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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 책상 위, 손 닿는 곳에 두고 자주 펼쳐보는 소설

by 북드라망 2018. 7. 18.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 책상 위, 손 닿는 곳에 두고 자주 펼쳐보는 소설



좋은 음반도 그렇고, 좋은 소설도 그렇고, 흠…… 좋은 그림도 그렇고, 어쨌든 좋은 작품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음식으로 치자면, '깊은 맛'하고 비슷한 것이다. 들을 때마다, 읽을 때마다, 볼 때마다 다른 맛이 난다. 이 '깊이'라는 것이 엄청나서 어떤 것은 결코 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 매번 다른 길을 걷도록 만든다. 어쩌면 그게 '인생'의 진실일지도 모른다. 어느 길로 가더라도 정해진 목적지가 없다. 매번 다른 풍경이 펼쳐지겠지. 다른 길로 가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좋은 작품'은 그런 식으로 300쪽 남짓한 단편집, 60분이 될까 말까 한 음반 한장, 한 눈에 다 들어오는 화폭 안에 '리얼'한 인생을 본뜬다. 아니 인생을 리얼하게 본뜬다.


『대성당』에 실려있는 단편들은 마치 관찰한 바를 기록한 듯 투명하다. 너저분한 심리 묘사 따위는 단 한줄도 찾아볼 수가 없다. 레이먼드 카버가 그리는 인물들은 몸짓, 표정, 행동으로 보여줄 뿐,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 식의 서술이 특유의 '깊이'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인물'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저렇게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읽을 때마다, 이렇게도 느끼고, 저렇게도 생각한다. 여백이 많다는 것은 가능성이 많다는 말과 같다. 독자는 매번 다른 것을 채운다. 따라서 글 자체의 이미지는 말할 수 없이 쿨(cool)하고, 독자의 머리와 가슴은 어느 때보다 핫(hot)하다. 『위대한 개츠비』가 스윙이라면, 『대성당』의 단편들은 비밥과 쿨 재즈의 중간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싶다.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그가 말했다.

― 레이먼드 카버, 김연수 옮김, 『대성당』,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127쪽, 문학동네

그들은 빵냄새를 맡았고, 그는 맛보라고 권했다. 당밀과 거칠게 빻은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 같은 책, 같은 글, 128쪽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것들이 또 뭐가 있을까? 아주 쉽게 떠오르는 것은 숨 쉬는 일, 먹는 일, 잠자는 일처럼 매일 하지만, 워낙 자주 해서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 보다는 조금 더 덜 평범한 일들도 있을 텐데, 맞장구를 쳐주는 일이랄지, 등을 두드려주는 일이랄지 같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일들이 있겠다.


군대에 갔을 때, 훈련소에서 주는 밥을 억지로 꾸역꾸역 먹었던 장면이 생각난다. 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서 끼니 때마다 육개장에 말아 입 속에 퍼넣었던 밥이 떠오르기도 한다. '꾸역꾸역' '퍼넣은' 밥이 없었더라면, 그 가뜩이나 힘들었던 그 두가지 일을 과연 버텨낼 수 있었을까 싶다. 특별히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렇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일들을 꼬박꼬박 해낸 덕에 이나마라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려웠던 순간들은 그런 식으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덕에 넘어간다. 그리고…,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 ― 비록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맞서 싸우기까지 했지만 ― 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 같은 책, 「열」, 254쪽

 

이렇게 '나'의 일부가 되어간다.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 살면서 겪는 일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더 길게는 몇 년쯤 지나고 나면, 모조리 '기억'으로 바뀌어서 어딘가에 저장되버리고 만다. 그 중에서 언젠가 꺼내보는 것은 극히 소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나의 일부가 되어서 미래의 어딘가에 영향을 주고 있겠지. 그렇지만 그 속사정을 나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카버의 소설들은 일견, 인생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을 박살내는 것 같다. 그 와중에 남는 것은 '허무'일까? 그렇지가 않다. 허무하다. 허무하기는 한데, 그 와중에도 인물들은 '그래도 뭐, 또 사는거지', '일단 밥부터 먹자' 같은 식의 태도를 유지한다. 이게 역설적으로 꽤나 힘이 된다. 낙관적인 태도 깊숙한 곳에 늘 허무를 숨기고 사는 나 같은 인간에게는 말이다. 인생은 꽤나 차갑다. 한번 늙고나면 두번 다시 젊어지지 않는 걸 보면 가혹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그 세파를 견디고 선 맨질맨질한 발바닥들은 얼마나 뜨거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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