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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좋다

모든사람과 잘 지낼 필요 없습니다

by 북드라망 2018. 8. 14.

모든사람과 잘 지낼 필요 없습니다

 

  

 

질문1. 운전하기가 두렵습니다.

Q> 저는 운전 면허증을 오래전에 땄는데요, 실제로 운전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겐 운전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아주 어릴 때 텔레비전을 봤는데 예쁜 미술 선생님이 의족을 하고 나왔어요. 어느 날 운전을 하다가 상대방의 과실로 교통사고가 난 거에요. 그래서 약혼자도 떠나는 등. 제가 어렸을 때 그걸 보고 충격을 받았나 봐요. 단 한 번도 운전할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운전을 해야 할 일이 생겼어요. 두려움을 안고서라도 운전을 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극복을 해서 운전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아예 운전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정화스님 : 현생인류하고 다른 인류하고 가장 큰 차이점은 과거와 현재를 중심으로 사느냐 아니면 미래를 예측하면서 세상을 사느냐입니다. 현생 인류의 가장 큰 특징은 내일을 추상화할 수 있는 능력이 갑자기 커져 버린 겁니다. 그러다 보니 방금 말한 대로 불안한 미래를 예측하는 시스템이 훨씬 더 발달하게 되어있어요. 실제로 불안한 게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회피하고자 하는 회피 동기가 머릿속에 굉장히 많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자기 뇌가 스스로의 미래를 설정해놓고 지금의 자기를 조율하고 있는 거예요. 사건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그런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아 이것은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 이미 만들어진 것과 시간이 대입돼서 미래에 대한 불안의 환상을 만드는 것이구나. 그래서 내가 불안해지는 구나’라는 생각을 계속해야 되어요. 일단 뇌에서 불안한 영상이 만들어져버리면 그것은 그냥 사실이 되어버려요. 실제로 불안한 것하고 불안을 환상으로 만드는 것하고 별다른 차이가 없어요. 그것이 사건이 아니라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는 걸 자기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환상이라는 사실을 계속 떠올려야 해요. 납득한다는 게 뭐냐면 그런 불안한 생각을 자주 하면 ‘맞아, 그것은 환상이야’라는 생각이 바로 떠오를 수 있을 정도까지 가장 임팩트 있는 단백질의 회로가 형성되는 거예요.



두 번째는 운전을 해보겠다는 건 자가용을 하나 사볼까 하는 생각도 있는 거거든요. 요즘 자동차 가격이 3천만 원 정도 한다고 생각합시다. 좀 비싸면 5천만 원 할 것이고요. 그런데 그 돈이면 평생 택시 타고 다녀도 다 못 쓸 돈이에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면 충분히 돈을 훨씬 덜 쓰고 편안하게 다닐 수 있어요. 우리나라처럼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는 곳에선 약간의 노력을 들여서 차를 안타고 다녀도 충분합니다.

 

 

질문2 : 저는 재미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Q>저는 현재 4명과 더부살이를 같이하고 있는데요. 그 중 한 언니가 지나가는 말로 ‘너 재미없는 거 맞잖아’라고 말했어요. 그 말이 기억에 남고, 한편으로는 ‘아, 그 언니랑 나랑 안 맞나보다, 나를 재미있게 여기는 사람도 있는데.’라는 생각도 들지만, 스스로 다시 생각을 해봐도 재밌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편인 것 같고, 행동도 대범하고 용기있게 하지 못해서 걸립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백수다 프로그램에서 계속 서로에 대한 문제를 얘기를 해주기로 했고, 같이 사는 사람들이 문제를 많이 지적해주는 편이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제가 긴장을 하고 어색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하면 편하게 지낼 수 있을지가 궁금합니다.

 



정화스님 : 물론 모두를 재밌게 해줄 수 있으면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재미있는 사람으로 비춰지길 바랄 필요도 없어요. 누가 나에게 ‘재미없어.’라고 그러면 ‘저 사람은 나를 재미없게 보는구나.’에서 생각을 끝내야 돼요. 그런데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비춰진 것에 자기를 맞추려고 하는 습성이 있어요. ‘너 재미없어’하는 것은 말 한 사람한테만 사실이에요. 그러나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이 사람에게 재미있게 해줘야하는데, 내가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구나.’하면서 자기를 스스로 힘들게 하는 마음이 들도록 되어있는 것이 사람이에요. 본인만 그러는 게 아니라 누구든 그런 말을 들으면요 그렇게 생각하도록 되어요. 일단, 그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서는 직관과 논리적으로 듣는 말을 계속 가공하면서 안에서 계속 재미있게 해주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영상을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말을 들으면 ‘아, 저 사람은 나를 재미없게 보는 거구나. 그건 그 사람한테만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저 사람에게 재미있게 보여야 할 이유는 없다.’ 라고 말을 해줘야 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지적하면 내가 특별히 도덕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있어 고쳐야할 문제가 아니면, ‘아, 저 사람은 내가 이런 점을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구나.’에서 그치면 돼요. 굳이 그 사람 말을 따라서 내가 나를 고치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의 나를 고친다는 말은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기를 원한다는 말이에요. 아까 말한 대로 그 원하는 것이 있는 한, 지금의 자기 존재는 원하는 것으로써 존재하는 수단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이 차이만큼 자기 인생이 불편해져요.



네 사람과 같이 사는데, 정해진 일을 하면서 힘들지 않게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지적을 한다면 다 그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내 문제가 아니에요. 그 사람들에게 맞추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규칙을 정했는데 안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것 밖에까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존재로까지 존재해야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그런 것들은 그 사람이 영역을 넘어 말을 하고 있는거에요. 그 말을 들으면 내가 나를 비난하거나 거기에 맞추려는 측면이 있는거에요, 서로 살아온 과정에서 익혀 온 재료가 다른 데 어떻게 합니까?


또 너무 여러 사람들하고 다 좋아하고 잘 지낼 필요 없습니다. 그냥 뜻 맞는 사람이 한명 있든, 아무도 없든, 혼자서 자기를 잘 볼 수 있을 능력만 길러지면, 텔레비전에 나와서 코미디언 할 것도 아닌데, 짤릴 염려 없어요. 만약 돈을 벌려고 하면 상대방의 마음에 들게 하는 것이 필요해요. 내가 즐거운 일을 하는데 돈이 되면 좋긴 하지만, 상대는 원하지 않을 수가 있어요. 내가 물건을 팔려고 하면은 상대를 속이게 될 수도 있는데,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자기가 하는 정도껏, 내가 한발을 떼면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고 원함이 이루어지는 일이예요. 한발을 떼고 있는데 두발을 원할 필요가 없어요. ‘하고 있는 일이, 그것이 내가 원하는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인생이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한발을 떼려고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맞추려고 하는 노력이야.’라고 하는 것은 90% 이상 실패하기 쉬워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99% 유전자가 같다고 하지만. 그것들은 어떤 연결망을 갖느냐에 따라서 생각이 달라집니다. 각자가 생각의 도로를 만들어요. 일란성 쌍둥이도 이 도로가 달라요. 내 생각의 도로에 완벽하게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내가 하는 것을 재미있게 하는데, 다른 사람이 그걸 재미있게 보면 접속하는 거고 재미있게 안보면 접속안하면 되요. 네 사람이 같이 살지만 한명도 안 맞아도 상관없습니다.

 


질문3 : 평소에 낯을 좀 가려 사람들과 친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Q> 저는 평소에 낯을 좀 가리는데요. 2~3년 정도 같이 생활도 하고, 공부도 하고 마음도 잘 나누던 팀이 있었는데 그 팀이 갑자기 깨지게 되었어요. 팀이 깨지니까 혼자 의기소침해지고 새로운 사람들하고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직은 좀 적대감이 올라오고 그래요. 지금 마음의 문에 닫혀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하고 지내다 보면 해결될 걸 알지만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궁금합니다.

 

정화스님 : 사람하고 지내면서 그 문제가 해결되려면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려요. 어린애가 지나가다가 저를 보면 대부분은 도망가요. 열에 열 명은. 근데 100에 한, 두 명이라고 할까요. 생글생글 웃는 애들도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감정대로 자기를 표현하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거기다가 감정을 더 억제하는 타입이라면 무서워도 생글생글 웃는 거예요. 그런데 운 아이들 있잖아요. 그런 애들은 억제하는 기질이 덜해요. 대부분의 어른들은 키우면서 이러이러하게 조신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쳐요. 원래 그런 성향인데 거기다 약간만 저렇게 배우면 바로 감정을 억제하는 타입이 돼버려요. 이런 사람들은 감정을 마음대로 표출하는 능력 자체를 내부 속에서 잡고 있어요.


우리나라 어떤 센터라는 곳에 가면 울고 싶을 때 가면 우는 방이 있어요. 거기서 계속 울어요. 웃고 싶은 생각이 들면 웃는 방이 있어요. 거기 가서 계속 웃어요. 미친 사람처럼. 춤추고 싶은 마음이면 춤추고. 심지어 나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혼자 있고 싶다. 그러면 그렇게 할 수 있게 만든 방들이 있어요. 이런 방을 통해서 감정을 조율하는 훈련을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낯가림은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바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슬픈 것을 보면 막 우는 연습. 또 웃고 싶으면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미친 거 아니야라고 할 정도로 웃는 연습. 이렇게 감정을 스스로 풀어내는 훈련을 해야만 사람을 만나는 데 좋아져요.




또 감정을 억제하면 다른 사람의 뜻에 맞추려고 하는 것도 강해져요. 사람 앞에 딱 서면 내 뜻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고 상대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가 나의 행동을 지배합니다. 감정을 너무 타인에게 맞추려고 하면 사람 만나기 힘들어지는 거에요. 이런 사람들은 한, 두 사람 외에는 여러 사람하고 관계할 수 없어요. 대신에 한, 두 사람에게는 자기감정을 끝까지 줘요. 근데 아까처럼 다른 사람에게 잘 맞추는 사람 있잖아요. 그 사람하고 질문자하고 만났다고 합시다. 그럼 금방 배신감 느낍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 사람한테도 감정 1, 저 사람한테도 감정 1, 100사람에게 감정1밖에 안 줘요. 다 합쳐야 100이에요. 근데 이 사람들은 한, 두 사람에게 100을 줘요. 여러 사람을 만나는 사람한테 내가 감정을 주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그중에 나는 하나일 뿐이에요. 어려서 훈련이 그렇게 된 사람들은 상대가 어떻게 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이런 식으로 표출할 수 있는 방향의 강도가 훨씬 약해요. 그래서 사람을 잘 만날 수 있어요. 내가 굉장히 잘 맞춰줘야 할 강도가 내부적으로 쌓여있는 사람은 여러 사람에게 맞추게 되면 내가 지쳐서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렇게 안 맞춰도 된다는 걸 내부적으로 훈련하세요. 그뿐만 아니라 쉽고 좋을 때 마음껏 표출하고 표출이 안 되어 있는 것을 풀어내는 연습을 해야 해요. 그래서 울고 싶을 때 확 울어버리는 게 나쁜 게 아닙니다. 웃고 싶을 때 막 웃고. 혼자 방에 있으면 계속 그런 연습을 하는 거예요 항상. 그다음에 다른 사람의 얼굴 변화에 맞춰서 자기감정을 막 조율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아, 감정을 닫는 것이 질문자의 거의 유일한 해법이었어요. 맞출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여러 사람하고 살 수가 없는 거예요 같이. 그런데 이게 나쁜 게 아니에요. 여러 사람하고 같이 살 수 있으면 같이 살면 되고 한, 두 명하고 사는 사람은 이렇게 사는 게 답이에요. 잘못했거나 잘했다가 아니에요. 그런데 이걸 내가 다시 해보고 싶다는 거지요. 그럴 때 감정을 표현하는 법과 다른 사람에게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이 연습들은 내부에 응어리져 있는 자기 불안 요소들을 해소하는 방법도 돼요. 옳다 그르다고 할 요소가 없습니다.​ 


정리_깨봉청년백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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