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관찰이 아니라, 삶을!

관찰이 아니라, 삶을!  




최후의 예술을 꿈꾸며



카프카는 자신의 삶을 ‘탄생을 앞둔 긴 망설임’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긴 망설임의 ‘끝’을 무엇이라고 보았을까요? 카프카의 건강은 1920년 무렵부터 점차로 나빠졌습니다. 그는 1924년 6월,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요, 마지막에는 후두에까지 번진 결핵 때문에 마시지도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육신의 고통도 그의 글쓰기를 막을 수 없었어요. 사실, 카프카는 언제나 그랬습니다. 좋은 음식과 충분한 휴식보다는 불면의 밤이야말로 그의 양생법! 밤을 낮 삼아, 글쓰기의 고통을 양식 삼아 쓰고 또 썼던 카프카. 펠리체 바우어와의 이별을 결심하고 쓴 편지 한 자락을 보면, 그가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글쓰기였습니다. 삶이란 글쓰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내면에는 두 자아가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한 자아는 그대가 원했던 것과 거의 같습니다. 그 자아는 그대의 소원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한 것을 계속적인 발전을 통해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 한편 또 다른 자아는 작업만을 생각합니다. 작업은 이 자아의 유일한 걱정거리지요. 작업은 가장 비열한 상상조차도 이 자아에게는 낯설지 않게 만듭니다. […] 이 두 자아가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서로 두 손으로 마구 때리며 덤비는 실제적인 싸움이 아닙니다. 첫 번째 자아는 두 번째 자아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자아는 결코 내적인 이유에서 두 번째 자아를 내동댕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두 번째 자아가 행복해하면 그 자신도 행복해하지요. 두 번째 자아가 짐작컨대 상실감에 빠져 있으면 첫 번째 자아는 옆에 무릎을 꿇고서 그를 쳐다보기를 원할 뿐입니다.(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내는 편지, 1914년 10월 말 11월 초) 


그런데 카프카는 자신의 글쓰기를 죽음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창작을 위해 나는 ‘은둔자’가 아니라–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죽은 사람의 경우와 같은 정적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창작은 깊은 잠, 곧 죽음입니다.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끌어낼 수 없듯이 그 누구도 나를 밤에 책상에서 끌어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 대한 태도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나는 이처럼 체계적이고 일사불란하며 엄격한 방식으로만 글을 쓸 수 있고 그 때문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내는 편지, 1913년 6월 26일)


그에게 책상이란 하나의 관이었고, 글쓰기란 삶 너머를 경험하는 행위였습니다. 펜을 쥐고 있을 때의 그는 현실을 초월했기에, 정치의 어떤 풍랑에도 내면의 어떤 번민에도 흔들리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지요. 그렇게 해서 그가 만들어낸 형상이 바로 갑충으로 변신하는 외판원과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는 아들, 그리고 아직도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는 K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글쓰기라고 하는 죽음’으로부터 도착한 존재들이었어요.


발자크(1799~1850)와 같은 작가는 평생 소설의 주제나 스타일을 바꾸어가며 글을 썼습니다. 반면, 프루스트(1871~1922)는 오직 한 작품에 생을 다 걸었지요. 14년 이상 집필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단 하나의 문제의식, 단 하나의 스타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럼 평생을 글쓰기를 위해서 다 바치려 했던 카프카의 밤은 어땠을까요? 그는 변화무쌍한 실험적 글쓰기를 했을까요? 아니면 단 하나의 주제를 벼리기 위한 절차탁마를 했을까요?


저는 지난 일년 동안 카프카가 제도의 굴레에 갇힌 삶을 극복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제도란 언어, 부모, 친구, 연인, 민족, 전통, 그리고 신. 세계를 빼곡히 채우는 약속의 그물들을 말합니다. 거미줄같은 삶의 한계에 찍 달라붙어 살아야 하는 존재의 소외와 그 극복을 위해 저토록 특별한 형상이 동원된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최근, 카프카가 쓴 최후의 작품을 다시 읽던 중에 특이한 비약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카프카가 1921년 무렵부터 줄곧 고민한 형상은 갑충이나 K가 아니라, 예술가였던 것이지요. 외출 타기 곡예사(「첫번째 시련」, 1921), 단식 광대(「어느 단식 광대」, 1922), 휘파람 가수(「작은 여인」(1923),「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서씨족」(1924)). 그 뿐 아닙니다. 그가 출판을 원하지 않았던 작품 중에는 벌거숭이 개 댄서가 나오는 「어느 개의 연구」(유고)도 있었습니다. 이들 중 앞의 네 작품이 『어느 단식 광대』(1927)로 사후 출간되는데요, 카프카는 최후에 오직 예술가만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카프카는 1920년 이전에도 예술에 대해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종자』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오클라호마 극장’은 온갖 법망에 걸리지 않으려는 자들의 최종 피난처였어요. 『소송』에서는 요제프 K가 화가를 만나지만, 그의 아뜰리에는 존재의 감각적 인식마저 제도화하는 공장이었지요. 1920년 이전의 작품에 등장하는 예술의 모티프는 모두 ‘제도’의 언저리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카프카 최후의 예술가들은 ‘제도’ 따위에는 전혀 관심없다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단식광대같은 이는 자거나 먹는 일에만 몰두하지요. 최후의 예술가들이 문제삼은 것은 제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카프카는 생의 마지막에 ‘제도적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폐기했던 것일까요?



카메라를 든 사나이들 


예술가의 전신(前身)으로 삼을만한 존재는 누구일까요? 이 예술가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관찰가라는 점입니다. 단연 최고는 단식광대이겠지요. 아, 그러고 보니 카프카는 일찍부터 ‘관찰’을 중요한 주제로 삼았었군요. 첫 단편집의 제목도 『관찰』이네요. 단편 대부분에 나오는 화자들은 하나같이 뭔가를 들여다보며 질문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단편뿐 아니라 장편계의 스타인 카를 로스만과 요제프 K, 그리고 『성』의 K도 모두 사방으로 의혹의 눈길을 던지는 탐험가요, 측량사였습니다. 그럼 카프카 최후의 예술가들은 관찰자의 다른 버전인 걸까요? 그렇다면 카프카는 왜 그들을 관찰자의 최종 버전인 ‘K’라고 하지 않고, 예술가라고 불렀을까요?




이런 질문을 품고 카프카의 관찰자들을 순서대로 다시 읽으니, 그들 모두가 자신만의 카메라를 들고 조금씩 다른 미션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단편집 『관찰』의 화자들은 창문 밖을 바라보지요. 그들은 세상이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인 규칙들로 이루어져있음을 깨닫습니다. ‘일상을 알알이 채우는 규범들도, 어디 신성한 기원이 있어서가 아니라 의심없는 나날의 고개숙임 속에서 법으로 확정된 것에 불과했구나!’ 그래서 화자들은 버스에서 하차하는 소녀의 옷자락 하나까지도 놀란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생활의 모든 에티튜드, 계단을 내려오는 아가씨의 발걸음에까지 스며든 질서의 자연스러움이라니! 이들은 자신의 ‘관찰’을 통해 이미 주어진 세계를, 당연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상한 나라로 바꾸었습니다. 『관찰』의 화자들을 계승한 존재는 카를 로스만입니다. 그도 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가문의 약속과, 회사의 규율과, 침실의 모든 규범들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거든요. 결국 그는 카를 로스만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고서는 어디에서나 이상한 자, 아메리카의 영원한 이방인이 되지요.


학술원의 원숭이 피터의 관찰은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그는 철창 밖에 앉아 있는 인간을 관찰합니다. 원숭이라는 자기 한계를 슬며시 빠져나가기 위해 타자로서의 인간을 모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피터에게 관찰은 하나의 학습, 일단의 굴레를 빠져나가도록 돕는 중요한 실천 방법이었습니다. 관찰을 굴레 밖으로의 탈출법으로 삼았던 또 다른 존재는 『소송』의 요제프 K입니다. 요제프 K는 특정한 질서(사법)를 관찰하면서, 그 악덕을 넘어설 방법을 모색하지요. 그런데, 카프카는 『소송』(1914~1915)을 집필하다 말고, 「유형지에서」(1914, 1918 재집필, 1919 출간)라는 작품을 썼습니다. 카프카는 요제프 K식의 관찰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걸까요? 선한 제도를 찾아낼 수 있는 안목을 갖는 것으로는 부족했던 걸까요?


여기서 피터의 운명을 다시 떠올려보게 됩니다. 원숭이의 굴레 밖에서 피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인간의 굴레였습니다. 요제프 K는 ‘어떤 법망도 나를 가둘 수 없노라’ 큰소리치며 법 아닌 것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나쁜 법을 판단하는 또다른 판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카프카는 자기가 든 카메라의 렌즈만을 믿고, 결국 그 렌즈 안에 갇혀버리는 관찰의 위험을 감지했기에, 『소송』을 미완으로 끝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유형지의 탐험가는 어떤 존재일까요? 그는 짧은 여행만이 최고의 여행이 될 수 있다며, 유형지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도 동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방관자적 시선은 유형지의 사법질서를 파괴시키고 말지요. 죄에 대해 묻기는 하지만, 처벌에는 관심이 없고. 법질서의 기원을 듣기는 하지만, 그 미래를 상관하지 않는 무심함! 탐험가는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에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으면서, 완벽하게 낯선 눈빛을 하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프레임(제도)에 대한 어떤 기대도 없는, 자신의 렌즈 자체를 믿지 않는 그의 관찰을 통해, 삶을 유형지로 만들던 제도 전체가 신기루처럼 부서져내리고 말았습니다.



측량된 것들의 측량사


그런데 카프카가 탐험가의 형상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악한 법질서를 파괴하고, 대지를 떠나자!’ 마지막에 유형지를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그런 ‘짧은 여행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탄생한 존재가 바로 『성』의 측량사 K입니다. 측량사는 이전의 관찰자들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원숭이나 카를 로스만, 그리고 요제프 K는 모두 선고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눈을 뜨자마자 자신이 감옥에 갇힌 존재라는 것을 압니다. 사방을 벽으로 인식하고 절망하며 움직입니다. 그들의 관찰은 법이 정해준 한계 때문에 시작된 수동적 투쟁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K는 스스로 성이 있는 마을에 왔습니다. 오직 측량만을 위해서! 이처럼 스스로 낯선 땅에 도착했다는 점에서는 「유형지에서」의 탐험가를 잇고 있지요. 하지만 탐험가가 유형지를 빠져나가기 위해 급급하다면, K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마을에 살러 왔습니다!’ K의 관찰은 탈출이 아니라 삶의 문제와 직접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K의 손에는 측량기구도 없고, 그의 산책은 언덕 위에 서서 지세(地勢)를 살피는 일과도 무관합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의 일을 궁금해할 정도로 그의 생활은 변화무쌍한데, 그럼에도 그가 관찰을 하는 존재임은 분명합니다. 마치 탐험가처럼, 그가 이방인의 눈으로 마을을 돌아다니기만 해도, 마을의 여기저기는 고장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의, 선함, 강함, 사랑, 우정 등, 측량된 모든 가치들을 처음 들어본다는 듯 대하지요. 그의 주특기는 어쨌든 자기가 서 있는 그 조건에서 용케 먹을 것과 잘 곳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그 와중에 애인과 친구는 계속해서 바뀌었습니다. 부부라면, 이웃이라면, 선생님이라면, 하인이라면? 그 어떤 사회적 관습도 그의 삶 속으로 온전히 밀쳐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K는 매순간 눈앞의 사람과, 발 딛는 장소를 다르게 느꼈고, 그랬기에 매번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약속된 관계, 말해진 명령, 그 어떤 것에도 의탁하지 않고 K는 오직 지금 자신을 살게 하는 것만 보려고 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는 일도 K에게는 솔직히 말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가장 필요한 것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K 때문에, 오로지 그 때문에 나리들이 방에서 나올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침에 눈을 뜬 직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몹시 부끄러워하고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 그렇다, K와 같은 인간이 분명 있는 것이다. 그런 자는 법이든 아주 평범하고 인간적인 고려든 모든 것을 무관심하고 졸린 상태에서 무시해 버리며, 서류 배달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집의 명예를 손상시켜 여태껏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을 일으키고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나리들이 직접 저항하기 시작해, 보통 사람들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자제력을 보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요지부동인 K를 몰아내기 위해서 벨에 손을 뻗어 도움을 청한 것이다.(『성』) 


어째서 K가 그럴 수 있었을까요? K는 이상한 나라를 동경하는 관찰자도 아니었고, 백작님 대신에 왕이 되기를 꿈꾼 반역가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K는 요제프 K처럼, 백작님을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K는 언제나, 카를 로스만처럼 아무도 이름 불러주지 않는 자가 되기보다는, 누군가의 남편이고 이웃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K와 다른 관찰자들 사이에 놓인 가장 큰 차이는 K가 삶을 꾸렸다는 점입니다. 그는 이미 측량되어 있던 제도를 자신의 삶이라는 기준으로 다시 측정하고 있었습니다.


K는 보여줍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제도’ 속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내 삶을 실체적으로 가꿀까여야 함을. 물론 그도 백작님을 만나야 한다고는 말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백작님은 나와 한 세계를 공유하는 일 존재일 뿐입니다. K의 관찰은 이미 측량된 세계 안에서, 자기 식의 윤리를 꿈꾸는 자가 던지는 관심과 애정의 눈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눈앞의 인간에게서 삶의 직접성을 요구하는 K가 자신들을 어떻게 볼까 전전긍긍하게 되지요. K의 눈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일구지 못하는 무능력이 비춰질 때마다 그들은 숨어버렸고,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삶을 조각하는 예술가


K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일구고 있었음에도, 카프카는 돌연 『성』을 중단하고 예술의 문제로 넘어갔습니다. 예술가들도 역시 탐구자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시선은 자기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보지요. 카프카의 예술가들도 K처럼 일상을 응시합니다. 그들은 우선 나 자신의 욕망이 얼마나 제도 속에서 조각되어 있는지, 그 미세한 결들을 어떻게 낯설게 감각해 볼 것인지, 그 문제에 몰두합니다. 그래서 단식광대가 하는 일은 굶기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먹여 살렸던 모든 것들을 탈탈 털어서 내 보이고자 했거든요.


거기에는 작은 탁자 위에 세심하게 선택된 환자용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단식 광대는 언제나 저항했다. 그는 그에게 몸을 숙이고 팔을 뻗어 도와줄 준비를 갖추고 있는 여자들의 손 안에 자신의 뼈만 남은 팔을 자진해서 올려놓기는 했지만, 일어서려고는 하지 않았다. 왜 사십 일이 지난 지금에서 그만두려고 하는가? 그는 아직도 더 오랫동안, 무제한으로 오랫동안 지탱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금 그만두려 하는가? 사람들은 왜 그에게서, 단식을 계속해서 전대미문의 가장 위대한 단식광대가 될 수 있는 영광뿐만 아니라, 그는 아마도 이미 그러한 단식 광대일지도 모르지만, 자기 자신을 능가하여 불가해한 단계에 이를 수 있는 영광도 빼앗아가려 하는가?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단식 능력에 어떤 한계를 조금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어느 단식 광대」)


그러나 온 몸에 새겨진 법의 무늬들을 읽기 위해 시작했던 굶음은 시간을 거듭하면서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철저하고도 집요한 자기 삶의 탐구! 사람들이 단식을 중단시키고자 음식을 들이밀었던 것은 당연한 행동이었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오직 자기 존재 자체만을 성찰하려는 그의 굶음이, 자신의 본질에 스스로 이르려고 하는 그의 철저한 태도가, 사람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이고자 한다! 내 삶을 살고자 한다!’ 굶음에서 죽음으로 이르는 광대의 온 시간은 가장 자기답게 살고자 하는 예술가의 자기 실험, 자기 창조의 순간순간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카프카는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삶을 조각한다는 것’, 그 어떤 제도의 힘도 무색하게 하는 자기 창조의 문제를 예술이라는 화두와 함께 돌파하려 했습니다. 죽음이란 ‘삶의 예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카프카에게 죽음은 법 너머의 피안이 아니라, 자기다움을 성찰하고 펼쳐 보이는 ‘글쓰기의 지금’이 아니었을까요?


글_오선민(고전비평공간 규문)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