 돌려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날 A는 뒤늦게 학교에 나타났다. 그리고 모두에게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인생은 온갖 문제로 가득 차 있었다. 첫째 주에는 부모가 아팠고, 둘째 주에는 아들이 아팠다. 그리고 셋째 주에는 가까운 지인이 세상을 떠나서 장례식을 치러줘야 했다. 게다가 그녀의 핸드폰에는 돈이 항상 없어서 문자에 답을 할 수 없었고, 나중에는 핸드폰이 고장나면서 누군가 전화를 해도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A는 내게 개인적으로 말했다. 남은 돈이 없어서 돈을 돌려줄 수 없다고. 그러니 자기 사정이 괜찮아진 후에 나와 남은 4번의 과외를 마치고 싶다고. 나는 그녀의 솔직함과 뻔뻔함에 할 말을 잃었지만, 쿠바인들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 싫다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그 후로도 그녀는 학교 수업시간에 종종 문제를 일으켰다. 갑자기 배탈이 나서 수업을 두 시간 일찍 마친다거나, 우리에게 문제풀이를 시킨 후 그 동안 다른 방에서 다른 학생들의 개인 숙제를 봐준다거나. 수업시간도 때우기 식으로 하는 경우가 잦았다. 우리는 이제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의지조차 잃어버렸다. 그냥 서로에게 훌륭한 개인과외 선생님을 소개시켜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페인어가 전혀 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다른 훌륭한 과외선생님을 구했다. 그러나 아직도 A와의 수업은 2번이나 남아있다. 이제는 돈을 돌려 받고 싶지도 않고 그냥 그녀에게서 깔끔하게 선을 긋고 싶다. 하지만 A의 희한한 양심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녀는 나에게 돈을 받았으니 반드시 나와의 수업을 마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쿠바에서는 참으로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다(^^).

 

 

떼오 : 보석 같은 친구


마지막으로 내 쿠바 친구 떼오를 소개한다. 떼오는 언어 천재다.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하고, 일본어를 독학으로 공부해서 내 친구 나나꼬와는 일본어로 이야기하며, 요즘 학교에서 중국어 수업을 듣고 있는 친구다. 중국어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지만, 훌륭한 발음새를 보아하니 중국어도 금세 늘 것 같다. 심지어 나보다 두 살 어리다. 그래서 이 녀석을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짜증이 치민다. 아니, 왜 이렇게 재능이 많은 거야?


떼오와 나는 거의 영어로 이야기한다. 스페인어로 이야기하는 편이 내 공부에는 더 좋겠지만, 내가 워낙 떼오에게 물어볼 게 많아서 스페인어로 대화를 시작해도 결국 영어로 이야기가 넘어가게 된다. 22살의 쿠바 청년의 세계관을 들을 수 있는 건 참으로 드문 기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떼오는 춤을 좋아하지 않고 술도 잘 못 마시고 책을 더 좋아하는 친구다. 앞으로 기자가 되고 싶어 한다. 또 음악은 J-pop과 클래식을 듣는다고 한다. 이 정도면 쿠바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발견하기 힘든 캐릭터다! 


그렇지만 이런 놀라운 지성에도 불구하고 떼오는 겉보기에 그렇게 지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떼오가 아시아에서 온 ‘무챠챠(muchacha)’들, 즉 아가씨들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와 떼오가 만나게 된 것도 일본인 친구들이 나를 디스코 클럽에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떼오는 곧바로 내 번호를 받아갔다. 한 일본 언니는 나보고 조심하라고 했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뉴욕에서도 내 절친한 이탈리아 친구가 바로 이런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나는 떼오를 내 스페인어 선생님으로 활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곧 이를 실현했다. 요즘 나는 내 중국 친구를 떼오에게 소개시켜줘서 다 함께 중국어-스페인어 언어 교환 스터디를 하고 있다. 스페인어도 배우고 또 중국어도 몇 마디 배우고, 나로서는 꿩 먹고 알 먹는 기회다.


떼오와 나는 가까운 곳에 산다. 그래서 종종 만나서 커피를 마신다. 둘 다 워낙 말이 많아서 두 시간은 수다를 떨어야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쿠바에서 이런 좋은 친구를 만들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다. 내 과외선생님은 떼오의 이야기를 듣더니 ‘보석 같은 친구’라고 말했다. 음, 떼오에게는 너무 과분한 표현 같지만 이 친구를 만나서 행운인 것은 확실하다.​ 

 

우리 집 앞 풍경

 

 글_김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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