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리처드 매드슨, 『나는 전설이다』 – 좀비들의 도시에서 살아남기

 리처드 매드슨, 『나는 전설이다』 – 좀비들의 도시에서 살아남기 


환절기마다 경미한 수면장애를 앓는다. 한 철 시행착오 속에 가까스로 안착한 체온과 기온 간 균형이 깨지고 새로운 시행착오의 시간이 돌아오는 것이다. 뜬눈으로 밤을 꼴딱 새우는 지경은 아니기 때문에 ‘경미하다’는 것일 뿐, 그 괴로움이 가벼워서 경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춥거나, 살갗이 너무 차가워지거나 진땀이 흐른다. 잠들기가 어렵고, 그나마도 자주 깬다. 잠 드는 데 한 시간씩 걸리는 것보다 자주 깨는 게 더 괴로운데, 매번 깰 때마다 다시, 한 번도 잠든 적 없다는 듯이, 잠들지 못하며 잠을 청하는 시간을 반복해서 겪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매번의 잠 이루기는 지난한 여정이다. 눈꺼풀은 한없이 무거운데, 정신은 새벽의 명징함 속을 맴돌기 시작한다. 온갖 사념이 일어나 마음에 발자국을 찍는다. 시지푸스의 저주가 이랬으려니 연민하다가, 밤마다 몇 차례나 반복되는 이 짧막한 잠들과 긴 뒤척임이 덧없는 윤회와도 같다고 명상하다가, 아니 내가 뭐 큰 거 바라는 것도 아니고, 잘 시간에 자겠다는데 그게 왜 이리 힘들어야 하는지, 지중해의 신이든 인도의 열반이든 이런 식이라면 냅다 멱살을 잡아 아랫턱이 달그락거리도록 흔들어 주고 싶다고 이를 간다. 어둠 속에 몸을 뒤채며, 이불을 뒤집어쓰거나 걷어차거나 다시 끌어당겨 덮기를 골고루 반복하며, 가끔은 눈을 떠 천장의 암흑을 가만히 노려본다. 그리고 귀를 기울인다. 생시의 의식을 떠나 죽음 같은 상태로 진입하기를 갈망하는 가운데, 주검을 흉내 낸 자세로 누워 묵직한 눈꺼풀 아래 짐짓 눈알을 굴릴 때, 귓전에 밀려와 부딪히는 밤의 소리들은 한없이 이질적이다. 고대하던 비몽사몽의 순간에 이를 때까지, 나는 그 다소곳한 듯 은밀한 듯 웅장한 소리들에 끊임없이 매료된다. 같은 소리일지라도 낮에는 없던 묘한 울림이 거기 깃들어있다. 멀리서부터 가까워지다가 기묘하게 달라져 다시금 멀어져가는 자동차 소리, 유난히 가깝게 들리는 개 짖는 소리, 쓰레기봉투 같은 것이 터지는 소리, 가끔은 취객의 고성방가. 그리고, 그 울림의 잔상이 높은 데 별까지 퍼져 올라간 후, 다음 소음을 간절히 기다리게 만드는 사이사이의 적요.  


밤의 적요에는 납추와도 같은 무게가 있다. 지속되는 침묵에 귀 기울이며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울 때, 나는 그 고요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끼쳐들어와 침묵을 깰 한 줄기 소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은 홀로 깨어있고 싶지 않은 순간에, 홀로 깨어있지 않음을 확인하려는 갈급함이다. 누군가 나처럼 눈뜨고 있다는 작은 증거들을 필사적으로 채집하는 것이다. 그것은 명백한 외로움의 발로다.  


외로움은 나의 전문분야는 아니다. 평소 주위를 채워주는 든든한 관계들, 그리고 혼자 있기를 워낙 좋아하는 천성, 그리고 꾸준히 익혀온 시간 처리의 기술 덕분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혼자 놀고, 혼자 대화하고, 셀프 대접하기에 바빠 외로운 줄 모른 채 잘만 지낸다. 그러나 세상이 다 잠든 캄캄한 고요 속, 깨어있는 사람이 나 혼자뿐인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때, 불켜지듯 환하게 이해가 내려온다. 아아, 이것이었구나.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이제 바윗돌을 굴리는 헐벗은 시지푸스의 이미지가 썰물처럼 물러가고, 스테이시 웨건에 올라타 텅빈 도시를 질주하는 어떤 남자의 이미지가 그 자리를 채운다. 태양 아래 그가 누비던 도시의 적요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의 세계에서는 낮이 고요하고 밤이 소란했지만, 소란한 동안에도 결코 외로움이 덜하지는 않았다. 알코올과 음악과 쉴 새 없는 노동으로도 달래지지 않던, 홀로 깨어있는 자의 사무치는 외로움. 공감이 밀려들어 내 졸음의 농도를 희석시킨다. 세상이 멸망한 후, 혈혈단신 살아남아 외로움에 이를 갈면서도 끈질기게 생존을 도모하던 한 사람. 자타공인 우리 종족의 마지막 전설이 된 그 사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로버트 네빌, [나는 전설이다]의 비극적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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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는 1950년대에 쓰여진 공포 SF소설이다. ‘공포’에 방점을 찍어야할지 ‘SF’에 방점을 찍어야할지 헷갈리는데, ‘걸어다니는 시체’와 흡혈귀 설화가 합쳐진 괴물들이 떼로 달려드는 세상이 주요 배경이기 때문에 공포물인가 싶지만, 현대 과학-생화학, 생리학, 심리학-의 관점에서 제시한 재해석이 제법 그럴듯해서 SF로 읽기에도 손색이 없다. ‘좀비’가 지금처럼 인기 있는 테마로 발전하는 데 단초를 제공한 작품이라고 한다. 출간 이후 세 번이나 영화화 되었는데, 윌 스미스가 주연한 2000년대 버전의 흥행성적이 가장 좋았다.  


 사실 좀비는 현대 장르문학의 여러 테마 가운데 내 삶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피조물이다. 물론 어떤 실제적이고 가시적인 변화을 초래한 건 아니다. 좀비 때문에 내가 더 가난해졌다거나, 더 근육질이 되었다거나, 큰 병에 걸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옛날보다 궁핍해지고 근육량이 많아진 것 같긴 한데, 좀비가 그 원흉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삶이 좀비 전후로 나뉜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차이는 삶의 모든 국면에서 특정한 가정을 도입하게 된 내 태도에 있다. 언제 어디서나, 느닷없이 좀비들의 공격해오는 상황을 염두에 두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좀비에 대한 생각은 매캐하게 휘감아 도는 공기, 싫어도 호흡 한 숨 한 숨에 빠짐없이 딸려들어와 폐 속에 중금속을 콕콕 박아넣는 초미세먼지에 가깝다. 이성이 증발된 채 식욕과 생존욕만이 남아 썩은 살점을 덜렁거리며 야수처럼 달려드는 이미지가 강렬하게 각인된 후, 좀비는 내 일상의 거의 모든 순간에, 무의식 저편에서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고려하는 변수가 되어버렸다. 어떤 장소에서건 비상구를 살피고, 걸어 잠글 밀폐공간의 유무를 확인한다. 화재 때문이 아니라, 좀비 때문이다. 고층빌딩에 들어가면 생각한다. ‘유사시에는 옥상으로 달아나면 되나?’ 화재 걱정 비슷하지만, 아니다- 순도 100%의 좀비 걱정이다. 기차를 타면 고민한다. ‘이게 기관차로부터 몇 번째 칸이지?’ 집안, 내 방, 내 침대에 누워서도 시시때때로 계산해본다. ‘지금 냉장고의 음식들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지?’ 그러다가 소스라쳐 벌떡 일어나 앉는 일도 물론 다반사다. ‘옆집 노부부가 감염되면 어떡하지? 그럼 베란다도 막아야하는데!’ 




정전의 세월동안 한반도에 살면서 전쟁 걱정 한 번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내게는  좀비의 공격이 훨씬 와닿는 이슈였다. 얼핏 보기에는 이치에 맞는 행태는 아닌 듯 하다. 그러나, 가만. 정말 그럴까?  


2018년의 대한민국에서, 비혼의, 독거의, 홀몸 여성의 삶이라는 건 실상 끊임없는 경계로 점철된 삶이다. 2017년에도 그랬고 2016년에도 그랬고, 하나하나 되짚어 올라가도 안 그랬던 해는 하나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기 위해 오지랖 넓은 동네 사람들과 거리를 두어야 하고, 불운한 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동거인이 있는 척 위장해야 한다. 배달음식은 가급적 시켜먹지 않으며, 인터넷 쇼핑을 할 때면 세 번 중 한 번은 아버지나 남자 형제의 이름을 적어 넣는다. 현관 앞에는 낡은 신사화를 얻어다가 전시해 놓고, 빨래를 널 때도 창 바로 앞 줄에는 중성적인 티셔츠와 바지 류를 세심히 골라서 넌다. 여자속옷만 주렁주렁한 걸 감추기 위해서다. 모든 것이 생존의 방편,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최선의 대응들이다. 


혼자 사는 여자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몸에 밴 위장전술들은, 창마다 널빤지를 대어 못질하던 로버트 네빌의 생존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널빤지로 막고, 마늘액을 둘러치고, 꽁꽁 걸어잠근 문 안에서 우리는 마음을 나눌 한줌의 동족을 애타게 그리워하지만, 누구에게도 섣불리 문을 열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섞여있을 수 있다. 그러나 네빌, 외로움에 너덜너덜해진 그 가엾은 사람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던 한 여자에게 문을 열어주었고, 그 한 번의 착오로 허무한 파국을 맞았다. 그러니, 전제는 비관적으로 깔고 가는 게 좋다. 성선설을 전제로 하기엔 세상이 너무 위험하고 우리는 너무 취약하다. 네빌에게도 그랬고, 나에게도 그렇다. 


대도시의 익명적 삶에서, 마주 앉아 소통할 뜻이 없는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좀비들이다. 입방아의 제물도 되고 싶지 않고, 강간절도사건의 피해자도 되고 싶지 않고, ‘여자가 빌미를 줬네’라는 혐의도 사양하고 싶은- 비혼의, 독거의, 홀몸 여성인 나는, 자, 어느 옥상으로 뛰쳐 올라가야 하나? 그러나 그 어느 옥상에서도 나는 어김없는 불면의 밤을 맞이할 것이고, 지난 밤들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멀고 기약없는 소리에 간절히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깨어있고 싶지는 않아.   


글_윰(sf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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